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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하게 하소서

  • 김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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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3:2

제목 : 부흥하게 하소서

찬송 : 43(57), 365(484), 368(486), 360(402)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선지자는 소선지서에서 여덟 번째 '하박국'서를 기록한 선지자입니다.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뜻은껴안다’, ‘포옹하다는 뜻입니다.

하박국서의 기록 시기는 바벨론이 B.C. 612년에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B.C. 605년에 애굽의 느고를 갈그미스에서 격파하여 중근동의 신흥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을 때, 남유다는 종교개혁을 통해 무너진 신앙을 회복하고 또 당대의 최고 선왕(善王)으로까지 꼽히던요시야이 애굽의바로 느고와의 싸움에서 전사(B.C.609)하고, 후계자 여호아하스 왕마저 애굽 왕 바로 느고에 의해 폐위(B.C.609)되고, 여호야김(B.C.609-598)을 왕으로 세우는 등 유다의 국운이 극도로 기울고, 중동의 신흥 강국 바벨론이 앗수르 제국을 멸망시키고, 전통적 강국 애굽마저 격파하는 등 외세에 의해 옹립되는 등 극도로 혼란스러운 요시야 말기에서부터 여호야김 초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지자는 어찌하여 의인이 잘못되고 악인이 득세하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 신앙의 갈등과 고뇌로 씨름하던 선지자는 하나님은 과연 살아 역사하시는가?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1:14)라는 질문을 통해, 세상에서 악인이 잘 되고 의인이 고통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궁극적으로 악인은 심판당하고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는 놀랍고 신비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바울사도나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구원 원리를 가르쳤고(1:17; 3:11, 10:38), 중세 시대마르틴 루터’(M. Luther)는 이 말씀에 의지하여 종교개혁의 기치(旗幟)를 높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합니까? 문제로부터 도피하려하고, 낙심해서 아예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불평하고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이런 방법들은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가져서는 안 되는 아주 위험한 방법입니다. 오히려 이런 방법은 문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하박국 선지자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걱정거리가 생기고, 사업이나 직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하박국이란 이름의 의미와 같이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해결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왕여호야김’(유다의 제18대 왕, B.C.609-598; 왕하23:36, 대하36:5-6) 시대였습니다.

본명이엘리야김이었으나 그를 세운 애굽 왕바로 느고에 의해여호야김으로 개명되었습니다(왕하23:34). 그는 자기 집을 지으며, 품삯을 착복했고(22:13-19), 심판을 외치는 선지자우리야를 살해했고(26:21-23), 예언의 말씀을 경시하여 느다냐의 아들로 여후디를 보내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여 여호야김 왕 앞에서 낭독하게 했는데,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우는 등(36:9-26)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대하36:5, 8).

결국 B.C.605년 유다를 침공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여호야김은 쇠사슬로 결박하여(대하36:6)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때 다니엘(벨드사살)과 그의 세 친구 하나냐(사드락), 미사엘(메삭), 아사랴(아벳느고) 같은 젊은 인재들도 함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1:1-7).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박국은 기울어가는 민족의 운명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 백성을 버리지 말고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과 치유와 부흥을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몰락해 가는 민족의 운명 앞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이러한 진노와 심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3:2)

도피하고 낙심하는 사람들 앞에서 역사는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 역사는 무너지고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포용하고 가슴에 끌어안고 전심을 다하여 기도하는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공동체는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흥이 무엇입니까?

부흥이란 말을 사전에는쇠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한 다시 일어나게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흥이란 다시 일어난다는 뜻으로, 침체되었던 것들이 새롭게 살아나고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며 말씀을 버리고 타락했다가 몰락하고 멸망해 가는 민족의 현실을 바라보며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들풀쉼터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께부흥을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고 믿습니다. 들풀쉼터교회의 든든한 기초를 쌓는데 힘써왔습니다. 아무리 겉모양이 그럴듯해 보여도 기초가 든든하지 못하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초가 든든해야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든든한 기초를 쌓기 위에 노력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믿음의 집을 건축해야합니다.

이 집은 세상 사람들이 짓는 화려하고 멋진 집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복음을 전하는 역사이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행하신 사랑을 이루어가는 것이고, 거짓이 없는 진실한 주의 제자들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흥이고 우리교회가 든든히 세우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우리나라 교회 부흥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190712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평안남도 도사경회가 열렸습니다.

사경회’(査經會, Bible study)는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그리스도교인들이 성경공부를 통해 영적 각성과 생활쇄신을 도모하는 집회를 말합니다. 요즘 같이 목사나 건축을 위한 헌금을 강요하는 부흥회와는 전혀 다른 복음으로 심령이 변화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던, 그래서 부흥회를 기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 냉랭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마지막 날 회개의 포문을 연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 평양 장대현교회 장로였던, 후에 목사님이 되신 길선주 목사님입니다. 길선주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친구의 재산을 정리하면서 당시 100달러에 해당하는 거금을 착복했다는 것을 공중 앞에서 회개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임재를 막는 아간이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장로님의 회개의 말씀을 듣던 교인들도 하나 둘씩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며 일순간에 교회는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저들의 강퍅하던 심령에 드디어 그렇게도 갈망하던 성령의 역사하심이 강력하게 불붙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이 현장을 목격한 선교사들은 초대 교회 마가 다락방의 성령의 역사를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회개는 삽시간에 온 회중의 회개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평가받는평양대부흥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회개의 바람은 조선의 방방곡곡으로 확산됨은 물론이고 중국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회개운동은 동력을 잃었던 조선인에게 새로운 희망의 돛을 다는 계기가 되었고 불투명한 조국의 운명을 신앙 안에서 재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07년 대부흥이 있었던 그 시대만큼 우리 민족사에서 고통스러웠던 때는 없었습니다. 조선의 국권은 일본의 손에 통째로 넘어가 황제는 폐위 당하고, 모든 국민들은 허탈과 절망에 빠졌고, 이 땅에서 한국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성도들은 집회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앉을 자리가 없어 마당에 자리를 깔고 앉아 목사님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저절로 각자의 입에서 회개가 터져 나와 통성기도회가 시작되었고 모두 다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당시는 깊은 바다에서 침몰하는 배처럼 국운이 기울어가던 어둡고도 암울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한반도 전역을 휩쓸며 성도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폈던‘1907년 평양 대 부흥운동의 불길이 한국 교회 안에서 100만 구령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오직 절대능력의 민족 복음화만이 꺼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살릴 수 있고, 백성들의 희망을 꺾지 않을 수 있다고 한국교회는 믿었습니다.

이 무렵 각 교회에서는 새벽기도, 금식기도, 산기도가 도처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일어선 성도들은 이곳저곳, 거리로 마을로 다니며 전도했습니다. 암울한 민족을 살리는 길은, 정치적 힘과 경제적 힘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민족이 주께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한국교회는 역설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이들과 백성들은 민족의 희망이 교회에 있음을 깨닫고 교회로 모였습니다. 이것이 바로‘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그리스도교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마치 하나님이 이 땅에서의 나의 흥망성쇠와 성공이나 실패, 혹은 기쁨이나 슬픔에 큰 관심을 가지시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잘 믿어서 이렇게 복을 받았고 자녀들이 성공했다는 식의 자랑도 나오고 내가 잘 못 믿었기 때문에 이런 손해를 보고 망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해관계를 따라 행복과 불행을 더하시는 분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세상 사람과 별로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자 십자가를 지게하신 것은. 우리의 소망과 소원대로 움직이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사랑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자신의 열심과 노력, 선행과 착함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성에 감흥 하여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시고, 소원대로 자신의 원하는 일을 도와주는 신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정성이라는 것도 사실은 자기를 위한 투자에 불과하고 자기의 가치를 상승시켜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살려는 자기욕심과 탐욕으로 종국에는 자기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아담의 본성을 숨긴 채, 겉으로 선을 가장하며 하나님까지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악한 사람인데도 그 악을 선으로 가장하고, 그것을 선하다고, 진실하다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의인인데, 왜 악인이 의인을 치도록 놔두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1:4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가지는 전제는 의인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당연히 그에 걸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고 착하게 살고 제사 드리고 열심히 봉사하면서 사는데 왜 하나님이 바벨론과 같은 악한 자들에게 넘겨서 고통을 당하게 만드시냐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1:13)고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시고 정의로운 분이신데 어찌 악한 자들이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삼키려고 하는데도 가만히 두고 보시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대답은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2:3)하시고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의미는 그리스도인 된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게 된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살 것이다 는 의미가 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 바벨론은 악한 자들이고, 그들은 버림을 당할 것이지만, 그러나 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여, 모두가 의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의 사람만 구원함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크고 괴롭지만,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은 자신의 거짓과 욕심으로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의 영광과 자랑으로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함과 죄악 된 모든 것을 회개하고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붙들고 믿음으로 사는 의로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때,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은 사라지고 주님 주시는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누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부흥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 수가 늘어나고, 교회 건물을 아름답고 웅장하게 건축하고, 세련된 교인들과 훌륭한 찬양대의 찬양이 울려 퍼지며 고상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을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부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흥이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임을 고백하고 오직 예수의 십자가 은혜로 속죄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는다는 믿음으로 자신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민족이 구원함을 받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됐든지 이스라엘 민족이 됐든지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은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죄인들입니다. 지금 교회에 다니는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자기 행복을 위해 예수를 믿고 자신의 삶의 평안과 자녀들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불러 주셨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영광이 아닌 오직 예수만 따르는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선지자가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라는 말은, 현재의 교회들이 말하는 교인 수의 부흥, 물질의 부흥, 건물의 부흥이 아닙니다. 부흥이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으로, 우리의 욕심과 교만과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깨닫고 오직 예수님 가신 길을 우리도 내게 지워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풍전등화와 같은 민족의 운명을 바라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의 노래를 부릅니다.‘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3:17-19)

 

이 땅의 탐욕과 소유와 행복에 사는 자가 아니라,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소유한 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고통과 슬픔과 괴로움을 당해도,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당하는 어려운 상황이나 문제에 굴복하지 않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은 16:33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누구나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환난을 당할 때 담대해야합니다. 환난을 당하나 죽지 않을 것입니다. 환난을 통해서 우리는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아 갈 때,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과 아픔과 문제를 해결함 받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믿음을 지킴으로, 주님 주시는 은혜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포기하지 말고 일어나 힘차게 주의 빛을 비추며, 주님께서 부르실 때 주여 내개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 새해에는 우리 교회와 가정과 우리의 직장과 사업체와 일터위에, 이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부흥하는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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