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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넉넉히 이기는 믿음 /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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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31-39
넉넉히 이기는 믿음

저는 지난 주 3박 4일간 부산에서 열린 건강한 교회 세미나에 참가하였습니다.
제가 가서 체험한 교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이기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였습니다. 지금 개척 9년차의 교회인데 누날개로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힘있게 성장하는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어떤 외적인 조건을 전혀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교회가 지난 9년간의 삶에서도 승리하였지만 앞으로 교회 모습에 대해서 철저하게 승리를 확신하고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모두가 넉넉히 이기는 믿음의 모습을 보면서 그 교회는 앞으로는 승리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개인적으로 어떤 삶의 상황 앞에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 하는 결정은 어떤 환경과 조건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내 안에 승리의 믿음이 있느냐 패배의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믿음이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패배의 믿음은 패배의 삶을 갖게 합니다. 개인이든 교회이든 우리가 승리의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믿음대로 역사하십니다. 믿음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경험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믿음의 사건들과 믿음의 사람들이 소개됩니다. 특히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승리를 경험한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소개됩니다.거기에 보면 승리를 경험한 믿음의 사람 아벨,에녹,노아,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모세등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그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약점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을 보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거짓말도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런 저런 범죄의 행위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행위로 보면 그들은 분명히 실패할 수 밖에 없엇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역사하여 주신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마치 식물의 뿌리와 같습니다. 식물이 뿌리가 튼튼하면 때가되면 열매를 거둡니다. 그러나 만약 뿌리가 병들면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 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열매들이 맺어질 것입니다.

오늘 소개되는 로마서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승리의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임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을 쓴 바울은 이 승리의 믿음이 있었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바울이 살던 상황에서 세계 역사는 로마에 의해서 주도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보다 더 강한 것이 복음임을 믿었습니다.바울은 비록 지금 로마에 의해 기독교가 핍박을 받고 있고 내적 외적으로 어려운 지경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복음이 승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할 것을 믿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37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품고 갖아야 할 승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31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여기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이라고 합니다.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함께 하시면서 도우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실 때 우리에게 어떤 결과가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도움이 무엇이 있습니까? 먼저 과거의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되 자기 아들 예수님을 아끼지 않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주시면서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허물과 죄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을때 구원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현재와 미래에도 나를 위하시고 나를 도우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속 우리를 반드시 필연적으로 도우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자기 아들 예수님의 생명을 지불하고 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님까지 내어주셨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귀한 우리를 구원하여 놓고 우리를 그냥 이 세상에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기 백성들을 도와주십니다.
여기에 우리를 도우시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도와주십니다.
과연 하나님이 도우시는 모든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먼저 생각하기를 이것은 물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모든 것은 그런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롬8장 28절에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합니다.

여기 모든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우리 백성들에게 허락하십니다. 때로는 모든 것에 해당하는 것이 고난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억울한 사건일수록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결코 불행이 없습니다. 인생에서 마이너스가 따로 없습니다. 어떤 고난도 역경도 불행도 하나님이 배후에서 나를 위하여 주신 것음으로 알고 감사하게 여기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좀 어려움이 오면 지금 나에게 하나님께서 선한 뜻으로 나에게 어려움을 주셨지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주신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하나님이 모든 것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나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지금 속썩히는 자녀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럭하셨습니다. 나에게 물질의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셧습니다. 나에게 질병이 있습니까? 그것이 때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일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 우리가 금방 현실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나보십시오. 여러분 우리의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지난뒤에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 가운데 도우신 것을 깨닫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단번에 가나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고 광야 40년을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행복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복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셧습니다.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다니엘에게 고난을 허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위하여 다니엘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우리가 적용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단지 영적으로만 위하시는 분으로만 제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선순위는 영적으로 도우시지만 세상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필요를 알고 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번에 부산에 갔다오면서 동해안으로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영덕을 지나서 조그마한 포구를 지나는데 갔이 가셨던 목사님이 그 마을에서 일어난 기적을 소개하여 주었습니다.이 것은 2001년 1월 10일 국민일보에 기사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어촌의 교인이 30여명 모이는 21년의 역사 있는 작은 교회의 재정을 맡으면서 어부로 생활하는 44세의 김상태 집사님이 계셨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연세가 많고 교회는 부흥되지 않고 교회건물은 너무 낡아서 수리를 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집사님도 개인적으로 빚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믿음이 좋았다고 합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목사님을 찾아와서 ‘고기가 많이 잡혀 성전수리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나서 12월 24일 어장에 나갔는데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양쪽에 쳐있는 다른 사람의 어망은 텅 비어잇는데 그 집사님 어망에 방어떼가 몰려 있었습니다. 24일 하루동안 2300여마리 싯가 4억원치를 벌었다고 합니다.그리고 나머지 3000마리는 폭풍주의보 때문에 나중에 건져내었다고 합니다.겨울은 방어철이어서 한 마리당 16만 9천원을 받고 팔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총 약 5천마리이니까 싯가로 약 8억원가까이 번것입니다. 그 동네가 생긴 이후로 이런 일이 없엇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문에는 ‘한국에서 일어난 베드로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물론 항상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기적같이 돕지는 않습니다.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면 지금도 나의 삶에 우리 삶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아무도 나를 대적할 수 없는 삶으로 나를 승리하게 하실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일하시고 있습니다.지금도 하나님은 나를 향한 위대한 계획을 준비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어떤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나를 위하시고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시편121편1절 2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로다’ 여러분 이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중보자로 돕고 계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33절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늘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중보자가 되어 도와주십니다.
여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구체적으로 나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믿는 사람 한 사람 한사람을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그런데 주님이 중보자로 우리를 위해 기도할 때 무엇을 기도할 것같습니까?우리를 돕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형편과 연약성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같이 친히 육체를 입고 이땅에서 사셨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지 못하면 배고파하시고 잠을 자지 못하시면 피곤하시고 죄의 유혹을 친히 받으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땅에서 육신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성도들을 도우십니다.
이 시간도 에수님은 자기 피로 구원한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동정하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가 약점 때문에 실패할지라도 우리 불의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우리 죄를 기억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를 송사하고 정죄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보게 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의지하게 합니다. 우리의 기억을 의지하게 합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산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그때 과거앞에 속지 말기를 바랍니다. 아우리 더럽고 실패한 과거일지라도 그 기억은 이제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용서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코 자신을 정죄하지 마십시오.언제 우리가 정죄합니까? 율법으로 가는 자들입니다. 여기 율법은 단지 성경의 율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들의 마음에 율법들이 있습니다.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의 율법이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대로 우리가 하지 못합니다.그때 우리가 좌절하고 실망합니다.
여러분 올해 우리가 정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사신 분들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나를 바라볼때면 절망합니다. 늘 넘어지는 나를 바라보면 소망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런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도하고 도우시고 계십니다.

어떤 영적침체가 오더라도 결국 낙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기도가 잘 되지 않고 마치 어두운 터널 안에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 앞에 있을 수 있습니다.그리고 기도가 안되고 모든 것이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여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때 우리가 명심할 것이 우리 주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면서 나를 위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하게 또 알아야 할 것은 구원받은 주의 백성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송사하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완전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제자훈련을 하면서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구원의 확신”을 점검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았음을 확신합니까”라고 물으면서 서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시간이었습니다.그런데 그중에 한 여자집사님이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목사님 구원을 확신하는 문제가 입술로 시인하고 고백한다고 그것이 참된 증거가 될 수 있습니까. 구원받은 자답게 살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주변에 구원받았다고 입술로는 말하지만 얼마나 삶이 형편없는 사람이 많습니까? ” 하는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의 경우에는 ‘구원받았다 안받았다 하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그분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삶을 아닌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의 근거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고 안받고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절대적인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 주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면 얼마나 바르게 삽니까? 우리가 열매가 있으면 얼마나 더 있습니까? 저는 도톨 키재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바르게 살고 바르게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내 기준에서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공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그 사람의 연약성 부족함을 위해서 우리 주님이 돕고 계심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것처럼 그 사람이 부족하고 연약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녀를 키울 때 다 내 배로 나고 키우지만 이런 자식 저런 자식 있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무자식 상팔자’라고 하는 말을 합니까? 그런데 속썩이는 자식이라고 내자식아닙니까? 그래도 내 자식입니다. 누가 내자식 욕하면 기분이 안좋습니다. 누가 내 자식을 혼내면 기분이 안좋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가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확신해야 할 것이 주님의 자녀들은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반드시 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정에 부모들이 연약한 자녀를 잘 도와주고 후원하여 주면 그 지력이 자라고 체력이 자라면서 성장하는 것거첨 주님께서도 자기 백성들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범사에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가 있더라도 나를 위해 도우시고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인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있는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37절을 보십시오.
39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때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대조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구약에 하나님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할 때 얼마나 무섭게 심판하십니까? 때로 죽이기도 하시고 이방에 포로가 되게도 하십니다. 율법의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중에 율법의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두려운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율법주의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하고 범죄할때마다 벌주십니다. 십일조때어먹으면 벌주시는 것같습니다.과거에 율법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성경읽으라.안읽으면 벌줍니다. 주일 안지키면 책망합니다. 교회당에서 놀고 박수치면 야단쳤습니다.

율법주의 믿음에서 하나님은 벌주시는 분이십니다.그런데 은혜 안에 있는 믿음 생활은 정말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날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끊임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그리고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잘못합니다. 믿어도 범죄합니다. 믿어도 불완전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구도 우리를 송사할 수 없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실망스러울때가 언제입니까? 알면서도 범죄하고 넘어지는 사람들입니다. 또 제자훈련을 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을 많이 봅니다. 변화가 잘 안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 생활한다고 제자훈련한다고 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합니다. 실망스러운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기대합니까?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하고 난 뒤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왜 훈련합니까? 다시 일어서기 위함입니다. 왜 우리가 자꾸 모입니까? 다시 일어서기 위함입니다. 오뚜기같이 일어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여기 사도 바울은 35절에서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냐 위험이냐 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끓을 수 없다고 합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지금 당하고 있는 신자들의 현실의 삶입니다.
여기 환난은 로마의 타작때 쓰이는 타작기구를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엣날에 곡식을 추수하여 타작할 때 도리깨를 사용했습니다. 도리깨로 치면 곡식알들이 전부 털어집니다. 성도들이 마치 도리깨로 맞아 터지듯이 오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여기 ‘곤고’는 정신적인 고통을 의미합니다. 곤고의 상황은 감옥에 혼자 가두어 놓고 꼼짝도 할 수 없게 하는 정신적인 고통을 합니다. 핍박은 노골적인 박해요 기근은 굶주림이요 적신은 헐벗음입니다. 그당시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때문에 직장을 잃고 생업을 포기하면서 많은 고통을 당하엿습니다.당시에 신자들이 믿음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런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인 고난을 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 신앙을 잃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무엇이 그 비결입니까?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8절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끓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확신하십니까?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환경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확신할 때 두려움이 없습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어떤 지경에서도 자신감있게 능력있는 삶을살게 될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넉넉히 이기는 신앙의 확신을 갖고 승리하면서 살아가시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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