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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 이후의 삶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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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구원 이후의 삶                          
창19:30-38


  소돔과 고모라가 하늘로부터 내린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할 때, 롯과 그의 두 딸은 극적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심판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적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롯은 그 무서운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결코 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소돔에서 살면서 오염되었던 모든 죄악된 것들을 철저하게 버려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하여 평생 순종하며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다시는 소돔에서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이렇게 구원받은 이후에 어떻게 살았을까요?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알에서 떠나는 롯
  롯이 심판을 피하여 급하게 들어간 곳은 소알이라는 작은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으로 피해 들어가 살던 롯은 그곳에서 살기가 두려워서 그 성을 빠져나와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30절)


  롯이 소알에서 살기를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처음에는 이 성도 소돔과 함께 멸망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롯이 심판을 피하여 나갈 때 너무 두려워서 산까지 갈 수가 없다고 하면서, 천사에게 제발 이 성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의 간청을 허락하시고 소알을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실로 미루어 짐작해볼 때 우리는 소알도 소돔과 비슷하게 죄가 관영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롯이 그 성에서 나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소알에서 살던 롯은 이렇게 죄악된 곳에서 살다가는 언제 소돔에서처럼 또 멸망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롯은 이것이 두려워서 그 성을 떠나 산으로 가서 굴에 들어가 살기로 한 것입니다.


    사명을 포기한 롯
  롯이 죄악된 성 소알에서 떠나 산으로 들어간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롯이 소알 성을 떠난 것은 죄를 떠나서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였을까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것은 심판이 두려워서였습니다. 롯은 방향을 잘못 잡았습니다. 소알에서 살다가는 또 다시 언제 심판을 당하게 될지 두려워서 산으로 들어간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소알 성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소돔과 고모라가 하늘로부터 내린 불과 유황에 멸망당한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 가운데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롯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롯은 소알 사람들에게 심판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소돔은 죄악 때문에 심판을 당했다는 것을 증언하고, 소알 성도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야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롯이 소알 사람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더라면 그 성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롯의 말을 귀담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소알 성에서 살게 된 롯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이 사명을 외면하고 산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명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천국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좀 더 즐기며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가게 될 천국에 비하면 이 세상은 쓰레기장만도 못합니다. 그런데 왜 구원받은 우리가 여전히 이 세상에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심판을 경고하고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고민과 갈등 가운데서 기도하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명을 너무나도 쉽게 망각하거나 포기합니다. 조금 기도해보고는 안 된다고 합니다. 직장에서 믿음을 지켜보려고 나름대로 고민하고 애를 써봤지만 안 된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전도해보려고 몇 번 시도해보다가 안 된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할 만큼 해봤는데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 두겠다고 합니다. 정말 안타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부끄럽고 불충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믿음 좋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해서 그러실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얼마나 믿음 없고 부끄러운 삶을 살 때가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 믿는 가족을 위해 기도하다가 지쳤습니까? 베스트를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며 애쓰다가 지쳤습니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직장에서 믿음을 지키며,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을 가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을 포기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곳에 두신 뜻을 망각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 백성의 삶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합니까?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나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내 몸이 가루가 되기까지 충성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위로하시고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포기하지 맙시다. 그리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충성을 다해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갔어야 했다.
  롯이 굳이 소알을 떠나야 했다면, 산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갔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더 이상 실패하거나 비참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갔더라면 예전의 예배하는 삶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며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 산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아무 도움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신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 있으면 안전하지 못합니다. 혼자서는 신앙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혹과 죄를 물리치기가 어렵습니다. 믿음이 웬만큼 성숙되지 않고서는 혼자서 기도하는 일과 말씀 묵상하는 일도 어렵습니다. 결국 혼자서는 믿음을 지키며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보호를 받고 양육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배에 빠지지 말고 참석하며,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도 열심히 참석하여 불을 붙여야 합니다. 홀로 떨어져 있으면 식어지고 꺼지기 쉽습니다.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소그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의 현장입니다. 소그룹으로 모여서 마음을 열고 함께 말씀을 나누다보면, 우리는 함께 치유를 받고 격려를 받고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특히 힘들고 어려울 때 교회로 오십시오. 믿음의 선배나 형제를 찾으십시오. 목회자를 찾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당신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롯이 삼촌 아브라함에게 왔더라면 회복되었을 것이고, 부끄러운 실패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동굴 속에서의 롯의 식구들
  소알을 떠나 산으로 간 롯은 동굴 속에서 두 딸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들은 소돔과 소알을 떠나 산속의 동굴로 피해 들어갔으나, 소돔과 소알의 죄를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으로부터 격리시키면 죄를 버리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주님 앞에 나오기 전에는 그 누구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롯과 두 딸이 피해 들어간 동굴 속에서 죄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굴 속에서 살게 된 롯의 딸들은 동굴 속에서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너무나도 따분하고 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소돔에서의 삶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처지를 생각해볼 때, 정말 한심스럽고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죄악된 곳에서 나온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죄가 틈만 나면 그들을 사로잡으려고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와 비슷한 형국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눅11:24-26을 봅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기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귀신이 나간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간 귀신은 쉴 곳을 찾지 못하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다시 그 사람에게로 들어갔습니다. 왜 다시 들어갔습니까? 그곳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에 그 사람에게 새로운 주인, 즉 주님께서 자리 잡고 계셨더라면 다시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피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하고, 은혜로 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며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 좋은 형제들과 늘 함께 지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롯과 두 딸의 환경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죄를 피해서 산속 동굴로 들어갔지만, 죄를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롯의 딸들
  동굴 속에서의 삶에 싫증이 나고 지친 딸들은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손을 얻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한 사람씩 아버지와 동침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녀들은 소돔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롯의 딸들이 정욕 때문에 아버지와 동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나온 그대로 오직 자손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양보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수치스럽고 악한 일이었습니다.


  롯의 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선하게 인도해주실 것을 믿었더라면, 그런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자,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소돔의 죄악된 사고방식대로 행동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 기록된 사건 중에서 본문에 기록된 것이 가장 부끄러운 내용일 것입니다. 성경이 굳이 이러한 부끄러운 일까지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구원받은 이후 우리의 삶은 달라져야 합니다.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안 믿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는 부끄럽게 범죄하고 실패하게 됩니다.


  또 본문은 성경의 진실성을 보여줍니다. 과거에 시골의 어떤 양반이 성경을 읽다가 본문의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교적인 사고에 깊이 빠져 있던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겠습니까? 그 사람은 본문을 읽다가 무릎을 치면서 과연 성경은 진실하다고 했답니다. 자기들은 족보를 만들 때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일들은 다 빼버리고 없는 것까지 꾸며서 만드는데, 성경에는 이런 내용까지 숨기지 않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니 과연 성경은 진실하고 한 것입니다.


    구원 받은 이후의 삶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너무나도 크고 귀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 세상 모든 것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이후의 삶도 역시 중요합니다. 한 번 구원받았으면 그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이제부터 진짜 중요한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다운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특히 안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구원을 받았습니까? 구원받은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선한 일을 위해서’입니다.


  구원받은 자에게는 이제 삶의 새로운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한 일입니다.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것,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에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으니 이제 걱정 말고 아무렇게나 살다가 때가 되면 천국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일을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롯과 그의 두 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소돔에서 극적으로 겨우 구원을 받았으나, 다시 실패하고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깝고 비참한 일입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큰 경고와 교훈이 됩니다. 오늘 구원받은 성도들이 선한 일을 위해 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이 변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욕을 먹고 있습니다. 롯의 가족들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어떻습니까? 구원받은 감격을 잊지 말고, 구원받은 자의 사명을 힘을 다해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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