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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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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저런 믿음이 어디서 나왔을까? 우리에게 자랑을 시키심입니다. 얼마나 기뻐하고 좋아하시는지!

 

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시간과 지역을 초월하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고,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고 함께 앉으니 한 식구요, 함께 앉으니 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함께 앉으니 신앙 조상의 그 믿음을 이어 받을 것이고, 함께 앉으니 그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

 

천국에 앉는다라고 한 것은 통치권을 가진 차원 높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백부장도 거기에 앉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본 자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혈통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생득적으로 날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고, 조상 때부터 내리 내리 율법의 정신을 전해주고, 그 정신을 전해 받고 할 수 있는 그런 최고의 은혜를 받을 자리요, 좋은 조건이요, 환경인데도 조상들의 신앙을 이어받지 못하고 그 신앙과는 대단히 멀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진리와는 마음으로부터 멀어! 하나님의 애정권 생명권 밖이라! 세상이 좋아 세상과 짝을 짓고 산 것입니다.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어두운 곳이란 하나님과의 가장 먼 곳을 말합니다. 노예의 장소, 고통의 장소, 포로의 장소입니다. ‘진리의 좋은 조건과 환경을 무시하고 살았으니 어디 한 번 당해보고 살아라입니다.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후회막급하여 가슴을 칠 것입니다. 목사의 가정에서, 장로의 가정에서, 집사의 가정에서 진리 받는 장소로서 얼마든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신앙을 가지고 살 수 있는데도 사는 정신이, 마음가짐이 불신자들보다 더 못해. 자기가 알아서 봉사하기 마냥 좋고, 누구의 간섭도 없고 제재도 없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 은혜의 곳입니다. 예를 들면 부잣집에 가보면 규격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은 간이 없습니다. 네 마음대로 꾸며보라고 허용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이용 못하면 간이 정해진 집으로 들어가서 그 간에 맞게 살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진리의 노선에서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은혜의 때를 모르면 그 만큼 자기는 고통의 날이 옵니다.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진리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사람이 고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수종들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임하는 역사가 있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집에는 이런 이런 병자가 있으니 말씀만 하옵소서말씀이 임하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다 잘 아시는 것입니다. 가버나움에 들어가신 것도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러 가신 것이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러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연히 가서 보니까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러 가서 어쩌다 만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가신 것입니다. 주님이 알아서 가신 것입니다. 때로는 진리의 종을 붙잡으시고 그 진리의 종을 보내 진리를 주어 고쳐주시려고 주님이 알아서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편에서 보면 백부장은 하인을 위해서 주님을 찾아 나와서 간구하여 나음을 받았는데 베드로는 자기의 장모가 아픈데 왜 구하지 않았을까? 장모가 병난 줄 몰랐나? 인간은 혹 모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모르지, 인간이 모르는 열병을 앓고 있었는지! 그래서 베드로가 몰랐는지도. 모르니까 안 구했고.

 

이제 우리가 열병을 다른 각도로도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밤낮을 모르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밥을 먹을 줄도 모를 정도로 어떤 일에 매달려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열났다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신앙사상 면에서 무슨 일을 하던 세상에 빠져 열이 나 있으면 그것은 열병이 난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으로 열병이 나면 주님의 복음의 일에 수종을 들지 못하게 됩니다. 수종들지 못하는 것은 세상을 향해 열병이 났기 때문입니다. 불신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정신적인 병인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실질적으로 밥 먹을 줄도 모르고, 배고픈 줄도 모를 정도로 어떤 일에 미쳐 있으면 그 사람의 몸에 병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육신이 병이 오기 전에 순서적으로 정신적인 면에서 병이 먼저 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병은 영적인 면에서 먼저 병들었던 것이고.

 

예수께서 여자의 손을 붙잡으니 열병이 떠나가고 일어나 수종을 들었다

 

사람이 무슨 병이 들었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진리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생명과 연결이 되는 것이 주님과 만남입니다. 그 만남은 주님과 교제입니다. 진리생명이신 주님은 사람을 죄에서 풀어 자유롭게 만듭니다. 죄악적인 생각, 병적인 활동들을 다 물러가게 하고, 진리생명은 사람을 온전케 하고 영적으로 살리는 일을 합니다. 여자는 일어나고 예수님께 수종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이런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병에서 나음을 받고 그 마음이 세상을 향해서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주님을 향해서 일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을 향해서 일어나는 사람 중에서도 깨닫지를 못해서 세상적, 종교적 열심, 충성봉사로 사역적으로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참 진리의 신앙노선을 바로 알고 진리 신앙노선으로 가면서 복음에 수종을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일어나는 사람은 병들었을 때 못 해본 것을 다 해 보고자하는 소원성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진리생명으로 고침을 받은 사람은 정신적인 병이 무엇이고, 육적인 병이 무엇이다 라고 바로 알고 주님의 복음에 수종들기 마련입니다.

 

병들었으면 수종들지 못하고,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진리생명의 복음에 수종을 들 줄 압니다. 산 사람은 자기 몸이 아픈 것을 알고 고통을 알듯이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기에게 영적 면에 있어서 어디가 아픈 줄을 압니다. 진리생명으로 고침을 받고 자유자가 되어 수종들므로 은혜를 받습니다.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저물매

 

사람들은 해가 있을 때에 일을 하고 날이 저물면 모두 쉬기 위해 자기 집으로 찾아 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날이 저물어 가는데 일이 더 많아져서 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을 많이 데리고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여기서 날이 저물면 귀신들린 자들이 많고 병이 든 자들이 많다고 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시대적인 면에서 진리가 어두워지면 모든 악한 것과 불법이 성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옳은 종이 없고, 교회가 진리의 빛을 잃은 것입니다. 진리의 종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났고, 교회는 세상정신으로 세속화되어 버리고 세상을 향하여 흐르게 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일반적 사회적 도덕적인 운동을 하기 시작하고, 정치에 참여하고, 외식운동이 활발히 진행됩니다. 일반 불신 세상은 불신세상대로의 불의와 불법이 성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면에서 날이 저무는 것은 진리에서 떠나면서 세상을 향한 정신과 소원이 자꾸 강해지는 것입니다. 자기 분별이 없고, 자기 단속이 없고, 세상욕심이 자꾸 부풀어 오르는 것입니다.

 

연령적인 면에서는 나이가 들어 공동묘지가 자꾸 가까이 오는 것이고, 설령 나이가 젊더라도 온 몸이 아파 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닌 것입니다.

 

어쨌든 어떤 날이던 날이 저물어 오는 것을 볼 줄 안다면 빨리 빨리 신앙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귀신 들린 자.

 

진리의 빛이 어두워지면 귀신들의 활동이 활발해 집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모든 악하고 더럽고 추한 것이 서식되기 시작합니다. 귀신이 들려 놓으면 자기 자신도 모르고, 사람도 모르고, 시도 때도 모르고, 일도 못하고, 일을 모르고 생산적이며 건설적인 것이 없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 하루 종일 멍하기도 하고,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때로 사람을 해치고, 옷을 벗기도 하고, 무덤에서 살기도 하고.

 

이런 일반적인 것은 우리가 다 압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령한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영적인 면에서 귀신들리고 미친 사람을 수 없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신유의 은사 받았다고 말하나 귀신들린 자가 많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면 주여 주여부르나 주님과의 인격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는 기도를 하는 것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요한일서 41절을 보면 세상에 속한 말을 합니다. 기도하는 소원 목적도, 가르치는 소원 목적 전부는 세상을 향한 세상성입니다. 그런 사단 마귀 귀신의 놀음에 붙들린 교회도 많고, 교인도 많습니다.

 

병든 자.

 

사람이 병이 들면 약해지고 슬퍼지고 고통으로 시달림을 받습니다. 사람이 강해지는 진리생명의 교훈을 받지 못하면 정신면이 약해지고 세상성이 스며 들어오고 마음이 약해지고, 마음이 약해지면 모든 병을 앓기 마련입니다.

 

우리 인간이 창세 이후로 모든 면에서 건강한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생각하고 마음 먹는 것이 전부 다 병적입니다. 하나님 앞에 건강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인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귀신들을 쫓아내 주시고 병든 자를 건강하게 온전케 만들어 주시니까 말입니다.

 

문둥병자가 진리생명의 말씀으로 연관되니 깨끗함을 받았고, 백부장의 하인도 진리생명의 말씀으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도 진리생명의 말씀으로, 귀신들린 자, 병자들도 이 진리생명의 말씀으로 연관되니 모두 나음을 받고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고침을 받고 나음을 받은 이것이 그 병에서 온전으로, 성화구원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구원이 전부는 영원 궁극적 최종적 결과적 목적적 구원에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냥 밥 먹고 편안히 잘 살라고 고쳐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복음사역에, 주님의 일에 수종을 잘 들으라고 고쳐주신 것입니다.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우리 인간은 모두 연약합니다. 강한 자가 없습니다. 모두 죄에 넘어져 있고, 모두 정신과 마음 몸도 병들어 있고 약합니다. 모두 고통이 있고, 아픈 사람들이고, 죽을 사람들이고, 상처를 받습니다. 약하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이 이것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면을, 우리의 마음 면을, 우리의 정신면을, 우리의 육체 면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실 분은, 건강하게 살도록 가르쳐 주실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세상에 어느 인간이 우리의 병을 짊어지겠느냐?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진리생명으로 영원히 우리를 강하게, 부하게, 존영자로, 기쁜 자로 만들어 주려고 오셨습니다.

누가 이 예언을 미리 했느냐? 선지자 이사야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감 없이 그대로 주는 자입니다. 선견자는 앞으로 될 일을 미리 보는 자, 예언자는 앞으로 될 일을 미리 말하는 자, 해석자는 하나님의 뜻을 잘 풀어 알게 하는 자. 선지자의 역할 속에는 이런 내용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지금도 진리의 종들은 주님은 영원 궁극에 해당되는 이 구원사역을 하신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가르치고, 세상을 자랑하고, 세상을 향하도록 하고, 영원한 궁극적인 주님의 사역을 못 보게 하는 것은, 모르게 하는 것은 주님의 옳은 종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8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무리들이 왜 예수님을 에워 쌓을까? 무슨 마음으로 에워 쌓을까? 예수님은 또 왜 그 무리들을 피하셨을까 궁금해집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영의 소원인지 육의 소원인지 그 마음, 그 생각의 향방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 중풍병자, 각색 모든 병자를 고쳐주실 때 거기서 영적인 하늘나라의 일을 발견해야 되는데 무리들은 육적인 육의 생각을 가지고 우리의 연약한 육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가 되어 주십시오하는 소원성을 가지고 주님을 에워 쌓던고로 그런 생각을 가진 그런 소란스런 무리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는 어떤가? 무리들이 몰려오거나 에워싸면 그만 인간 자기가 왕이 되어 가지고 사람 되지 못한 이런 소란스런 무리들을 이끌고 사역목적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목회사상하고는 전혀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죽음 이편의 일이 아니고 죽음 저편의 일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예수 믿는 일은 육적인 눈으로 보고는 예수님을 바로 못 믿습니다. 그랬다간 주님은 떠나가고 성령도 떠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이치를 깨닫는 신앙은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육적 신앙을 가진 그 무리들을 예수님께서 떨쳐 버리는 그런 면으로 강하게 생각을 해 보았는데, 이제는 또 우리가 주님이 그 무리들을 이끌고 같이 가는 면으로 한 번 생각을 해 봅시다. 그러니까 소란스런 무리들이 주격이 되고 예수님을 자기들의 소유격으로 삼을 때에는 그들이 떨쳐 버림을 받는 것이고, 주님이 주격이 되고 그들이 소유격이 될 때에는, 이런 경우로 생각을 해 볼 때에는 주님이 무리들을 이끌고 가게 되는데 무리들이 에워싸고 모여질 때 주님은 우리 모두 헌금을 거두어서 여기다가 큰 예배당을 짓자하지 않고 무리들을 이끌고 저편으로 건너가자! 세상 이편에 대한 소원 목적 애착심을 버리고 죽음 저편 천국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천국에 대한 소원 목적성으로 들어가자!’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는 말씀은 너희들에게 무리들이 왔을 때에는 그렇게 하라는 면으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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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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