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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이영호 <8> 믿음만은 부자였던 ‘양잠 속장님’ 기억에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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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든 최고 레벨에 도달한 사람을 일명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 항공회사에서는 최우수 고객을 다이아몬드 고객이라고 하고 최우수 영업실적을 올린 판매원을 다이아몬드 사원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인터넷 게임에서도 최고 레벨의 유저를 다이아몬드 등급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신앙공동체에도 ‘다이아몬드 크리스천’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레벨은 인간이 부여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1963년 일이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성도 10명 남짓한 강원도 산골의 교회로 파송됐다. 종탑은 용접할 때 다 쓰고 버린 산소통을 말뚝에 거꾸로 매달아 썼다. 그걸 망치로 때리면 소리가 사방십리를 갔다. 수요예배 시간 30분 전에 예종을 쳤다. 그러면 맞은편 산에서 뽕잎을 따느라 고생한 박옥순 속장님이 뽕잎이 가득한 자루를 머리에 이고 뛰기 시작했다. 속장님은 양잠을 했는데 규모가 영세했다. 저녁식사도 못한 속장님은 뽕잎자루를 교회마당에 내려놓고 예배에 참석했다. 그리고 머리를 찧어가며 졸았다.

어느 날 한 해 동안 기른 양잠농가에 등급을 매기는 날이 왔다. 속장님은 검사를 받으러 가기 전에 좋은 등급을 받게 해달라며 기도를 부탁했다. 난 속장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속장님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전도사님, 제가 수급(首級·가장 우수한 등급)을 받았어요!” 속장님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는 엉거주춤 마당으로 나서는 내 소매를 잡고 농협 공판장으로 데려갔다. 공판장으로 가는 내내 그는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당시 목회자들은 무조건 검은색 넥타이를 맸다. 속장님은 넥타이와 큼지막한 사과를 사서 내게 줬다. 이어 농협창구에서 전표를 돈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침을 탁탁 뱉어가며 돈을 세더니 십일조라며 건넸다.

그런데 아뿔싸. 1년 매출액 전부를 헌금한 것이다. 속장님으로부터 받은 십일조를 점퍼 안쪽에 깊숙이 찔러 넣고 오른손엔 검은색 넥타이를, 왼손엔 사과 봉투를 들었다. 교회로 올라오는 길에 진한 감동과 행복을 느꼈다. 세상에 나처럼 행복하게 목회하는 놈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설교 내내 조는 것밖에 할 줄 몰랐던 속장님이 그렇게 귀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이런 속장 하나만 앉혀 놓고 평생 목회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가 그런 여종이었을까…. 엘리사에게 수넴 여인이 그런 여종이었을까…. 예수님의 발 앞에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그런 여인이었을까….

자신이 수고해 좋은 등급을 받은 게 아니라 전도사님이 기도해줘 그리된 것이라 믿는 절대적인 확신, 그만하면 됐다는데도 굳이 사과 한 알이라도 더 넣으려던 순수하고 착한 마음, 전도사가 보는 앞에서 봉투를 열고 하나, 둘, 셋 십일조를 세면서도 하나도 떨림이 없던 그 신념에 찬 손가락, 전표를 흔들며 전도사님 나와 보라고 외치던 그 기쁨 가득한 목소리….

44년 목회여정 중에 만난 성도들 가운데 박 속장님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더없이 가난했던 시절, 인분지게를 지고 밭농사를 하고 산에서 뽕잎을 따는 육신의 수고를 다하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던 그분께 ‘다이아몬드 크리스천’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싶다.

정리=김상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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