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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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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20.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이것은 구별이 들어있습니다. 심판은 구별이 들어있어요. 이 구별은 신앙성품이 하나님의 진리본질로 되어진 것과 비진리적이며 세상적이며 육적인 것을 구별입니다. 누가 이렇게 구별하신다는 말이냐? 세례요한 뒤에 오시는 이가 그렇게 하신다는 거지요? 타작마당은 장소적이요 환경적이요 시간적이요. 말하자면 미리 준비를 마련해놓고. ? 두들겨서 그 다음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썩여있는 그것을 삼지창으로 쿡 찔러서 공중에 휙 던지면 공중바람에 알맹이는 밑으로 떨어지나 쭉정이는 그 바람에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키로도 까불리면 알곡은 주인의 품 안으로 들어오지만 까불수록 껍데기는 자꾸 바깥으로 나갑니다.

 

날려가고 그 바람에 불려가면서 하는 자기 소리는 기분이 좋다 그 말이요. 타작이 되니 아프고 타작이 되니 기분 나쁘고. 그렇지요? , 그런데 밖으로 나갈수록 이 교회밖에 없나?’ 나갈수록 자기는 기분이 좋다 그 말이요. 그런 마음들 많이 있었지요? ‘이 교회는 사랑도 없고 왜 이리 딱딱하고 안수도 안 해주고 기도도 안 해주고 예언 방언도 안하고.’ 여기서는 그런 거 하면 안 된다고 그러고 자기는 그 면에 전문이고 그래놓으면 얼마나 속에서 뭐가 우락부락 나올까? 그러니 그게 타작이요. 말로서 하는 타작이요. 쇼크를 주고 자극을 주면서. 그러니까 바깥으로 빙빙 돌게 되고 나가게 되고 시간에 자꾸 빠지게 되고, 그렇게 빠지게 되다 보니 믿기는 믿어야 되겠고 제 마음에 드는 교회를 어떻게 당장 찾을 수가 있나? 빙빙 돌아다니다가 거기 아는 사람 하나 만나면 아, 그만 거기에 쓱 달라붙는 그런 게 있지요.

 

, 처음 간 사람을 반가이 맞이할 줄 모르고 이상하게 자기를 안 쳐다보고 깍듯이 안 대해주면 뭔가 떨떠름하거든요? 그 중에 처녀나 총각이나 영감이나 할멈이나 반갑게 맞아주는 그런 사람 있으면 , 여기 진짜 하나님의 사랑이 있구나하면서 달라붙게 되지요? 내가 모를 줄 알고? 다 알아. ? 내가 그랬거든.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하다. 날려가고 불려가면서 기분이 좋다.’ , 어디로 들어갈 줄도 모르고 그러지요? 본문이 뭐라 그랬어? 불속에 들어갈 줄 모르고.

 

, 이 바람도 상당히 종류가 많아요. 일반세상을 보면 정치바람. 돈 많고 학식 많으면 정치바람에 쉽게 불릴 가능성이 있어요. 그 다음에 교육바람 많이 불지요? 경제바람. 기독교 안에서는 종교적인 종교바람. 그 유행바람은 교회나 세상이나 어디고 다 타고. 유행바람 무서워요. 유행바람 참 무서워요. 유행바람을 누가 잘 탑니까? 어느 부류가 잘 탑니까? 연령 나이로 치면 어느 정도 나이에 이 유행바람 많이 타요? 청춘남녀들 많이 타요.

 

그 유행바람이 제일 먼저 어디로부터 오는 거 같아요? 배움으로 오는 거 같아요 아니면 옷으로 오는 거 같아요? 쉽게 느낄 수가 있어. 남자들 옷 입는 것은 거기서 거기야. 뭐 매 년 봐도 십 년을 봐도 뭐 거기서 거기야. 넥타이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넓어졌다 좁아졌다가 뭐 남자들 옷 카라가 좁아졌다 넓어졌다 단추가 두 개 됐다 세 개 됐다 네 개 됐다 거기서 그거야. 남자속옷은 삼각팬티가 됐다가 사각팬티가 됐다가 거기서 끝나. 왜 여자들 옷은 그렇게 유행을 타는지? 이게 우연한 일이 아니다. 시대바람을 왜 그렇게 잘 타냐? 아가씨들은 더 잘 타.

 

기독교 안에 유행바람 이질바람 귀신바람 왜 그렇게 잘 타는지 몰라. 무슨 은사바람, 이건 알맹이가 아니란 거지요? 무슨 집회바람. 옛날에는 부흥사경회. ‘사경회 부흥회이랬으니까. 요즘은 교회에서 집회하면 현수막이 어떻게 나오지요? 교회에서 집회하면 현수막이 어떻게 나와요? ‘무슨 축제. 부흥축제.’ 하여튼 축제로 나와. 축제. 또 앞으로 뭐가 될는지 몰라. 어쨌든 사람들의 귀에 솔깃하게 하는 뭔가 하는 그런 걸로 들어있어. 전도지도 그렇고. 안 믿는 사람들 눈에 귀에 자극적으로 들어가려면 그들이 쓰는 늘 유행적인 것으로 교회가 따라가더라. 교회가 따라간다는 것은 이게 엄격히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따라 가는구나그렇게 보면 돼요. 간단하잖아요. 그걸 분별을 못하니까 질을 분별을 못하니까 그냥 휘말려.

 

시대적으로 종교적으로 무슨 사업적으로 바람의 종류가 상당히 많습니다. 신문에 가만 보면 음식점 내는 그런 바람도 나오고. 그런데 문제는 세상은 바람이 부는 곳인데 세상은 바람이 부는 곳이고 파도가 치는 곳인데 문제는 자기가 무슨 바람을 잘 탈 것 같은가? 사람마다 달라요. 바람 타는 게 사람마다 달라요. 무슨 바람을 잘 탈 것 같은가? 취직바람 돈바람이냐? 아니면 옷바람 유행바람이냐? 춤바람이냐? 무슨 여행바람이냐? 자기는 아무 바람도 안 탈 것 같습니까? 공부를 해도 학생들 공부를 해도 신앙심을 갖고 공부를 열심히 해요. 옳은 거요. 영어가 좋다고 그러면 다 그 바람 타지 무슨 여행하면 그 쪽을 타지.

 

사람이 사는 곳은 다 있다. 하다못해 손톱 깎아먹고 사는 사람도 있고 발톱 깎아먹고 사는 사람도 있고 머리 지지고 볶고 먹고 사는 사람도 있고 얼굴 마사지하고 먹고 사는 사람도 있고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 그럼 자기는 아무 것도 못하는 거요? 전혀 아무 것도 못하는 거요?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아무 쓸모없게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다. 굼벵이도 구는 재주가 있습니까? 자기는 뭐요? 도대체? 자기는 안 믿는 사람이야. 바람 잘 타. 바람 잘 타는 재주도 있어.

 

근데 우리 궁극교회 교인은 어떤 바람은 타기는 타야 됩니까 안 타야 됩니까? 바람은 타기는 타야 되는데 어떤 바람을 타야 되는 거요? 멋대가리 없이 살 거요? 그래? , 성령바람은 타야지. 진리바람은 타야지. 진리바람이 성령바람이요. 진리 없는 바람은 귀신바람이요. 아무짝도 못 써요.

 

, 우리 모두 인간 자기는 어느 바람에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흔들리는 그거 있어. 없는 건 아니야. OO? 너 피아노학원 해먹으라고 차려주면 어떻게 그 바람 안 타겠냐? 자격증은 금방 따면 되지 뭘. 없으면 없는 대로 없는 사람 가르치지. 허허. 세상은 다 살기 마련이요. 그 자기의 애탐 속에 내가 요렇게 바람성이 있거든? 그럼 어딘지 모르게 그게 쓱 나타나면 그 바람 타기 쉽다. 참 쉬운 거다.

 

세상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자기의 정신 마음 잘못 쓰면 참 고통으로 고통으로 사는 거요. 세상은 항상 아침에 해 떴다가 저녁에 지고 달떴다가 지고 바람 불고 계절에 따라 돼있고. 이 자연이 고통을 주는 게 아니고 자기의 마음 정신에서 그 모양이요. 사람이 문제란 말이요. 제가 항상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문제요. 사람이. 자기가 문제요. 사람 자기 인격과 성품적으로 참 문제요. 그러니 안 당할 고생도 당하고. 자기 수준이 그 모양이니 누가 자기를 알아 주냐? 그러니까 자기는 올라가고 싶은데 그것도 고통이요. 이래저래 고통이요. 지혜가 없어서 속아서 고통 게을러서 고통 열심 없어 고통 배우려고 하지 않아 고통. 그 자기 고통으로 다 다가와요.

 

꺼지지 않는 불이란 어디에 붙는 게 꺼지지 않을까요? 그 미국에 무슨 산맥? 로키산맥인가? 하여튼 그런데 불붙으면 며칠 만에 꺼지고 한 달 만에 꺼지고 그러지 않아요? 아무리 오래 붙어도. 세상엔 불붙어도 시간만 오래 끈다 뿐이지 언젠가 꺼지는 불이야. 근데 어디에 붙는 불은 안 꺼지는 겁니까? 119 소방대도 끌 수가 없는 불? 마음속에 붙는 불 이건 꺼지지 않는 불.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하는 것은 119소방대가 끌 수 없는 불이라. 인간의 정신고통 마음고통 육신의 고통 이게 종합적으로 들어있다.

 

마음의 고통의 불은 정말 참 사람이 죽습니다. 참말로 말라죽어요. 사람이 살 때에 참 그 가슴 아픈 일은 사람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불. 이런 면으로 쇼크가 되고 이런다면 정말 참 불행한 거다. 그리고 사실은요 다른 사람이 아무리 불을 질러놔도요 문제는 어디까지나 자기요. 어디까지나 자기요. 자기가 그 불을 꺼뜨릴 수도 있고 가만 내버려두면 계속 붙을 거고.

 

주님은 구별하십니다. 구별시키십니다.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이거 다 구별이요. 구별 분별의 성질이 들어있어요. 그렇다면 자기의 신앙이 주님이 구별 분별하시기 전에 역사를 들어 일으켜서 하시기 전에 자기의 신앙이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구별 안 해도 되는 겁니까? 자기의 신앙이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구별 안 해도 돼요? 구별할 능력이 있어야지. 내 마음대로 살면 그게 그만 다인 줄 알지. 안 그래요? 확실히 이 성경으로 통해서 보는 신앙 면에서 알곡이 있고 쭉정이가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몰라도 되는 겁니까? 알곡과 쭉정이 있기는 있어요? 그럼 알곡은 어떤 신앙이고 쭉정이는 어떤 신앙인 것 같아요?

 

자기가 예수 믿어도 쭉정이로 돼 있을지라도 사람은 지식이 알곡은 알 수 있잖아요? 어떤 신앙이 알곡이요? 알곡신앙이 알곡을 말을 하든지 아니면 쭉정이 신앙이 알곡을 말하든지 말은 다 백점이니까 어디 얘기해 봐요. 그리고 말씀선포자도 그걸 구별해야 될 것이고. 쭉정이를 선포하고 있는지 알곡을 선포하고 있는지? 그걸 듣고 교인들이 알곡이 될지 쭉정이가 될지 그거 심사해야 되고, 받는 입장에서도 내가 저 말씀을 받으면 알곡이 되겠는지 쭉정이가 되겠는지그걸 심사해야지. 사람이란 이해타산이 있는 법인데. 안 그래요?

 

주님은 사건의 바람을 불어서 역사를 일으키시는데 인간 자기는 아무 구별도 분별도 없고, 그리고 아무 교회나 나가면 되는 거냐 그 말이요? 예수님께서 거짓 종들이 세상에 많이 나왔다그랬거든. 그렇다면 거짓 종이 누군지 알아보려는 마음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냐 그 말이요. 근데 오늘날 교회가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거짓 교회와 참 교회를 구별 못하면서 돌아다니는 교인도 많다. 그러니 어느 귀신이 안 잡아채가겠느냐 그 말이요? 교회 오래 다닌 거 말할 테지. 이제.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를 배어서 교회 나갔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그 소리는 자랑스럽게 할 테지. 쭉정이가 돼가지고. 참 많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구별 분별해야 돼요. 교훈에 구별 분별해야 돼요. ‘저게 진리인지 비진리인지, 세상에 속한 말인지 천국에 속한 말인지, 사람보고 하는 말인지 사업보고 하는 말인지?’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면 어디다가 하소연할 데도 없습니다. 인간 자기 힘으로도 안 되는 겁니다. 인간 자기 힘으로 한다고 하면 더 내려가는 거요. 내려가. 분화구 같은데 가만 보면, 늪 같은데도 그런 거 있잖아요? 영화에도 나오지. 푹 빠지면 가만히 있겠어요? 살려고 허우적 그럴수록 더 빠지고. 그럼 안 그러면 또 안 빠지느냐? 가만있어도 빠지고. 이거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이거? 그냥 영화 그런 장면만 보고 있지 말고 저럴 때 최대한으로 이게 어떻게 해야 내가 좀 더 시간이 연장이 되고 가능하다면 빠져나올 수 있는 건지 가만히 생각을 해봐요. ,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없는 거요? 아니요. 세상에는 허점이 있는 겁니다. 알겠어요? 세상은 절대가 아니에요. 허점이 있어요. 허점이 있는 거요. 내가 가르쳐주면 자기가 실제로 거기 가서 실험할까봐 못 가르쳐 주겠어. 허허.

 

하나님의 특별섭리가 아니면 구원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특별섭리, 아닌 말로 이적기사. 자기에게 어떤 능력이 입혀져서 자기 힘으로나 이적과 기사로 나오든지 하나님의 특별 섭리란 말이요. 이것도. 아니면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섭리로 외부로부터 구원의 섭리가 오든지. 어쨌든 하나님의 특별섭리가 아니면 구원이 안 돼요.

 

속에는 번뇌요 번민이요 고통이요 애탐이요 목마름이요 원망이요 불평이요 짜증이요 미움이요 후회요 발광이요 한탄이요 통곡이요 비통이요 온갖 더럽고 강퍅하고 악한 것이 똘똘 뭉쳐서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한 마디로 아이고 아이고소리밖에 안 나온다. 아이고소리 안에는 온갖 것이 원료 뭉텅이로 들어있는 아이고 소리요. 얼마나 그 미칠 지경일까? 그 우리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정신은요 부모가 비진리로 나가면 진리의 기치를 들던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교를 당하든지. 부모의 손에 맞아죽던지 아니면 부모를 완전히 회개시키든지. 죽어도 정신이 살아서 죽어야지. 안 그런가 그 말이요. 그 성경 봐 봐요.

 

우리가 계속 신명기 28장 읽잖아요. 그 누구보고 하는 소리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없어서 세상이 이 모양이요? 있어도 하나님의 자녀답지 않고 기독교인답지 않으니까 이 모양이요. 왜 그렇게 목숨을 아끼고 왜 그렇게 젊음을 아끼고, 감정을 솟구치게 하는 것은 제 마음대로고 하나님의 뜻을 찾게 하는 어떤 각오 결심 그런 게 왜 없어. 세상 따라가고 돈 따라가면 자기 행복이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어느 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참 부자야. 그럴 수 없는 부자들이요. 근데 인간관계가 이건 지옥이야. 지옥. 행복할까요? 그럼 왜 그런 것을 겪느냐? 안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상대를 골랐기 때문에 그래요. 대학 나왔고 재산 많고 인물 좋고. 그 껍데기 아니요? 그것보다 더 고상한 사람의 마음인데 더 올라가서 이게 신앙 믿음에 이게 정신 사상이 들어 있어가지고 모든 것을 이기고 삭히고 나갈 수 있는 그 능력 그것은 못 보고.

 

제가 만날 야단치는 게 그거예요. 목사님들에게. 자기들은 그런 일을 당해가지고 얼마나 비통하고 고통스럽게 사느냐? 거기서 교훈을 얻어가지고 자녀교훈도 똑바로 가르쳐야지 여전히 자기가 행했던 걸 그대로 갖다가 자녀들에게 하면 이건 하나님의 집에서 용납이 안 되는 정신들이요. 이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값어치가 어디 있고 예수 믿었다는 그 효력이 어디 있어? 호리라도 남김없이 회개치 아니하면 못 나온다. 거기서 못 나온다. 예수 믿어도 거기서 못 나온다.

그 성경에서 많이 보여주지 않아요?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그 아주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들이 나옵니까? 모든 귀걸이 패물 다 땅에 묻어버리고 철두철미하게 회개해서 이 벧엘신앙으로 올라가는 것. 근데 오늘날 교인들은 그런 정신이 없어요. 그건 구약시대 얘기고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의 그 정신은 예수 믿어서 자꾸 자기에게 복을 달라는 거예요. ‘교회 열심히 다니면 뭔가 이루어 주겠지하는 그건 육땡이 신앙이요. 육땡이 신앙. 육땡이 신앙은 하나님의 형벌이 들어있는 거지요.

 

여기 본문이 바로 그런 거 아닙니까? 알곡이 되느냐 쭉정이가 되느냐? 선택적인 삶은 자기가 하겠지만 그러나 알곡은 하나님의 본질인 진리지식과 생명의 교훈과 신적인 도덕이치로 신의 성품적 알곡이 되는 겁니다. 맞는다면 그렇게 살도록 마음을 가져야지. 세상물질적 구복주의 물질적 종교적 사업주의 이방종교적 신비주의 등등 기독교 안에 많이 있지만 그런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신의 성품의 사람으로 알곡이 되지를 않습니다. 명심해야 돼요. 예수정신이 들어가야 참 옳은 사람이 되지.

 

18: 또 기타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여러 가지로 권하여 좋은 소식을 전했다 하는 것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몇 명이든지 만나는 대로 찾아오는 대로 똑같은 천국복음으로 전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자고. 말하자면 사적인 것이 따로 있고 개인감정인 것이 따로 있고 그게 공적이 따로 있고 그게 아니라 사람의 수요와 관계없이 장소와 관계없이 천국복음으로 전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적인 말이나 공적인 말이나 개인적으로 하는 말이나 항상 그 소원 목적은 하나님의 온전에 영원 궁극적인 구원에 결과를 염두에 두면서 얘기가 돼 나가야 돼요. 그 면에서 달라져 버리면 이건 안 된다. 네가 변질성을 가졌구나.

 

무리들 앞에서 백성들 앞에서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는 것과 타작마당의 알곡과 쭉정이 성령과 불세례 등등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했는데 이미 백성들이 다 아는 죄를 짓고도 어느 누가 회개치 않고 있었는가? 어느 누가 회개치 않고 있었는가?

 

19-20: 분봉 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그놈이 누구요? 헤롯이요? 그래, 헤롯이요. 자기에게 양심이 찔리고 그러면 그 옳은 말을 세례요한을 가두듯이 자기가 가둘 수가 있어요. 그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성들. 이 분봉 왕은 역사적으로 로마에서 파견된 본디오 빌라도 총독의 관할 아래 1/4지방을 다스리는 왕입니다. 갈릴리 베뢰아지방을 다스리는 헤롯안디바. 이 헤롯안디바가 세례요한을 죽인 후 예수의 소문을 듣고 죽였던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나?’ 예수의 소문을 듣고. 자기가 세례요한을 죽였거든. 그러니까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나?’ , 상당히 불안 속에 살고 있었어요. 예수 죽인 후 또 보면 빌라도와 친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헤롯안디바가. 참 이 헤롯안디바가 지금 못할 짓을 많이 했지요?

 

구약으로 올라가서 보면 헤롯은 에서의 후손 즉 에돔계가 되는 거지요. 에돔계. 에서는 동생 야곱과 신앙이 정반대였지요. 구약시대로 올라가면 그 형제들이란 말이요. 에서와 야곱은 형제요. 형제인데 이 에서의 믿음은 제 멋대로의 믿음이고 야곱은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신앙의 노선이 정반대요. 정반대요. 하나는 천국 쪽으로 성질을 가졌다면 하나는 땅 쪽으로 가졌어요. 세상 쪽으로. 정반대요. 그래, 세월이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후손으로 후손으로 내려가서 보니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신앙의 노선을 생각을 해야 됩니다. 오늘날 자기의 신앙을 가진 그것이 자녀들에게 내려가서 훗날에 예수님의 반대편에 가서 있을는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있을는지 그걸 한 번 생각을 해 보란 말이요. 분명히 그 역사는 자기 대에서 나타나요. 왜 물질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고, 예수님말씀 깨닫는데 마음 아파라그러고 좀 그런 마음은 없나요? 남처럼 못 살고 뭐 이런 데다가 마음이 아프고 그냥 하나님께서 왜 축복 안 주나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그런 데로 가요. 어디 돈에 한이 맺힌 사람 손 한 번 들어봐요? 돈에 한이 맺힌 사람 있어요? 죽은 돼지가 입에 돈을 잘 물더라고. 가만 보니까.

 

이 헤롯이 이방인들의 권세를 등에 업고 참 약아빠지고 정말 이거 살살거리고 교활하고. 헤롯이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이 헤롯을 두고 하는 말인지 여우도 굴이 있고하는 그게 헤롯이 아닌가? 우리 시각으로 그렇게 보는 거요. 이 헤롯이 이방인들의 권세를 등에 업고 뇌물로 가지고 분봉 왕이 된 것입니다. 그 뇌물은 다 어디서 난 것이겠느냐?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의 피와 땀을 쥐어짠 거란 말이요. 세례요한이 군인들과 세리에게 말한 것을 보면 짐작이 가는구나. 군인들에게 뭐라 그랬어요? 세리들에게 뭐라 그러고? ‘정한 세 외에는 받지 말아라.’ 또 군인들보고는 백성들에게 강포를 해서 빼앗지 말아라.’ 근데 왜 그들이 그런 짓을 했을까? 했기 때문에 그 소리가 나오는 거거든. 그 소리가? 분명히 이것은 헤롯 밑으로 갖다 주는 거다. 이거. 그래서 자기 자리 굳히고 올라가고 하려고. 우리나라에도 가만 보면 그런 사람들 더러 있지요?

 

헤롯이 무슨 악을 행하였느냐? 헤롯이 무슨 악을 행했어요? 동생의 아내를 취해버렸습니까? 자기 제수씨를 뺏어버렸어요? 동생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꾀를 냈겠느냐? 얼마나 많은 꾀를 냈을까? 그리고 자기의 누릴 직위를 위해서 백성의 재물을 착취했을 것으로 보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요한까지 죽였어요. 옳은 말을 하니까.

 

그런데 세례요한은 헤롯이 에돔계인 줄 알면 가만히 내버려둘 일이지 왜 책망을 해서 죽임을 당했을까? 그런 느낌도 들어요. 왜 책망을 한 것 같아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다스리기 때문에 헤롯을 책망을 했다. 백성의 거룩성을 생각하면서 고치라고 회개하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만일 헤롯이 이방나라에 가서 산다면 세례요한이 일부러 찾아가서 뭘 책망을 하겠어요? 개 같은 놈인데. 개는 개같이 살아야 돼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가운데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의로운 지도자가 되라고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사람이 되라고 책망을 한 겁니다.

 

, 책망에는 하나님 앞에 사람을 교정하는 것이 들어있습니다. 책망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잘 성장한다면 영원한 존귀 영광성이 들어있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도 모르고 하나님의 보내신 종 세례요한을 옥에 가둬버렸지. ‘내가 왕인데 네까짓 게 뭐냐? 건방지게 왕을 책망하다니 왕이 네 말 듣겠냐?’ 회개는 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내신 선지자까지 죽였으니 그 악행을 한 헤롯에게는 도끼가 놓였을까요 안 놓였을까요? 그리고 꺼지지 않는 불속에 들어가게 될까요 안 들어가게 될까요?

 

이게 지금 사건적으로 역사적으로 돼 있기 때문에 아이고, 흉측하다. 끔찍하다요렇게 들어가겠지만 자기에게 진리로 오는 교훈으로 오는, 이 교훈이 옳은 교훈인데도 자기 속에 양심이 찔린다고 해서 그 교훈을 자기가 밟아버렸다면 너는 불속에 들어갈 자이다. 너는 고통에 들어가려고 환장을 하는구나. 옳은 교훈이 양심 속에 와서 화살촉처럼 박히면 내가 고쳐야 되겠구나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능성이 있고 은혜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요. 마음에서 다 작용되는 거요. 마음에서.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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