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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글 올챙이적 잊은 어느 개구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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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기 힘으로 사회적 성공을 거둬낸 이들이 강경한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은 흔한 경우이다. 밑에서부터 뚫고 올라간 그들은 그런 '자수성가'를 허용한 체제에 대해 금수저 물고 태어난 '도련님'들보다도 훨씬 깊은 애정과 신뢰를 품게된다. 반면 이들은 과거의 자신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겐 오히려 평균보다도 가혹한 시선을 가지기도 하는데, 이는 본인의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시켜 사회 전체의 모습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을 '노력'으로 극복해냈다는 자부심이 그렇지 못한 이들에 대한 경멸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회구조의 뒤틀림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에까지 '개인의 노력'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다 보면 모든 종류의 '진보적' 주장들에 적의를 품게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노력해서 월급 더 받으면 되지 왜 최저임금을 올리라고 지랄이야! 애들 도시락 싸주면 되지 왜 맛도 없는 급식 처먹이는데 세금을 쓴다는 거야! 지들이 노력 안해서 못사는 걸 왜 맨날 정부탓 기업탓 사회탓이야!

이들이 간과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이 과연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만큼 일반적인 것인지 여부이다. 개인의 사회적 성패는 다양한 내외부 요소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며, 개인적 노력은 수많은 필요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노력을 할 수 있는 의지력조차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고, 어떤 최선의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환경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내가 무사히 개구리가 되었다고해서 다른 모든 올챙이가 개구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한편으로는 나 대신 잡아먹힌 수천마리의 올챙이 덕에 내가 살아남아 개구리가 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 사회가 적자생존의 개구리월드와 다른 점은 가장 작은 몸집의 올챙이들에게도 생존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최소한'의 내포와 외연이 끝없이 향상되고 확장되어 온 궤적이 바로 공동체로서의 인류가 진보해 온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한 사회의 격은 그 사회가 가장 약한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로 결정된다. 인간은 오로지 짐승과 다른만큼만 인간이다.

<올챙이적 잊은 어느 개구리에게>


# 독백

교회 안에 있는 자수성가형 목회자나 성도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종교를 떠나 인간의 보편적 습성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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