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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 안창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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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눅12:54-59절

2017년 3월 5일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은 많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분별력의 유무입니다. 사람에게는 분별력이 있지만 짐승에게는 없습니다. 분별력이란 한마디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분별력을 잃게 되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솔로몬이 나이가 어려서 왕위에 올랐지만 정치를 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께서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세대를 향하여 책망하신 것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45-5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요즘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지금 어느 지역의 날씨가 어떤지, 온도는 얼마인지, 내일은 어떨지’ 하는 것들을 쉽게 검색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이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구름이나 바람을 통해서 날씨를 예측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서쪽에는 지중해라는 커다란 바다가 있습니다. 그쪽에서 발생한 구름은 지중해의 높은 습도를 머금은 비구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쪽에서 구름이 일어나면 곧 큰 비가 내리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땅 남쪽은 네게브라고 불리는 사막지역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쪽에는 거대한 아라비아 사막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건조하고 뜨겁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남쪽에서 바람이 불 때에는 무척이나 더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열왕기상 18장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죽이고 하나님께 비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어디서 기도를 했습니까? 갈멜산 꼭대기입니다. 왜 그가 그곳에서 기도했을까요? 갈멜산은 지중해가 잘 보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중해에서 구름이 생겨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와야 비가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간절하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는 간절히 기도한 후 사환에게 건너편에서 구름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6번이나 보았어도 구름이 보이지 않다가 일곱째 보니까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그래서 사환이 엘리야에게 그렇게 보고하자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어떻게 말했습니까?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44절). 즉 엘리야는 작은 구름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듣자마다 종을 보내서 아합 왕에게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엘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을 두고 그가 미래를 꿰뚫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엘리야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아는 능력이 있어서 작은 구름을 보고서 비가 올 것을 알고 아합 왕에게 마차를 타고 내려가라고 말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사람은 누구나 작은 구름을 보면 비가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엘리야를 능력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기도로 없던 구름을 만들어내어 비가 오게 한 것 때문이지 작은 구름을 보고 비가 올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당시 사람들이 천지의 기상을 이렇게 분별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어찌 너희가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분간한다’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친숙한 사이가 된다, 이해한다, 해석한다, 기억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안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셔서 행하신 일을 보면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아야 할 텐데, 그들이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종말이 시작되었습니다.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을 피하는 길은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고 하려 하심이라”(요 3:1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러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구름과 바람을 보고 천지의 기상을 분별하듯이, 지금 이 땅에 오신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즉 이미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이 말씀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곧 오셔서 심판하실 분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곧 다시 오신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일어날 징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마태복음 24장 3-13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첫째로,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납니다. 둘째로,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셋째로,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일어납니다. 넷째로, 믿는 자들이 환난에 넘겨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다섯째로,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죽이고 미워하게 됩니다. 여섯째로, 사랑이 식어집니다. 일곱째로,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해서 온 세상에 전파됩니다.


사실 위에 열거한 증상들은 거의 초대교회시대부터 일어났습니다. 그때부터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났고,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일어났고, 서로 미워했고, 믿는 자들이 극심한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당시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살아생전에 예수께서 오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의 재림을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말씀은 ‘양치는 소년의 말’로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성취하시는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지금은 마지막 징조로 말씀하신 것 중에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해서 온 세상에 전파된다”는 말씀이 거의 성취되어가고 있기에 예수께서 곧 다시 오실 때임을 알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지 않고 이 세상 일만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우리 역시 주님께 이런 책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께서 이 시대를 분간하라고 하시면서 덧붙이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58-5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 에게 넘겨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일반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큰 잘못을 한 사람이 재판장에게 가기 전, 상대방과 화해를 하면 재판에 넘겨지지 않고 옥에도 갇히지 않지만 화해를 하지 않으면 재판을 받게 되고 그의 잘못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고소할 자는 예수님을, 재판장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우리의 재판절차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법체계는 어떻습니까? 검찰이 고소를 하고 옳고 그름은 재판장 앞에 가서 가려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에는 재판장 앞에서는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없고 즉시 옥데 던져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는 죽은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모르고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안타까워하시면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예수께서 화해를 하지 않고 재판장 앞에 끌려가면 곧바로 감옥에 던져진다고 말씀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시 감옥에 던져진다고 말씀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께서 구원자이시면서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 그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의해 곧바로 천국에 들어갈지 지옥에 던져질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아무런 변명할 기회도 없이 곧바로 지옥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 날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지지 않도록 그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이 말씀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 서는 이유가 다릅니다. 비신자들은 지옥에 던져지기 위해 심판을 받지만 우리는 상급을 받기 위해서 심판을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지막 날 받을 상급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께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시간, 물질, 수고를 결코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마지막날 받을 상을 바라보고 주님께 더욱 더 충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중간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림이 언제 이뤄질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을 볼 때에 이제 곧 주님께서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마지막 날 주님께서 친사를 호령하시고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을 부시며 하늘로부터 강림하십니다. 그날에 부끄러운 자가 되지 않도록 흠과 점과 티가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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