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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기쁘시게 섬기자 / 히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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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2:28 /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기쁘시게 섬기자


'경건함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고 종말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늘 인식하는 가운데(29절)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를 나타냅니다(Morris, Lane).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굳게 붙잡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 속에서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며 섬겨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섬기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용납되려면 믿음과 동시에 거룩한 경외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시고, 신약의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아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비교하면서 여전히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같이 두려운 분이시니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욱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향해 가던 중 시내산 아래에 장막을 쳤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심을 알게 하시려고 시내 산에 강림 하셨습니다. 모세는 삼일 전에 그 사실을 알리며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맞을 준비를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산에 함부로 오르는 자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삼일이 되던 아침에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나며, 짙은 구름이 산에 덮이고 나팔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백성들이 두려워 떨며 산기슭에 모여서 산 위를 바라보니 산에 불이 붙고 연기가 자욱하고 크게 진동하였습니다. 백성은 두려워서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고 모세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두려운 마음으로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그대로 백성에게 전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교훈하셨습니다. 그들은 만질만한 것들, 불붙는 산, 흑운, 흑암, 폭풍, 나팔소리, 말하는 소리 등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선포된 율법을 거역하는 자에게 저주와 형벌이 뒤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시온 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포된 은혜의 복음을 거역하는 자는 어떻게 될까요? 더욱 더 중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말씀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히 12:25)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실 때 땅이 진동했는데 이후에 주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는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동치 않는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진동치 않을 새 하늘과 새 땅에 약속받은 자들입니다. 그것을 사모하는 자들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합니다. 당장 나타나는 어떤 현상을 보면서 변덕스럽게 신앙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진동치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은 자로서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잘 해 나가야 합니다.

새 언약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진동치 아니할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심판을 자초하는 배교나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행위를 범하지 말고 오직 은혜를 굳게 붙들고 섬겨야 합니다.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자는 표어 아래 이달은 경외함과 두려움으로 기쁘시게 섬기자 라는 실천 목표입니다.

이 목표대로 제목 삼고 말씀을 상고 하며 은혜를 사모 하고자 합니다.

 
  경건함으로

경건함은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경외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경홀히 가볍게 섬겨서는 안됨을 강조 합니다.(옥스포드 원어성경대전)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없이 나아갔던 자들을 불살라 버리신 적이 있습니다.(레10:1-10)

아론은 암미나답의 딸 엘리세바와 결혼하여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이 되는 특별한 축복을 받았으며 그 후손들만이 대대로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제사장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과 규정에 대해서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아니한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습니다. 본래 향단에 불을 피울 때는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향단에 옮겨서 분향해야 하는데 나답과 아비후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법도대로 분향하지 아니한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의 진노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불에 의하여 삼키운 바 되어 죽었던 것입니다. 이 불은 대제사장 아른이 번제단 위에 드린 제물을 불사른 불과 동일한 불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나답과 아비후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리신 것은 신성 모독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한 제재를 나타내시고자 한 것입니다.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아론의 가문에 대단히 슬픈 일이었으나 다른 제사장들에게는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자 모세는 웃시엘의 아들들인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회막 성소 앞에 있는 두 시체를 옮기라고 명하였습니다. 이렇듯이 죽은 나답과 아비후는 당숙에 의해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아론과 그의 두 아들을 불러 슬픔의 표현을 금지시키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경외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4)고 합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겼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로 예비하였습니다.(히 11:7)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을 나타냈습니다.(창 22:12). 야곱은 사닥다리의 환상과 언약을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창28:16, 17).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생명을 보전 하라고 합니다.(창 42:18)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히브리인 남아를 죽이지 아니하였습니다.(출 1:17, 21)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재앙의 때에 하나님의 노를 돌이켰습니다(민 25:11). 오바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선지자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왕상 18:3, 4) 여호사밧은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의 군대의 침략을 받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여 금식을 선포하였습니다.(대하20:3)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정을 계획하고 바로 행하였습니다.(느 5:15) 하나니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충성하였습니다.(느 7:2)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났다고 합니다.(욥 1:8)  다윗은 경외함으로 경배하며 말씀을 따랐습니다.(시 5:7,시 119:38) 히스기야는 미가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대한 재앙을 예언을 듣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렘 26:19).  요나는 태풍을 만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고백합니다(욘 1:9).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선지자들의 말을 청종하였습니다(학1:12).  고넬료는 경외함으로 구제하였습니다(행 10:2).

하나님을 경외함에는 유익이 따름니다.

  죄를 범치 못하게 됩니다. 범죄치 않게 합니다(출 20:18-20). 악에서 떠나게 합니다(잠 16:6).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합니다(잠 32:39, 40).  구원이 가깝습니다(시 85:9). 불쌍히 여기심을 받습니다(시 103:13)복을 받습니다(신 5:29). 사업의 형통과 가족의 건강을 누립니다.(시 128:1-4) 여호와께서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시 145:19). 장수합니다(잠 10:27).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됩니다(말 3:16).

눈가림 식이 아니라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그리피스 존은 20년이 넘도록 중국에서 지내면서 젊은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경건해지도록 힘쓰라”는 말을 자주 했다합니다. 1877년 상하이에서 열린 선교회의에서 그는 “선교사는 무엇보다도 거룩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선교사들이 거룩한 사람이길 기대합니다. 나는 별로 경건하지 않은 채 큰 영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목회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목회자는 착한 사람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지방 사람들의 언어와 문학을 익힐 뿐만 아니라 경건해지기에 힘써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이것이 바로 이 큰 나라가 우리를 통해 변화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삼위일체시요 거룩하신 분이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거룩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를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시간을 나누십시오. 이처럼 거룩한 교제를 위해 시간을 내어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친히 우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십니다. 끊이지 않는 교제를 경험하십시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거룩한 교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 앤드류 머레이)

경건함으로 섬기는 모두가 됩시다.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겸손과 겸허를 뜻합니다. 구원은 항상 바라고 기대하고 배우고 진지하게 노력하므로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거룩한 뜻을 행하기 위하여 두렵고 떨리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약하다는 것을 알고, 언제나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경건하고도 진지한 노력으로 표현되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요 죽은 믿음입니다. 참 신앙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는 일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신 10:12)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3)라고 합니다.

두려움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폭군 앞에서의 두려움(공포)과, 자비로운 왕 앞에서의 두려움(경외)입니다.

옛날 런던에서 양품점에 몰래 들어가 금품을 빼앗은 후 그 일가를 몰살하고 도망친 남자가 있었습니다. 경찰은 진범이 아닌 자를 체포하여 재판에 걸어 결국 사형시켰습니다. 진범은 미국으로 도망가 20년 간 거기서 여유 있는 생활을 지냈습니다. '이젠 안심이겠지.' 하고 그는 신분을 감추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런던의 일류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있을 때. 호각 소리가 나며 동시에 쿵쿵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났습니다. "여보시오. 저 놈은 도적이니까 붙잡으세요." 경찰관의 외치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의 전신은 벌벌 떨리고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결국 자수하고 말았습니다. 여유롭게 아무 것도 않고 태평하게 보냈던 20년의 생활. 그것은 참으로 불안에 찬 어쩔 수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이유를 모르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현대인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세계의 학자들이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음의 불안 중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의식하든 못하든 죄의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정신안정제로 속이려고 합니다. 50불 치료비를 지불하고 "죄 같은 것 무엇이 대단해요. 모두 짓고 있는 것인데 두려워 말아요."라고 정신병원에서 하는 말을 듣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현실적으로 진실하게 용서받고 정결케 되기 전에는 가는 방향은 지옥입니다.(죄의 두려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로 섬기는 모두가 됩시다.


  기쁘시게

기쁘시게는 기뻐 받으실 만 하게의 뜻입니다.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예물과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삶이 하나님의 기뻐 받으실 만한 것이었던 것처럼 기뻐 받으실 만한 산 제물의 삶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워하며 시내산 아래 서서 떨던 이스라엘과 달리 시온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과 즐거운 교통을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히 12:22)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히 12:23)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 12:24)고 합니다.

아벨의 피는 피의 보수를 호소했습니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4:10)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원수와 화평을 이루게 했습니다.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6-18)고 합니다.

예수의 피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함을 얻은 자들은 총회(교회)의 회원이 됩니다. 그 총회는 시온 산으로 비유되는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천만 천사들,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성도가 거하는 곳은 시온 산입니다. 예수의 피 공로로 구원받았기에 시온 산에서 감격의 찬송을 부르며 즐겁게 하나님을 섬깁니다.

  세상에서도 기쁘시게 섬기는 삶을 삽시다.

헬렌 플린트는 성경대학 교사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생활을 학생들을 섬기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 부부의 집은 학교 근처에 있었고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녀는 자기 집을 찾아오는 모든 학생들을 섬길 준비를 항상 갖추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한번 오게 되면 십여 명씩 몰려드는 적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면 와플(버터 케익의 일종)로 아침 식사를 하러 오곤 했습니다. 그 집을 찾아오는 학생들은 대개가 헬렌의 부엌을 이용했고 썼던 그릇들을 제자리에 두는 학생은 거의 드물었습니다. 헬렌은 언제나 기꺼이 그 남은 그릇들을 치웠습니다. 그녀는 매월 생일 파티를 열고 학생들을 초대했는데 그 학교에서 이 초대를 받지 않은 학생은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거의 매일 누군가는 그 집 부엌을 빌렸고, 그녀의 귀 기울여 주는 사랑에 기댔으며, 그녀의 열린 마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헬렌은 그들의 좌절과 고통뿐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같이 따뜻하게 그리고 경건한 교훈들로 상담해 주곤 했습니다. 종종 피곤함을 느꼈을 것이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떠올릴 때 언제나 환한 미소를 기억하게 됩니다. 헬렌이 해왔던 섬김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그녀가 느끼는 만족과 기쁨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며, 그런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섬김의 기쁨)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구원하는 일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마 18:13)고 합니다.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사무원이 차를 타 가지고 와서 이미 커피를 뽑아 눈 상태에서 무슨 차냐고 물었더니 꿀 차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냥 커피를 마시겠다고 했더니 장 장로님이 계시다가 사무원 아가씨에게 꿀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니 벌이 좋아 하지요 라고 대답하니 벌도 꿀을 좋아 하지만 돼지도 꿀을 좋아 한다고 하자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얼굴들만 쳐다보고 있는데 장 장로님 돼지가 꿀을 얼마나 좋아 하는 지 꿀꿀꿀 하고 다닌다고 하여 한 바탕 웃었습니다.

  돼지가 꿀을 좋아하여 꿀꿀꿀 하는지는 더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분명히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인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이를 위하여 인간을 입으시고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19)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하셨습니다.

수십만 명을 주께로 인도한 19세기 미국의 대 부흥 전도자 무디가 하루한 사람에게 꼭 전도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무에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으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자책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밤중에 거리에 나가 전도대상을 찾는데 한 술주정뱅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다짜고짜로 "예수님을 아시나요?"라고 했습니다. 그 술주정뱅이는 화를 벌컥 내는 것이었습니다. 무디는 쫓겨 오다시피 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3개월이 지나 문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서 문을 열어보니 그 술주정뱅이였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그날 밤 "예수님을 아시나요?" 하는 말을 듣고 화를 냈으나 그 후 그 말이 내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아 예수를 믿기로 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디의 전도-예화뱅크)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새 생명 대 축제에 함께 참여 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 줄 믿습니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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