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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이라는 미명하에 짓는 죄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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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신앙이라는 미명하에 짓는 죄              

창34:18-31


  사업하는 한 집사님이 명함에 장로나 안수집사라고 되어 있는 사람과는 되도록 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거래를 하다가 많은 애를 먹고 손해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장로와 안수집사라는 것을 보고 더욱 신뢰하는 마음으로 거래를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대부분 안 믿는 사람들과 거래할 때보다 훨씬 좋지 못한 일들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부끄러움과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왜 명함에다 굳이 장로니 안수집사니 하고 새겨가지고 다니는 것일까요? 자기가 장로요 안수집사이니만큼 더욱 정직하고 성실하게 거래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정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성실하게 처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그렇지 못하면서 명함에다 직분을 새겨가지고 다니는 것은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사업에 유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신앙을,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자신의 사업에 이용하겠다는 발상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야곱이 당한 기가 막힌 일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무서운 악을 행한 일이 바로 야곱의 가정에서 일어났습니다. 야곱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고자 하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왔습니다. 그것은 마치 목숨을 건 탈출과도 같았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가나안에 오기까지 절박한 위기들을 만났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몰래 도망친 야곱을 추격해 왔을 때, 야곱은 죽거나 다시 잡혀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왔을 때도 영락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모든 문제들을 선하게 해결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히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야곱은 자신의 고집과 교만과 자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새롭게 출발한 야곱에게 뜻밖에도 엄청난 재난이 닥쳐왔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가나안 여자들을 만나러 나갔다가 그 땅의 추장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것입니다.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복수를 했습니다. 그 땅의 추장인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이 디나를 세겜의 아내로 달라고 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이 할례를 받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야곱의 아들들의 말을 듣고 모두가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할례를 받고 사흘째 되어 고통이 가장 심할 때,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사람들을 기습해서 남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성을 약탈하고 가축들과 여자들을 빼앗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고도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야곱의 가정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야곱의 가정은 당시 하나님 백성들이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선하고 의로워야 할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도 보기 어려운 큰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분노해서 순간적으로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한 부족을 몰살시켰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거룩한 법인 할례를 이용해서 그들을 속이고,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법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세겜은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한 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자기 집에 붙잡아 둔 채, 야곱의 집에 와서 디나와 결혼을 하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므로 세겜의 청혼은 간청이면서 동시에 강요이기도 한 셈이었습니다. 야곱의 집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대단히 난감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교묘한 계책을 세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세겜과 그 부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디나를 세겜의 아내로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고, 그들을 속여 복수하기 위해서 꾸며낸 말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를 더럽혔음이라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13-17절)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은 야곱의 아들들의 이 말을 좋게 여겼습니다. “그들의 말을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좋게 여기므로”(18절) 하몰과 세겜은 자기네 성읍에 돌아가서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성문에 이르러 그들의 성읍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우리와 화목하고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 그들이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데려오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그러나 우리 중에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하락할 것이라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20-23절) 세겜 사람들은 이들의 말을 듣고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24절)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인 할례를 자기들의 이기적이고 악한 목적을 위하여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 백성된 표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집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통해 그들의 가장 깊숙하고 중요한 곳에 하나님 백성의 표시를 새기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이 표시를 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 백성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답게 하나님을 충성되게 섬기며,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할례가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은 이 거룩한 하나님의 법인 할례를 복수하는 데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법이었고, 야곱의 집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겜 사람들은 야곱의 아들들이 이 할례를 이용해서 복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를 이용하여 세겜 사람들의 허를 찌르고 완벽하게 복수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행위는 너무나도 악하고 가증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죄를 짓고 복수하는 일에 하나님을 이용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죄짓는 일에, 무자비하게 한 부족을 몰살하는 일에 하나님을 이용한 것보다 더 악하고 가증스런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할례를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자 했던 것은 세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 그리고 세겜 부족의 모든 남자들은 순순히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은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이제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되기로 했기 때문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은 이유는 순전히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몰과 세겜은 디나를 세겜의 아내로 삼기 위해서 할례를 받기로 했으며, 세겜 사람들에게도 할례를 받도록 설득했습니다. 세겜 남자들은 그들의 추장 세겜과 하몰의 말을 듣고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만 받으면 야곱의 그 엄청난 재산이 자기들의 것이 될 것이라고 하니까 할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우상을 섬기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섬기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기들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할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지만, 그런 것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이용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세겜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이익을 취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처절한 복수


  세겜 사람들이 다 할례를 받고 고통이 가장 심해지는 사흘째 날이 되었을 때, 야곱의 아들 중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차고 가서 성을 급습하여 세겜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왔습니다. “제 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25-26절) 시므온과 레위를 특별히 디나의 오라비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디나와 같은 어머니 레아의 아들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의 다른 아들들보다 더 분노했으며, 이렇게 주도적으로 복수를 했던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남자들을 다 죽여 복수한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성읍을 노략했습니다.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27-29절)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처절한 복수를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읍을 노략하여 모든 재물을 빼앗아오고 아이들과 여자들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야곱의 걱정


  아들들이 이처럼 엄청난 일을 저지르자, 야곱은 이러다가 주위의 가나안 부족들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아들들을 책망 했습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30절)


  야곱은 이 모든 일에 대해 근본적인 책임이 있었습니다. 디나를 잘 단속하지 못했으며, 아들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전혀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이 할례를 이용하여 세겜 사람들에게 복수하려는 의도를 처음부터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들을 막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일이 벌어진 후에도 아들들이 저지른 악독한 일에 대해서 책망하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염려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갈 택함 받은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야곱을 택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가 믿음이 좋고 선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문제가 많은 야곱을 택하신 후 차츰 차츰 그를 다듬어가셨습니다. 야곱이 형을 피해 도망치다가 홀로 빈들에서 잠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시며 축복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란에서 안주하고 있던 야곱을 이끌어내셨으며, 에서와 대면하는 일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며 교만과 자아를 깨뜨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절감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당한 후 야곱은 자신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 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면서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방 신상과 우상적인 요소들을 다 버리게 했습니다. 비로소 야곱은 온 가족을 거룩하게 이끌어가는 족장의 면모를 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준비되지 못했던 야곱을 부르시고, 이렇게 점점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그래서 나 같은 죄인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의 손에서 다듬어지고 깨지기를 소원합시다. 하나님의 손에서 다듬어지면서 우리의 자아와 교만과 고집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되고, 좀 더 오래 고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다듬어 주소서. 나의 고집과 자아를 깨뜨리소서. 하나님의 손에서 새로워지기를 갈망합니다.” 늘 이러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마비된 양심


  이러한 야곱의 책망에 아들들은 뭐라고 대답합니까?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31절)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책망에 오히려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는 자기들이 저지른 가증스럽고 악독한 일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습니다. 세겜 사람들이 누이를 창녀 같이 대했으니 죽어 마땅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날수록 죄에 대한 감각이 둔해집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사람은 아무리 작은 죄라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그 죄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통회자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죄에 대해서 무감각합니다. 죄를 짓고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형제를 미워하고 상처를 입혀 놓고도,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큰 소리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묵상과 기도를 게을리 하며,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고도 태연하고 당당하지는 않습니까?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남 탓을 하면서 화를 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에게서 심각하게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다가는 결국 양심이 마비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예배와 말씀까지도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쉽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오늘 교회가 힘을 잃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생명력이 없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죄에 대해서 무감각해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정으로 회개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할 때, 우리의 영이 새로워지고 은혜와 능력이 회복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오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오지는 않았습니까? 잘못은 나에게 있으면서, 죄는 내가 지었으면서, 오히려 분노하고 큰 소리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의 응답도 없고, 믿음의 능력도 없는 무기력한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내놓고 애통하며 회개합시다. 우리의 눈에 다시금 회개의 눈물이 흐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와 양심과 삶을 회복시켜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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