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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를 위하여 / 행 3: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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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위하여 (행 3:17-26) 
설교자 : 김광채 목사 (동산교회)
말씀 : 행 3:17-26


  우리는 주일 오후마다 복음성가를 함께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성가집 늘푸른계절 485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축복송이 나오고 있습니다.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담대하게 주를 바라보는 너의 영혼, 너의 영혼
우리 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의 영혼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나님 찬양! 오, 할렐루야!
너는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너의 영혼
우리 볼 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너의 영혼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나님 찬양! 오, 할렐루야!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그런데, 이 축복송은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송 제2절에 인용된 벧전 2:9 말씀대로, 우리 크리스챤들은 분명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가는 길 앞에 "어려움과 아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도 가난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꼭 가난은 아니더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챤들도 건강을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은 아주 건강할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에 질병이나 사고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크리스챤이라고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플 수 있고, 또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교통상해보험 하나 정도는 가입해 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크리스챤들이 가는 길 앞에도 <어려움과 아픔>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아닌 이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 앞은 어떻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 앞에는 <어려움과 아픔>이 없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이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 앞에도 <어려움과 아픔>은 있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이상, 그리고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한 이상, 우리 인생의 가는 길 앞에는 <어려움과 아픔>이 있게 마련입니다.

  러시아의 어떤 문학작가는 우리 인생을 높은 절벽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에 비유를 한 일이 있습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높은 절벽에서 굴러 떨어졌다 합니다. 그 사람은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다가, 우연히 절벽에 자란 나무 가지에 걸렸습니다. 밑은 천길 낭떠러지입니다. 그렇다고 위로 올라갈 수도 없습니다. 만약 나무가지가 부러진다면, 자기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지는 그렇게 튼튼한 나무가지는 아니기 때문에, 조만간 부러질 수 있는 그런 나무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절벽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은 죽음의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 나무가지에 매달려 있었는데, 우연히 자기 옆에 벌집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벌집에는 달디단 꿀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무가지에 매달린 채, 그 벌집에서 꿀을 채취해서, 먹었습니다. 그 벌꿀의 맛은 문자 그대로 꿀맛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려움과 아픔>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이러한 인생에도 <즐거움과 기쁨>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은 일시적입니다. 일시적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또 조금 지나면 <어려움과 아픔>이 찾아오고, 결국에는 인생의 종말, 곧, 죽음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에 과연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사는 날동안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 보자! 이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이러한 여러 가지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우리 크리스챤들은, 우리 인생에 <어려움과 아픔>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인생의 의미는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심을 가르쳐 주신 분, 하나님이 우리 죄 많은 인생들을 사랑해 주셨음을 계시해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은 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에는 첫째, 물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정성입니다. 그리고 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15:13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우리는 원래 예수 님의 친구 될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 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친구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에 나오는 설교에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원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만든 자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사실, 주후 30년 봄 유월절에 유대인들은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 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때 빌라도에게는 예수 님을 살려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예수 님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래도, 유대인들이 예수 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 빌라도는 유대 나라에서 명절 때는 사형수 중 한 명을 사면하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바라바와 예수 님 중 한 명을 사면하려고 하는데, 너희는 누가 사면되기를 원하는가를 물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바라바는 민란의 주모자로서 살인까지 한 사람이었습니다.(막 15:7 / 눅 23:19)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바라바는 살리고, 예수 님은 죽이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 님을 죽인 책임을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유대인들이 구라파 사람들에게 박해 받은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민족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물론, 구라파의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박해한 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마 6:44)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설교에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예수 님을 죽인 것은 알지 못하여 한 것이라고 하면서, 유대인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섭리와 예정이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 가운데 아무것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얼른 볼 때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도, 그 속에는 다 깊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또 다른 말로 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간섭하신다는 것입니다. 마 10:30에 보면, 예수 님께서는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의 머리털은 약 14만 개라고 하였습니다. 그 중 하루에 약 60개 내지 100개가 빠지고, 또 그만한 개수의 머리카락이 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또 다른 측면에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악한 일을 행할 적에도, 그 악한 일을 선한 일에 봉사하도록 만드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유대인들이 예수 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한 것은 분명 악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그 악한 행위를 인류구원이라고 하는 선한 일에 봉사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출애굽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는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좀처럼 놓아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애굽 왕 바로가 마음을 강퍅케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영광은 더 드러났습니다. 결국, 홍해가 육지 같이 갈라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고, 이스라엘 민족은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출애굽에 성공하였습니다. 만약,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순순히 놓아주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는 체험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빌라도 보고, 예수 님을 죽이라고 요구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구속경륜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한 일은 참 잘한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러한 말은 몰염치한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올바른 사람들이 되기 원한다면,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주님께서 유대인들을 믿음으로 초대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바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를 위하여"라고 말했지만, 우리들은 이 말을 "우리를 위하여"라고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pro nobis)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음을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아들 아깝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자신의 언약백성 되도록 초청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절기는 원래 미국의 청교도들이, 자기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 된 것을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추수감사절인데, 왜 추수기인 10월에 지키지 않고, 11월에, 그것도 미국에서는 넷째 주일에 지킵니까? (우리나라는 11월 셋째 주일에 지킵니다.) 그것은, 추수감사절이 추수보다는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으로 이민한 소위 "순례자 조상"들의 청교도 신앙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국 사람들이 아니고, 한국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이유는, 청교도들의 신앙에서 본받을 점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청교도 신앙에서 가장 본받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가장 어려운 상황,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우리와 영으로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때로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우리가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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