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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노래 (출 1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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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노래 (출 15:1-10)

오늘 읽으신 본문은 ‘모세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노래를 읽으면서, 노래하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기쁨과 흥분 속에서 노래하고 있는 모세 말입니다. 모세의 노래 뒤에는 그의 누이 미리암의 노래가 이어집니다. 미리암은 모세보다 더 합니다. 여인들과 함께 소고를 치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광야의 메마르고 피곤한 길을 시작하면서 이들을 이렇게 흥분시켰던 사건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을 노래하게 만든 분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 모세와 미리암을 춤추며 노래하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이 그분을 노래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의 역사인 홍해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이 죽이려고 달려들 때에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바다를 건너 죽음에서부터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힘, 하나님의 힘이 자신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6절에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오른손은 힘과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행하신 일을 모세를 비롯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경험했으니 찬송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래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휴스턴에 Lakewood Church를 담임하고 있는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목사님이 10대 때에 그 교회에 유별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30대 가량의 그 남자는 예배시간 마다 돌출행동을 했습니다. 예배시간 찬송을 부를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이상한 동작의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이 남자의 행동이 너무 이상해 보였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10대의 조엘은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그 사람에 대해서 우스갯소리로 폄하하기도 하고 그 남자 흉내를 내면서 웃음거리로 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그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 보라고 강단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태어날 때에 아버지를 모르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릴 때에 어머니가 자살을 해서 고아로 자라났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분노와 아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떤 희망도 없었고 절망과 어두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다니면서 내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직장도 얻게 되었고 이제 곧 결혼도 할 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노래하지 않을 수 없고 내 무릎은 신이 나서 춤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대의 교회를 보면 두 가지의 교회가 있습니다. 생동감이 있고 힘이 느껴지는 교회와 반대로 무기력함에 빠져있는 교회입니다.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가 흘러 넘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교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춤을 추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노래하게 하고 춤추게 하는 힘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고 그것을 경험하고 그 은혜를 찬양하고 선포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힘과 전능하심을 많이 경험하는 교회일수록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교회를 보면, 하나님의 힘을 경험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기대하지 않고 사람들의 능력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교회가 운영되고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간과하고 하나님의 힘이 전능하심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능력 안에서 되는 일은 많은데, 하나님 수준, 하나님 사이즈의 능력을 경험하는 일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한 위대하심과 놀라움에 대한 찬양의 소리가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가 터지기까지… 하나님께서 그 노래를 부르게 하시기까지 그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춤추며 노래할 수 있도록 큰 일을 행하셨고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만의 노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하나님 수준의 일, 하나님의 사이즈를 드러내는 큰 일들을 우리로 하여금 경험케 하시며 그래서 우리로 노래하고 춤추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찬송을 받으시고자 우리를 어떻게 이끄시는지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만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사람에게도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갈 수 있고 어떠한 일들을 처리할 수가 있습니다. 능력이 좀 더 많은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더 크고 많은 일들을 해 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주어진 힘도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 안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기에 그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깨닫게 하시기 위해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십니다. 이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써보지만 그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바라보게끔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애굽을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홍해바다로 이끄십니다. 200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으로 더 이상 갈 수 없는 홍해바다 앞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로는 애굽의 군사들이 이스라엘백성들을 잡으려고 몰려 옵니다. 당시 최대의 군사력을 지니고 있던 애굽 병사들입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수도 없고 바다로 뛰어들어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다시 잡혀 노예로 끌려가던지 죽어야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몰아가셨습니다. 

이 때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불평과 원망입니다. 출애굽기 14:11절에 보면 그들이 모세에게 고함을 지릅니다.“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원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아가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사람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순간에 지도자 모세는 말합니다.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해하시는 구원을 보라!”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의 순간이 되면 두려움이 몰려 옵니다. 그런데 모세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는 것입니다. 나는 두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뭔가 하시기 위해 준비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준비하고 계시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진퇴양난의 위기는 원망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시선을 맞추고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행하실지 그것을 기대하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하나님 수준의 크신 일들을 하나님은 행하시려고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 사이즈의 능력을 행할 때입니다. 그 때에 세상은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깨닫게 됩니다.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수준의 일들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를 통하여서 교회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일들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것을 경험케 하시고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하나님께서 몰아가실 때가 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사이즈의 큰 일들을 드러내기를 원하심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그 다음은 하나님은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큰 일, 하나님 사이즈의 일들을 하시기 전에 보시고자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반응입니다. 믿음의 결단을 보고자 원하셨습니다. 

14:15절에,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요청하십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다를 갈라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요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한다면 그 믿음을 행동으로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앞으로 나가게 하라고 했는데 그 앞은 무엇입니까? 바다 입니다. 그 바다로 들어갈 채비를 하라고 이릅니다. 울고 있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믿음을 가지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순간에 바다를 향해서 걸어갈 것을 명령 받았고, 모세는 지팡이를 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때에 바다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모세가 지팡이를 내미는 것과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신 후에 그들을 건너게 하신다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정되지를 않습니까? 하나님의 능력도 나타나고 구원의 역사도 이루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이에 하나를 요청하십니다. 믿음의 반응입니다. 믿음의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들의 믿음의 결단과 행동을 통해서 역사되어졌습니다. 이것이 없어서 때로는 홍해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크신 일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내가 믿음 없는 것에 대해서 탓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의심을 합니다. 

이러한 비슷한 사건이 민수기 3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들어가가 위해서는 요단강을 꼭 건너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널 때에 강에 물이 가득하여 건널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도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때도 하나님은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물을 밟으면 그 물이 멈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물을 멈추도록 하신 후에 그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고 밟으면 멈춘다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강을 갈라주셔도 사람이상의 일이기에 하나님이 하셨다고 믿을 텐데 하나님은 굳이 그 믿음을 요청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들의 차이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사이즈의 일, 기적을 보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 사이즈의 큰 일을 행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믿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줄어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등산을 합니다. 산 깊숙이 들어갔다가 길을 헤매게 됩니다. 헤매는 사이에 날이 저물고 곧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이 내려 앉았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이 남자는 이리저리 길이다 싶은 곳을 찾아 헤맵니다. 그러다가 그만 낭떠러지를 보지 못하고 밑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중간에 나무뿌리를 잡게 되어서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중간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 남자는 낭떠러지 꼭대기를 향해서 소리를 지릅니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주세요” 손의 힘은 점차 빠지고 죽었다 싶었을 때에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너를 살려 주마.” “누구세요?” “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빨리 저 좀 살려주세요. 팔의 힘도 없어서 떨어져 죽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 잡고 있는 나무뿌리를 놓아라, 그러면 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남자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다시 위를 보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거기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 없어요?” 이 남자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사이즈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수준에서 해결할 만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고백이 나올 만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일들만을 계획하면 사람의 일로 끝나고 맙니다. 사람이 했는지 하나님이 하셨는지 헷갈립니다. 하나님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성도요, 교회입니다. 그 큰 일들을 보고 세상은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교회 안에 역사되어질 때 그렇습니다.

2절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모세는 노래합니다.

나는 홍해를 가를 만한 인간적인 능력이 없어도 그러한 기적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어주신다면 가능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가져야 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세상의 외형적인 현상을 보며 걱정하고 근심하고 절망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마 어마한 하나님의 능력을 간과하고 동떨어져서 외롭고 고독하게 어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삶의 문제에 묻혀서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의 무거운 짐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시며 하나님 사이즈의 일들을 행해 달라고 간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 우리 교회 안에 모세와 미리암과 같은 노래가 가득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 가운데 하나님 사이즈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상에 능히 증거하고도 남을 수 있는 노래가 많아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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