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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의 관계회복과 결과 (롬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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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과의 관계회복과 결과](롬5:1-11)

[1] 서 론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관계 속에 있게 됨을 말해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한자에서 사람 "人"자를 보면 역시 두 획이 서로 기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희랍의 철인이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 것도 모두가 관계를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태어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 속에서 우리 모두는 태어납니다. 세상 속에 태어나면 새로운 관계 속에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버지,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또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자라가게 됩니다. 이 같은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성년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와의 관계가 중요성을 가지고 등장하게 됩니다. 직장, 일터에서의 관계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자녀들이 태어나면 이 자녀들과의 관계 역시 삶의 중요한 요소들로 등장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게되면, 한없이 넓고 다양하게 보이던 관계도 차츰 차츰 좁아지고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이 모든 관계에도 종말이 찾아오게 됩니다. 결국 인생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서 관계의 종말과 함께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같이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인생 속에서 제일 중요한 관계가 있다면, 누구 혹은 무엇과의 관계이겠습니까? 어떤 관계가 우리의 인생 속에 가장 깊고, 가장 넓은 영향력을 발휘합니까?

  여러가지 관계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2]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

(1)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창1:1)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인생과 우주 만물을 만드셨고, 그분은 우주의 주관자이시며 국가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시며 또한 우리들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의 심판주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하시기에 오늘도 살아 계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그분과의 관계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2) 필연적으로 내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

내 인생의 목적과 길은 그분의 뜻에 따라 세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시고, 이 세상 만물을 만드셨기 때문에, 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하나님 안에서만이 찾아질 수 있습니다. 내가 세운 목적, 내가 세운 계획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세운 내 계획, 내 목적은 내 인생을 그릇된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인생을 살아가면, 결국 헛된 인생을 살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말씀과 성령의 궤도를 벗어난 인생은 탈선한 인생입니다. 탈선한 체 질주하는 인생은 대 참사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예화: 말릴린 몬로의 자살.) 

  우리는 복음 안에서 택하고 부름받은 사명적 존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드니를 가야할 사람이 멜본에 갔다면 잘못 간 것 아닙니까? 헛된 여행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과 길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헛된 삶을 살고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내 인생의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주기 때문에 이 관계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해답이요 존재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많은 종교가들과 철학가는 인생의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예: 석가모니의 일생).

(3) 영원한 운명과 직결되기 때문 (영생관계 결정)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한 운명과 직결되기에 또한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의 생명은 이 땅 위에서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음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영생으로 구원받지 못한 인생을 영멸의 둘째 사망 곧 영원한 불 못으로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원한 미래는 바로 오늘 여기에서 갖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그러기에 이 관계처럼 중요한 관계는 없습니다.

[3]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라

그런데 인생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삶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인간 현실을 성경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5:10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삶이라는 생각, 이 생각이야말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5:1∼11에 있는 말씀은 이 같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역사를 말해줍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롬  5:6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본문 말씀은 로마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어진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세상을, 인생들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아직 사랑 받을만한 자격이 없지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5:9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4]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의 결과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앞에 믿음으로 응답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인생이 누리는 삶,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화해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찾게될 때, 우리 인생 속에 어떤 변화가 찾아옵니까?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됩니까?

(1) 참 기쁨이 넘치는 삶

  오늘 본문 5:11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기 전과 비교해 볼 때 무엇이 달라졌느냐?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마음에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고.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평화의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그 주님의 평화가 우리 마음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으로 에수 밖에 있을 때는 우리는 죄책감과 어둠의 영에 눌리고 시달리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영혼의 자유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죄 범한 인생에게는 참 기쁨과 안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의 영혼에 참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어둠의 영들은 떠나가고 자유함이 임하게 됩니다. 영혼의 상쾌함을 얻게 되어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에수님은 포로되고 눌린 우리를 자유케 하러 오신 분이십니다(눅4:18-10).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외부의 조건이 충족되면 기쁨이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돈이, 출세가, 성공이, 집이, 자동차가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기쁨일 뿐입니다.
  영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라. 일주일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한달 행복하려면 말을 사라. 일년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한 사람이 되어라."
어쨌든 외적 조건이 주는 행복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원히 행복하려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라." 할렐루야!

(2) 초월적 평안 

  그런데 하나님과의 화목관계로 회복되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에서 환난과 역경을 만나도 즐거워 할 수 있는 초월적 평안입니다.
롬5:3의 말씀을 보십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평안은 환난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합니다. 환난이 찾아와도 우리의 평안은 동요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생의 결론과 해답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향을 아는 나그네입니다. 
그래서 환난은 인내를 낳습니다. 그리고 인내는 연단을 낳습니다.  인내가 연단을 낳는다는 말은 인내를 통하여 우리의 인격이 다듬어지고 성숙함에 이름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연단은 바로 우리에게 소망을 안겨줍니다. 진정한 소망, 흔들리지 않는 소망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3) 참 소망의 삶

  그리스도인들의 평안은 소망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본문 5:2을 함께 읽으십시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내일이 있는 백성들입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내일은 그저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영광에 가득찬 비범한 내일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한 그의 자녀들이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는 영광의 내일입니다. 이 내일이 있기에 우리는 또한 웃을 수 있습니다. 이 내일을 생각하면, 우리의 가슴은 벅차 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4:19을 통하여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우리들이지만, 우리에게 이 같은 내일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저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에수 안에 들어오는 순간에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불행한 사주팔자의 운명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롬8:1-2). 따라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소망의 삶을 사십니오.

[5] 결 론

  지난번 한국일보의 건강면에는 "웃음은 인체 면역력을 높이는 보약" 이라는 제목 하에 재미있는 기사들이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웃음과 비웃음음 틀립니다. 웃음은 우리에게 건강을 가져다 주지만 비웃음은 건강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웃을 때는 우리 몸의 650개의 근육 가운데 231개의 근육이 움직이게 된다. 많이 웃는 사람은 심장병 발병이 적다. Indiana주 볼 메모리알 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하루 15초씩 웃으면 수명이 이틀 더 연장된다고 합니다.

UCLA 대학병원 프리드 박사는 하루 45분 웃으면 고혈압이나 스트레스 등 현대적인 질병의 치료도 가능하다고 소개했습니다. Baltimore에 있는 Johns Hopkins 병원에서는 웃음은 바로 Internal Jogging, 우리 내부를 움직이는 jogging과 같다고 환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웃음은 병균을 막는 항체의 분비를 증가시켜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준다고 합니다.

즉 사람이 웃고 기뻐할 때는 우리 체내의 NK세포(암세포를 죽이는 세포)가 골수에서 급격히 생성되어 저항력을 높이지만, 사람이 불평 불만과 두려워하고 절망하면 체내의 NK세포 생성이 급격히 저하함으로서 저항력이 떨어져 암세포가 급속도로 번져서 빨리 죽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서 웃음을, 어디에서 진정한 기쁨을 찾을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웃으면 좋은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서 웃음을 찾을 수 있습니까? 어디에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해하면 진정한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빼놓고 재물에서, 소유에서, 명예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노력은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참된 기쁨, 참된 웃음은 오직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할 때 그 기쁨은 우리에게 양약이 되고 골수로 윤택하게 되어 참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뇌성마비로 국민학교 한번 가보지 못한 여인,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조차 없는 부자유 속에서 비관스러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기쁨을 찾은 송명희 시인은 그 감격을 항상 노래했습니다.

여러분도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 편에 서십시오.
  항상 생명의 말씀을 묵상하고 생명의 생각을 하시고, 항상 생명의 말을 하는 자가 되십시오. 좋은 소식(Good News)를 전하는 성령의 대변인이 되십시오. 그리고 생명있는 삶만을 살며 Good News Maker가 되십시오.  남의 Bad News을 이리저리 전하는 입이 되지 마십시오. Bad News 대변인은 마귀의 대변인으로 쓰임 받아 결국 하나님을 대적할 뿐입니다. 그런자에겐 절대 안식이 없습니다.

이제 2004년과 일생 내내 하나님 편에 서서,  참기쁨과 참 평안과 참 소망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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