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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 히 11:39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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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히브리서 11장 39절 - 12장 3절
제 목 :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 11장의 결론적 멧세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지금까지 주욱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을 열거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39, 49절>, 결론적 멧세지를 선포합니다.

<39절>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은 증거를 받았지만 약속이 성취된 것(what had been promised)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구약의 약속은 모두가 다 메시야 언약의 성취,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붙들고 믿음의 삶을 드렸으며 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음의 승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증거, 약속이 성취되는 메시야의 오심을 경험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A.D 시대의 사람들, 우리는 이미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역사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저들보다 우리는 훨씬 더 확실한 믿음의 근거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맨 처음 시작할 때,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셨으니" 했듯이 저들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것을 근거로 믿음의 삶을 드렸지만, 우리에게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근거가 이미 제시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적 사건이 그것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에 대한 사실적 기록, 성경이 그것이며 그리고 믿는 자들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그것입니다.

또 지나간 2000년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한 믿음의 대행진의 역사를 기억한다면, 합리적인 이유들로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하신 하나님을 넉넉히 믿을 확실한 근거가 무수히도 많습니다.

이렇게 분명하고 확실한 근거들이 무수히 널려 있음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사람들이 안믿는 것이 기적처럼 보입니다. 

또 <40절>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오늘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었고 실현시키셨습니다. 더 좋은 것이란, 히브리서 앞에서 주욱 논증했듯이,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천사들의 계시보다도, 제사장들의 제사보다도, 모세의 계명보다도, 구약 제사의 희생보다도 .. 더 분명한 그리스도의 계시, 더 확실한 그리스도의 제사, 더 완성된 그리스도의 계명, 더 온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를 통해서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 그들은 신약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약의 믿음의 사람과 신약의 믿음의 사람이 온전히 한 가족이 되어 축제를 이루는 그 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온전히 실현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날을 그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 여러분, 육상의 트랙에서나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쇼트트랙 계주하는 것을 더 많이 보셨을 테니까, 계주하는 것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처음에 뛰었던 주자들이 최선을 다하여 경주한 다음, 마지막 주자가 뛰는 모습을 다같이 응원하며 지켜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 테이프를 끊었을 때, 앞선 주자들도 함께 기뻐하며 모두다 시상대에 올라와 메달을 하나씩 겁니다.

마지막 주자가 뛰고 있을 때, 앞선 주자들이 열심히 응원하며 기다리는 것은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끊고 골인하여 다함께 기뻐하는 그 순간입니다.

역사에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복음의 경주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마지막 주자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그리고 이름이 구체적으로 열거되지 않았지만, 구약의 쟁쟁한 믿음의 조상들이 마지막 주자인 우리가 마지막 경주를 마치기를 기다리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노아 할아버지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라합도, 사사들도, 다윗도.. 우리를 기다리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더 좋은 언약, 더 분명한 계시, 더 확실한 제사, 더 완성된 계명, 더 온전한 희생을 다 이루심으로 인간의 역사 가운데 확실하게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기를 이들(=구약의 믿음의 사람들)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증거를 받고서 소망으로 바라보았던 메시야 약속, 메시야 예수님이 이 땅에 강림하심으로 그 약속이 확실하게 실현되었습니다.

가루 서말에 한 덩어리 누룩이 처음 들어가듯이, 척박한 땅에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심기워지듯이, 한 알이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희생함으로써 많은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하듯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심은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착하고 좋은 마음밭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믿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서 내주하셔서 권능으로 함께 하시며, 이 신약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의 경주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을 향하여 지금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 완성의 날이 멀지 않았음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던져지는 멧세지가 자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까?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이 약속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증거만으로도 그렇게 세상을 거슬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드려갔다면, 역사를 통해 약속의 실현을 목도한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더욱 힘있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12장1절> "그러므로" - 매듭을 짓는 접속사이지요? 그러므로, 약속의 실현은 못보고 증거만 받았던 사람들도 이렇게 놀라운 인내와 순종과 당당함과 소망.. 믿음의 삶을 살았으므로.. 그러므로 뭐라고 합니까?

"우리에게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지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눈을 들어 보아라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우리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여건과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경주를 했던 양반들이 있었음을 기억해보라. 그들이 우리의 믿음의 경주가 끝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사모하고 있는 마음을 상기해 보라...

마음 속 저 깊이에서 성령께서 솟아오르게 하시는 생명의 능력을, 소망의 용기를 느낄 수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이 믿음의 경주를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귀찮다고 꾸물거리지 않고 재미없다고 옆길로 샐 수가 있겠느냐? 오히려 다시한번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야 하지 않겠느냐?

여러분도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고 싶습니까? 구약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응원하고 주목하여 지켜보고 있는,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드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이 믿음의 경주에 동참하여 함께 달려가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몸된 교회를 이루어 마음과 삶을 함께 살아가며, 정직과 사랑으로 내 삶을 드리며, 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애쓰는 이 삶을 당신도 달려가고 싶지 않습니까?

이 하나님의 나라 소망, 비젼이 우리의 삶을 의미있게 합니다. 우리의 삶을 힘있게 합니다. 빈둥빈둥, 귀차니즘, 울먹울먹, 우왕좌왕, ... 다 극복하고

그러면 어떻게 달려가야 합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중요한 원리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십시오. 마라톤 선수가 귀걸이, 발찌, 금가락지, 금시계, 거기에다가 폼나게 이태리산 쇼올까지 하나 걸치고 달려간다고 해 보십시오. 이런 것 보고 가관이라고 하지요?

왜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좋은 결심을 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맙니까? 중간에 망가지기 때문이지요. 한번 망가지고 나면, 아예 포기하지요? 왜 중간에 망가집니까?

사람들이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내가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하지만, 버리고 포기할 것을 안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 깨끗하게, 아름답게 사는 비결..정리정돈을 잘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버리기를 잘해야 합니다. 너저분한 것, 쓸모없는 것.. 과감히 버리고 다른 사람 주고 ...

믿음의 경주를 잘 달려가는 제일 선결적인 일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는 것입니다.

"무거운 것"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영어로 보면, everything that hinders(가로막는 것이면 무엇이든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하지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삶을 위하여,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는 배설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 단순한 삶이 그를 승리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또 믿음의 경주는 그의 마음과 삶이 어떻게 되든, 교회만 나오면 되는, 종교인들을 더 많이 만드는 그런 경주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그 마음과 삶이 어떻게되든, 교인들 늘리고 목사가 되고, 선교사로 나가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비전은 규모만 넓혀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비전은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십시오. 규모는 넓혀놨는데 죄로 물들어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노아의 때가 그 증거 아닙니까? 아담 이후로 사람들은 계속 생육하고 번성하였지만, 죄로 물든 모습앞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시작하시지 않았습니까?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까? 왜 복음의 멧세지에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회개의 멧세지입니까? 그냥 아무나 와서 영생을 받아라 하지. 하나님의 뜻이 거룩함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생리가 올바름, 의(義)입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의 속성은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누려지는 평강(peace)과 희락(joy)입니다.

그러므로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십시오.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새해 아침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는 결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술 끊으시고, 인터넷 통해서 이상한 사이트 찾아가는 것 끊으시고 오락에 탐닉하는 것 끊으시고.. 아니 당신의 마음안에서 욕망을 부추기는 죄를 벗어 버리십시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는 것, 이것이 믿음의 경주를 힘차게, 신나게 달려가는 첫 번째 원리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신나게, 힘있게 달려가는 두 번째 지침은, "인내로써" 인내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단거리 100m 경주가 아닙니다. 육상경기에 비유하면 철인3종경기 내지는 마라톤 경기입니다. 

철인3종경기에서는 완주하는 사람, 모두가 승리자입니다. 중도 탈락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고 인내하여 달려온 사람 모두가 승리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일은 순간적 능력, 순발력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인내에 의하여 성취됩니다.

유명한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열매맺는 삶의 원리를 뭐라고 일깨워 주었습니까? <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2003년 우리나라 제일의 뉴스가 신용불량자 395만명이라는 뉴스입니다. 빚쟁이들 중에는 평생 빚쟁이로 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왜 평생 빚쟁이로 남는지 아십니까? 한꺼번에 갚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평생 빚쟁이로 남습니다. 노동과 절제를 통해서 조금씩 갚아가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인내의 능력을 압니다. 그리고 이 인내의 소중한 경험을 체득한 사람들은 다시 빚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믿음의 삶에서 조급하지 마십시오. 하루하루 정성스럽게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어갈 때, 하나님의 은혜의 임재를 경험하며 마침내 자고깨고 하는 중에 한 알의 씨앗이 큰 나무가 되듯이, 인내로써 결실케 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인내는 우리의 마음을 가려냅니다. 우리에게 있는 좋은 소망이 순간적 호기심인지, 아니면 마음 중심의 진정한 소망인지... 인내를 통하여 걸러집니다.

아름다운 소망이 우리의 중심이 마음이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소망을 품었더라도 인내의 연단을 거치게 하십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고 일하십니다.

빨리 결과의 성취를 보려고 조급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믿음의 삶 자체를 즐거워하며 누려 보십시오. 마침내 은혜의 기쁨을, 하나님의 능력의 놀라움을 경험할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승리하며 달려가는 두 번째 비결은, 인내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우리의 믿음의 경주, 믿음의 삶을 승리하며 달려가는 원리, 가히 비결이라고 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원리는 이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사십시오. 마음에 예수님을 품고 살아가십시오.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님을 소개할 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라고 합니다. 영어 성경에 의하면, 우리의 믿음을 시작하게 하고 완성케 하시는 분(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이라고 소개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게 하고 인내로써 경주하게 하는 믿음을 우리 안에 창조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또한 이 믿음을 완성해 주시는 분도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내가 죄인이라는 인생의 진실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도 스스로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 안에 빛을 비추실 때 그때에 비로소 회개의 은혜를 입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고 헤롯왕은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랑으로 이 땅에 강림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찾아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으로서 먼저 찾아 오셔서 믿음을 주셨습니까? 우리 중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는 완강히 혹은 은근히 거부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찾아와 주신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믿음을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이 the author, 예수님이 우리 안에 믿음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켜 가 주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소위 성화(sanctification), 우리의 믿음의 삶, 믿음의 경주를 성화의 과정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거룩해져 가는 과정, 이 성화는 우리의 의지적 노력으로, 우리의 행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루어가시는 일이며 예수님의 영,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이루어가시는 신비한 능력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중요한 성경구절이 <롬8:29,30>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완성자이십니다.

그러나 인내가 게으름은 아니듯이, 성화의 과정의 주체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것도 안해도, 어떻게해도 상관없이 예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발상, 난 아무 것도 안하면서 떠다 먹여주기를 바라는, 이런 발상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게을러터진 악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이런 종류의 악을 미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작년에도 저희 교회의 똑같은 설교, 성경공부, 신앙훈련이 주어지지만 왜 어떤 사람은 그 가운데 은혜를 누리며 즐거워하며 주변 사람들도 괄목할만큼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왜 어떤 사람은 밋밋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시험에 들어 헤매고 그럽니까?

예) 북한의 청소년들과 남한의 청소년들.

믿음의 창조자이시고 완성자이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자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그 은혜의 실재는 달라집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완성해 주시는 믿음의 능력과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우리 편에서의 열심, 우리 편에서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2,3절> 보십시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우리가 예수님의 이 은혜와 능력을 실재로 누리는 열쇠가 이것입니다. 마음에 예수님을 품고 사십시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알아가십시오.

나의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생각을 하며 살아보십시오. "예수님, 어떻게 할까요? 몸 피곤한데, 늦잠잘까요 큐티할까요?" "교회 일찍 가서 성경공부 참석할까요? 걍 천천히 갈까요?" "아무래도 저 형제가 나를 좋아하는 것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예수님과 대화하며 살아 보십시오.

특별히 예수님께서 그 앞의 즐거움을 위하여, 예수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고통과 수치를 참으신 십자가를 기억해 보십시오.

당신은 예수님이 어떤 꿈과 정신으로 이 땅에서의 삶을 사셨는지 아십니까?

또 <3절>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여러분, 얼마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역했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을 보십시오. 자기들이 필요가 있을 때에만 우르르 몰려왔다가 조금 진리를 깨우쳐 주시면, 재미없다고 우르르 떠나가 버리고... 자기들의 죄를 깨우친다고, 자존심 상하게 한다고 얼마나 배척하며 결국은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당시의 세인들이나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인들보다도 예수님의 속을 더 뒤집어 놓을 법한 부류의 사람들이, 저는 제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선택해서 특별한 관계 가운데 가르치고 함께하며 다 보여주셨건만, 예수님의 제자훈련 마치는 날이 다하기까지 그들은 여전히 자기 영광에 매여있고 불신을 넘어 예수님을 향하여 "우리도 죽으러 가자!!" 하며 비꼬고 조롱하는  모습, "다 떠나도 나는 절대로 안 떠납니다"하며 주제 파악도 못하고 잘난 척하는 베드로의 모습, 베드로가 그러니까 다들 질세라, "나도 안 떠납니다" 고백하는 제자들의 모습... 거역하는 모습 앞에 예수님의 마음은 더욱 시험을 받았을 것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도 뚜껑 열리지 않았습니다. 속이 뒤집혀지게 하는 유혹은 예수님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 안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참으셨습니다. 태연자약하게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기억하며 생각하며 당신의 생각을 예수님께 고정하여 보십시오. 그 때에 예수님의 영이 당신의 생각 안에서 마음 안에서 능력으로서, 실재하는 은혜로서 역사합니다.

왜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로 자주 모여서 기도하고 예수님을 배우고 교제하며 살라고 합니까? 성도가 자주 모여야 예수님 생각을 많이 하지요? 예수님 생각을 많이 해야 우리 마음이 더욱 더 예수님 바라보고 실재의 능력과 은혜를 누리지요? 혼자 있어 보세요... TV, 인터넷 보면서 혼자 지내 보세요. 당신의 마음, 영혼이 세상 욕망과 가치에 온통 노략질당하지 않습디까?

예수님을 더욱 생각하고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 고정하여 승리의 환희를 누리도록 자주 모이십시오.

2003년 작년 한 해를 보내면서 당신은 누구 생각을 제일 많이 하셨습니까?

예) 초등학생들 큐티 모임. 너는 누구를 제일 사랑하는 것같니? "나요"

어제, 오늘을 살면서 당신은 누구를 제일 의식하며 사십니까?

사람들 생각하고 사람을 제일 의식하며 살면 상처받습니다. 자신을 의식하며 자신만 생각하며 살면, 공주병, 왕자병 더욱 도져져서 악의 구렁텅이에 더 깊이, 더 깊이 빠져듭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 바라보며 예수님 생각하며 살아 보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응원하는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며,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힘차게 달려 가도록 능력을 주시며 우리의 믿음의 삶을 신나게 하도록 은혜를 주시며 마침내 승리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기를 기도하며 우리의 새해를 열어 봅시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경주에 이제 마지막 구간을 달리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머지 않아 스타디움이 보이고 구름처럼 둘러싼 관중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 않아 트랙이 보이고 하얀 결승선도 보입니다.

그 응원석 중에 노아 할아버지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라합도, 사사들도, 다윗도.. 그리고 베드로도, 바울도, 어거스틴도, 아시스의 성자 프랜시스도, 존 낙스, 사보나롤라, 진젠돌프 백작도, 마틴 루터도, 요한 캘빈도, 주기철 목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보입니다.

그들이 당신을 응원하며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경주하기를 응원합니다. 마침내 이 경주가 끝났을 때, 다같이 운동장에 뛰어나야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당신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 내 생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만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면류관을 들고서 넉넉한 사랑의 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믿음의 선진들을 기억한다면, 이 예수님을 바라본다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하나님 나라의 경주를 달려가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더욱 열심히 알아감과 나의 이웃에게 예수님을 알게하는 삶을 신나게 달려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사랑과 정직의 삶을, 내 이웃에게 이 사랑과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믿음의 삶을 새해에는 힘차게 달려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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