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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글 용서를 강요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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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를 강요하는 사회


> 하나님은 용서만 이야기하시나?

![영화 '밀양'의 한장면](http://godpeople.or.kr/files/attach/images/15241/189/010/003/79296cd5455255deec99be51f1efe21f.jpg)


우리는 용서와 사랑이 남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는 정의를 부르짖고 있지만 실현되지 않고, 교회는 성공과 축복을 부르짖고 있지만 성경에서 멀어지고 있다.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하거나 사랑해야한다고 강요하는 사건, 예를 들면 세월호 사건같은 예를 통해 가해자 혹은 범죄자에 대한 용서를 강요받는 것이다.

가해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인권보다 더 우선시되는 이러한 사회적 장애 현상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 집단적 인지부조화 현상


약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가지는 것은 성경적이다.
하지만 약자가 범죄자가 되었을 때는 약자라는 감정은 배제되고 **범죄자**로 특정하여 사고해야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고판단이 흐려져있다.
왜일까?



## 억울함의 공감대, 약자감정


약자가 범죄자가 된 사건이 많기 때문이다.
즉, 약자가 억울하게 사건에 휘말려서 억울한 판결을 받게 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식이 아닌 강자와 약자의 시선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약자 = 억울 = 범죄자 취급**이라는 공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이때부터 실질적 가해자와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약자의 배경을 가진 자가 범죄하면 그것은 약자였기 때문에 그가 저지른 범죄 또한 약자에 대한 감정으로 용서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인권운동과 사회운동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조선시대의 신분사회, 일제시대의 식민지상태,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한 해방정국, 6.25 사변과 국토분열, 군사 쿠테타, 친기업정부 등의 출현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한국사회는 이러한 인권운동이 정의를 부르짖는 대변인이자 같이 피를 흘려준 동지였고 기득권(강자)에 함께 저항한 **정의**였다.



## 사회정의 실현에 실패한 기독교


부끄럽게도 교회와 목회자들은 성경적 사회정의를 세워가는데 실패했다.
아니 그런 시도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 역사가 희미하다.

교회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기복신앙에 근거한 문화와 복지 분야였지만 이마저도 성경적 사랑에 근거한 것이라기 보다 돈과 관계된 것들이 많았다. 

오히려 교회는 강자의 입장을 두둔하고 성공적으로 그 기득권에 편승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기며 교세를 확장시키고 성도를 세뇌시켰다.

이제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
자신들이 중산층이나 기득권층이라고 믿었던 자들이 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사회적 불안기를 느끼면서 자신들이 약자라고 느끼는 세대가 늘어간다는 의미이다.

과거에는 노력하면 약자에서 강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실패란 용납되지 않으면서, 기회는 주어지지 조차않는 **"포기의 시대"**를 살아간다.

이제 모두가 약자라는 감정이 공유되면, 자신의 입장과 약자에 대한 입장을 동일시하는 감정이입이 일어나게 된다.



## 약자감정을 이용한 코스프레


이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후에 나타난다.

범죄자를 순수하게 법률적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약자감정으로 취급하게 되면서, 법질서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법질서는 혼란스러웠다.
문제는 혼란이 더욱 가속화되고 결국에는 법질서 회복의 잣대를 상실하게 된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대기업 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면 약자감정이 법감정을 억누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법적으로 완전하게 면책된다.

동성애자가 사회적인 비난으로 눈물을 흘리면, 사람들은 약자감정이 생겨나게 된다. 동성애를 허용하고 동성애가 사랑과 용서의 심볼이 되는 것처럼 위장할 수 있다. 급기야 동성애를 기득권과의 대립이나 자유, 사회운동과 인권의 문제로 확대하고, 동성애를 강요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결국 범죄라는 심판의 대상은 사회적으로 "연민의 가면으로 위장한 강요된 용서"를 이용하여 면죄부를 받고, 스스로 족쇄를 풀고 자유함을 누리게 된다. 그 몫은 당연히 피해자가 안아야할 고통으로 돌아오고 말이다. 사회는 이렇게 집단적 인지부조화 현상을 통해 미쳐가게 된다.


![범죄자가 웃는 세상](http://godpeople.or.kr/files/attach/images/15241/189/010/003/630251a1e6b4844fd0e2e57ec0deff1b.jpg)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회개없는 용서는 가능한가?



##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


성경은 약자에 대한 긍휼과 인내, 사랑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죄에 대한 것도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현실은 우리가 성경적인 사랑과 용서를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우리의 책임이다.

약자를 더욱 사랑하되, 죄는 더욱 분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용서는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용서의 배경에는 반드시 회개가 있어야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한다.


> 누가복음 17: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성경은 용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죄에 대한 경고와 회개를 촉구한다.
회개이후의 용서는 강요에 의한 용서가 아니라 회개와 맞물려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용서가 된다. 그래야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할 때 용서하시는 심판자로 서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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