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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신앙의 태동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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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의 태동과 그 의미

(마가복음 16:1-13)

 
2014년 4월 20일 부활주일예배

최만자 자매 (새길교회 신학위원)

 

신동엽 님의 시의 한 부분을 나누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물줄기 우그려 넣고 있을, 아! 죄없는 눈만 큰 어린 것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 4월은 일어서는 달”

 

신동엽, <4월은 갈아엎는 달> 중에서

 

그러잖아도 4월이 오면 4·19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고 아깝게 죽어갔던 당시 젊은이들의 희생이 가슴 저리게 하는데, 청천벽력 같은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당한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제발 살아서 돌아와 다오 라는 말밖에는 아무 말도, 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교회가 부활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부활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정말 어수선한 마음으로 제가 준비한 내용을 말씀드립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함께했던 무리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예수운동은 지상에서 끝날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부활했다’는 믿음이 드러나면서 그들은 다시 모였고, 또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 복음과 그의 삶과 죽음을 다시 기억해 내어 선포하기 시작한 것이 기독교가 출현하게 된 기원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요, 선포입니다. 만약 예수의 부활선포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출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독교는 예수의 부활신앙에 정초해있고 이를 통해 온 세상에 의미를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복음서들과 서신들에서 기록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 저자들은 다양한 부활 표상을 역사적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결부시키며, 현재적인 부활사건으로 해석해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김경희 교수에 의하면 이 예수의 부활에 관련된 성서의 기록들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예수가 누구누구 앞에 나타났다’라고 하는 형태의 ‘예수 부활 현현-나타남’의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빈 무덤 이야기’의 형태로 예수의 부활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현현 보도들은 마가복음 이외의 다른 복음서들과 바울 서신의 기록에서 나오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 현현보도의 중요 관심은 예수의 부활자체 보다도 초기교회의 ‘사도권’ 입증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3-5, 6-9에는 성경대로 예수가 3일 째에 부활하셨고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고 그 다음에 12제자에게 나타나셨고 다음엔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에게, 다음엔 야고보에게,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면서, 그리고 마지막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다고 바울은 자신 앞에 나타난 예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1의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하였습니까? …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 몰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이를 통해, 당시 초대교회에서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논쟁이 극렬하게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현현보도는 최초의 현현을 본 자가 베드로라고 내세우면서 곧 베드로가 예수부활신앙을 처음 태동 시킨 자로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베드로의 예수현현 기록은 구체적인 내용이나 사건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엠마오 도상 제자들 이야기나, 요한복음 20장의 도마이야기나 21장의 디베랴 바닷가에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 물고기 밥상을 차리신 이야기 등 다른 제자들 앞의 풍부한 이야기, 구체적 정황이 나오는 것에 비해서 매우 다른 형태입니다. 사실 베드로에 관한 다른 이야기(닭이 울기 전 세 번 예수를 부인할 것이라는 등)는 매우 많은데, 베드로 앞의 현현 보도에는 베드로가 주인공 되는 이야기가 발견 되지 않습니다. 만일 베드로 앞의 현현이 대단한 것이라면, 4복음서들이 구체적 이야기들을 보도하지 않을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학자들은 베드로, 12제자, 야고보 또 다른 사도들 앞의 부활 현현(고전 15:7 이하)은 원래 예수부활을 나타내려는 의미보다는 사도 권위부여의 의미를 지녔던 것임을 밝힙니다. 즉, 현현보도 전승의미는 사도들의 권위화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앞에서의 최초 예수 현현이 있어서 기독교의 부활신앙이 태동되었다는 가정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빈 무덤’ 이야기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현존하는 부활전승 중에서 가장 옛 부활 전승으로, 물론 역사적 보도는 아니고(천사의 출현은 역사적 차원을 초월), 순수한 신앙전설로 예수가 부활했다는 신앙을 근거로 생겨난 전설적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부활신앙이 어떻게 빈 무덤이야기 형태로 이야기 될 수 있었을까요? 생각해본다면,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죽은 사람(특히 의인)이 하느님에 의해 일으켜져서 하늘로 승천한다는 생각이 있었고(에녹과 엘리야 혹은 그 외에 하늘에 살고 있는 의인들 같이 하늘에서 복자의 삶을 갖는다는 믿음), 육체, 영혼이 분리되지 않고 결합되어 있다고 아주 소박하게 생각해서, 부활 때 이르러 그의 몸도 함께 일으켜져 하늘로 올려졌다고 생각했습니다(부활은 ‘일으킴’, ‘일으켜짐’, ‘일어남’의 번역어). 그래서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는 것은 팔레스타인 지역 유대교 부활표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욥의 유훈서 39-40장에는 빈 무덤 이야기와 유사한 표상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탄이 집을 무너뜨려 욥의 아이들이 깔려 죽는데, 욥의 아내가 왕에게 아이들의 시체를 찾아줄 것을 청하고, 왕이 그렇게 하려고 하자, 욥이 말하기를 아이들은 창조주의 하늘에 들어 올려졌고, 지존자의 영광 앞에 면류관을 쓰고 있는 환시를 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의인에 대한 동경과 신뢰에 뿌리내린 소박한 표상에 입각한 부활신앙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예수부활 신앙을 태동시킬 수 있어 보이며, 부활신앙은 처음부터 이런 구체적 표상으로 민중들 가운데 이야기 되었을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 빈 무덤 부활이야기의 최초 증인이 ‘여성’들로 이야기 되어져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어떻게 여인들이 부활신앙을 빈 무덤으로 표상하는 첫 증인이 되었을까요? 유대사회에서 여인들은 증인의 자격을 갖지 못했습니다. 욥의 유훈서를 기억해 보면, 아이들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절대로 그냥 보낼 수 없어 시체라도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그 ‘간절함’으로 인해 아이들의 승천을 보게 되듯, 갈릴리의 여인들의 예수를 향한 ‘간절함’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새로운 삶의 차원을 열어주었고, 비인간화를 당하던 가정과 사회에서 존엄한 한 인간으로 인정받게 했고, 또 전통의 억압에 짓눌린 마음과 육체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었고, 사회의 밑바닥,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서게 했으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주체적 인간으로 당당한 삶의 주체로 세워 주었던 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는 자신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 질서의 본질을 여성들의 삶을 통해 통찰을 얻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과의 대화,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논쟁, 혈루병 여인의 믿음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밀가루 반죽에 누룩을 넣는 모습에서, 잃은 동전을 찾아 온 방을 뒤집고 다니는 모습에서, 의롭지 못한 재판관을 졸라 자신의 인권을 찾는 등의 모습에서 삶의 다른 방식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는 이 여인들의 삶의 방식에서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통찰 받고, 여인들의 심성에서 민족의 화해와 새로운 인간성을 발견할 근거를 찾았습니다. 다시 말해, 여인들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여인들과의 논쟁을 통해 제3의 삶의 방식을 발견한 경험을 하였던 것이고, 따라서 여인들을 하나님 나라 통찰의 자원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인들은 그래서 그들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은 예수와의 만남을 그냥 묻어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 여인들의 예수와의 경험은 남성 제자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남성 제자들은 또 하나의 사회적 권력, 가부장적 지배구조를 추구하기 위해 따라다녔던 바로 그 경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고, 그래서 여인들의 질서는 예수 섬김과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참 제자직의 범례가 이 여인들의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여인들의 삶의 방식은 아마도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쓴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나오는 한 대목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일 곧 죽음의 아우슈비츠로 끌려갈 전날 밤,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기도를 하는 사람, 취하는 사람, 잔인한 마지막 욕정에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 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곧, 생명과 생존을 위한 무한정의 돌봄과 보살핌, 그것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살아온 방식인데, 완전한 절망의 상황에서조차도 그 현실과 꿋꿋하게 직면하면서, 보이지 않는 다음의 생존을 향해 절망의 벽에 좁은 구멍을 내며 온 존재 전체로 그 구멍을 밀어 올리며 벽을 뚫어내는(벼랑 끝에서 딸기를 따는) 삶의 힘을 드러내는 그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여성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삶의 방식이었고, 나아가 하나님께서 참 사람, 사람다운 사람에게 주신 영원한 영혼의 방식이었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질서이자, 또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살아내는 모습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는 예수에게서 그것을 알아차렸고, 예수는 여성들의 삶에서 그것을 발견하였으며, 이 지점에서 예수부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부활전승의 주된 담지자인 민중과 여성에겐 사도의 권위 문제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들의 관심은 그들 삶의 모든 절망적 상황을 단번에 분쇄시켜버리는 예수의 부활에 있었고, 그래서 자기들 삶 가운데 경험한 예수부활을 사실 이야기로 즐겨 이야기했을 것입니다(빈 무덤, 엠마오). 여인들에게 예수는 부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사회에 유포 되었던 욥의 유훈서의 빈 무덤 이야기, 부활 승천 사상은 그대로 예수에게 재현되었습니다. 그 여인들이 갈릴리서부터 예수를 따라 시중들고, 제자들은 다 흩어져 도망가도, 마지막 십자가 처형장까지 따라가 예수의 운명까지 지켜보고, 또 무덤에 묻힌 것을 보고, 그 무덤을 기억해 두고, 예수 처형장의 그 서릿발 같은 위협과 공포가 아직도 그대로 몸을 떨게 하는 그 공포의 새벽길을 예수 시신이라도 확인하고, 그 몸에 향유를 발라야 한다는 일념으로 무덤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예수가 그들에게 전해준 새로운 삶의 길로부터 얻어진 '새로운 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에 대한 이 경험이 없다면, 예수 부활사건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로부터 받은 새 힘, 그것이 예수의 부활입니다. 살펴보았듯, 여인들이 부활신앙을 태동시킨 최초의 부활신앙 담지자였습니다. 하늘의 열쇠가 베드로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는 바로 이 여인들의 부활신앙 증거 위에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서 본문을 보면 빈 무덤에서 만난 천사는 여인들에게 부활한 예수가 갈릴리로 갔음을 알리고, 또 제자들에게도 갈릴리로 갈 것을 전하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북부지역에 위치한 갈릴리는 비옥하여 풍요한 생산을 내었고 최고의 감람유를 생산해 낸 곳이지만, 바벨론 포로 이후 인종의 혼합으로 이방의 갈릴리라 불리고 순수한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받았던 곳입니다. 민중들이 뼈빠지게 농사짓고 노동한 생산품들은, 예루살렘 성전 지도자들과 로마에 의해 대부분 세금 등으로 착취당하여 민중의 삶은 가난하고 피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의 중심지였고, 예수는 생애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으며, 유다를 제외한 열한제자가 모두 이곳, 갈릴리 출신입니다. 요아힘 예레미아스는 반 로마적 사조와 메시야 사상의 본거지가 갈릴리였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민중의 운명을 짊어지고 투쟁에 나섰던 젤롯당도 갈릴리에서 탄생하였다고 합니다. 그곳은 예루살렘 동족에 의해 이방인 취급당하고 멸시와 억압, 착취당하여 굶주리고 죽어가던 사람들, 로마 제국에 의해 반역자 무리로 낙인 찍혀 피의 제물로 바쳐지던 사람들이 죽음의 그늘 아래에서 신음하던 유대민족의 역사적 현장이었습니다. 예수 부활소식은 갈릴리 민중들, 이방인과 폭도, 강도로 매도되어 죽임 당하던 사람들의 현장에 늘 함께 있겠다는 예수의 약속이며, 확증이었습니다. 부활하여 갈릴리로 간 예수의 행적은, 예수의 부활의 의미가 바로 ‘고통당하는 자들의 새로운 세상을 위한 예수운동’을 부단히 이어가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부활은 모든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일을 벌이는 것입니다. 눌린 자들이 해방되고 배고픈 자들이 먹고, 우는 자들이 웃게 되는 참된 정의와 평화를 수립하는 일을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예수 정신의 부활이며, 또 기독교 부활입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자인 월터 윙크는 그의 책, 『참 사람』을 통해서 예수가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개한 예수의 내적, 본래적 충동(inner fire)이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모든 지배형태를 정죄했다. 가부장제도와 부녀자 및 어린이들에 대한 억압, 경제적 착취와 모든 계급의 백성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 어린이들을 억압받는 역할과 가치로 사회화하는 주된 기구로서의 가족, 강한 자들에게 유리하고 약한 자들에게 불리한 위계질서의 권력구조, 법이 특권을 옹호하는 자들에 의해 유지되는 것, 사람들을 차별하는 정결법, 인종적 우월성과 자기민족 중심주의 등의 모든 지배형태를 정죄했다. 예수는 지배 없는 하느님의 질서를 선포했고, 새로운 가족 창조를 말했으며,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비폭력, 그리고 지배체제와 공모했던 것을 회개하라고 요청했으며, 비인간화시킨 여러 방식들에서 그들을 치유하고자 혼신을 다했다”고 전합니다. 특히, 윙크는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이 예수를 이해하는데 가장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뼈대”라고 말하면서, “교회전통의 뚜렷한 경향은 지배체제에 복음을 적응시키는 것”이라고 교회 전통을 비판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잘못되어 버린 것들은, 교회가 너무 자주 예수의 사명을 계속하지 못했던 것에 있습니다. 반유대주의, 억압적인 정치체제와 협동한 것, 교회 안의 위계적인 권력서열을 구성한 것, 여인들을 지도적 위치에서 몰아낸 것, 철저한 평등을 포기한 것, 그리고 교회행사들에서 가부장적인 통치를 확립한 것 등이라고 지적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이 전하는 메시지의 의미를 깨우치기보다는, 부활을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단순히 이해하고 이를 증명하여 믿게 하려는데 급급합니다. 예수의 부활마저 그분 시체가 되살아난 것으로 여기고 이를 증명하려 듭니다. 기독교 전통 부활 메시지는 단순히 예수 믿다가 죽은 후에 부활하여 천당 가서 영복을 누리며 슬픔, 고통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일어 날 수 없는 일이라고 이제민 신부는 말한다) 죽음 이후의 다음 삶에 대한 믿음으로 제한하고, 예수의 부활 본질을 신체소생으로 강조하며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어야 함을 교리주의적으로 강요합니다.


물론 인생의 생(生)과 사(死)는 우리 실존의 큰 물음이요, 이해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생각해보면, 부활신앙이란 그것이 ‘죽은 후 새로운 몸의 부활이라고 말하든지’, 혹은 ‘영적 몸을 입는 것’이라고 생각하든지 간에, 그것은 시대와 문화의 차이를 초월하여 인간이 영원히 살고자 하는 소원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기독교 부활신앙도 이런 인간 보편적 희구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부활의 몸에 대한 증언이 신약에 다양하게 있으며, 죽은 후의 인간 형태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 다양한 이해에 따라 교우들을 참으로 엉거주춤한 부활신앙을 가지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따라, 교회전통은 예수의 부활이해를 죽음 이후의 인간존재의 형태문제에 집착하여 전개하여 왔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신앙을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에 대한 문제와 관련시켜 해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죽음과 함께 영원한 신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며 이 사라짐 속에 또 다른 형태의 생명의 역사가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해결을 갖지 못한 채, 많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가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의 부활을 죽음과 그 이후의 인간존재 형태에 대한 문제로 천착하는 기독교 신앙은 성서가 말하고자 하고, 또 드러내고자 하는 예수부활 사건과는 매우 ‘다른’ 메시지를 주는 왜곡된 예수부활 이해라는 점입니다.


복음서의 예수 부활이해는 먼 미래에 있을 육체적 부활이 아니라, 지금 모든 사람이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있다는 ‘현재적 부활’을 선포하고 있기에, 죽음 이후의 다양한 부활 논쟁을 한마디로 일축합니다. 부활 논의는 지금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의 문제이어야 합니다. 부활은 물질적인 육신이 부활한다는 말이 아니고, 모든 인간관계가 부활한다는 말이며, 우리가 사는 동안, 예수를 진정으로 따르는 것이 예수의 부활입니다. 1960년 4월 18일 안암동서 고대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이승만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길거리로 밀려나오는 것을 보고, 안병무 박사는 ‘야! 민중의 부활이다, 예수의 부활이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예수가 갈릴리의 여인들 안에서 부활한 것처럼, 예수는 우리 안에서 부활하고 우리는 예수 안에서 부활합니다. 악과 불의에 저항하고 끝없는 인간애(人間愛)를 가지는 삶, 그것이 예수의 부활이요, 우리의 부활입니다.

 

지금 우리는 세월호 침몰의 비통에 빠져있습니다. 온 국민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모두 실종자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참 비참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는 곳이 갈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도자, 권력기관, 정권이 조작으로 부패해 있고, 진실은 휴지조각이 되어 있으며, 국정원 조작사건을 남재준의 3분 사과로 끝을 내는, 이 불한당 같은 정권에 대해 아무 느낌도 가질 수 없는 것이 가능할까요? 세월호 사태로 분노는 갈수록 더 커지는데 조작사건은 도리어 도피처를 얻고 있다니 말입니다. 권력주의의 폭력이 커지고, 도덕 불감증, 안전 불감증, 정의 불감증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모두 ‘탐욕’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이 판에서 ‘정의’를 향한 우리의 ‘본래적 충동(inner fire)’은 꺼져 있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부활절 예배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내 안에서 예수가 부활하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아니 제 자신을 향한 예수부활에 대한 질문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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