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 이정원 목사
  • 207
  • 0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눅18:1-8

 

저는 혼자서 조용히 기도할 때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곤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어떻게 인도해주셨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나의 연약함과 겪었던 어려움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목사로 부르시고 강권적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특히 끊임없이 기도하게 하셨고, 모든 기도에 넘치도록 응답해주셨습니다. 만일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목회를 감당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살아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평생 기도해오면서 기도 응답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적으로 깊이 만나고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홀로 만유를 다스리시며, 무한히 자비로우시고 신실하신 아버지십니다. 기도를 통해 이 진리를 실제로 확인하고 경험했습니다. 어떤 문제나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가장 선하게 해결해주시는 분이심을 수없이 경험하고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해도,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게 인도하시며 해결해주실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갖게 된 것,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 끊임없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은 기도 응답보다 더 큰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힘써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도록 어려움과 문제를 만나게 하시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은 그 무엇보다 복되고 귀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에 힘쓸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1절)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하셨는데, 기도하면서 왜 낙심하게 될까요? 기도해도 기대한 것처럼 바로 응답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기도하다가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고, 또 우리가 기도할 때 즉시 응답해주시지 않으실까요? 여기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시고, 그 어려움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견고하게 성숙해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만유를 홀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세상 모든 일과 우리의 모든 문제는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는 성도는 끝까지 기도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더 귀한 것은 이렇게 기도하는 동안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로우심과 신실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늘 기도하는 성도는 믿음이 성숙해가며 견고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애 가운데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고 역사해주신 복된 경험을 쌓아가게 됩니다. 이런 성도는 인생을 돌아볼 때마다 하나님께 함께 하시며 모든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을 확인하며 감격합니다.


기도하다가 즉시 응답이 오지 않으면 낙심하고 기도를 포기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다가 낙심하고 기도를 포기하는 성도는 기도가 응답되어도 잘 깨닫지 못하고 별로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시련과 역경이 닥쳐올 때마다 두려워하고 낙심합니다.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경험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잘 깨닫지도 못합니다. 이런 성도는 믿음도 잘 자라지 않습니다. 끝까지 기도하는 성도와 기도하다 낙심하여 포기하는 성도는 이렇게 큰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2-5절)


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 과부는 재판장에게 찾아가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과부가 원한을 풀어달라고 한 것은 복수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공의롭게 일을 처리해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재판장의 본분은 공의를 세우며 힘없고 가난한 약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재판장이 과부의 사정을 잘 살펴보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그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자였기 때문에 가난하고 힘없는 과부의 간청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시해버렸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 과부에게 이것은 얼마나 기가 막히고 실망스런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과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재판장을 찾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사람을 무시하는 악한 재판장이었지만, 과부가 끊임없이 찾아와 간청하자 견딜 수 없어서 마침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기로 했습니다. 과부는 아무 힘도 없고 가난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재판장을 찾아가 호소하여 마침내 자신의 원한을 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속적인 과부의 간청은 불의한 재판장을 번거롭게 하여 견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재판장은 과부가 소원을 들어줄 때까지 자신을 번거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5절) ‘괴롭게 한다’는 말은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이 불쌍한 과부가 끊임없이 재판장을 찾아와 간청하는데도 들어주지 않으면, 이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고, 사람들은 이 재판장을 비난하게 될 것입니다. 이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자였으나, 계속되는 과부의 간청에 시달려 번거로웠으며, 사람들에게 비난 받을 것이 두려웠습니다. 결국 이 재판장은 과부의 청원을 들어주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6-7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이 불의한 재판장도 과부의 끈질긴 간청에 결국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물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악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힘없고 가난한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최고의 재판장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자비로우신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밤낮 간절히 기도하는데 어떻게 응답해주시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기도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홀로 다스리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1-12)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75:6-7)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자비로우신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장이 끊임없이 간청하는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면,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자비로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왜 기도 응답이 즉시 주어지지 않는가?


성경에는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이 수없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속히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7-8상)


그런데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가 빨리 응답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심지어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지나고 보면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응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오래 기다려서 응답 받을 때도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즉시 응답해주시지 않으실까요?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응답해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려움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연단을 받게 되며, 더욱 힘써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고, 그 문제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즉시 응답해주시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실 때도 많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불신앙과 죄와 자아를 버리게 되며,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게 됩니다.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밤낮 기도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다듬어지고 성숙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즉시 응답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십니다.


본문에서 ‘속히’라는 단어는 ‘즉시’, 또는 ‘당장’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속히, 적절한 때 응답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 편에서 볼 때는 오래 기다린 후에 응답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 때가 가장 적절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주시며, 가장 좋은 때에 응답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과부와 재판장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끝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8하)


오늘 본문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가가 앞에서부터 일관되게 다루고 있는 주제와 관련해서 이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누가는 지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시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의 세력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내시고, 다윗 시대와 같은 나라를 세우실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는 질문에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도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인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속히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직도 재림하지 않고 계십니다. 왜 주님께서는 당장 재림하지 않으시는 걸까요?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8-9)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구원받은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과 핍박을 당하며, 연약한 육신을 입고 고통 중에 살아갑니다. 이 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던 성도들은 낙심하거나 포기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곧 오실 것이라는 말씀을 잘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속히 오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해이해져서 있다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자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모든 사람이 구원받도록 오래 참아 오신 주님께서 이제 곧 오실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더디다고 생각되어 세상에 빠지거나 믿음이 해이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준비되지 못한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자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항상 기도하며 낙심하지 말고 깨어 있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특권 중의 하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무엇이나 다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낙심하고 기도를 포기할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끝까지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기도 응답이 더딜수록 낙심하지 말고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맛보게 되며, 자신의 죄와 자아를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다듬어지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응답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응답이 더딘 것처럼 보일수록 실망하지 말고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재림이 더딘 것처럼 생각될 때, 성도는 믿음을 지키며 더욱 힘써 기도하면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흔들림 없는 믿음과 기도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삭제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이 게시물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