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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평케 하는 사람 (마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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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케 하는 사람 (마 5:9)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인류역사 약 5,000년 동안 전쟁이 무려 14,500번이나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매년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서는, 평균 3곳 정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이 아니라도, 크고 작은 다툼과 갈등은 인간 공동체 안에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나라 안에, 지역 안에, 직장 안에, 가정 안에, 심지어 교회 안에, 다툼과 갈등은 계속되어왔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갈등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인간의 삶 속에는 다툼과 갈등 그리고 전쟁이 계속되는 것일까요? ‘화평’이라는 말의 한자 표현의 뜻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자로 화할 ‘화’(和)는 벼 ‘화’(禾)와 입 ‘구’(口)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여기서 벼 ‘화’(禾)는 가을에 거두어들인 곡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입 ‘구’(口)는 겨우 내내 나누어 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화할 ‘화’는 거두어들인 곡식을 겨우 내내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평평할 ‘평’(平)자는 그야말로 모두가 공평한 것을 말합니다. 결국 ‘화평’은 가을에 거두어들인 곡식을 겨우 내내 모두가 골고루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겨우 내내 거두어들인 곡식을 나누어 먹을 때,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자기가 남보다 더 많이 먹고 싶어합니다. 자기가 남보다 좋은 것을 먹고 싶어합니다. 저마다 그런 욕심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러다 힘 있는 사람이 욕심대로 남보다 더 많이 또 더 좋은 것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화평이 깨지고 맙니다. 그리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 꾀를 내서 자기 욕심을 채웁니다. 그래서 화평이 깨지고 맙니다. 이렇게 화평이 깨지게 되면 갈등이 생기고, 그것이 심해지면 다툼이 되고, 그것이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욕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욕심이 발동하면, 화평이 깨지게 됩니다. 그래서 갈등과 다툼과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창 3장 인간이 타락한 직후부터 갈등이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을 이루며 살다가 선악과를 따먹은 뒤부터 달라집니다. 서로 갈등하며 마음속에 화평이 깨지고 맙니다. 그들의 자식들인 가인과 아벨에 오면 이것이 더 심해집니다. 서로 미워하고 다툽니다. 그러다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이제 그들의 후손에 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고, 그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갈등과 다툼 그리고 전쟁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 살면서, 화평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갈등 없는 공동체, 다툼 없는 인간관계, 그리고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간절히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화평을 바랍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화평은 마치 유리그릇처럼 쉽게 금이 가고 깨집니다. 금이 간 화평, 깨진 화평을 회복하는 일은 정말 힘이 듭니다. 누구도 화평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8복 말씀 중의 일곱 번째 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지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

우선 화평케 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원어로 "에이레노포이오이"(eirenopoioi)입니다. 이 말은 “평화”를 뜻하는 “에이레네”(eirene)와 “만들다”라는 뜻의 "포이에오" (poieo)가 합해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평화를 만드는 사람 즉 영어로 “peacemaker”를 뜻합니다.

여기서 화평케 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화평을 사랑하는 사람(peacelover)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화평을 바라고, 소극적으로 화평을 깨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화평을 지키는 사람(peacekeeper)이라는 말과도 다릅니다. 계속되는 화평을 지켜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란 적극적으로 화평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화평을 사랑하고, 화평을 지키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갈등과 다툼 그리고 전쟁이 일어날 상황 속에서, 화평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심각한 갈등과 치열한 다툼 그리고 생사를 건 전쟁 속에서 그 모든 갈등, 다툼, 그리고 전쟁을 그치게 하고, 화평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중국 위나라의 송취는 초나라 접경지대에 있는 자그마한 고을의 군수로 부임했습니다. 그때 위나라와 초나라 접경지대에 사는 농민들은 모두 수박과 참외를 길렀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 농민들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위나라 농민들은 열심히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는 수박과 참외는 달고 맛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나라 농민들은 게을러서 농사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다보니, 초나라 사람들이 기르는 수박과 참외는 맛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초나라 농민들은 위나라 농민들을 시기하여, 몰래 국경을 넘어와 위나라 사람들의 수박과 참외밭을 엉망으로 휘저어놓고 도망을 쳤습니다. 위나라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밭에 나가보니, 갓 맺힌 열매와 새순들이 모두 짓밟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을 군수인 송취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초나라 사람들의 짓입니다. 우리가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습니다. 저들이 했던 대로 우리도 초나라로 넘어가 그들의 밭을 모조리 짓밟고 오겠습니다.” 

주민들의 하소연을 들은 송취는 원한으로 복수하는 것은 결국 화를 부를 뿐이라고 하면서, 한 가지 해결책을 알러주었습니다. 그들은 그날 밤 송취가 일러준 대로, 몰래 국경을 넘어가서 초나라 사람들의 밭에 물과 거름을 듬뿍 주고 돌아왔습니다. 그 일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 초나라 사람들이 밭에 나왔다가, 누군가가 몰래 자기들 밭에 와서 물과 거름을 주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초나라 사람들은 위나라 농민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자신들의 행동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초나라 밭에서 나는 수박과 참외도 달고 맛이 있었습니다. 이 소식은 초나라 왕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초나라의 왕은 위나라에 금은보화를 보내어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였고, 그 뒤로 두 나라는 사이좋은 이웃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송취와 같은 사람이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갈등과 다툼 그리고 전쟁이 일어날 상황에서 화평을 이루어 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주님의 제자들에게 이런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려면

그러면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두 가지의 나라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통치 차원 보면, 세상나라는 공중권세 잡은 사탄이 통치하는 나라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백성 차원에서 보면, 세상나라는 옛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라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새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특징 면에서 보면, 세상나라에는 갈등, 다툼, 그리고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나라에는 화평이 가득합니다.

그렇습니다. 화평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질 때, 새사람 곧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서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화평케 하고자 할 때, 먼저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옛사람이 새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 존재가 변해야 합니다.

파푸아뉴기니의 코라 부족을 선교하시는 문성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원래 코라 부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잡아먹던 풍습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귀신을 믿고 귀신의 지배를 당하며 살아왔답니다. 그래서 저들의 삶 속에 상상하기 힘든 악습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저들에게 말씀이 들어가면서 하나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답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심각한 고민을 이야기하더랍니다. 자기가 지금 아내가 다섯 명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더랍니다. 지금까지 아내가 많은 것은 이 부족에서는 자랑거리요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말씀이 그 심령 속에 들어가니,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요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네 사람은 돌려보내기로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나라에 살던 옛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이 들어갔습니다. 옛사람이 변하여 새사람이 됐습니다. 새사람 눈에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화평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옛사람들은 결코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복음으로 새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 화평케 하시고자 일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화평케 할 사람을 찾고 계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게 화평케 하라고 명령하심을 들을 수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일이 내게 주어진 사명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둘째,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화평은 절대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깨진 유리 조각이 저절로 붙어서 유리병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사이의 갈등이나 다툼도 저절로 해소되어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깨진 유리 조각이 다시 하나가 되어 유리병이 되려면 큰 힘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 사이의 갈등이나 다툼을 끝내고 화평을 이루려면 큰 힘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엡 2:14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화평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부 사이의 갈등,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습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다툼, 결코 쉽게 해결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라 간의 전쟁, 결코 쉽게 해결 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갈등과 다툼 그리고 전쟁을 끝낼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을 덧입게 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일본 교토에는 기독교 명문대학 도시샤(동지사) 대학이 있습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독실한 기독교인인 니이지마죠가 설립한 대학입니다. 이 대학에는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인 니이지마죠의 기독교 정신을 기리는 유물이 보관되어있습니다. 바로 부러진 벚꽃나무 막대기입니다.

한 번은 이 대학에 심각한 분규가 일어났습니다. 교직원과 학생이 완전히 둘로 나뉘어서 다투고 있었습니다. 총장인 니이지마죠가 이 일 때문에 깊은 기도한 뒤 전체 교직원과 학생을 모두 모이게 했습니다.

모두가 모인 앞에서 총장은 엄하게 다짐했습니다. 이번 분규의 책임자를 찾아내서 엄벌에 처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총장은 벚꽃나무로 만든 막대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팔을 걷어 올리고는 그 막대기로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막대기는 부러지고 팔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총장 앞으로 달려 나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서로 화해하게 됐고, 학교는 새롭게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 학교는 일본의 명문대학으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학교는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그 막대기를 학교 유물로 보관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깨달은 사람들, 그들이 화평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덧입은 사람들, 그들이 화평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덧입고 삶 속에서 십자가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화평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덧입으십시오. 여러분도 화평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 누리는 복

예수님께서 화평케 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 종류의 대상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으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입니다. 마 3:17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뒤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제자들입니다. 마 16:16을 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방인입니다. 마 27:54를 보면, 백부장이 십자가 밑에서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면,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이겠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같은 믿음의 형제들에게도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서 화평을 만들어 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형제들도, 나아가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우리를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서 방관하고 있거나 오히려 갈등과 다툼을 조장한다면, 본인이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주장해도 결코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결코 믿음을 인정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주변의 믿음의 형제들에게 나아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화평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새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복음으로 인격이 변하고 삶이 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덧입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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