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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과 고난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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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꿈과 고난                              

창37:12-24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꿈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나의 생애를 드리기 원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꿈을 주십니다. 그러나 꿈을 가졌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꿈을 가지면 이러한 연단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연단을 끝까지 감당한 사람을 드디어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갔다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으며,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대상들에게 팔려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열망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꿈과는 정반대로 고난의 밑바닥으로 던져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장차 요셉이 당하게 될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순종의 아들


  야곱은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던 아들들에게 요셉을 보냈습니다.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 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12-14절)


  야곱은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던 아들들이 매우 걱정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과거에 세겜에서 끔찍한 일들을 당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외동딸 디나가 세겜의 추장에게 강간을 당했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사람들을 속여 할례를 받게 한 후,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사로잡아오고 재산을 약탈했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야곱은 그곳에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방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사 떠나가는 야곱의 가족을 아무도 추격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이 지금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하필이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곳의 풀이 좋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들들이 과거에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곳에서 양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야곱은 아들들의 안부가 매우 염려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안부를 알아오게 하려고 요셉을 보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자기에게 맡겼을 때, 즉시 “내가 그리 하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조금도 싫어하거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야말로 순종의 아들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대답만 하고는 끝내 순종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만이 가득 찬 표정과 몸짓으로 마지못해 순종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즉시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철저히 순종했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순종했으며, 자신의 생명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를 바치기까지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순종을 얼마나 기뻐하셨습니까? 이삭은 아버지가 자기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이삭은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이삭에게 흉년든 땅에서 백배나 거두게 하셨고,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된 후로는 순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당신도 이처럼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핑계나 변명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즉시 순종하도록 하십시오. 순종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요셉을 죽이려는 형들


  요셉은 아버지의 명을 받아 형들이 양을 치고 있는 세겜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세겜에 가서 보니 형들이 그곳에 없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갔던 것입니다. 요셉은 세겜 지방을 두루 찾아보고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형들이 그곳에 없더라고 보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형들을 찾아갔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 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15-17절) 요셉은 참으로 충성되고 믿음직한 아들이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고생하면서 끝까지 형들을 찾아갔을 때, 형들은 요셉을 어떻게 맞이했습니까? 형들은 아버지의 명을 받아 자기들을 위해서 먼 길을 온 요셉을 반갑게 맞이한 것이 아니라, 그를 알아보자마자 죽일 궁리부터 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18-20절)


  형들이 왜 요셉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그것은 요셉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랑받는 것을 시기했으며, 요셉의 꿈을 듣고서 그를 더욱 미워했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중요한 인물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사용하실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렇게 혼자서 멀리 양 떼를 돌보고 있는 그들에게 오자, 그를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요셉이 중요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셉을 죽임으로써 하나님께서 요셉을 중요한 인물로 만드시려고 하시는 계획을 저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죽이려 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형들은 빈들에서 자기들끼리 양을 치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세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여 복수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들은 못할 짓이 없는 인간들이었습니다. 요셉은 전에도 그러한 형들의 잘못된 일들을 지적했으며, 아버지에게 고해바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요셉이 자기들에게 오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오면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던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그 모든 것을 아버지께 보고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이 함께 있으면 더 이상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매우 미워했고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없애버리면 그러한 부담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내 맘대로 살려는 우리


  오늘 우리는 요셉의 형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더 이상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만 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목회하면서 늘 부담되는 것이 있는데, 목사가 성도들의 생활을 간섭하며 권면하는 일입니다. 이 일이 부담이 되는 이유는 성도들 중에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매우 싫어하고 기분나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목사는 설교나 하면 되고, 자신들의 일은 자기들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권면하다 보면, 간혹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태도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의 소유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맘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자기 맘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씀을 주셨고, 성령을 보내셨으며, 당신의 종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간섭하는 것을 부담스럽고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면,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그의 형들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내 맘대로 살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사는 길이요 복 받는 길입니다.


    요셉을 구하려는 르우벤


  요셉이 멀리 시야에 나타나자, 형들은 요셉을 죽이기로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20절) 그들은 요셉을 죽여 구덩이에 던져 넣고 들짐승이 그를 잡아먹은 것으로 둘러대기로 했습니다. 이제 요셉은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때 르우벤이 요셉을 구하려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21-22절)


  왜 형제들 중에서 르우벤은 요셉을 죽이지 못하게 하고, 그를 구원하려 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지은 죄 때문이었습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인 실바와 통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르우벤은 아버지의 기대와 신망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 이후에 르우벤은 항상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을 때, 르우벤은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지 죄 없는 요셉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형제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은 요셉을 죽이는 대신 구덩이에 던져 넣어서 굶어죽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를 보아서 요셉을 구해내 아버지에게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형제들을 너무나도 쉽게 정죄합니다. 남이 잘못한 것을 볼 때 동정할 줄을 모릅니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죄인인 줄을 아는 사람은 남에게 그렇게 악독하게 대할 수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셨는데, 내가 어떻게 남을 정죄하고 비난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이 죄인인 것을 절감하는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가슴이 뜨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그토록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다니 … 그래서 늘 감격하며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죄인인 줄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인 것을 절감하는 성도는 남을 불쌍히 여길 줄 알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 수 있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


  르우벤의 제의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는 대신 그의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23-24절)


  이 채색옷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므로, 형들은 그것을 특히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 옷을 벗기고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왔는데, 형들은 그를 미워하여 구덩이에 던져 죽게 할 작정이었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 요셉이 얼마나 두렵고 암담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요셉이 앞으로 당하게 될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앞으로도 요셉에게는 상인들에게 팔려가 애굽에서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리며, 감옥에 던져지는 엄청난 고난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 크고 고통스러운 구덩이가 요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맏형인 르우벤은 구덩이에 던져지는 요셉에게 “나중에 형이 구해 줄께”라고 속삭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큰 형은 요셉을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많은 고난을 당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은 주인에게 크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평소에 그토록 신임하던 주인에 의하여 억울하게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감옥에서 만났던 애굽의 한 관원장은 요셉의 해몽대로 복직이 되었지만, 약속과는 달리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은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실망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요셉은 사람을 믿거나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요셉은 자기를 죽이려 했고, 노예로 팔아버려서 그토록 고생하게 만들었던 형들을 깨끗이 용서했습니다.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여 실망하며, 충격을 받고 분노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를 받은 나머지 사람을 불신하거나 회피하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믿을 존재가 못됩니다. 사람은 본래가 진실하지 못하고, 마음은 있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절대로 믿을만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은 믿고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며 용서해야 대상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요셉은 그 많은 고난과 연단을 통하여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본래 연약하고 거짓된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사람을 믿다가 실망하고 섭섭해 하고 분노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있는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인물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을 많이 닮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아무 소망도 없고 영원히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를 미워하고 대적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고 용서하셨습니다. 그분은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의 영광스런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장차 심판주로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요셉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인물입니다.

 

  요셉에 관한 말씀을 상고해나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꿈을 꼭 붙잡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열망을 가슴에 품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연단하실 때, 낙심하거나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이겨나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반드시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사람을 믿다가 실망하고 상처받고 분노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오직 당신의 꿈을 이루실 하나님만 바라보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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