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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 있는 기도(왕상 18: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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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기도
열왕기상 18장 41-46절

< 기도가 자본입니다 >

교회개척은 참 힘든 길입니다. 보상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밤낮 괴로움과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 길입니다. 누가 "개척교회 하는 것 힘드시죠?" 하면 고맙긴 하지만 그 말이 별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개척교회 할 때는 어떤 위로보다 중요한 것이 마음을 굳건히 하는 것입니다. 마음만 조금 잘못 먹으면 한과 상처와 고통으로 만신창이가 될 수 있는 길이 바로 개척자의 길입니다.

제가 백혈병 투병 중인 목찬수 군을 돕자고 매주 여러분들에게 말씀하는 이유는 목진훈 목사님이 개척교회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일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개척의 길도 힘든 길인데, 게다가 개척한지 두 달만에 고등학교 잘 다니는 아들이 그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상심이 크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해보겠다고 개척의 길에 나섰는데 주변에 도움의 손길은 없고 큰 교회들도 외면하는 상태에서 목사님이 절망하지 않도록 누군가는 희망이 되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척의 길은 눈보라를 헤쳐나가는 것과 같고, 길이 없는 밀림에 길을 만드는 것과 같고, 때로 사막의 뙤약볕 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같이 교회 부흥이 힘든 때는 몇 번 죽어야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바로 교회 개척의 길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교회 개척의 길처럼 행복한 길이 없습니다. 그처럼 보람된 일도 없고, 그처럼 오래 기억에 남는 일도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앞으로 저를 크게 축복하신다면 개척 때의 땀과 눈물을 기억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개척교회의 시절에 드려지는 우리의 땀과 눈물처럼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개척 때에는 조그만 감사거리도 그렇게 크게 느껴집니다. 성도의 식사 대접 한번 받으면 눈물이 나옵니다. 성도의 조그만 사랑을 받으면 마음이 날아갈 듯 합니다. 성도의 조그만 신앙 성장을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밤새 아내와 그 얘기를 도란도란 나눕니다. 가끔 인터넷을 통해 선교와 구제에 동참하고, 심지어는 십일조까지 하는 손길을 보면 "말씀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감동을 주었구나!"하는 생각에 그 주간의 설교를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됩니다.

교회가 연약할 때에는 그와 같이 평범한 일도 감동으로 전달되고, 하나님 앞에 보여드려야 할 당연한 헌신도 왜 그렇게 큰 감격을 가져다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개척교회를 섬기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연약한 교회의 부흥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일처럼 축복 되고 보람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천에서 1992년 32살의 나이로 교회를 개척할 때가 생각납니다. 공부 끝나고 많은 동역자들이 말리고, 미국에 사시는 부모님도 말렸지만 비전을 가지고 귀국하니까 홀홀 단신이었습니다. 그때는 배경도 없었고, 돈도 없었고, 동역자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어떻게 용감하게 개척할 생각을 했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자본은 오직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까 기도의 자본이 얼마나 큰 자본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배반하고, 늘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잘 나가고, 잘 풀리고, 배부를 때에는 주님을 간절히 찾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막판에 몰리면 그때야 간사하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여지없이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인간은 간사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목회하면서 가끔 어려운 일도 있지만 그때마다 기도하면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사실 기도만큼 소중한 자본은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운명을 반드시 바꿉니다. 왜 사람들이 운명을 바꾸지 못하고 살아갑니까? 돈과 학력과 연줄이 없기 때문입니까? 잘난 부모가 없고 배우자가 실망을 주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축복을 준비하시고 누구보다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 능력 있는 기도 >

오늘 본문은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는 본문입니다. 특히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의 기도는 우리에게 어떤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인지 잘 가르쳐줍니다. 어떤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3가지로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믿음의 기도

어느 날 엘리야가 아합에게 가서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왕상 17:1). 그 말대로 수년 동안 이스라엘 지역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3년 후에 엘리야는 아합에게 가서 이방 선지자들과 갈멜산 대결을 청합니다. 그 대결에서 이기고 이방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에서 죽인 후에 아합에게 말한 것이 본문 41절의 말씀입니다. 본문 41절을 한번 보십시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엘리야는 비가 오기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이미 큰 비의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기도할 때 그 기도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 구원의 확신이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고난을 주셔도 "아멘!" 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마음이 넉넉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어린이 동화에 '삼 년 고개'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곳에 신비한 고개가 있었는데, 그 고개에서 넘어지면 누구든지 삼 년 안에 죽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그 고개에서는 조심해서 걷는데, 어느 날 한 사람이 실수로 그 고개에서 넘어졌습니다. 이제 꼼짝없이 3년 안에 죽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니까 몸이 한 군데 한 군데 아파지기 시작하더니 다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한 현자가 그에게 찾아오자 그가 말했습니다. "현자님! 저는 곧 죽을 것 같습니다. 3년 고개에서 넘어졌습니다." 그때 현자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3년 고개에서 한번 넘어지면 3년을 살지만, 두 번 넘어지면 6년을 살 수 있고, 열 번 넘어지면 30년을 살 수 있지 않겠나! 다시 한번 그 고개에 가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넘어지게." 그 현자의 말을 듣고 이 사람이 일어나 3년 고개에 가서 데굴데굴 구른 후에 집에 돌아와서 기쁘게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구원의 확신이 분명하다면 인생길에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넘어지는 곳이 우리가 일어서는 곳이 될 것이고, 많이 넘어질수록 우리는 더욱 영적으로 부쩍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 인생의 밤이 찾아오지만 믿음의 기도가 있는 사람에게 밤은 오히려 안식처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자기를 돌아볼 수 있고, 그때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습니다(벧전 5:7).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져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들이 어려운 일을 가지고 고통하면 우리가 대신 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자녀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고, 자녀의 불행은 우리의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대신 맡아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아빠는 아들이 고 3때 매일 밤 11시 30분에 버스 정류장에 나가 기다리다가 아이가 버스에서 내리면 책가방을 대신 받아주었습니다. 아들이 더 힘이 셌지만 아들의 피곤을 덜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힘이 없는 사람도 그렇게 아들의 짐을 맡아주기를 원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짐을 맡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혼자 걱정하며 안절부절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에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초라한 모습이라도 우리의 이름은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망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어려운 순간에도 우리가 믿음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장 선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2. 간절한 기도

41절 말씀에서 엘리야의 "올라가서 먹고 마시라!"는 말을 듣고 아합은 엘리야의 말대로 비가 올 줄 알고 먹고 마시러 올라갑니다. 이제 비가 안 오면 엘리야는 왕을 우롱한 죄로 죽게 됩니다. 그때 엘리야는 어떻게 합니까? 본문 42절을 한번 보십시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엘리야는 기도하러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골짜기에서 기도해도 되고 중턱에서 기도해도 되지만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아버지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나아가겠다는 그 모습을 보십시오. 그처럼 간절히 하나님을 추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정기적으로 삼각산 꼭대기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대기에만 하나님이 있겠나? 중턱에도 있겠지." 그래서 다음 번에는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고 중턱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꾀가 났습니다. "중턱에만 하나님이 있겠나? 골짜기에도 있겠지." 그래서 다음 번에는 골짜기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꾀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골짜기에만 있겠나? 우리 집에도 있겠지." 그래서 그 다음에는 삼각산에 가지 않고 집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꾀가 났습니다. "우리 집에만 하나님이 있겠나? 안방에도 있겠지." 그래서 안방에서 기도하는데 또 꾀가 났습니다. "안방에만 하나님이 있겠나? 이불 속에도 있겠지." 그래서 이불 속에서 누워서 기도하니까 마귀가 금방 찾아와서 자장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꾀를 부리지 말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42절을 보면 엘리야는 기도할 때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로 넣고 기도했습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로 집어넣는 일은 체조 선수가 아니면 못합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가 평소에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를 잘 말해줍니다. 그처럼 우리는 기도할 때 간절히 기도해야 그 기도가 문제를 해결하고 축복을 가져다주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서양에 촬스 피니라는 부흥사는 항상 나쉬라는 사람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나쉬가 하는 일은 피니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피니가 설교할 때에는 숲 속 어딘가에서 이 나쉬가 항상 '기도의 진통'을 하며 하나님께 피니의 설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의 능력으로 피니가 능력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실 때 무엇보다 간절한 마음이 있는가를 먼저 보실 것입니다. 예배할 때에도 간절함이 있어야 하고, 찬양할 때에도 간절함이 있어야 하고, 헌신을 할 때에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마음의 쏟아 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보다 보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바로 그 마음입니다.

제가 대학부 교사로 있었을 때 대학부 부장으로 있었던 한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이 어느 날 포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 시간에 맞춰 돌아오려고 했는데 짙은 안개로 비행기가 뜨지 않았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대구 비행장에 전화를 해 보니까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면 주일예배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대구 비행장으로 급히 차를 몰고, 비행기가 뜨기 1분 전에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 직원이 무전기로 비행기의 이륙을 막아 간신히 비행기를 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간증을 하면서 그때처럼 오래 기억나는 감격적인 예배는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축복하셔서 나중에 유력한 대기업 사장으로 승진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도 복을 받을 만한 모습이 아닙니까? "오늘은 비행기가 못 뜨네! 다음 주일에 가자! 하나님도 이해해 주실 거야!" 라고 해도 큰 죄는 아니지만 그런 마음에 하나님께서 축복할 기분이 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우리의 사모하는 마음을 보시고 반드시 우리 손을 붙잡아주시고 가장 복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3. 인내하는 기도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간절히 기도한 후 사환에게 "바다가 잘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서 바다 쪽을 살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환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사환에게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했습니다(43절). 결국 일곱 번째만에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고 곧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인내의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한번 기도 드리고 응답 받지 못했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일곱 번까지, 더 나아가 칠십 번까지 기도하려고 해야 합니다. 물론 끈질긴 기도가 다 기도한 대로 응답되는 것은 아닙니다. 욕심을 가지고 기도하면 아무리 끈질기게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끈질기게 꾸준히 기도하면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꾸준한 기도를 어떤 기도보다 기뻐하십니다.

기도는 비상 낙하산이 아닙니다. 막판에 가서야 간절한 기도가 나온다면 하나님께서는 꼭 막판으로 몰아가십니다. 기도는 막판에 가서 하는 비상 낙하산이 아니라 평소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꾸준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막판으로 우리를 몰지 않으시고 때를 따라 이슬비와 같이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냄비 같은 신앙인, 냄비 같은 기도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때는 가장 뜨겁게 기도하고, 어느 때는 차갑게 되는 그런 냄비의 기도는 응답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참고 인내하는 사람인가?"를 꼭 살펴보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축복을 원하면 항상 인내의 시험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꼭 하나님의 때에 축복해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때가 차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즉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고 합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때에도 예레미야는 70년이 차야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다고 했지만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2년 안에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하나냐를 참 선지자로 알았지만 결국 예레미야가 참 선지자였습니다.

우리는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 극심한 고난이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시간이 약입니다. 시간만 지나면 다 해결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결같이 고난 당하는 사람들에게 참고 견디며 기도하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축복 받는 분들을 보면 '봉사의 끈'이 질긴 사람들이 축복 받습니다. 교사, 성가대, 기관장을 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어도 끈질기게 자기 맡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축복 받습니다. '헌신의 끈'도 질겨야 합니다. 한번 헌신하면 열매를 볼 때까지 몇 년 정도는 꾸준히 헌신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도의 끈'이 질겨야 합니다.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복된 날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

성경에 정말 끈질긴 사람 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을 때 한 가나안 여자가 "주님! 제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습니다. 내 딸을 구해주세요."라고 간절히 매달렸습니다(마 15). 그때 주님은 한 마디도 대답지 않으시다가 세 번째 요청만에 말씀하시길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엄청난 모욕이었지만 이 여인은 은혜 받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주님! 옳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요. 큰 은혜가 아니어도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세요." 정말 끈질깁니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참 크구나! 이제 네 소원대로 될 것이다."라고 칭찬하셨고, 바로 그날부터 그녀의 삶에는 천국의 삶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여인처럼 끈질기게 주님을 붙잡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할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감사하고, 끝까지 찬양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가는 길에 어떤 장애물과 낙심될 일이 있어도 기도를 포기하거나, 진리에서 치우치거나, 헌신의 자리에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축복도 쉽게 주어지는 축복은 없습니다. 쉽게 주어지는 축복은 대개 사단의 미끼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축복을 얻으려면 장애물을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장애물이 있으면 있는 대로 다 걸려 넘어집니다. 그러니까 은혜와 축복과 응답도 오다가 맙니다. 결국 보면 끈기 있게 참고 기다리면서 끝까지 헌신하는 사람만이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며칠 전에 목진훈 목사님과 통화를 하는데 해줄 말은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내십시오! 우리 교회에서도 매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식구들도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찬수 군과 김사무엘 선교사님이 하루 속히 병을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우리의 끈질긴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을 줄 믿습니다.

<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

어떤 유명 식품회사 사장님에게 아주 잘 생기고 똑똑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명문 대학을 다니다가 군에 입대했는데, 첫 휴가를 나와서 아버지 차를 몰고 나갔다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담임 목사님이 오셔서 요한복음 5장 25절 말씀으로 설교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신앙 좋은 이 사장님은 "듣는 자는 살아난다"는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그 뒤 이 사장님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힘썼습니다. 옛날에는 "글쎄!"하고 의문을 품었던 말씀도 무조건 "아멘!"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들의 귀에 대고 요한복음 5장 25절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주었습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한 달이 지나도 아들은 꼼짝 하지 않았습니다. 두 달이 지나도 꼼짝 하지 않았습니다. 70일, 80일이 지나도 꼼짝 하지 않았습니다. 85일, 86일이 되어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87일 째 되는 날, 아버지가 큰 소리로 그 말씀을 읽을 때 아들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의식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다윗이 25년 동안 성전을 짓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25년만에 하나님의 응답은 "안된다!"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가 헛된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못 지었지만 더 나은 축복을 주어 메시야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방법은 이처럼 오묘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축복과 기도의 능력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엘리야처럼 믿음의 기도, 간절한 기도, 포기하지 않는 기도를 통해 기도의 능력을 맛보며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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