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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 시 1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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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시149: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성 부러더 로렌즈 수도사는 어느 날 말썽이 많고 다투기를 제일 잘하기로 소문난 수도원 원장으로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그가 문제가 많은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 수도사가 서있는 것을 보고, "노 수도사가 왔구려!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를 닦으시오!" 처음 부임한 수도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전통이 된 모양입니다. 노 수도사는 이 수도원의 문제가 바로 여기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노 수도사는 "네! 그리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곧장 식당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노 수도사는 한 달, 두 달, 석 달, 접시를 닦았습니다. 멸시와 천대와 구박이 대단했습니다.
석 달이 지나서 감독이 순시차 왔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이 쩔쩔 매었습니다. 그런데 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어디 가셨는가?" 수도사들이 대답했습니다. "원장님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깜짝 놀랬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로렌즈 수도사를 3개월 전에 임명했는데!" 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이 아연실색했습니다. 그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 노 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노 수도사의 극도로 낮아진 겸손의 도에 모두가 감동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그 수도원은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귀히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무슨 일이건 성취되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을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장이니라"(잠16:18)하였습니다. 사람이 겸손해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만이 머리를 들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하신 주님을 기억합시다.
19세기의 한 구약 학자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다고 선언 하신 것은 교만이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마음이 가장 칭찬 받는 미덕입니다. 이 겸손은 잠시 또는 이따금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습관으로서, 사람의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덧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마음에 은혜를 부어 주신다." 우리 안에 교만보다 더 집요하게 들러붙는 것은 없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들이요 죽은 자와 방불한데 도대체 무엇에 자만하는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은 언제나 숨어 있습니다. 교만은 공공연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슬그머니 우리의 업적이나 직위, 권력, 외모, 대인관계, 사람들을 다스리려는 성향 등으로 나타납니다.
이 교만은 옛날부터 변함 없는 은혜의 파괴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으로 말미암는 어떤 것에도 복 주시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잠3:34) 하나님께서 그 크신 손으로 우리를 움켜잡으실 때 우리는 비틀거리고 갈등하다가 드디어 은혜를 부여잡고 항복합니다. 하나님 앞에 항복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부분들을 친히 다루고 이루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찾으시던 하나님은 오늘도 겸손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없어서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은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아주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을 받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유명한 아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프랜시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프랜시스 선생님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변화를 받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사역들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그 비결을 알려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성자 프랜시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느 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 땅 위의 모서리 한 구석에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바로 저 사람이다. 나는 저 사람을 통하여 나의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나 프렌시스를 택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하기에, 나약하기에 원하십니다. 열심히 주님을 사모합시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기도를 합시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결코 나약하게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게 활동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사울 왕이 인간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자만하여 그의 영광을 드러내려 하였기에 하나님은 그를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목동에 불과한 다윗을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는 계산이 빨랐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연약하여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왔기에 오순절의 성령세례를 통하여 변화를 받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어떤 하사관이 부하들에게 큰 지렛대를 들어올리는 일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하사관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거만하게 지시만 했습니다.
"자, 모두 밀어! 끌어올려!" 군인들이 힘껏 끌어당겼지만 무거운 지렛대는 거의 원하는 자리까지 다다랐다가는 다시금 미끌어져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다시 한 번 시도하고 막 지렛대가 또 굴러 떨어지려 할 때 사복을 한 어떤 사람이 뛰어들어가 힘을 다해서 밀어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렛대는 제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애를 쓰던 군인들이 진정으로 감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사관을 향해서 돌아섰습니다. "병사들이 이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며 도움을 필요로 할 때왜 당신은 돕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하사관은 자신의 계급장을 가리키며 "난 지휘관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질문을 한 사람은 겉옷을 벗고 자신의 제복을 보여주며 "나는 총사령관 워싱톤이요, 또 일할게 있으면 나를 불러주게나!"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4:6)고 하셨습니다. 겸손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갖춰야 할 덕 가운데 가장 으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실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바로 겸손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세상에서 죽도록 충성하고 수고를 다 하고도 상급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겸손하지 못했던 데에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 앞에서 겸손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것들을 내가 잘해서 얻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또 주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내가 주님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하고 공적을 쌓은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또 사회에서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부요함을 누려도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지 않으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어떻게 사람들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기 눈앞에 항상 붙어있는 눈섭의 수효도 모르면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입고 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는 자는 실로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둘째, 우리는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교만한 마음은 길바닥과 같은 마음입니다. 길바닥과 같은 박토에는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두려움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날마다 듣는 말씀이지만 그렇고 그런 말씀이란 생각으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리는 일은 엄청난 영적 교만입니다. 말씀을 잘 알수록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익지 않은 이삭이 고개를 든다는 법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7:18-19)하였고,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하였습니다.
셋째, 우리는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자신보다 직위가 낮거나 어려운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스코틀랜드가 낳은 위대한 교육가의 한 사람인 죤 케안즈는 참으로 겸허하고 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에든바라 대회에 참석하려고 기차 정거장에 내렸을 때 마중 나온 손님들은 일제히 그를 박수갈채로 맞이하였습니다. 케안즈는 그것이 자기를 향한 것인 줄을 모르고 뒤를 돌아보면서 뒷사람에게 길을 비켜서서 자기도 그 사람에게 열심히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것이 군중에게 더 큰 인기를 일으켜 한층 더 큰 박수와 갈채를 받았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같이해서 그 마음을 소성케 하십니다. 우리가 구약을 읽으면 위대한 인물이 많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인물은 아마 모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세는 겸허하고 온유한 인물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산할 때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나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신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저는 사도 바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겸손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요사이 어떤 사람들은 은혜를 좀 받으면 성자(성자)인 척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깨닫게 되고, 죄를 알게 되어 자연히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해 질수록 큰 은혜를 받습니다. 낮은 골짜기에 이슬이 많이 내립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산꼭대기 높은 곳에는 이슬이 내리지 못합니다. 겸손한 마음에 은혜의 이슬이 내립니다. 벼락도 가장 높은 곳을 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시고 교만한 자의 기도는 물리치십니다. 신앙의 모범이 될만한 사람이 자주 빠지게 되는 시험이 바로 영적 교만입니다. 내 신앙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 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말 잘하는 사람이나 재능 많은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안에서 겸손한 자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택하시고 귀한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예수님을 믿고 축복을 받고 있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무시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교만'입니다. 이 교만 때문에 오늘날 유대인이 세계에 흩어져 살게 되었고,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교만은 선민의식입니다. 자신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들의 의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교만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죄사함의 진리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교만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또한 교만은 한마디로 알지 못하는 무지함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생명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굿간에 오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셨지만 군인도 없고, 돈도 없으셨습니다. 내각도 고기 잡는 어부로 구성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 때도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겸손입니다. 겸손해야 은혜를 받고 주님을 만납니다. 구원의 은혜는 나의 공로가 아니라 겸손하게 주 예수를 영접할 때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은혜를 못 받았지만 오히려 창기나 세리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접하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가 필요하다고 찾는 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나라를 떠나 이방나라로 건너가 이방 땅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와 은혜는 겸손한 자를 찾습니다.
♬ 겸손한 자 찾도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갖고 말씀을 들을 때 은혜가 됩니다. 겸손할 때 봉사할 수 있습니다. 겸손할 때 감사가 나옵니다. 겸손할 때 기쁨이 옵니다. 이사야 29장에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 22장 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십니다. 영광을 주십니다. 생명을 주십니다. 시편22편 26절에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이 영원히 살지어다"고 말씀하십니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르고 언제나 샘솟는 기쁨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겸손이 생명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고생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교만입니다. 교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어떤 개인이든지 기업이든지 권력이든지 교만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를 망치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교만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도 교만한 지도자 하나가 들어와서 온 나라를 망친 것입니다. 천가지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교만하면 은혜가 다 떠납니다. 교만은 모든 축복의 문을 닫습니다. 교만은 좋은 친구도 다 떠나가게 합니다. 겸손해야 친구도 늘 옆에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선배 대통령을 존경할 줄 아는 겸손한 대통령이 나와야 우리나라가 잘 될 수 있습니다. 겸손이 생명이고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조용히 고백하여야 합니다.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주님, 나에게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겸손으로 덧입는 은혜를 주옵소서. 내 안에 숨어 있는 모든 교만들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은혜로써 살아가게 됨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겸손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길이길이 겸손하여 만대에 축복 받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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