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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사람을 입은 자의 삶!(골 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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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을 입은 자의 삶!(골3:5-17)   

 
  올 해는 봄부터 계속되는 비로, 그리고 사상유례 없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큰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는 바람에 정말 농부들이 봄부터 땀흘려 수고해서 가꾼
농작물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그런 안타까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 백성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9월에 접어들어 계속되는 가을의 따뜻한 햇살이 그나마 남은 곡식과 과일들을
잘 영글게 했고, 비록 예년보다는 모든 물가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
리들을 위해 남겨 놓으신 잘 익은 곡식과 과일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하나님께 감
사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언제나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느냐 아니면 언제나 원망하고 불평하며 불행한 삶을 살아가느
냐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할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우산장사를 했고, 작은아들은 짚
신장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할머니에게 언제나 근심이 떠날 날이 없었
습니다. 왜냐하면 날씨가 좋으면 우산 장사를 하는 큰아들에 장사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요, 비가 오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짚신장사를 하는 작은아들의 장
사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만일 이 할머니가 그와 반대가 되는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해 보
십시오. 비가 오는 날이면 큰아들 우산 장사가 잘 되어서 감사하고 날씨가 좋으면
작은아들 짚신장사가 잘 되서 감사하고 그래서 이 할머니는 이래도 감사하고 저
래도 감사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이것이 타락한 우리 인간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은혜 받고 축복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갖는데는 왜
그런지 참으로 인색하기만 합니다. 감사와 고마움을 표현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자신에게 조그마한 어려움이 있어도 왜 그렇게 우리들에게 원망과
불평과 한숨이 풍성한지, 바로 이것이 우리 인생의 어리석음이요, 타락한 죄인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매월 첫 주일에 지키는 이 감사주일에 다시 한번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하
나님께 대한 넘치는 감사가 회복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한마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을 입은 우리들의
삶이 어떤 삶이 되어야 하는지를 증거 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본문 10절의 말씀을 보면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
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고 증거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쉬운 성경"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새 생활 가운데 더욱
새로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그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
입니다. 이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점점 자라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 새사람이 된(새로운 피조물)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영적으로 성숙하고 자라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새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명심해야 할 세 가지 삶의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이는 다시 말씀 드리면 죄악된 삶
의 모습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5절에서 9절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증거 합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죄악된 것은 다 버리십시오. 성적인 죄, 악한 행동, 나쁜
생각, 지나친 욕심 등은 하나님 이외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우상숭배의 죄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런 일을 하는 자들에게 화를 내리실 것입
니다. 여러분들이 예전에는 이런 일들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이런 것들을 몰아 내려고 힘쓰십시오. 분한 생각, 화를 내는 것, 다른 사
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 선하지 못한 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과거의 잘못된 삶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난 새사람이 된 우리는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죄악이 우
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는, 죄에 종노릇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났다고 해서 갑자기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갑자기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런 죄악의 모
습들을 계속해서 벗어버리고 끊임없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그리고 주님의 온전하심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에서 점점 더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새벽 시간에도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났
다는 것은 즉 다시 태어났다는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부모인 우리의 생명을 물려받아 이 세상에 태어난 자녀들이 우리의
모습을 닮아가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
기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의 순종의 모습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땅에 지체를 죽이고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새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
다. 본문 12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증거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그리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십시오. 화를 내기 보다
용서하고, 여러분들에게 해를 입히더라도 용서해 주사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모든 일을 하되, 무엇보다도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모두를 완
전하게 묶어 주는 띠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선택하심으로 받아 예수 그리
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
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너그러운 마음이란 다름 아닌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으로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기꺼이 용납할 수 있는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그런 용서와 사랑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
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증거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어떤 용서를 받았습니까?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무조건적인 용서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로 행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용서하심은,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용서하심
은 일방적인 용서였습니다. 무조건적인 용서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그렇게 서로를 용서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난번에 한번 말씀 드린 전광 목사님이 쓰신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이라는 책을 보면서 저는 링컨 대통령의 모든 삶이 우리들에게 산 교훈이
되지만 그 중에서도 링컨 대통령의 용서와 관용의 삶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릅니다.
  링컨 대통령에게는 젊은 변호사 시절부터 그를 무시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
치 않았던 정적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에드윈 스탠턴이었습
니다. 그는 당시 가장 유명한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 당시 링컨 대통령
은 그에 비하면 아직 애송이 변호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젊은 링컨 변호사가 중요한 사건을 맡게 되어 법정에 나가 보니
마침 스탠턴도 그곳에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링컨과 스탠턴이
함께 그 사건을 맡아 변호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사실을 안 스탠턴이 링컨을 보자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저 따위 시골뜨기 변호사와 어떻게 같이 일을 하라는 겁니까? 이번 일은 너무
나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저런 애송이와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주 불쾌하다는 듯이 문을 꽝 닫고 그 자리에서 나가버리고 말았
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스탠턴은 기회가 있을 때마
다 그렇게 링컨에게 골탕을 먹이고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한번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링컨의 외모와 허름한 옷차림을 조롱하며
그를 모욕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릴라를 만나기 위해 아프리카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
이 주 스프링필드에 가면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세월이 흘러 미국에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링컨은 내각을 구성
하면서 가장 중요한 국방부 장관 자리에 바로 이 스탠턴을 임명했습니다. 그러자
참모들은 이런 링컨의 결정에 모두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스탠
턴은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국가적인 재
난'이라고 하며 링컨을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참모들이 볼 때에 스탠턴은 분명히 '링컨의 원수'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공화당 사람이 아니라 민주당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참모들은 스탠턴을 국방부장관 자리에 임명하는 것을 재고해 달라
고 건의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참모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수백 번 무시한들 어떻습니까? 그는 누구보다도 사명감이 투
철해서 국방부장관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잘 감당할 충
분한 자질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의 난국(남북전쟁)을 훌륭하게 극복할 수 있는
소신과 추진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가 이 난국을 해결해 줄 수 있다면 나는 아
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자 참모들은 더 흥분된 모습으로 링컨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스탠턴은 당신을 수 없이 비난하고 모욕한 당신의 원수가 아닙니까?
그러니 그 원수를 없애버려야지요!"
  그러자 링컨은 빙그레 웃으면서 참모들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원수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없애 버려야지요! 그러나
그것은 '원수를 죽여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으로 녹여 친구로 만들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나의 적
이 아닙니다. 내가 그 사람을 국방부장관 자리에 임명함으로 적이 없어져서 좋고,
그처럼 능력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어서 좋고, 이것이 바로 일석이조가 아니
겠습니까?"
  결국 이렇게 자신을 용납하고 포용해 주는 링컨의 마음을 받아 들여 스탠턴은
링컨 대통령을 도와 국난을 극복하며 많은 일들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감당했
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링컨 대통령이 암살자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을 때에
그 누구보다도 슬퍼하고 통곡하며 링컨 대통령의 시신을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다
고 합니다.
  "여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굴까요? 진정한 승리자가 누굴까요? 총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원수를 죽이고 물리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힘만 있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까지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
랑함으로 그를 친구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누구나 다 인간 관계 속에서 때로는 배신과 이런 저런
일로 아픔과 상처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오히려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대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의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해 주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들을 하나 묶어주는 사랑의 띠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세 모두 찬양하며 주의 사랑을 전하세 우리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
에 널리 알리세."     
  세 번째, 새사람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
니다. 오늘 본문 15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감사하라"는 말씀이 세 번씩
이나 기록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15절에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고, 16절에서는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으며, 17절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새사람으로서의 삶은 곧 감사
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1:21에 보면 우리 인간의 타락한 모습을 증거 하면서 "하나님을 알되 하
나님으로 영화롭게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심령은 절대로 하나님께 감사 드릴 수 없습니다. 로마서
1:20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이 세상이 하
나님의 능력으로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인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나타내사 이 세상에 누구든
지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의 존재를 알 수 없었노라고 핑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엄연하게 존재하시는 하나님, 천지만물과 삼라만상의 오묘한 조
화와 질서를 통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도 아니하고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않는 것이 온
갖 불의와 죄악으로 타락한 우리 인생들의 어리석은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사람을 입은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구
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
게 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1)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의 마음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주님으로 말미암은 평강이 과연 어떤 평강일까요? 주님께서는 친히 이
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
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
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에 주는 평안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의 평안은 잠시 잠깐의 평안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이 주
는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그 조건과 환경이 없어지면 그 평안도 사라져 버리고 마
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여 주심으로 주신 평안입니
다. 그러므로 이 평안은 영원한 생명을 얻음으로 주어진 평안입니다. 천국을 소망
하는 평안입니다. 영원한 하늘의 영광을 바라는 가운데 누리는 평안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옥에 갇히고 수 없는 고난과 핍박을 당해도,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던져
져도 누릴 수 있는 평안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평안은 이 세상에 그 누구가 또
한 그 무엇이 빼앗아갈 수 없는 변치 않는 영원한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할 때에 언제나 우리는 감사함으
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찬양 드리지 않습니까?
  "내 영혼에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
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
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자 그 누구랴 안심일세 / 내 영혼에 평화가 넘쳐 남은
주의 축복을 받음이라 내가 주야로 주님과 함께 있어 내 영혼이 편히 쉬네 /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다 예수를 친구 삼
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 (후렴)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2)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여 언제나 그 영혼 속에 신령한 찬미와 노래
가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근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물
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향하여 때로는 정말 두렵고도 엄한 큰 뇌성과도 같은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불의를 행
할 때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지 결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저주하시거나
우리를 벌하시기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최초 우리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
에게 뭐라고 축복하셨습니까?
  창세기1:28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축복하
셨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
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
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4-27)
  또한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
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
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을 통해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
구하노라."(요한삼서2절)
  영생을 주노라! 평안을 주노라! 내가 형통케 하리라! 내가 너를 존귀케 하리라!
  여러분, 이런 주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해 보십시오. 어떻게 주님께서
주신 이런 놀라운 축복의 말씀으로 서로를 권면하고 세워주지 않겠습니까? 어떻
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시간에도 여러분들을 축복하시며 은혜로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인해 여러분의 영혼 속에 하나님을 향한 넘치는 감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자신이 무
엇을 하든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
는 은혜로 하는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
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자신
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다른 사도들보다도, 그 누구
보다도 더 많이 수고했지만 결코 그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내게 힘이 있어
서가 아니라, 내게 능력이 있어서가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
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대단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내가 했다는 생각이 앞서면, 이것이
내 공로라는 생각이 앞서면, 내가 잘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앞서면 결코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 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고 힘이 있고 재주가 있어서 했다는데 어떻게 그 마음속에서 감
사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성경은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
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그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
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임을 고백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
라는 것입니다.(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은혜의 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이 은혜의 배에 올라타서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나오는
곳이 바로 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와 예배 드리는 모든 성도들은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이 시간에도 주님의 이름을 힘입어 주께서 베푸신 그 은
혜를 따라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리는, 그래서 언제나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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