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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의 삶 / 요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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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섬김의 삶
본문: 요한복음13:12-17

스코틀랜드 가정의 표어 가운데는 “봉사하기 위하여 구원받았다”(Saved to serve)란 말이 있습니다. 섬김을 모르는 삶은 구원의 감격이 없는 삶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고침 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일어난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섬기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어떤 이는 “인생은 테니스 경기와 같다. 서브(섬김)를 잘 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서브는 경기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테크닉입니다. 서브 하나로 많은 점수를 거둬들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서브를 잘 해야 합니다. 인생은 섬김을 잘 해야 합니다. 잘 섬기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잘 섬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얼마나 서브를 잘 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물은 구름, 눈, 비, 바다와 강, 호수로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주장, 자신의 생각대로가 아니라 담기는 그릇이나 모양에 따라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자세는 자기를 버리고 주님의 섭리, 주님의 뜻에 순응하며 주님 모습을 닮아가겠다는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은 겸손한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며 무엇이든 자기 위 즉 물위로 띄웁니다. 그러나 물이 되지 못하고 얼음이 되었을 때는 전혀 양상이 달라집니다. 딱딱하고 날카로우며 자신보다 더 큰그릇에 담겨야 하고 상처가 나며 분명한 형체를 갖고 있습니다. 교만과 아집의 덩어리인 얼음을 녹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불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요3:5)

1. 섬김의 자세

제1차 세계대전 때 참전하였다가 다리를 다친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도사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학력부족으로 수도사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수도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간청 끝에 수도원의 요리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비록 수도사가 아닌 요리사였지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수도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수도를 하는 동안에 그들을 위하여 주방에서 열심히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요리사가 그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습니다. 수도사가 될 수 없었던 그가 어떻게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모든 이론을 파하고 교만해진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였습니다.(고후10:5)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시장보러 갈 때에 "주님, 좋은 식품을 값싸게 구입하게 하시어 수도사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으며, 설거지를 하면서 "주님, 제가 그릇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내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씻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심지어 불을 지피면서도 "주님이시여, 이처럼 성령의 불이 내 마음속에 타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또 제럴드 무어라는 유명한 피아노 반주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평생 한 번도 독주 무대를 갖지 않고 유명한 성악가들의 반주만 했습니다. 수십 번이 될지 수 백 번이 될지 모르지만 그는 많은 청중들에게 자기 반주가 유명한 성악가들의 노래에 누를 끼치지는 않는지 항상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한때 자신의 피아노 소리로 성악가들의 목소리를 눌러버렸던 적이 있음을 미안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위대한 반주자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이 연주회에서도 그는 여전히 유명한 성악가들의 노래를 돕는 반주자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아닐지 모르지만 위대한 반주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문득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고 했던 세례 요한을 떠올립니다. 또한 친구 다윗을 향해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고 했던 왕자 요나단도 생각납니다.(삼상23:17)

이들은 모두 자신의 명예나 위신을 위해 살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세우기 위해 자신을 낮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을 때 그들이 속한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물론 사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지금 나는 어떤 자세로 일하고 있습니까? 그저 내 만족을 위해서나 내 명예를 위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테레사 수녀를 가까이 하는 사람마다 그분의 순결한 인격에 감동을 받습니다. 특히 시기심이나 질투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전을 주었습니다. 하루는 수녀님과 함께 일을 하던 사람이 한 어린이의 고름을 짜고 잇는 테레사 수녀에게 다가가 질문을 했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높은 자리에서 편안히 사는 사람들을 볼 때 부러운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이런 삶에 만족하십니까?" 질문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섬김의 지혜를 터득한, 섬김의 자부심을 가진 한 여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천국의 백성된 자들에게 '섬기는 자'의 모습은 진정한 위대함의 표준입니다. 우리가 '주의 나라'를 갈망하며 살아간다면 예수께서 겉옷을 벗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처럼, 우리도 허울좋은 자존심, 교만, 명예 등을 벗고 허리를 굽혀 섬김의 삶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졸지에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에 병력이 부족하여 각 지방의 젊은 청년들은 영장을 받은 후 큰 도시로 집결해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갔습니다.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정들을 태운 기차는 주로 밤늦게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워싱턴에도 밤마다 유니온 기차 정거장에는 수백 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나와서 그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시민들 가운데 밤마다, 밤늦게까지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잔을 쟁반에 들고 젊은 장정들에게 봉사를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임시로 마련된 주방에서 친히 코코아를 끓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장정 한 명이 그 노인을 자세히 보니 그는 분명히 대통령이었습니다. "각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은 육체적으로 자유스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밤마다 기차 정거장에 나와 기차로 떠나는 청년들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들고 다니며 봉사했습니다. 대통령이 친히 기차 정거장에 나와서 따라주는 코코아를 마신 청년들의 사기는 대단했습니다.
이처럼 섬기는 일에는 위아래가 없는 법입니다. 성경 말씀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했습니다. 종이 되는 길이 으뜸이 되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1-12)

2. 섬기러 오신 예수님

마태복음 20:28 에서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게 된 까닭은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자신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구하는 것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하시며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되라 하셨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를 통해 섬김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어떻게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죄인을 섬기러 오셨습니다.“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부르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기까지 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고 새 삶을 살도록 섬겨야 하겠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낮고 천한 자 병든 자들을 섬기러 오셨습니다.“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 9:35).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너희도 나처럼 낮은 자들을 찾아서 섬기라고 하시며, 주님의 피로 교회를 세우신 것도 섬기라고 세워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섬김의 직분을 감당하지 않으면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많으나 섬김은 적고 성도는 많으나 섬김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한 자루의 촛불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하여 섬김으로 빛을 발할 수 있고, 한줌의 소금이 음식 속에 들어가 녹아지고 섬길 때만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섬김의 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우리를 죽기까지 섬기셨습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또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면서도 겸손하게 나귀를 타셨고, 하나님께 복종하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겸손을 본받아 서로 낮아지고 복종하여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7),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직장에서 대부분의 책임자는 섬김을 받는 위치에 있고, 직원들은 섬기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의 이러한 보편적인 현실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지도자는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스스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한 비서를 둔 사장이 비서를 섬기기 위해 그 일을 한다면 비서가 할 일을 빼앗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사람을 하나님처럼 섬기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었지만 그들을 선생님으로 모시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천할 때 평화가 정착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섬김의 사랑이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섬김의 사랑이요,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주님처럼 내가 먼저 섬기고 사랑할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셋째, 예수님은 종의 자세로 우리를 섬겨주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들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3. 발과 섬김

예수님은 종의 자세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며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종은 자기의 주장이 없고 주인의 뜻에 따르는 자입니다. 섬기신 주님을 하나님께서 높이신 것처럼 섬기는 성도를 하나님은 귀히 쓰십니다.
발로 섬기는 교회가 주님을 따르는 교회요,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뒤를 따르는 길임을 잊지 맙시다. 섬김이 식어감으로 안타까운 이 시대에 주님처럼 섬김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두 가지 모범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만찬이요. 다른 하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몸에 있는 여러 지체 중에서 무엇보다도 발을 씻기신 것은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발의 말없는 그 섬김과 섬김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에 발을 씻어 줌으로써 복을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발은 인간의 지체 중 가장 낮은 데 있으면서 일생 동안 온 몸을 받들어 줍니다. 발은 온 몸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체들과는 달리 평생토록 자신의 모습을 밖으로 내놓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냄새나는 신발 속에 얼굴을 감추고 있습니다.

생색 한번 낼 줄도 모르고 심지어 무좀이나 습진 그리고 동상 같은 것에 걸려 자신이 썩을 지라도 위를 쳐다보면서 "왜 너희들은 따뜻한 곳에 있고 나는 차가운 곳에 두어 상하게 하느냐"고 불평 한 마디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발입니다. 발은 언제나 궂은 일, 험한 일을 앞장서서 합니다. 다른 지체들은 다 들어가기 싫어할 때 혼자 더러운 것을 서슴지 않고 밟고 들어가면서 다른 지체들에게는 "너희들은 더러움을 묻히지 말고 높은 곳에서 깨끗하게 되라"고 말합니다.

이 발바닥 같은 마음이 곧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발처럼 낮은 곳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다오, 높아져다오" 하시고는 자신은 역사 속에서 짓밟히는 발의 삶을 사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발아 발아, 나는 높은 곳에 있는 눈이나 코나 얼굴이나 어깨나 머리보다 네가 더 소중하단다. 낮은 곳에서 말없이 봉사만 하는 네가 좋구나. 발아 네가 내 마음 알겠지. 내가 사실은 발이 되었단다. 인류의 무거운 짐 나 홀로 지고 모든 사람들을 다 높이고 살리고 위해서 너처럼 낮아졌단다. 나는 밟히지만 내가 밟힘을 통해서 모든 지체가 산단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십자가의 피로 씻으셨던 것입니다. 참다운 섬김은 자기가 죽을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죽이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섬김의 일생이었고 그 마지막 십자가상의 죽음은 섬김의 절정이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10:45).

기독교 역사상 모든 안수는 주로 머리에 이뤄졌습니다. 이는 구약의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안수하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발을 씻기심으로 발에 안수하셨습니다. 이는 목회자의 권위가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에 있음을, 권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김에 있음을 깨우쳐주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섬김의 정신입니다.
체면과 권위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에 물들어 한국교회 목회자들이나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정신인 이 섬김의 정신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 앞에 낮추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참된 권위는 섬김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발바닥 인생을 사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이 발바닥 같이 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살 것을 요청하십니다.

영국의 윌리엄 부스의 구세군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을 때, 세계 도처의 남녀들이 구세군에 입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주교가 되려고 꿈꾸었던 한 남자가 구세군에 입대하기 위해서 대서양을 가로질러 미국에서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무엘 브렝글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스 사령관은 처음에 그의 입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부스는 그에게 “당신은 너무나 오랫동안 보스로 군림해 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브렝글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 다른 훈련병들의 군화를 닦는 일을 시켰습니다. 이에 실망한 브렝글은 “내가 기껏 군화나 닦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왔단 말인가?”라고 중얼거렀습니다. 그때 환상 중에 거칠고 무식한 어부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려고 엎드리고 있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예수님! 그들의 발을 씻기셨군요. 그렇다면 이제 나는 저들의 구두를 닦겠습니다”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후 브렝글은 즐겁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더러운 군화를 닦았으며 청지기의 사명을 깨닫게 됐고 충성스럽게 섬김의 도를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후에 미국 구세군 최초의 감독관이 되었습니다.

4. 섬김의 삶

일본이 낳은 세계적 스승으로 가가와 도요히꼬(1888-1960)를 꼽을 수 있습니다. 메이지 학원과 고배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톤에서 신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여 빈민굴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전도와 사회사업, 농민 운동에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폐결핵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 날을 기다릴 때가 있었습니다. 친지와 교회에서 찾아와 고별 예배를 드리고 갔습니다. 그날 밤 그는 몹시 번민했습니다. 이왕 죽기는 마찬가지인데 죽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남자답게 목숨을 끊는 것이 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밤새도록 몸부림을 치다 다음날 결론을 얻어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몇 가지 살림도구만 수레에 싣고 빈민굴로 찾아갔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에서 결론을 얻은 것입니다.

주님이라면 목숨을 끊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대로 죽는 날을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날 까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고 받들어 주기 위하여 오신 분이었기에 섬길 자를 찾아갔을 것이라는 데서 결론을 얻어 실천하였습니다.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다니면서 청소와 어린이를 돌보는 그의 삶은 70이 넘도록 가장 보람있는 생이었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헨리 누엔 박사가 갑자기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 박약자 수용시설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허드렛일을 하는 데이브레이크 복지원 직원으로 들어가 신학계의 화재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신학자 중 하나이며,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던 학자입니다. 그의 저서 20여권은 모두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그가 높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는 하바드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정신 박약자 시설에 가서 정박아들의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고, 식사를 돕고, 행동 교정지도를 하는 등 구질구질한 일을 하는 고생이 물론이지만, 생계유지도 어려울 정도의 낮은 보수에 만족했습니다. 모두들 "왜 그러느냐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몇 개월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최근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책을 써서 대답을 대신 했습니다. 누엔 박사는 그 책에서 말하기를 "그동안 나는 올라가는 길만 추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천재 신동이라 추앙되고 하바드대학 교수에까지 올라왔습니다. 나의 저서 20여권은 뭇 사람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성공을 향해, 즉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만 추구해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정신 박약아 아담군을 만났을 때, 이런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해서 예수님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예수가 안보였지만, 내리막길에서 복음서에 나타난 진정한 예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누엔 박사처럼 사람은 성공했을 때 남을 섬기는 자리로 낮아질 수 있을 때, 예수님의 참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태양은 당신이 없어도 떠오르고 당신이 없어도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태양이 뜨고 나를 위하여 태양이 지는 것 같은 착각을 가지고 사는 교만한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다. 고대 유대에서는 학교에서 1학년을 '현자'라고 불렀고, 2학년은 '철학자'라고 일컬었으며, 최종학년인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생'이라고 일컬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겸허한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자가 지위가 가장 높으며 또 배우는 학생이 되는데는 몇 년이나 수업을 쌓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것보다도 배우는 것이 낫다고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조금만 배우면 현자가 되어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고 이제는 남을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교만한 마음가짐을 훈계할 때 어린이에게 구약성경의 창세기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천지 창조시 사람은 맨 나중에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고, 하늘과 땅을 갈랐으며 또 물과 뭍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동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아담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보다 참새 쪽이 더 먼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잘난 척 할 것이 조금도 못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른 피조물보다 낫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품성인 사랑과 거룩을 말합니다. 사람이 이것들을 소유하고 먼저 창조된 것들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다스릴 때 만물이 나에게 굴복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된 인간을 섬겼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를 주님이라고 시인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남을 섬김으로써 예수님의 참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기도: 섬김의 도를 친히 우리에게 보여주신 주님, 섬김으로 위대해 지는 진리를 알게 하옵소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주님의 이름만 높이게 하옵소서 그리고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나로 하여금 겸손으로 무장케 하심으로 내가 교만과 아집을 버리게 하시고 인자와 온유로 옷입게 하심으로 나와 함께 살고 나를 만나는 자들이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내가 근면과 인내와 성실이란 무기를 갖춤으로 내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케 하시며 봉사의 마음을 갖게 하심으로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민첩하게 보는 눈을 주시고 그들을 가까이 돕게 하시며 당신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심을 의식함으로 내가 무엇을 하든지 당신께 하듯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렇게 하므로 사람들이 내게서 당신의 거룩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29:23)

/한태완 목사(하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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