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자족하는 행복 / 빌 4:10~13

  • 잡초 잡초
  • 2037
  • 0

첨부 1



제  목 : 자족하는 행복
성경본문 : 빌립보서 4장 10~13절
설    교 : 고신일 목사 (기둥교회)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빌립보서 4장 10~13절) 
  <목회기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6월을 사는 복을 허락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세상에 살던 우리들, 추한 모습 그대로 왔습니다.
감히 구하옵기는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고 깨끗하게 하여 주시며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전 세계인의 축구잔치인 월드컵이 이 땅에서 개막되었습니다.
세계인이 하나 되고 우리가 사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며
복음을 전하는 기회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예배드리는 우리들 예수님 안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세상에서는 말씀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기둥교회에 출석하는 청년, 학생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을 함께 보는 영안을 주시옵소서.
빛과 소금 된 삶을 살게 하시되 특별히 저들이 가정에 있음에,
교회에 있음에, 나라에 있음에 소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들에게 치료의 손을 펴 주시옵소서.
교회에 함께 있지 못하고 외국에 있는 이들,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분단된 나라의 군인으로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는 기둥교회 젊은이들
저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믿음을 잘 간직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부족한 종의 입의 문을 지키시고
성령으로 역사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6월이 복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잠언 16장 18절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축구를 제일 잘 하는 나라가 프랑스입니다. 그런데 세계 최고라고 하던 프랑스가 서아프리카의 인구 1000만명 정도 되는 작은 나라 "세네갈"에 졌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우습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우리들은 힘들고 어렵고 약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하십니다. "우습게 보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고 여러분 자신에게 "우습게 보지 마세요."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옆의 분들에게 "6월달이 복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특별히 나이 드신 분들은 제 말에 좀 더 공감하실 것입니다. 예전에 얼마나 잘 입고, 잘 먹고, 큰 집에 사셨습니까? 요즘에 어떻게 사시나요?  여름이 되면 특별히 요즘 날씨에 입을 옷이 없다고, 입을 옷이 마땅치 않으니 옷 사달라고 하는 분들은 잘 들으세요. 정말 입을 옷이 없으십니까? 얼마나 맛있게 잘 드십니까?  '반찬이 짜네, 싱겁네, 음식이 맛있네, 맛없네'라고 하는 사람들은 배가 불러서 투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에 어떻게 사십니까?
      - 어떤 옷 입고 싶으세요?
      - 어떤 음식 드시고 싶으세요?
      - 어떤 집에, 몇 평 짜리에 살고 싶으세요?
      - 얼마나 더 가지면 만족할까요?
  "더"에 대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  [99 가진 사람이  1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100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사시며 무엇을 갖고 싶고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본문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은 서울의 유명한 어떤 목사님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 크게 왜곡되어 알려진 말씀입니다. 그래서 수지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은 이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은 [한국에서 순교 당한 구절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이동원, 청중을 깨우는 강해 설교 70 page)
 
성경을 해석할 때(읽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문맥(글의 맥락)을 따라 이해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편지를 받았을 때 전체 내용을 읽고 뜻을 파악해야 합니다. [한 문장] 또는 [한 부분]을 가지고 판단하거나 해석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증명사진, 여권, 운전면허증에서도 얼굴에서 코나, 눈만 따로 사진 찍어 증명합니까. 얼굴 전체가 나오는 사진이라야 그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해석할 때도 문맥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자족함이란
 
사실, 빌립보서 4장 13절은
본래의 진정한 의미와는 상관없이 일부 목회자에 의해 남용되어 왔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문장은
[못할 것이 없다]는 적극적 사고방식의 근원이 되어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3절 전(前)에는 12절이 있고, 
12절 전(前)에는 11절이, 11절 전(前)에는 10절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11~12절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고 말하면서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배부를 때에는 배부르다는 사실 때문에…
방탕하거나, 나태해지거나, 교만해지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배고플 때에는 배고프다는 이유 때문에… 
비굴하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주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은
자족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삶,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승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문맥을 따라 볼 때 이 말씀은
"비록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잘 되고 편안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부족하지만 내게 힘 주시는 그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 <자족>은 당시 스토아(Stoa) 철학의 개념으로는
자기 의지의 힘으로, 환경을 극복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말로 외부인이나 사물들, 사건들에 구애받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뜻입니다.
 
●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스토아 철학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절대자 하나님께 의존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둥교회에 기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금식기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 들으셔야 합니다. 삼일 동안 금식기도 하기로 결심했다면 기도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루 지나고, 이틀, 삼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겨우 하루 지나고 나서 "언제 끝나나, 어휴 배고파. 빨리 지났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은 차라리 먹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하다 보니 날짜가 지나갔어야지, 기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면서 그 정한 동안 버티고 견디는 것은 스토아 철학자의 생각과 같은 자족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순경(順境)과 역경(逆境), 평안(平安)과 환란(患亂), 부(富)함과 빈(貧)함, 귀(貴)함과 천(賤)함… 등 모든 환경에서 거뜬히 감당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이 계시고 그 분과의 관계가 확실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며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죽일 수 있는 권세가 있었고
- 가말리엘의 후예로서 지적인 높은 수준에 있었고
-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당시의 특별한 신분이었으며
- 장막 짓는 기술을 가진 능력있는 생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된 바울은
- 감옥에 갇혀서 에바브로 디도편에 위문품(우리 식으로 영치금 또는 영치물)을 
받아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빌4:18).
- 겨울옷 한 벌 없는 형편이라 디모데에게
"입던 겉옷(외투)을 갖다 달라"고 한 초라한 꼴이 되었습니다(딤후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감옥에 있고, 서글픈 신세에 있으면서도…
감사하는 자, 자족하는 자였습니다.
감옥 속의 바울은 과거의 풍요와 현실의 비천함을 함께 안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탄식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바울 같은 환경이라면
"아니, 내가 예수 믿었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
복음 전하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닥쳐?" 하면서
충분히 탄식하고 절망하고 좌절 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현실과 미래를 함께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감옥에 있었지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을 믿고 감사하며 자족했습니다.
 
복은 누릴 줄 아는 사람의 것입니다.
우리 기둥교회 성도들 가운데도 복(福)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처음 만났을 때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분들이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좋은 집에 살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졌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 더 감사하고, 더 봉사하고, 더 신앙생활 잘 하고
기도생활 잘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더 잘 살게 되고, 더 넉넉해졌는데 오히려 하나님과 더 멀어집니다.
받은 복을 누리기 위해서 주일 지키지 않고 예배를 소홀히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옛날로 되돌려 놓으면 어떡하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잠언 30장
• 8절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30:8)
• 9절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9)
 
잠언 기자는 '배고파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형편이십니까?
지금 불평하고, 한숨쉬며, 탄식하고 사십니까? 
혹시 그 원인이 자족을 모르기 때문이거나…
욕심이 잉태하여 낳은 죄의 결과는 아닌지요? 
지금 형편과 사정에서는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지…!
여러분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승리를 기원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우리 속에 거하시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살며
승리하는 삶이 되도록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있느냐 입니다.
- 하나님이 큰 것을 주시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졌는지…? 
- 현실에 감사하며 자족하는 사람인지…?
- 지금의 일에 충성하며…지금의 조건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럼 없이 살며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며 사는지?
우리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먼저 감사하며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베풀기 위해 애쓰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는 모두 '넉넉한 재물', '많은 돈'을 좋아합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재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7-8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잇으면 족한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데도 불평이 많고 원망하며 삽니다.
 
성경은 돈 자체를 죄악시하지는 않습니다.
(신8:18. 신28:1~6, 시 112:2~3, 잠8:21)
다만 돈이 죄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딤전6:10).
사람들이 지상에서 누리는 부귀(副貴)는 분명히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가난한 것을 미덕으로 여기거나
돈 많은 사람들을 죄악시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을 주지 않고
낼 것을 내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면' 죄가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벌은 것이라면 많이 벌어, 많이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베풀며 사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이 많건 적건 간에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면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요즘 빈번히 일어나는 사건 가운데 하나가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쓰고
갚을 길이 없어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을 일삼는 것입니다.
신용카드는 카드 사용자가
신용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인지,
경제적인 여유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서 그 사람에게 돈을 먼저 쓰고
나중에 갚으라고 주는 카드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소득수준이나 땀흘려 돈을 버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
마구 돈을 쓰고 그 돈을 갚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분명히 죄입니다.
 
왜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의 범주보다 더 쓰고 더 욕심을 내는 지 아십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는 욕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지금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올 때 돈을 들고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모두 벌거벗고 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시편 49편 17절에 보면 "저가 죽으매 가져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때에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며
또한 지고 갈 필요도 없습니다.
나이 드신 어른들 가운데 돌아가실 때 입으려고
'수의'를 해 두신 분들이 있습니다.
수의 안 입어도 됩니다. 요즘은 화장(火葬)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 화장해도 천국 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매장을 하는 사람은 잘 썩어야 되니까 수의를 입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장하는 사람은 수의를 안입어도 됩니다.
평상시에 입었던 옷 중에 깨끗한 옷을 입히면 됩니다.
제가 1부 예배 때 "우리 기둥교회 장로님들은 돌아가실 때
수의를 안 입히겠습니다. 성찬 보좌할 때 입는 까운을
입혀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장로님들이
죽음을 이야기해서 기분 나쁜 지 아멘을 하지 않으시더군요.
장로님들은 유언을 하세요. 까운을 입혀 달라고…
저도 이 다음에 '설교할 때 입었던 양복과 까운'을 입고 갈 것입니다.
찬양대원들도 찬양대 까운을 잘 관리하세요.
찬양대 까운 입고 갈 수 있도록 준비하세요.
 
사람들은 자신이 죽어 관 속에 들어갈 때 입을 옷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더 좋은 것에 대한 욕심을 갖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갈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 부모님 말씀 잘 들었더라면…, 그 일만 없었더라면…,
그 때 공부 좀 더 했더라면…,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하고 후회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회복할 수 없는 것에 우리를 집착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을 잘 보세요.
예수님은 언제나 <현재형(I Am)>으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 나는(I am) 생명의 떡이라(6:35) - I am the bread of life.(NIV)
• 나는(I am) 세상의 빛이라(8:12) - I am the light of the world.
• 나는(I am) 선한 목자라(10:11) -  I am the good shepherd.
• 나는(I am) 문이라(10:9)        - I am the gate.
• 나는(I am)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14:6) -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 나는(I am) 참 포도나무라(15:1) - I am the true vine.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지금
-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인지?
- 지금 예수 믿고 멸망치 않고 영생 얻을 것을 믿는지?
-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지?
- 지금의 삶에서 감사하며 자족하고 있는지?
- 지금 형편에서 최선을 다하는지?
그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이것 때문에 안됩니다. 나는 이것만 없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도 핑계입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지독한 근시였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노안(老眼)까지 와서
그는 항상 두개의 안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하나는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돋보기였고
하나는 멀리 있는 물체를 바라볼 때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다중초점 렌즈>가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렌즈 하나가 "난시, 근시, 돋보기" 역할까지 합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안경이 다중초점 렌즈입니다.
(저는 이 안경에 근시/난시 그리고 원시를 해결하는 돋보기까지 넣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젊어 보인다, 총각 같다"고 하면
제 아내가 옆에서 "아니, 돋보기 쓴 청년도 있습니까?"라고 하며 분위기를 깹니다.
그럴 필요가 뭔지…!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에는 그런 렌즈가 없었기 때문에
두 개의 무거운 안경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매우 귀찮게 여겼습니다.
게다가 안경집도 강철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그런데 루즈벨트가 밀워키에서 정치연설을 하고 있을 때
쉬렌크라는 청년이 그를 향해 총을 발사했습니다.
총알은 루스벨트의 가슴에 정확하게 명중했습니다.
그런데도 루즈벨트는 약간의 부상만 입었고
곧바로 정신을 수습한 후 연설을 계속했습니다.
괴한이 쏜 총알은 루즈벨트의 양복 안주머니에 있던
강철 안경집을 맞고 방향이 굴절되었던 것입니다.
평소 그렇게 귀찮게 여기던 안경이 그의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국민일보 <겨자씨> 990922에서 발췌)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힘들어 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조건들이
때로는 우리들을 구해내는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분들은… 여러분의 얼굴을 한번 살펴 보세요.
여러분의 요즘의 삶의 표정이 어떤지 자신을 한번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설교학 시간에 들었던 내용입니다.
어떤 학생이 설교학 교수에게 질문을 했답니다.
"교수님, 천국을 설교할 때는 웃으면서 기쁨으로 해야 되는 줄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옥을 설교할 때는 어떤 표정으로 설교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설교학 교수는
"자네는 걱정할 것이 없네. 자네가 평상시에 하고 다니는 얼굴 표정 그대로
지옥설교를 하면 딱 어울리겠네."라고 답했답니다.
 
여러분의 지금 마음, 지금의 표정,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지요?
여러분 자신과 부부, 일터에, 생활속에… 자족하며 감사하며 사십니까?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라는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번 따라서 하십니다.
"날 구원 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함께 찬양합니다.
 
 
찬양 - ♬ 날 구원하신 주 감사
 
1.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론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2.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 하신 것 감사
  해처럼 높으신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3. 길가의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자족하는 삶을 살며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신령한 은혜와
평강의 복을 누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둥교회 소속한 모든 성도들
이 예배에 참석한 모든 이들
테이프로 인터넷으로 이 예배에 동참한 모든 이들에게까지도
은혜와 평강의 복과 자족하는 감사가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