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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총리가 된 요셉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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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총리가 된 요셉                        

창41:41-57


  요즘 학생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교사와 공무원이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교사나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걸까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기 위해 공무원이 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바르게 양육하고자 하는 사명감에서 교사가 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안정된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요셉은 이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죄수의 신분에서 일약 총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출세한 것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요셉 개인에게 주어진 단순한 행운이거나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명이기도 했습니다. 요셉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


  바로는 요셉이 자기의 꿈을 해석하고 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자, 크게 기뻐하면서 요셉이야말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38절) 요셉은 이방인, 불신자들이 보기에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사실 요셉은 유년시절에 불행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요셉이 어렸을 적에 죽었고, 많은 이복형들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들은 온갖 죄악을 자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요셉은 정직하고 의로우며 책임감이 강한 소년이었습니다. 이렇게 불행하고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자랄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큰 축복이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오고, 믿음으로 자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비록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배우며 기도하는 것을 배웁니다. 이렇게 배운 성경과 믿음이 그들의 인격과 신앙을 형성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우선순위를 두고 지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요셉은 일찍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자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귀하게 사용하시기 위해 그를 연단하셨습니다. 요셉은 노예가 되었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13년 동안 끝을 알 수 없는 고난과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에게 그 꿈은 하나님의 계시였으며 말씀이었습니다. 요셉은 모진 연단을 받으면서도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 지혜롭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던 바로의 꿈을 그 자리에서 명쾌하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닥쳐올 큰 재앙에 대한 대책도 완벽하게 제시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요셉을 보고 바로는 그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요셉처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 얼마나 절실합니까?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하나님의 지혜로 명쾌하고 단순하게 풀어나갈 성령의 사람이 얼마나 절실합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가는 곳마다 복잡한 문제들이 단순해지고 쉽게 풀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에 헌신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늘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오늘 우리 모두가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대책까지 제시하자, 바로는 그 자리에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41-44절)


  역사적으로 절대 권력자가 총리에게 이렇게 막강한 실권을 준 예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국무총리가 있지만, 이런 실권을 가졌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요셉에게 애굽의 모든 권한을 다 내주었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의 이름을 애굽식으로 새로 지어주었습니다.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45절) 사브낫바네아는 ‘생명의 보존자’ 또는 ‘생명의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로는 요셉을 제사장의 딸과 결혼시켰습니다. 당시 애굽의 제사장은 바로 다음 서열인 최고의 귀족이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애굽 최고의 귀족 집안과 결혼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


  바로가 요셉을 이렇게 높여주고 호의를 베풀어준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어주신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하나님의 크신 구원과 위대한 일에 사용하시고자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여러모로 연단하셨습니다. 형들에 의해 상인들에게 팔려가는 기가 막힌 일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가 되게 하셨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던져지게 하셨습니다. 감옥에서는 술 맡은 관원장의 쓰라린 배신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연단을 받으면서 준비되어 갔습니다. 그 연단의 과정에서 많은 고통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연단이 끝나게 하시고, 그에게 이렇게 풍성한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로하시고 그의 모든 상처를 싸매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쓰시고자 하시는 사람을 이렇게 연단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연단하실 뿐만 아니라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이 좋다 하더라도,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없으면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나 축복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의 때에는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형통하고 평안할 때도 그것이 나의 노력과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이기기 힘들 뿐만 아니라 상처를 받고 넘어지기 쉬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격이 비뚤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 줄 안다면, 연단 받을 때 넘어지거나 상처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단을 통해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사람으로 준비될 것입니다. 일이 잘될 때 그것이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된 것인 줄 안다면, 이기적이고 교만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요 축복인 줄 안다면, 겸손하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관대하며 섬기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어려움을 당하든지, 또는 형통하든지,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기며,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요셉은 두 아들의 이름을 통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고백을 나타냈습니다.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50-52절)


  므낫세는 ‘잊어버린다’는 뜻인데, 그것은 요셉이 아버지의 집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잊어버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므낫세라는 이름은 과거의 모든 불행한 일들과 원망스런 일들과 상처들을 잊어버리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요셉은 지난 13년 동안 기가 막힌 일들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가 겪었던 고통과 억울함과 배신감이 얼마나 크고 심했습니까? 이렇게 애굽에서 고통을 당할 때 아버지와 집이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니 그 모든 원망스럽고 상처받았던 일들, 아버지 집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털어버리기로 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의 모든 상처와 쓰라린 아픔을 치유 받았던 것입니다.


  둘째 아들의 이름 에브라임은 ‘창성함’이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를 감사하면서, 이제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여 열매 맺는 삶을 살리라 다짐했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 요셉은 왜 자기가 애굽에서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야 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로 새롭게 다짐했던 것입니다.


  혹시 당신도 과거의 쓰라린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때로 그것이 쓴 뿌리가 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격의 결정적인 결함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을 열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풍성한 은혜와 복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런 것들을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감사하면서 주신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요셉의 통치


  이제 요셉은 애굽의 통치자로서 그의 임무를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총리로서 임무를 감당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놀라운 지혜와 충성됨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두매 쌓아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46-49절)


  요셉은 애굽 온 땅을 순찰하여 현장을 부단히 파악하면서 통치했습니다. 통치자에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정치가들과 공무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민생 현장을 바르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책상에 앉아, 아무리 연구하고 토론하고 정책을 세워봐야 올바른 행정을 펼 수가 없습니다. 서민의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통치자가 되면 백성이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대통령 후보에게 옥탑방이 무엇이냐, 쌀 한가마가 얼마냐,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냐 하는 질문들을 던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유력한 후보는 이런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결정적으로 점수를 잃기도 했습니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은 개혁이니 뭐니 하고 떠들어 대지만, 국민들은 민원을 보러 갈 때마다 벽을 느낍니다. 공무원들이 국민들의 입장에 설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법이니, 원칙이니, 상부의 지시니 하면서 빡빡하고 답답하게 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은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국민들의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직접 현장을 누비면서 모든 것을 파악하여 행정을 펴나갔습니다.


  특히 어려운 것이 농업 정책입니다. 공산품은 생산을 조절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그리고 유통과정도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농산물은 생산을 조절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유통과정도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어서, 농민들과 소비자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고랭지 채소를 많이 재배하는 강원도 지역에서 목회한 적이 있었습니다. 배추나 무우가 남아돌아서 아예 밭에서 갈아엎는 일이 간혹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3-5년에 한 번만 제대로 들어맞으면, 그 동안의 실패를 충분히 만회하고 돈을 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농사가 아니라 무슨 도박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도 행정이 제대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요즘은 통계를 내기가 그래도 얼마나 용이합니까? 왜 사전에 수요와 공급을 파악하여 조절을 하지 못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공무원들이 현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는 현장을 누비면서 곡물의 생산을 체크했습니다. 그리고 유통의 문제는 각성에 곡물을 저장함으로써 해결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삶 속과 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고 통치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충성되게 그의 임무를 감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인줄 알았기 때문에 충성을 다해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 결과 애굽이 구원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의 온 집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과 전체를 볼 줄 아는 안목과 지혜입니다. 우리는 때로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는가 하면, 평안함과 풍성한 축복을 누리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중에는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형통한 중에 있는 성도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경우에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려움이든 형통함이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뜻대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하여 낙심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며 신뢰하면서 이기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가장 선하게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형통한 중에 있을 때는 그것이 내 힘과 지혜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요 축복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며,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형제와 나누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연단하시고 축복하시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나를 하나님의 선하고 위대한 일에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성도는 연단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단이 끝난 후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복을 주실 때, 사명감을 가지고 충성되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가장 복되게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충성된 삶을 살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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