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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벧전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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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벧전 2:1-10)


지금 보여 드린 그림은 알브레히드 뒤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도하는 손’입니다. 이 그림의 배경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뒤러는 화가 지망생이었습니다. 그에게 프란츠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도 화가 지망생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일을 해 돈을 벌어 가며 힘겹게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두 사람은 돈을 벌면서 미술을 공부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둘은 ‘우리가 함께 미술을 공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돈이 없어 불가능하네. 한 사람이 미술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이 일을 해서 돕고, 화가가 된 사람이 나중에 한 사람이 미술을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나눴습니다. 

뒤러의 친구 프란츠는 뒤러에게 먼저 공부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노동 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뒤러가 그림을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뒤러는 친구의 헌신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드디어 뒤러가 졸업을 하게 되고 그의 그림이 한 두 점씩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뒤러는 이제 그의 친구가 미술을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친구의 집을 찾았습니다. 뒤러가 친구의 집을 방문 했을 때 문이 열린 틈으로 친구가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고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친구의 기도가 뒤러에게 들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심한 노동으로 손이 굳어져 그림을 그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 대신 제 친구인 뒤러가 지금보다 더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뒤러는 복받쳐 오른 감동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하였습니다. 그 그림이 바로 오늘의 유명한 ‘기도하는 손’입니다. 뒤러의 ‘기도하는 손’이라는 그림이 참 잘 그려진 작품이지만 그 그림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림 안에 담겨 있는 친구의 헌신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다른 사람들도 로마 제국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형에 처해 졌습니다. 그들이 진 십자가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다른 것은 헌신과 희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하나님과 사람을 감동시키는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헌신이 있는 곳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수님의 섬김의 삶을 본받아 감동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의 그런 당부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온갖 박해로 인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쓴 서신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과 특히 세례 받은 성도들에게 베드로서를 꼭 읽도록 권면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과정을 잘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과정을 세 단계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옛 사람의 그릇된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1절에서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의 버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 의미는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자기중심적인 욕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이기적인 욕망들을 버리지 못하면 온전한 믿음의 길에 들어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 장으로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서도 똑같은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이 첫 단계는 자신의 옛 사람의 속성을 버리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은 잘못 된 옛 습관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온전한 믿음의 생활이 시작 될 수가 없습니다. 

둘째 단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2-3절에서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갓난 아이는 자라야 합니다. 자라지 못하면 정상적으로 건강한 아이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났으면 하나님의 백성답게 성장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자기중심의 어린 아이의 단계를 넘어 장성한 모습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배우고 닮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갓난 아이가 태어나 아동시절, 청소년 시절, 청년 시절을 거치며 성인이 되는 것처럼 영적인 모습도 그렇게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성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 거룩해져 가는 과정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제가 오늘 강조하고 싶은 영역입니다. 삶의 자리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4-5절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9절에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들을 향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왕 같은 제사장이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향해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레위인 특히 아론의 후손들에게 주신 거룩한 직분입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통해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사이를 화목하게 만드는 중보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직접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이 되어 몸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죄 된 인류를 화목하게 만드는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제는 예수님을 따라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는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제사장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사장 하면 목회자만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구약의 개념입니다. 천주교에는 아직도 신부에게만 제사장의 직책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거룩한 제사장,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종교 개혁자들은 ‘만인 제사장설’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 된 모든 사람은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만들고 연결시키는 중보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제사장들입니다. 

율법주의에서는 세상에 있는 직업 중에서 몇 가지만을 ‘성직’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은 모두가 성직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직업을 어떤 태도로 섬기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목적으로 행해진다면 어떤 직업이든지 성직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보통 ‘하나님 나라’ 하면 죽어서 가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나라’라는 단어는 ‘말쿠트’라는 아람어로 ‘다스림, 통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정신과 뜻으로 다스려지고, 통치되는 곳으로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회사를 경영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가사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정신과 뜻이 실현 되는 곳이 되도록 만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 주는 제사장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분들은 돈을 많이 벌어 선교 사역을 위해 헌금하는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과 가격, 서비스가 정직해야 합니다. 또한 고객들이 만족하는 것이 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회사의 직원들이 행복해하는 직장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를 위해 헌금을 많이 한다고 말하면서 직원들의 등이 휘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곳에서 받는 월급을 가지고 한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경영하는 회사보다 직원들의 복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신과 뜻이 이뤄지는 곳으로 만드는 경영자가 바로 제사장입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일하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경영자의 마음을 가지고 회사를 사랑해야 합니다. 주어진 일을 하면서 다른 동료들에게 본이 되고 화목한 분위기를 만드는 피스 메이커가 되어야 합니다. 가사 일을 돌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평과 원망 보다는 항상 감사함으로 가정 일을 돌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정신이 실천되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역할도, 어머니 역할도, 자녀의 역할도, 보모의 역할도 모두가 제사장의 역할입닏.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회사 일도, 가정 일도 흐트러지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제사장의 역할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는데 있어서는 예수님을 닮아 자신의 헌신과 섬김이 뒤따를 때 거기에 제사장 역할의 감동이 있습니다. 

프랑스어 중에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도덕상의 책임과 의무도 높다는 말입니다. 이 말의 원래의 뜻으로 노블레스라는 말은 닭의 벼슬을 의미합니다. 오블리제는 달걀의 노른자라는 뜻입니다. 즉 닭의 사명은 벼슬을 자랑하는 데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의미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큰 벼슬을 가진 신분의 사람일수록 그 신분을 자랑하기보다 그 사회를 위해서 더 많은 의무와 헌신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이뤄지지 않는 사회는 평안함이 없고 원망과 불평이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이 실천되는 곳에는 평화와 질서가 세워졌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거룩한 제사장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됨의 자긍심을 가지고 그 신분에 걸맞는 역할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가정과 이웃, 사회와 교회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뜻이 이뤄지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우리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나는 우리 회사의 제사장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의 제사장입니다. 나는 우리 이웃의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는 가운데 삶의 자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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