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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윤학원 <12> ‘합창계의 올림픽’서 기립박수… 뿌듯함으로 벅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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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주회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다만 단원들의 반응이 걱정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단원들이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자연스럽게 무대에 오르기 전 기도도 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의지하며 열정적으로 준비했던 첫 연주회는 성공적이었다.

인천시립합창단은 계속 새로운 곡을 만들었고 1년에 네 차례 정도 연주회를 열며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2009년 미국합창지휘자협회(ACDA) 컨벤션에 참가해 달라는 초청장을 받았다. ACDA는 합창계의 올림픽이다. 최고의 무대이자 특별한 연주회에 초청받은 것이다.

난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 한국적인데 세계화할 수 있는 노래여야 하고 현대적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몇 개 안 되는 원칙이었지만 여기에 부합하는 곡을 작곡해야 하는 우효원 전임 작곡가는 괴로웠을 것이다. 일단 시조는 배제했다. 외국인에게 전달이 어렵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곡가와 회의 중 웃음소리로 음악을 만들어 보자는 다소 엉뚱한 결과에 도달했다. 엉뚱하긴 했지만 마음이 끌렸다. 웃음소리야말로 세계인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고 복잡한 해석도 필요 없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탄생한 곡이 바로 ‘팔소성(八笑聲)’이었다. 웃음이 이렇게 다양한지 우 작곡가가 들고 온 팔소성을 보고 알았다. ‘교소’는 살짝 수줍어하는 웃음이고 ‘치소’는 바보 같은 웃음, ‘염소’는 요염한 웃음이다. 이렇게 여덟 개의 웃음이 곡에 담겼다. 곡은 좋았지만 웃음을 표현해야 하는 단원들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힘들었다. 연습하면서 곡은 점점 풍요로워졌다. 단원들은 1년 동안 조별연습과 일대일 연습을 통해 몸에 익혀갔다. ACDA 참가 전 국내에서 두 차례 실험 무대도 가졌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하다. 국내 무대에서의 실험으로 팔소성은 완벽한 곡으로 탈바꿈했다.

연주회는 2009년 3월 7일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시빅센터 뮤직홀에서 열렸다. 3000석 좌석이 가득 찼다. 무대에 오르기 전 단원 48명과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이때 우리가 가지고 간 음악은 아리랑을 편곡해 만든 ‘메나리’와 미국인들도 어렵다고 손사래 치는 ‘다윗이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팔소성’이었다. 준비한 대로 신나게 불렀다. 연주가 끝나자 모든 관객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폭발적이었다. 객석의 흥분이 고스란히 무대로 전해졌다. 눈물이 흘렀다. 매코이 ACDA 회장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무대로 뛰어올라왔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ACDA 50년 역사상 이렇게 기립박수가 터져 나온 건 처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나와 단원들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줬다. 그동안의 수고를 한꺼번에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튿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나갔더니 ACDA에 참가했던 다른 나라 합창단들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마치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엄지를 들어 보였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자는 요청이 이어졌다. 난 무엇보다 한국 합창이 세계무대를 압도했다는 사실이 벅찼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선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한국 합창,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정리=장창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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