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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심판에 대한 경고 (마 24: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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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심판에 대한 경고 (마 24:32-51)

대학교에 다닐 때에 필수과목으로 심리학을 한 과목 택해야만 했었는데 특이하게도 그 과목은 자율학습 과목이었습니다. 학생이 자기 편한 시간에 교과서를 읽고 혼자 읽고 공부를 해서 자기 편한 시간에 각 과목에 해당하는 한 장짜리 사지선다형 퀴즈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단, 학기말까지 모두 26개의 퀴즈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학기말에 가서 고생하지 않으려면 매주 두 과를 마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그 과목이 자율학습 과목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 너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되고, 또 내가 원하는 시간에 공부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퀴즈를 볼 수 있다는 그 자유로움이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그 과목을 택하면서 희희낙락 무척 좋아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자유로우니까 “나중에 하면 되지, 뭐”라는 생각 때문에 친구들과 놀고 싶은 유혹을 많이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 주, 두 주가 금방 지나가 버리고 한꺼번에 여러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일이 종종 생겼던 것입니다. 

특히 어떤 친구는 학기말이 되도록 한 번도 퀴즈를 보지 않고 있다가 일주일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하루에 여섯 개씩 퀴즈를 보기도 했었습니다. 그 때 생각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자유가 자기 절제를 잘 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복이 되지만 자기 절제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2. 이것은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심판에 대한 경고를 해주십니다. 그래서 32-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유를 주셨다는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지 않으셨더라면 “너희들은 가만히 있다가 내가 들어오라고 하면 즉시 들어오도록 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36절에서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 Harold Camping이라는 사람이 지난 5월 21일 오후 6시에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었지요. 그랬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이제는 5월 21일 오후 6시에 영적인 심판이 시작이 되었고, 오는 10월 21일이 진짜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지요. 오늘 본문 36절만 제대로 읽어도 그런 망발은 하지 않을텐데...


4. 아무튼 세상 마지막 날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면서 본문 42-4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그러면서 도적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지막 심판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생활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생활 잘하는 것입니까? 그저 교회에만 잘 나오면 깨어있는 것인가요?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시간 나는 대로 봉사하고, 직분 받고, 그러면 깨어 있는 것인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신앙적으로 깨어 있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정직하게 사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예배에 참석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찬양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헌금 드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기도하고, 선교여행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그런 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만 멋있게 꾸미는 그런 신앙을 어떻게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깨어 있으라는 말은 단순하게 교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고, 그리고 나 역시 하나님을 정직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5. 한국 강남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교회가 있습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설교자라고 할 만큼 훌륭한 목사님께서 개척하셔서 오랫동안 잘 부흥시킨 교회입니다. 그 목사님께서는 얼마나 설교를 잘 하셨던지 Golden Tongue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목사님이 은퇴하면서부터 그 교회는 서로 싸우느라고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강단에서 몸싸움까지 하고, 교역자들끼리 서로 주먹질을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유명한 설교자로부터 유명한 설교를 들으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 때문에 복음의 문이 닫히고, 전도의 길이 막히고 있으니 어떻게 깨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교회가 그렇게 부흥하고, 선교도 많이 하고, 목사님 설교가 은혜롭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마지막 날에 깨어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차라리 별로 유명하지 못한 목사님으로부터 별로 훌륭하지 못한 설교를 듣는다고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에 먹칠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좋은 설교를 듣고, 얼마나 좋은 예배를 드리고, 얼마나 봉사, 선교를 많이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6. 그래서 예수님은 본문에서 연 이어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문 45절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 당시에 이런 일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집 주인이 먼 길을 가면서 믿음직스러운 종에게 집안일을 다 맡기고 가는 일이 흔히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아주 충성스럽게 자기의 일을 잘 감당하는 종이 있는가 하면 주인이 없다고 자기 마음대로 해 버리는 종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심은 그 당시 사람들이 잘 알아 들을 수 있는 비유로 설명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7.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하는 충성스러운 종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최소한 주인을 존경하고, 주인이 자기에게 맡긴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주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니면 최소한 주인을 존경하고 공경하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주인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맡긴 일에 대해서 정직하게 책임을 다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종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주인을 존경하거나 공경하지도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인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자기에게 맡긴 일에 대한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없다고 자기 마음대로 해 버립니다. 동료 종들을 때리고, 술친구들을 불러다가 질펀하게 먹고 마신다는 것입니다.


8. 그런데 이런 일들은 그 옛날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요즘 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1) 종이 동료들을 때렸다는 것은 다른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아 하나님의 일을 같이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고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2)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또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보다는 세상의 쾌락을 즐긴다는 것이다.

(3) 주인이 맡긴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은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다.

집안일을 잘 돌보라고 직분을 주었는데 그 직분으로 세상 쾌락을 즐기는데 사용하는 종처럼,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기고 돌보라고 직분을 주셨는데 그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하겠다는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50-51절에서 예수님은 이런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9. ROTC 훈련을 받을 때에 독도법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지도를 이용해서 목적지를 찾아내고, 그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빠르고 좋은 길을 선택해서 이동하는 그런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교관이 지도의 위도와 경도를 기록한 종이를 주면, 그 위치를 지도에 표시를 하고, 그리고 그곳에 가서 나무에 걸려 있는 도장을 찍어오는 훈련이었습니다. 모두 열 개의 도장을 찍어와야 하는데 교관이 그런 과제를 내어 주면서 두 가지 주의를 주었습니다.

(1) 첫째, 두 시간 안에 열 개의 도장을 모두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 둘째, 가르쳐 준 위치에만 도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같은 도장이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엉뚱한 도장을 찍어 올 수 있으니까 경도와 위도 계산을 정확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작 시험이 끝나고 난 후에 보니까 시간을 지키지 못한 친구들, 또 엉뚱한 도장을 찍어온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10. 무슨 일이던지 성공하려면 주의해야 할 부분을 잘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전혀 엉뚱한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책상을 조립하는데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 하면 오른쪽 면과 왼쪽 면을 바꾸어서 조립하기도 하고, 안쪽으로 해야 할 것을 바깥쪽으로 하고, 바깥쪽으로 해야 할 것은 안쪽으로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설명서를 따라 주의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주의 할 때에 비로소 정확한 완성품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11.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음으로 받는 복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동시에 또한 열심히 하느라고 했지만 전혀 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런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복되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지만 그런 자유를 잘못 사용하면 복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예배할 자유도 있고, 예배하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2) 수요예배, 금요예배에 나올 자유도 있고, 나오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3) 말씀에 순종할 자유도 있고, 순종하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도 모든 것이 다 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자유가 복이 되도록 나 자신을 절제할 수 있을 때에만 그 자유가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하다고 해서 절제하지 않으면 복이 아니라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12.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내일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독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종교생활, 교회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을 정직하게 사랑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고, 두려워함으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을 잘 감당해서 마지막 날 칭찬받고 상급 받는 깨어 있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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