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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의 축복 / 렘 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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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 기도의 축복(렘 33:1-3,)
이름: 이한규목사([email protected]
     

< 일생 3만 번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 >

기도 얘기가 나오면 종종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입니다. 그는 일생 동안 3만 번 이상 혹은 5만 번 이상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분들은 그분의 진실성을 의심하며 "자기 PR의 대가이시구나! 기도 응답에 대한 자기 과시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어느 날 조지 뮬러가 영국의 브리스톨 거리를 걷다가 수많은 고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어 고아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호주머니에는 2펜스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2펜스를 가지고 고아원을 시작해서 결국 그는 60년 동안 만 명의 고아들을 돌본 영국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 많은 고아들을 돌볼 수 있었을까요? 60년 동안에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후원금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 강연을 다니며 "제가 고아 돌보는 사역을 합니다!"고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기도에 헌신했습니다. 수많은 고아들을 돌보며 절박한 기도제목이 너무 많았기에 기도제목을 잊어먹지 않도록 기도 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이 생길 때마다 기도 노트에 기도 제목을 기록한 후 끈질기게 기도했고, 기도 제목이 응답되면 응답된 표시를 하거나 감사의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기도 노트에 수많은 기도 제목들이 3000 페이지 이상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그의 기도 노트를 후세 사람들이 면밀하게 검토한 후에 약 3만 번 이상의 기도가 응답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기 스스로 "내가 3만 번 이상 기도가 응답 받았소!"라고 자기를 PR 하고 다닌 것이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그의 기도 노트를 보고 그를 일생 3만 번 이상 응답 받은 위대한 기도자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 기도 노트에는 수많은 사연이 적혀 있었는데 한 곳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고아들에게 아침을 줄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3시에 갑자기 빵 공장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오늘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을 자려고 하면 자꾸 누가 저를 깨우는 것 같습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지금 공장에 나가 빵이나 구우려고 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 목사님에게 빵 좀 갔다 드려도 되겠습니까?" 결국 그날 아침 고아들은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아원에 우유가 떨어졌습니다. 목사님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몇 시간 기도하는데 누군가 목사님 사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가 보니 한 트럭 운전사가 서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 트럭이 고아원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고장나서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우유를 싣고 가던 중이었는데 이러다가 우유가 다 상할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우유를 좀 가져갈 수 있습니까?" 그래서 부족한 우유를 채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기도 노트에는 그런 일들이 무수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60년 동안 하나님은 사심 없는 조지 뮬러의 기도를 한번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도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약 우리도 조지 뮬러와 같은 기도 노트를 가지고 기록한다면 우리의 기도도 무수히 응답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기도하고 나서 우리 자신은 그 기도한 것을 잊어버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잊어버리시지 않고 신비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다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능력과 기도가 주는 축복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 기도한 것 이상으로 주시는 하나님 >

오늘 본문 예레미야 33장 3절을 보십시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가 이 음성을 들었을 때 그는 시위대 뜻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1절). 국가적으로도 그의 나라는 바벨론의 힘에서 벗어날 능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암담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어려울 때 다른 분을 찾지 말고, 다른 길을 찾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시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진실한 기도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새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한 분의 간증입니다. 얼마 전 그분은 지방에 갔다가 차 열쇠를 잃어버렸습니다. 핸드백을 세 번이나 뒤지고, 여관도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면 이 상황도 보시고 계실 거야!"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지요. 제가 열쇠를 찾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나서 그분은 다시 핸드백을 속의 내용물들을 다 쏟아 붓고 쑥 훑어보았습니다. 그때 그분은 휴지 밖으로 삐쭉이 튀어나온 무엇인가를 보았는데 바로 차 열쇠였습니다.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그런 사소한 기도라도 다 듣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 어떤 분이 처한 상황은 차 열쇠를 잃어버린 상황보다 더 심각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중요한 선택과 결단의 문제로 고민하고, 어떤 분은 잘못된 습관으로부터 벗어나는 문제로 고민하고, 또한 어떤 분은 직장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 있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 이상의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것들은 언제나 우리의 소원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3장 20절에서 하나님을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다양한 방법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

그런데 왜 많은 믿는 사람들이 기도를 안 합니까? 또 기도를 해도 왜 중간에 포기합니까?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믿지 못합니까?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도한 대로 척척 이루어진다면 누구나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도 별 수 없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를 안하고 결국 기도의 축복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가 무엇인지를 오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시지만 그 응답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한 그대로 주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예스!(Yes)" 이상의 어떤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심은 우리의 구함보다 훨씬 지혜롭고 다양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까?

1.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노!(No)" 하고 응답하실 때도 있습니다.

언제 "노!" 하고 응답하십니까? 우리가 잘못 구할 때 "노!" 하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이번 노름판에서 따게 해주세요!"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고난이 전혀 없게 해주세요!" 하는 기도도 잘못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고난이 있어도 이길 힘을 주세요!"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출세'하도록 능력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더 '순종'하도록 약함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큰 일'을 하도록 건강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일'을 하도록 병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즐겁게' 살도록 부를 구하지만 하나님은 더 '현명하게' 살도록 가난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떵떵거리며 살도록 많은 것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더 기도하며 살도록 우리에게 아주 적게 주실 때도 있습니다. 나중에 따져보면 우리가 구한 것을 얻지 못해도 우리는 더 큰 것을 얻은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응답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크신 뜻을 생각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기다려라!" 하고 응답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30초 이상 기다리면 참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빨리 처리되고 빨리 결과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기도도 빨리 응답되기를 원합니다. 그처럼 결과를 중시하지만 사실 과정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습니다. 기도가 바로 응답되면 배우는 것이 별로 없지만 기다린 후에 응답되면 그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때로 하나님은 기도 응답뿐만 아니라 그 기도 응답을 주시는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너스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기도 응답을 지체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 타이밍에 대한 열린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기도응답이 지체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완전한 지혜와 능력으로 어느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인지를 잘 아십니다. 그 하나님의 조치를 신뢰하고 여유를 가지고 가장 적절한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모든 것에는 제 철이 있습니다.

3.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좀더 성숙해라!" 하고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응답을 막는 가장 큰 장벽은 대개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하면서 죄는 그대로 두고, 다른 사람들은 변화시켜 달라고 하면서 자신은 변화되려고 하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 응답을 주시기 전에 우리가 좀더 성숙하기를 원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 응답은 종종 우리의 믿음의 성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기를 원하면 먼저 우리 안에 있는 불신과 죄를 떠나야 합니다.

기도에는 바른 기도가 있고 잘못된 기도가 있습니다. 누가 바른 기도를 드리고, 누가 잘못된 기도를 드리는지 사람이 그 차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른 기도를 드릴 때 꼭 한 가지 나타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삶의 변화'입니다. '기도'라는 말의 헬라어 '프로쉬케'는 내 소원을 이뤄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를 조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자연히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기도해도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대개 일방적으로 내 욕심만 이루어달라고 주문(注文)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주문(注文)만 있으면 자칫하면 무속 신앙에서 그들의 방식대로 중얼중얼 대는 주문(呪文)이 될 수 있습니다.

< 소원보다 사명을 앞세우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당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제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 기도가 응답 받기 위해서 제게 성숙해져야 할 부분이 무엇입니까? 응답을 예비하기 위해서 제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처럼 하나님께서 먼저 여러분들을 변화시키고,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결재하기 전에 우리가 더 성숙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 기도 응답을 원하면 이제보다 조금 더 성숙해지십시오. 항상 고민하는 그 죄를 멀리 하십시오. 여러분들의 태도를 바꾸시고, 삶의 패턴을 바꾸시고, 영을 부드럽게 하고, 회개에 재빠르고, 누군가를 용서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축복을 부어주시고(말 3:10), 점차 내 소원보다 내 사명을 더 크게 보는 시야를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기도의 종들이 한결같이 체험한 것들이었습니다.

이사야 6장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고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이사야는 기도를 작정하고 성전에 가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만나자 그는 자기의 소원을 아뢰기도 전에 자기 모습부터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어려움이 남 때문이고, 정치가를 때문이고, 외적 때문이고 자기는 떳떳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의 부족한 모습을 보게 되면서 그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그의 입술을 지지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소원을 아뢸까 하는데 소원을 아뢰기도 전에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사야는 자기 소원을 아뢸 것은 잊어먹고 "하나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내 소원보다 내 사명과 내 할 일을 더 크게 보고 순종의 발걸음을 다짐하는 기도가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일 것입니다.

사실 기도 응답은 종종 우리의 능동적인 순종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는 사람보다 움직이는 사람에게 기도 응답을 허락하시고, 참여하지 않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에게 더 기도 응답을 허락하십시오. 대개 기도 응답은 우리의 참여에의 부르심에 대해 우리가 응답하는 것과 더불어 주어집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면 더 전도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면 말씀 중심적인 삶을 힘써 권하고 먼저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면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치유를 위해 기도한다면 더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실질적으로 내 호주머니를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 응답은 우리의 순종의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항상 내 소원보다 내 사명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그처럼 사명에 몰입되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기도하다가 내 소원을 아뢰지 못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의 소원을 외면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깊은 소원을 나보다 더 잘 알아주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주는 축복 >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소원만 아뢰지 말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많이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을 높이며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렇게 하나님을 높이고, 감사로 기도를 채워야 합니다.

여러분! 감사가 없는 기도는 절대 하지 마십시오. 사실상 우리들은 우리가 받을만한 것 이상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많은 축복을 받고도 감사는 없고 계속 요구만 한다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예배와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차원을 깊게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기도를 '하나님의 깊은 부분과 우리의 깊은 부분이 만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시편 42편 7절을 보면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요구를 주장하고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 계신 것을 알게 되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깊은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도 나누어주시고, 희망도 나누어주시고,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도록 긍정적인 시야도 나누어주시고, 죄와 욕망을 이기는 힘도 주십니다. 그러면 죄는 더 이상 우리에게 매력적인 것이 아니고 그 능력을 상실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욕망까지 하나님께 바쳐졌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방식에 매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오래도록 기억해주시고 축복으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미국에 조지 맥러스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결혼하면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좋아 매일 일정 시간을 기도에 투자했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 항상 그의 두 딸이 예수님을 잘 섬기는 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러다가 점차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손자와 증손자를 위해서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의 두 딸은 자라서 모두 예수님께 헌신하고, 역시 예수님께 헌신한 두 청년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두 딸 부부는 네 명의 손녀와 한 명의 손자를 낳았는데, 네 명의 손녀도 모두 예수님께 헌신했고, 손자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가장 먼저 두 명의 증손자가 생겼는데, 공교롭게도 그 둘은 똑같은 대학에 진학해서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한 증손자는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반면에 다른 증손자는 심리학 공부를 선택했습니다. 심리학을 선택한 증손자는 자신이 신학이 아닌 심리학을 선택한 것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도 들었지만 그는 심리학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 심리학을 선택한 학생이 미국 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우리 나라 극동 방송에도 매일 나오는 유명한 가정 상담 전문가 제임스 돕슨입니다.

만약 조지 맥러스키가 없었다면 제임스 돕슨도 없었을 것입니다. 맥러스키의 기도는 그의 가정에 수십 년 동안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가정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고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자녀를 위해, 손자와 증손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맥러스키의 진실한 기도에 응답하신 것처럼 여러분들의 기도에도 응답하실 것입니다.

기도는 엄청난 영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기도는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축복의 원천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축복을 얻게 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도구입니다. 그 놀라운 축복의 도구를 소홀히 하고 어찌 복된 존재가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이제 더욱 기도를 가까이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예비하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사랑의 교회)

< 요삼일육선교회에서 드리는 말씀 >

저희 요삼일육선교회(요한복음 3장 16절, John316 Mission)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전파와 선교사역을 위해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필요합니다.
특히 한국어 말씀을 영어로 번역해주실 분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봉사하실 수 있는 분들은 이한규 목사님에게 연락 주십시오(017-705-4347).
저희 선교회의 말씀과 선교 사역이 보다 폭넓게 되도록 기도해주시고,
이 사이트의 말씀이 다른 분들에게도 널리 들려지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자발적으로 이 사이트를 다른 사이트에 소개해주시고, 링크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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