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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조선과 서양의 만남 : 선교사들이 본 조선, 조선인들이 본 서양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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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이 본 조선


● 19세기 초까지 서양인들이 생각한 조선


17세기 중반, 하멜표류기를 통해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한 조선은


이웃한 중국, 일본에 비해 

워낙 알려진 게 없다 보니


흔히 은자의 나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렸다.


혹은 '식인 악어가 사는 야만의 나라'

'미개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등이 


당시 서구인들이 가진 

한국에 대한 이미지였다.

▲ 코끼리가 출현하고 있는 하멜 표류기


그런 이미지는 당시 서양인들의

그림을 통해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1806년 서양인이 

최초로 그린 한국인의 모습이다.


프랑스에서 만든 

'아시아 왕국의 민족들'이란 책에 그려진 것이다.

▲ 여인이 들고 있는 것은 인삼이다.

 

솔직히 상상도에 불과하다.


입고 있는 건 동남아, 인디언 쪽에 가깝고

외모는 유럽인과 흡사해 보인다.


그리고 그림 밑에는 

이런 해설이 있다.


moon_and_james-83

"한국인들은 색동옷을 즐겨 입고

모자를 즐겨 쓰며, 밥 먹을 때도 모자를 쓴다."


moon_and_james-71

"애를 낳은 여인들은 

가슴을 노출하고 다닌다."


moon_and_james-83

"한국은 인삼의 나라다.

그리고 사람들은 독서를 즐긴다."


글만 보면 모두 맞는 얘기인데,

그걸 상상도로 표한하다 보니


저렇게 얼토당토않은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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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림도 있다. 

역시 한국인을 상상으로 그린 것이다.


조선은 '활의 나라'

라는 말을 듣고 그린 것이다.


역시 외모는 서구적이고

주변에는 야자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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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럽인들은 곧 

조선인들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된다.


1816년 영국 군함이

한반도의 서해안을 측량하면서


조선인들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깐 머무르다 떠났기 때문에,

기억을 더듬어서 그린 그림에는


서양인들이 보고 놀랐던 부분들이

특징적으로 부각되어 있다.


가령 긴 갓, 뾰족한 탕건,

기다란 담뱃대(실제로 저렇게 길었지만),


초가집의 커다란 기둥들이 그랬다.


나중에 그림을 보고 

나폴레옹이 이런 감탄을 하기도 했었다.


 나폴레옹

"캬! 저게 조선의 담뱃대란 말이지?"



● 19세기 중엽 프랑스 선교사들이 본 조선 


조선 땅에 벽안의 외국인이

장기 체류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 프랑스 선교사들이

포교를 위해 몰래 밀입국을 하면서부터였다.

 

▲ 당시 조선에 온 프랑스 선교사


이때부터 조선에 대한 모습은

보다 상세히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으니,


대표적인게 1874년에 출판된, 

프랑스 선교사 샤를 달레의 글이었다.


하지만 그가 소개하고 있는

조선의 이미지는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으니,

(프레데릭 블레스텍스,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 p.108)


대략 이런 내용이 있었다.


조선인들은 사랑의 느낌이 

무엇인지 모른다.


조선의 남녀는 

매우 열정적이지만


진정한 사랑은

이 나라에서 도통 찾아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욕정은

육체적인 관계일 뿐, 감정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물적 욕구밖에 모르며

야수의 본능으로, 


제일 먼저 만나는 대상에게

맹목적으로 달려든다.


(중략)


조선인들은 전반적으로 고집스럽고

까다로우며 화를 잘 내고, 앙심이 깊은 성격이다.


아마도 이들이 오랫동안

(半)야만 상태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다른 선교사의 글에서도

크게 다르지가 않았다.


조선에서 20여 년 넘게 살았던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는


1846년 파리로 보낸 편지에서 

조선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다.

(조현범,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 p.70)


이 나라에서는

물리적인 힘이 유일한 법률이고


범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해 관계에 따라서만 행동하며


조국에 대한 사랑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중략)


조선인들은 반야만 상태에 있기 때문에 

성격이 매우 까다롭다.


이 나라에는 

교육이란 것이 전혀 없다.


조선인들은 화가 나면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여자들도 뻔뻔스럽고

말이 매우 모질다.


또한 조선인들은 대단한 수다쟁이들로

대화를 할 때면 마치 아이들처럼 시끄럽다.


또 이들은 욕심이 많고, 

호기심이 너무 지나치고 


입이 아주 가벼워서 

비밀을 절대 숨기지 않고 털어놓는다.

 

돈이 생기면 계획성 없이 무조건 쓰고 보고, 

허영심이 무척이나 강하다. 




● 19세기 후반 미국 선교사들이 본 조선 

 

19세기 중엽, 관념적으로 비판하던

프랑스 선교사들과 달리


19세기 후반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은


주로 물질적인 면에서 

비판을 가하기 시작한다.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셔우드 홀의 기록이다.


 셔우드 홀

"서울은 내가 본 도시 중 

가장 더럽고 보잘 것 없다."


 셔우드 홀

"거리의 더러움은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미국에 보낸 보고서의 글이다.

 

 아펜젤러 

"서울 거리는 어딜 가나 

좁고 불결하며 오물이 널려있다."

 

 아펜젤러 

"서민들의 집은 흙으로 지어진

원시적인 형태였고,"


 아펜젤러 

"가옥들은 모두가 작고 낮으며 

음침하고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 주막

 

1886년 미국인 선교사 조지 길모어는 

이렇게 표현했다.

 

 길모어

"이 나라에 와보니 가장 놀라웠던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다는 것이었다."


 길모어

"세계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지구상에서 이처럼 더러운 나라는 처음이다."

 

 길모어

"한 영국인은 조선에서는 가장 깨끗하다는 사람이

그가 본 가장 더러운 사람이었다고 말 할 정도였다."

 


1884년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를 따라 

조선에 온 언더우드 부인은 이렇게 썼다.

 

 언더우드 부인

"서울에 들어와 처음 본 것은 

거대한 버섯 단지 같은 나지막한 흙집이다."


 언더우드 부인

"그런 집들은 방 한 칸과 

부엌 한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언더우드 부인

"나지막한 산들은 

나무 한 그루 없이 헐벗었으며.."

 

 언더우드 부인

"길 양쪽에는 도저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시궁창이 흘렀다."


 


1884년 미국인 선교사 겸 의사였던 

알렌의 기록이다.


그간 본 평양의 모습이었다. 

 

▲ 평양


참고로 당시 평양은 서울보다 오히려 더 번창한 

상업도시이며 근대도시였다.

▲ 평양의 저자거리


대동강에는 일본, 중국으로의 직항로가 나 있었고

외국 문물이 쏟아져 들어와서 


좋은 물건을 사려고 

서울 사람들도 평양으로 가던 시절이었다.

 

▲ 평양


그런데도 미국인 선교사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알렌

"사람들이 이런 환경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알렌

"거리는 비좁은 진흙탕 길에

온갖 짐승들의 배설물이 깔려 있어서 

숨을 쉬며 지나가기가 무척 어렵다."

 

 알렌

"그 길을 태연히 오가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헝클어진 머리에 위통을 벗었으며.." 


 

 알렌

"바지는 처음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남루했다.

게다가 맨발이 대부분이다."

 

 알렌

"여자들은 위통은 벗지는 않았지만 

짧고 누런 저고리 아래로 젖을 내놓고 다니는데

그것이 유행인지는 모르겠다."


 알렌

"길 양편으로는 가축우리보다도 훨씬 못한 

흙과 풀로 만들어진 작고 납작한 집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고.." 


 

 알렌

"부유한 동네에 가서야 

다소의 기와집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보자.


19세기 초기 : 야만스러운 미지의 국가

19세기 중엽 : 야만적인 문화를 가진 사람들

19세기 후반 : 가난하고 불결한 사람들


이렇듯 서양인들은 

시간이 갈수록 조선이라는 나라를 


더욱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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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근대화의 혁명으로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던 

자신들의 세계와는 대조적으로,

▲ 전기가 들어왔던 당시의 미국


시간이 멈춰버린

퇴영적인 조선의 모습들을 보면서


서구인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고로 부정적인 인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고층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던 19세기 후반의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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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하멜 표류기만 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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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낙후함과 불결에 대해 

거론하는 내용은 없었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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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의 모습도

꽤나 불결했기 때문에.." ☞ 참고




이양선과 처음 본 서구 문물


● 18세기까지 조선인들이 생각한 서양


1683년 청나라에 갔던 사신은

임금께 그곳에서 전해들은 러시아에 대해 보고했다. ☞ 참고


 김석주

"아라사(러시아)는 코가 큰 오랑캐들이 사는 땅으로 

산이 높고 진흙 구덩이가 많은데,"

 

 김석주

"그들은 오곡은 심지 않고 짐승을 날로 먹으며

대포와 창을 사용하는 법을 익힌다고 합니다."

 

 숙종

"참으로 야만스럽구나.."

 

 김석주

"또 그들은 청나라 황제의 교지를 받지 않고

사나운 말(러시아 말)을 했기 때문에.."

 

 김석주

"청나라에서는 지금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하려고 한다 하옵니다."

 

이후 18세기에도 러시아에 대한 

조선인들의 편견은 여전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이렇다.

 

 홍대용

"최근 북경에 아라사 사람들이 체류하고 있는데

그들이 머무는 곳을 '아라사관'이라고 한다."

 

 홍대용

"이들은 매우 흉악하고, 

사납고, 야만적이어서.."


 홍대용

"사람에게 개를 풀어놓고 놀리거나

부녀자를 겁탈하여 처형 당하기도 했다."


1745년 영조 21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 참고


당시 관상감에서는 천리경(망원경)이 들어와

일식을 측정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영조가 천리경을 두고

이렇게 화를 냈다.


 영조 

"사람이 해를 똑바로 쳐다보는건 

바람직하지 않다능."

 

 영조 

"윗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과 

뭣이 다르겠는가!"


그리하여 망원경을 그 자리에서 깨버리고

세계지도도 씻어서 없애버렸다.


그렇게 했더니, 

웬걸! 신하들이 모두 찬탄하였다.


 신하

"전하, 매우 현명하신 처사이옵니다."


1764년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간 

조선 의원과 일본 의원이 나눈 대화도 


조선인들의 서양에 대한 

편견을 느끼게 해준다. ☞ 참고


당시 일본에는 네덜란드 해부학서적을 번역한 

해체신서가 있었다.


 기타야마 쇼우

"우리나라 어떤 의원이 죽은 사람의 배를 갈라 

장기를 자세히 살피고, 책도 지어냈스무니다."


그러자 남두민은 이렇게 꾸짖었다.


 남두민

"갈라서 아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고," 


 남두민

"가르지 않고도 아는 것은 성인만이 할 수 있으니,

미혹되지 말지어다." 


이렇게 말이다.



● 이양선을 본 조선인


18세기 후반부터 조선 해안에는 

부쩍 이양선의 출현이 잦아진다.


이양선은 '이상한 모습을 한 배'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이양선에 대한

조선인들의 대처법이 사뭇 달랐던 모양이다.


1795년 황해도에서는

이들을 공격적으로 맞았으니, ☞ 참고


그도 그럴 것이 난생처음 보는 

이상한 차림새가 수상 쩍은 데다가


요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한사코 조선인들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을 수령이 군사들에게

위엄을 보이도록 했던 것이다.

 

 수령

"경계태세를 갖춰라."

 

그러자 조선 병사들이 일제히 활을 당기고

총을 겨누며 위협했는데


서양인들이 오히려 화를 내자

조선 병사들은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무기를 냅다 던져 버리고 

모두들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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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귀신이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이양선의 출입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유럽 세력이 

아시아를 침략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전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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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서양인들이 먼저 호의적으로 나오면

조선 역시 친절하게 대해줬으니,


1797년에 영국 선박이 

식량과 식수를 얻기 위해서 도움을 요청하자


조선 정부는 기꺼이

필요한 물품들을 내어주기도 했었다.

 


 수령

"조선은 자고로

예의를 숭상하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이때 영국의 선박을 보기 위해 

수천 인파가 몰려들었으니,


당시 이양선을 본 조선인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송병기, 한국 미국과의 첫만남 p.35)


"생긴 것은 우리 선박과는

전혀 다르게 생겼거니와,"


"선체는 마치 태산과 같았고

범죽은 하늘 높이 치솟았으며"


"빠르기는 마치 

나는 새와 같았다."



● 처음 본 서양 문물 : 시계, 피아노


이 당시 서구 문물을 

처음 본 조선인들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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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일화가 있다.


조선에 기계시계가 들어온 것은

1631년(인조 9년)으로


명나라에 갔던 사신이

가지고 돌아온 자명종이 시초였지만, ☞ 참고


보통사람들이야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았을 리 없었고,


1847년 여름 프랑스 군함 두 척이 

전라도 앞바다에서 암초에 걸려 


신치도라는 섬 부근에서 

난파를 당했을 때


주민들은 난데없는 광경에 

공포를 떨어야만 했었다. 


"시방 저것이 뭣이래?"


이에 소식을 듣고 파견된

관아의 관리들은


배에서 건져낸 물건들을 

모두 관아의 창고로 옮기도록 명령했다.


"이딴 요망한 물건들은 

그대로 놔뒀다간 귀신이 나올 수도 있응게.."


"어여 싸게싸게 

관아로 실어 나르더라구."


이때 실어 나른 물건들은

거의 대포나 총이었다.


관리들은 이것들을 재빨리 옮겨놓고 

창고 문을 굳게 잠가버렸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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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안에서 '똑딱똑딱' 하는

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오는 바람에


섬 주민들은 또다시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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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 이것이 뭐당가?"


무기들 속에 시계가 들어 있었던 것을

사람들은 알 턱이 없었다.


일주일이나 계속해서 똑딱 소리가 들려오자

마을사람들은 회의를 열었다.


"시방, 오랑캐 귀신이 

도깨비를 떨어뜨리고 간 게 틀림없당게."


"으따, 이를 어쩐다냐."


"이럴게 아니라, 당장 굿판을 벌여 

서양 도깨비를 몰아내도록 헙시다."


때문에 섬사람들은

뭍에서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들여

한바탕 굿을 벌여야 했다.


"훠이 훠이~ 물럿가라! 물럿가라!"


그런데 그렇게 한바탕 굿을 벌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의 일치로 

똑딱 소리가 뚝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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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겼던 시계의 태엽이 풀어져 

소리가 멈추었던 것이다.


"아따, 참말로 신통하네."

(최인진, 한국사진사 1631~1945 p.122)


이보다 2년 앞선 1845년,

 

러시아의 군함의 조선 항해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있다.

(백성현·이한우, 파란눈에 비친 하얀 조선 p.123)

 


"오늘은 안개로 인해 

측량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명의 조선인들이 

우리 배를 찾아왔다."


"우리는 조선인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해주고자 했다."



"이때 막 피아노 건반 소리가 들려오자

조선인들은 모두들 기겁을 했다."


"모두들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한 사람은 놀라서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피아노 건반 소리에도 이랬단 말인가?

왠지 웃픈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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