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 박상훈 목사
  • 93
  • 0

첨부 1


눅17:11∼19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눅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눅17: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눅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눅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눅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눅17: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눅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금년의 상반기를 보내고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날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에게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율법이 규정한 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제사장들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갔습니다. 제사장들에게 가던 도중에, 그들은 자신들이 나음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열 명 모두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열 명 모두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은혜를 예수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아홉 사람은 예수님에게 돌아오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은 열 명 모두에게 똑같이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들 모두가 예수님에게서 똑같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이 돌아와 예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큰 은혜를 받기만 하고, 돌아와 예수님에게 감사하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돌아와 예수님에게 감사한 사람은 자신이 간절히 사모하던 또 다른 은혜를 더하여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꼭 필요한 은혜였습니다. 그는 육체의 질병에서도 나음을 받았지만, 영혼의 질병에서도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상이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사람과 같이,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여 더 큰 은혜를 받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나병환자 열 명이 모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눅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그 동안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내쫓아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게 되셨습니다. 이는 그가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지방의 접경지대를 따라 이동하신 것입니다. 요4:9 말씀처럼, 당시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의 몸에 이방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자연히 사마리아인도 유대인을 적대시했습니다. 실제로 눅9:52∼53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조차도 유대인이라고 자기 마을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이번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눅17: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예수님은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접경지대에 있는 어느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물론 그 마을은 유대인들이 사는 마을이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유대인들인 예수님과 그 일행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을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을의 이름이 아니라, 그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그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그 마을 밖에서 격리되어 살고 있던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에게로 나아왔습니다. 

 나병은 문둥병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1870년대 나병의 병원체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한센병(Hansen's disease)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나병은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발견될 만큼,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된 질병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때, 나병도 그들을 따라서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을는지 모릅니다. 민수기 12장을 보면, 모세의 누이 미리암도 나병에 걸려서 진영 밖에서 이레 동안 갇혀 있기도 했습니다. 

 나병은 무서운 병입니다. 나병에 걸리면, 감각을 상실합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것을 만져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또한 살갗은 병들어 쭈글쭈글해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오그라듭니다. 나병은 성대를 상하게 해서, 목소리를 제대로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게다가 나병은 아주 역한 냄새를 냅니다. 또한 전염성도 강합니다. 그러므로 나병환자들은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성전이나 회당에도 못 들어갑니다. 단지 외딴 곳에 격리되어, 나병환자들끼리만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병환자들에게는 희망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마지못해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접경지대에서 격리된 채로 살아가던 나병환자 열 명의 삶도 이와 같이 비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예수님이 인근 마을로 들어가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예수님이 나병을 비롯한 어떤 병도 다 고치시며, 또한 자기에게 나오는 모든 병자를 다 고쳐주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규정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에게 가까이 올 수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멀리 서서 멈추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만 왔습니다.   

 

 눅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나병환자 열 명은 소리를 높였습니다. 성대가 상해서 소리는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들에게 찾아온 유일한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이미 그들은 모든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어떤 병자도 물리치지 아니하시는 예수님의 인자하심도 들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높이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눅18:38 말씀을 보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던 한 맹인도 예수님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기시도록 간구했습니다. 그 때 그 맹인이 구한 것은 물질이 아니었습니다. 눅18:41 말씀과 같이, 그가 바란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때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에게 구한 것도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자신들에게 깨끗함을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능력도 또한 예수님의 인자하심도 믿고 있었습니다. 

 

 눅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보시고 이르시되.” 예수님은 나병환자 열 명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간구에 응답하시어, 그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예수님은 그들의 몸에 안수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이 나음을 받았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단지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제사장들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만 하셨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은 여부는 오직 제사장들이 판단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병환자 열 명에게 이르시기를, 가서 제사장들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의 몸이 나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자기들의 몸을 보이기 위해서 갔습니다. 아직은 그들의 몸이 나음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갔습니다. 

 “깨끗함을 받은지라.” 제사장들에게 가던 길에, 그들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나병환자 열 명 모두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정수리에서 발꿈치까지 몸 전체가 온전히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병환자 열 명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 모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너무도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는 본시 나병환자와 같았습니다. 우리는 죄로 얼룩진 더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에게 나아왔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의 병에서 나음을 받았습니다. 

 나병환자 열 명이 깨끗함을 받았을 때, 그들 모두는 예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마땅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병보다 더 무서운 죄의 병에서 깨끗함을 받은 우리들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둘째로, 그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눅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1)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눅17:16 (2)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3)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병환자 열 명은 제사장들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려고 갔습니다. 가던 도중에 그들 열 사람 모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분명 그들이 얼마 가지 않아서였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예수님은 그 마을에 그대로 머무르셨기 때문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물론 열 사람 모두가 자신들이 나은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오직 그 한 사람만이 나머지 아홉과 다른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성경의 순서대로 말씀을 드리면, 먼저 그는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깨끗함을 받기 전에는, 그가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나았으니까, 얼마든지 그는 예수님에게 가까이 나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그는 세 가지 일을 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렸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마지막으로 예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이들 세 가지를 차례대로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첫째, 그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제는 목소리가 회복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감격에 차서 큰 목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자신을 깨끗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기에, 큰 소리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둘째,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렸습니다. 이는 경배하는 자세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사마리아인들이나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서, 엎드려 예수님에게 경배한 것입니다. 

 셋째, 그는 예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이제 그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서, 그 동안 떠났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등 사회생활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나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열 사람이 모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은혜를 열 사람이 모두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오직 그 한 사람만이 예수님 앞에서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16절 끝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님에게 돌아와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나머지 아홉 사람은 유대인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본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격리되어 살던 곳은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접경지대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사회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 동정하면서, 함께 모여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곧 바로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서 그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예수님에게 경배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예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나병환자였던 그에게 무슨 물질이 있었겠습니까? 다만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에 찬 음성으로 이와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심을 감사하나이다.” 그렇지만 분명 그의 감사는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사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감사할 때, 예수님은 물질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과부가 드린 엽전 두 닢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한 아이가 가져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기쁘게 받으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물질이 없다고 핑계를 대지 맙시다. 물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우리 모두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사를 예수님에게 드리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그 사마리아 사람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눅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1)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2)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8 (3)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렸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으로 그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첫째 질문입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았음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열 사람이 모두 다 예수님에게 돌아왔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사마리아 한 사람만이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둘째 질문입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 아홉도 당연히 이 자리에 있어야 함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아홉은 예수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나은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가던 걸음을 재촉했을 것입니다. 

 셋째 질문입니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사마리아 사람은 이방인이었고, 나머지 아홉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열 명 모두 나음을 받았지만,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왔습니다. 

 나음을 받은 유대인들 아홉 사람은 예수님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받을 것만 받고, 더 이상 예수님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요1:11 말씀을 우리에게 연상시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유대인들은 제사장들에게 갔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연약함을 동정하신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자 했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참 성전이신 예수님에게 와서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죽은 종교를 따라, 성전으로 달려가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성전은 이가봇, 곧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그들의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 것입니다. 

 반면에 사마리아 사람은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이 규정한 대로, 제사장에게 가서 그의 몸을 보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에 있는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나음을 받은 유대인들에게도 믿음은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예수님에게 간구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사장들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그들과 다른 믿음이 있었습니다. 

 나음을 받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받을 것만 받고, 예수님에게 돌아와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은 그들 유대인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비록 그의 믿음이 겨자씨처럼 작았을지라도,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한 것입니다.

 어떤 영어성경은 이 부분을 이와 같이 번역합니다.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네 믿음이 너를 건강하게 하였느니라.”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바로 그 믿음이 그의 영혼을 구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어느 수준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홉 유대인들처럼, 받기만을 바라는 수준입니까? 받은 것으로 끝나버리는 수준입니까? 또한 일시적인 육체의 일만 생각하고, 영원한 영혼의 일은 생각하지 않는 수준은 아닙니까?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처럼,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예수님에게 진정으로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베푸시는 더 큰 은혜와 더 풍성한 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삭제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이 게시물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