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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 고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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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본 문 : 고전 4:1-5
제 목 : 김영수 목사 (늘찬양교회)


우리는 지금 한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는 마지막 시점에 와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서 「제직 헌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저와 여러분에게 상당한 도전과 매우 깊은 의미를 던져 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연말이 되어지면 늘 걱정이 되는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새해에 어떤 분은 재직으로 임명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입니다. 성도들이 많고 일한 일군이 많으면 이런 걱정과 염려가 덜할텐데 성도수도 적은데다 십일조도 안하고 주일성수도 제대로 안 하는 제직들 때문에 여간 마음 고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저런 이유를 때문에 제직 명단에서 빼버리면 그마저 교회를 안나오고 다른 교회로 떠날까? 하는 염려와 불안 때문에 잠도 잘 안 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특별히 제직(諸職)들은 자신의 직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맡긴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하나님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가르쳐 성직(聖職)이라고 말합니다. 성직은 목사 직분만이 아니라 교사로부터 시작하여 성가대 집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거룩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성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천국의 사업의 확장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하나님의 성직을 맡은 직분 자들이 큰 긍지와 자랑을 가지고 일할 것에 대하여 권면하고 있습니다. 봉사자에게 있어서 긍지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긍지를 가지고 일할 때에 보람을 얻을 수가 있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긍지에는 두 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개인적인 적성과 그 적성에 따른 일을 은사 적으로 받아드리는 마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맡은 이 일은 내 적성에 꼭 맞는 일이요,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만 주신 소중한 은혜의 선물이라고 여겨질 때에 참다운 긍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존재가치에 대한 긍지를 말합니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지 나는 소중한 존재이다. 이 일을 위해서는 내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저분에게 있어 나는 대단히 소중한 사람이다는 긍지와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다 소중하다.-----이렇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자기 기능과 자기 역활을 소중하게 여길 때에 열심히 생기며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만족이 필요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함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만족이 없는 사람이 누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내 얼굴이 썩어 있으면서 누구를 위로하겠습니까? 내 마음이 울적한데 어떻게 남을 위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먼저 기뻐해야 하고, 내가 먼저 충만해 있어야 하고, 내 안에 자신감과 긍지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 긍지가 넘치는 사람은 역경이 와도 잘 대처합니다. 모든 일에 창의력을 발동합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을 열고 삽니다. 이런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을 존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작은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부정적이 아니라, 긍적적입니다.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긍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라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제직들을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서신의 서두를 시작할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나 사도 바울은"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종'은 노예를 말하며 '사도'는 보냄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노예임을 긍지와 자랑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 이것이 그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1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기다'는 말은 특수한 말로 '그렇게 알라, 그렇게 알아다오, 그렇게 인정하라'는 명령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헬라어로 '휘페레다스'라는 말은 '일군'이란 말인데 그 의미는 '배 밑에서 노를 젓는다'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배는 노를 저어야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커다란 배는 2단,3단까지 노를 저을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벤허의 영화를 보니까? 노예들이 배 밑에서 두 줄로 앉아서 노를 젓는 장면이 나옵니다. 열심히 죽을힘을 다하여 노를 젓는 그 사람들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 때문에 내가 노를 젖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직 선장만이 배의 목적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어라'하면 젓고, '멈추라'하면 멈출 뿐입니다. '왜 젓는 것입니까?,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라고 묻지 않습니다.

물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방향도, 행선지도, 목표도, 목적도, 의미도....전부 선장에게 달려있습니다. 노예는 그저 배 밑에서 열심히 노를 저으며 순종할 뿐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일군입니다. 교회는 배와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 있어서는 키잡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배의 항로를 지시하는 선장이고,사도 바울은 키잡이로써 선정의 명을 받아 일하는 노예와 같은 것입니다. 노(櫓) 젓는 사람이나, 키잡는 사람이나 다 선장이 아니라 그 배의 일군들입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도 노를 젓되 앞에서 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석진 뒤에서 젓는 사람도 있고, 키를 잡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제직들은 이 배의 선장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의 신분을 잊지말고, 종의 자세로 겸손히, 그리고 섬기는 자세로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제직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1절)
본문에 나오는 "비밀을 맡은자"라는 뜻은 원문에 보면 '관리자' '집사' '청지기'라는 뜻이 있습니다. 청지기의 대표적인 인물이 꿈의 사람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사서 보디발 장군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은 요셉의 총명함을 보고 그를 「가정총무」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내 외에는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맡기고 그가 관리하고 다스리도록 임명하였습니다.(창39:4-6)

이렇듯 청지기의 위에는 주인이 있고, 그 밑에는 노예가 있습니다. 그 중간에 있는 존재가 바로 청지기입니다. 타율적 존재인가 하면 자율적 존재입니다. 그에게는 상당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으로 착각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청지기는 주인이 정해놓은 범위 안에서 긍지와 창의성을 가지고 주인에게 순종하는 자율적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와 제직은 교회의 리더와 중간역할로 매우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목사는 교회의 중요한 정책을 의논하고 함께 상의하며 문제를 풀어나갈 뿐만 아니라 중요한 비밀들을 함께 나누는 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사모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적 비밀을 들을 수 있는 영적 귀와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뜻을 쫓아 믿음 안에서 교회를 세우고 서로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세워주며 함께 고난의 멍에를 메고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안일(安逸)과 영달(榮達)과 편안함만을 취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자들은 한 달란트를 숨겼다가 그대로 가지고 온 종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심판을 받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25:
26,30)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몇 달란트 이던간에 달란트는 매우 귀중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너무나도 귀히 여기셔서 맡기신 하늘나라의 거룩한 직분입니다. 더욱이 세상 사람들이 알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하늘나라의 귀한 일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그 영광의 잔치자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은 너무나도 귀하고 아름다운 영광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의 일군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노예다, 나는 그리스도의 청지기이다'라고 자신의 긍지를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이 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에 긍지를 가지며 열심히 봉사하며 헌신하는 삶에 있습니다.

『(예). 이솝 우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새 무리가운데 유달리 큰 참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깃털도 예쁘고, 소리도 크고, 노래도 잘 불렀습니다. 그 참새는 스스로 너무 잘났다는 생각에 다른 참새들을 무시했습니다. 시시해서 같이 놀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참새들 보다 좀더 큰 메추리한테 가서 같이 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메추리는 '웃기지 말라. 너는 메추리가 아니다. 그러니 참새들한테 가서 놀아라'하고 참새를 쫓아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돌아와서 다시 참새들 틈에 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참새들 역시 '우리를 무시하고 갔던 놈을 어떻게 다시 받아주겠느냐'하며 그를 내 쫓아버렸습니다. 결국 그 참새는 평생을 고독하게 살다 죽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고독한 사람이 있습니까?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독한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한번 낮추어보시오. 인구가 얼만데 고독합니까? 천지에 널린 것이 사람입니다.

지혜가 어두워지면 교만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고,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함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망은 불 신앙에서 생깁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벧전5:3절에 보면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비밀을 맡은 자는 충성을 합니다. 세상에서 믿을 만한 사람은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충성이란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성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희생 없이 충성 없고, 충성 없이 희생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여 보았습니까? 내가 먹을 것을 줄이고, 내가 입을 것을 줄이고, 내가 꼭 필요한 것을 쓰지 아니하고 주님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희생제물을 드려보았습니까?

하나님은 희생제물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쓰고 남는 것 가지고 드리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희생이 있는 여기에 헌신이 있고 여기에 충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일군은 꾸준해야 합니다.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전에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뜻을 우선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은 기뻐하시지만 백성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핍박과 비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맡은 일을 중단한다면 사람 때문에 일하고, 사람 때문에 그만두는 불충한 일군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3절에서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충성함에 있어서, 내가 긍지를 가지고 주의 일을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잘한다, 못한다, 겸손하다, 교만하다, 성공했다, 실패했다......무슨 소리를 하든지 내게 다른 사람의 판단은 작은 것이다, 개의치 않는다, 내 긍지가 그것들을 다 포용하고도 남는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갈1:10절에 보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충성하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의 판단과 비난을 너무 의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충성된 종은 사람의 마음에 맞는 종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마음에 맞는 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경건하게 그리고 정결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의롭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 되었다고도 하지말고, 안되었다고도 하지 맙시다. 누구 칭찬 좀 한다고 해서 성공한 것처럼 자만하지 말 것이요, 누가 좀 섭섭히 한다 고해서 또한 섭섭한 말을 들었다고 해서 실패한 것처럼 절망하지도 말 것입니다.

잘 됐는지, 못됐는지는 그리고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는 그 날에 가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에 대해서나, 나에 대해서나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5절에 보면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다만 오늘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 할 것입니다.

이 시간 교부 익나시우스의 기도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영원한 말씀이신 독생자 예수님, 우리에게 참된 관대함과 고결함을 가르쳐주옵소서. 상처입은 일에 구애됨이 없이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휴식을 구하지 않고 일하는 것을 가르쳐주옵소서. 대가를 구하지 않고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옵소서. 우리의 대가를 구하는 마음이 너무 앞서 있기에 그처럼 피곤에 지쳐있는 것입니다. 주님, 대가를 구하는 마음이 없이 희생하는 법을 가르쳐주옵소서----이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직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구할 것은 다만 충성뿐입니다. 그저 주님만을 바라보고 묵묵히 충성, 봉사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고귀한 직분과 내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고, 사도 바울 처럼 높은 긍지를 새롭게 느끼면서, 오늘도 내일도 충성하고 승리하여,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칭찬 받는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억하게하소서...


*흐/르/는/곡/상/심/한/내/마/음/속/에/서/주/님/을/보/네

주여!!


내가 배불러 포만감에 빠져 있을 때, 허기진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따뜻한 옷을 고르고 있을 때, 헐벗고 추워하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방안의 보일러 온도를 높일 때,
남은 연탄 한 장에 울고 있을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가족들과 행복의 외식을 가질 때,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부부의 찻잔 앞에 마주앉아 따뜻한 대화의 장을 열고 있을 때,
갈라진 부부들과 냉전중인 부부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쓰레기통을 뒤지는 빈 민국의 아이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누운 방이 비좁다고 투덜거릴 때,
수해로 집 잃고 컨테이너 box에 거하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더 큰 집을 얻기 위해 힘쓰고 있을 때,
무수한 쪽방과 달동네에 거하는 어려운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자녀들의 산만함에 속상해 하고, 자녀들의 재롱에 함박꽃 피울 때,
무자함에 애통하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부모에 대하여 짐스러워할 때,
조실부모함에 서글퍼하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좋은 신발 신고 싶어 안달할 때, 두발 잃은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피자 종류 선택하느라 시간 보내고 있을 때
빈대떡도 못 먹어.. 물 한 컵에 마음 달래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두툼해진 월급봉투 바라보며 든든해 할 때,
갚을 빚 계산과 밀린 공과금 명세서에 한숨 짖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큰 교회 속에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은 은혜 속에 황홀하고 있을 때,
한 영혼 기다리며 주저앉는 작은 교회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더 많이 누리고 소유하려 할 때,
모든 걸 포기하고 생명조차 위태로운 선교사님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배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
그거라도 실컷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인 결식아동들과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웃을 때, 울고 있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살 빼려고 심각히 고민할 때,
잘먹고 살찌는 것이 소원인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건강이 넘쳐 힘이 뻗칠 때,
푸른 하늘 쳐다보는 것이 꿈이라는 환우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타던 차가 낡고 좁다고 불평하고 있을 때
칼바람 맞으며 아이 등에 업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아침마다 거울 보며 미모에 감탄(착각)하고 있을 때,
아침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이 시대를 아파하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자유로이 거리를 활보할 때, 형무소에 갇힌 수형자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며칠분 사용할 음식을 쇼핑백에 넘치게 담아 나올 때,
라면하나 사기 위해 몇 잎의 동전을 찾느라 서랍을 뒤지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구름같이 몰려오는 예배당으로 달려갈 때,
한 영혼 보내달라고 눈물로 강단을 적시는
이 땅의 개척교회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두 세시간 엎드려 기도할 때,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하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섬기는 교회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을 때
숨죽여 예배드리며 움막교회라도 그리워하는
공산권의 지하교회 교인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나의 가족들과 더불어 야식 먹으며 하루를 감사하고 있을 때,
이 밤도 매맞는 아내들과 아이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너무 지쳐 기도할 수 없을 때, 날 위해 중보하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너무 많은 일로 분주하고 바쁠 때,
갈곳 없고 할 일 없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세상과 환경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을 때,
차라리 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잠을 청하는 이웃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기억나게 하소서!


주여...

이번 겨울에는 주님과 같이
그런 분들을 찾아가게 하소서.
그분들을 위하여 시간 내게 하소서.
기도는 물론 나의 몸을 불태우게 하소서.
주님의 마음이 그곳에 있으니 나도 그곳에 머물게 하소서.

이 해가 지나 기전에...
하나만이라도 실천하게 하소서.
나의 베들레헴과 마굿간을 찾아내게 하소서.

성탄절에 소외된 이웃들과 주님의 심장가지고
함께 하게 하소서.

그곳에...
주님이 함박눈처럼 풍성히 임재하실 줄로 믿습니다.


믿음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것입니다.
자족하는 능력입니다.
결단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를 보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말씀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때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나를 불사르는 것입니다.

믿음은
꽃밭에서 쓰레기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통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믿음은
더 편하고 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포기하고 더 큰 부담을 끌어안고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겨울 속에서도 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는 것입니다.

믿음은
끝에서도 시작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섬길수록 더욱 귀한 주님....

남이 못 보는 것을 보게 하시며
남이 못 듣는 것을 듣게 하시며
남에게 없는 것을 갖게 하시며
남이 안 하는 일을 하게 하시며
남이 안가는 곳을 가게 하옵소서.

너무 주님일과 교회일 에 바쁘다는 합리화로...
낮은 자들과 어려운 지체들을 놓치지 말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에 푹 빠져 사느라...
힘들어 하는 자 소외된 자들을 무시하거나 외면치 말게 하소서.

이 겨울에...
헐벗은 자들을 성령의 불로 덮어 주옵소서.
추운 곳에 거하는 자들을 불기둥으로 품어 주옵소서.
굶주려 허기진 자들을 생명의 떡으로 배부르게 하소서.
그늘진 곳에서 울고 있는 형제들에게
온갖 종류의 까마귀들을 보내사 채워주시고 격려하여 주소서.

주님을 배웠사오니, 이제는 주님처럼 살게 하소서
만가지 은혜를 받았사오니, 만가지 은혜로 베풀게 하소서.
그와 같은 마음과 힘을 날마다 더하소서.
말로만 마음으로만 기도로만 머물지 말게 하소서.
"너희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당부하신
주님의 말씀에 증인되어 살게 하소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이 땅과 세계를 덮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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