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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창 4:1-7,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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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성경본문 
본문 : 창 4:1-7, 롬 12:1-2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제어머니화장대 위에 청구서 비슷한 글을 하나 적어놓았습니다. 엄마 없을 때 동생 돌봐준 값 500원 방 청소한 값 500원 아빠 구두 닦아 준 값 500원 엄마 심부름 한 값 500원 산수시험 100점 맞은 것 1000원 합해서 3000원 그리고 밑에 쓰기를 내일까지 꼭 주시기 바랍니다.

이 아이가 학교에 갔다 돌아오니 아이 책상위에 어머니의 편지가 놓여있었습니다. 아들아 너를 내 뱃속에 넣고 열 달 동안 고생한 것 공짜 7년 동안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 것 공짜 네가 아팠을때 너를 업고 어두은 밤길을 달려가 응급실에 데리고 간 것 공짜 네가 공 차다가 뒷집 유리창을 깨뜨려 물어준 것 공짜 앞으로 너에게 들어갈 학비 모두 공짜 그리고 밑에 쓰기를 아들아 나는 너에게 청구할 것이 하나도 없다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셨습니까? 이 초등학교 1학년 아들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는 아니하셨습니까? 하나님 제가 오늘 다른 곳에 갈수도 있는데 특별히 하나님을 생각해서 눈이 많이 내렸지만 이렇게 예배드리려 나왔습니다. 무슨 복을 주시겠습니까? 저는 다른 성도들 보다 일찍 나와 찬양연습을하고, 찬양을 하는데 저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저는 십일조를 열심히 드렸는데 무슨 복을 주시겠습니까? 저는 눈이 많이 쌓인 오늘 새벽에도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어떤 복으로 저에게 채워주시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요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너에게 생명주고 건강준 것 공짜 너에게 한평생 마실 공기주고 마실 물 준 것 공짜 너의 죄를 다 용서해준 것 공짜 사랑하는 나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해서 너를 내 자녀로 택하여 구원 한 것 공짜라고 하실 것 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예배드릴 마음이 생기는 때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이요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께서 공짜로 주신 것임을 내 마음속 깊이 깨달을 때입니다. 그때부터 찬송이 나오고 그때부터 감사가 나옵니다.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고 믿게 될 때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 감사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로마서의 구조를 살펴보면 1장부터 11장까지는 무엇을 믿느냐 믿음에 대한 말씀이고 12장부터 16장 까지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 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장 1절 2절은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하는 첫 부분으로 총론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예배를 생활의 가장 중심부에 두고 살아야합니다. 예배가 최우선이 되어야 하고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주일에 드리는 예배를 중심으로 하여 1주일동안의 모든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여행 중에도 주일에는 꼭 돌아와 예배를 드리고 부득이 돌아올 수 없으면 어디에서든지 예배를 드립니다. 이렇게 예배를 중심으로 사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예배는 드리되 그것이 생활의 첫째는 아니라는 생각으로 사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등산가자고 하면 산으로 가고 낚시하러 가자하면 낚시터로 가고 비가 오고 눈이 내려 갈데가 없으면 예배드리기 위해 옵니다. 이런 성도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그 생애 중에서 첫 번째 우선순위가 못되고 있는 것입니다. 만사를 제하고 예배는 꼭 드려야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예배에 의해서만 살 수 있습니다. 예배에 몇 주일 빠지게 되면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 계신가를 의심하게 되고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예배가 없는 성도는 영적으로 죽은 성도입니다. 영적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가족이 함께 예배시간마다 꼭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예배가 중심입니다. 예배가 중심이어야 합니다. 예배가 최우선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합니다.

1절에 영적예배라고 했습니다. 헬라어로는 합리적 또는 영적이라는 뜻입니다. 외면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중심에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에 영적예배이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당연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우선해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 예배입니다. 이와 같이 예배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교육도 하고 봉사도 하지만 예배 없는 봉사 예배 없는 교육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배 없는 봉사는 위선을 초래합니다. 모든 것의 핵심은 예배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합니다. 예배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 24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드리는 사람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지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그 발에 입 맞추며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귀담아 듣고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헌신을 다시 한번 새롭게 다짐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구약에서 예배는 곧 제사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양을 잡아 바치는 희생입니다. 신약에서는 구속하신 은혜를 찬양하는 잔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섬기고 찬양하며 섬기고 기뻐하며 섬기고 말씀을 순종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예배입니다.

신학자 몰트만은 “예배를 메시야적 잔치”라고 정의했습니다. 찬송은 아주 귀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오직 찬송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새롭게 한다는 말은 질적인 새로움을 말합니다.

미국의 링컨대통령은 남북전쟁이 예상 밖으로 길어져 희생자가 많아지자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동족끼리 싸워서 하루에도 수백명씩 젊은이들이 죽어갑니다. 마음이 괴로운 링컨은 집무실에서 하나님 앞에 두세시간씩 엎드려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대통령이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본 장관들도 문밖에서 기도하다가 대통령이 문을 열고 나올때에 장관들이 송구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우리도 문밖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대통령이 깜짝 놀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달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나는 지금 내가 하나님 편에 섰는가가 걱정하고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지 그것을 걱정하고 있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 일세  참으로 귀한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예배 전에 가졌던 마음 즉 소원이 많습니다. 건강도 물질도 명예도 지위도 그러나 그것은 예배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소원 성취하겠다는 마음은 예배드리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내가 알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해야합니다. 이것이 예배드리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나의 의견과 마음의 소원을 모두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구약시대의 예배는 제사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 바치는 제사행위였습니다. 제사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사 우리는 이미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만나실 때에는 제사를 통하여 만나고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올때 제사를 통하여 나아갑니다. 제사 드릴때 첫째 제물이 온전해야 합니다. 흠이 있어서는 안되고 부분을 드려서도 안되고 전체를 드려야하고 건강한 것을 드려야 하고 최상의 것을 드려야합니다. 우리 생애의 일부분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생을 모두 드려야하고 전체를 드리는 것이 바로 제사입니다. 둘째 제물은 깨끗하고 정성이 담겨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 나올 때에는 의복에서 마음까지 다 깨끗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 나올때 자세가 분명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릴때 양이 문제가 아니고 질이 문제입니다. 구약에 보면 부유한 사람은 소를 제물로드리고 좀 못한 사람은 양을 드리고 그보다 못한 사람은 양의 새끼를 드리고 그보다 더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를 드렸습니다. 자기의 수준에 맞게 드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성입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이 드린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이 드린 제사는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아니한 일에 대하여 어떤 학자는 가인의 제사는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어떤 학자는 가인은 성격이 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제사의 차이는 아벨은 피 흘리는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피는 생명이므로 피를 흘렸다는 것은 생명을 죽였다는 것이고 피를 드렸다는 것은 생명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신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벨은 제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죄를 범한 자기 생명을 죽여 바치는 마음으로 짐승을 죽여 바쳤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가 더 나은 제사이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입니다. 제사에 대한 평가 기준은 제물의 성격과 많고 적음에 앞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믿음에 있습니다.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신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고 가인은 믿음이 없이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레위기 10장 1절 2절에 보면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하나님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하나님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죽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예배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예배에 달려있습니다.

로마서 1절 하반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옛날 어떤 마을에 이교도의 사원과 예배당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이교도인 팜프스와 예수를 믿는 키루스가 사원과 예배당에 가는데 팜프스는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제물을 바칠 짐승을 가지고 가고 예수 믿는 키루스는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예배당에 갑니다. 팜프스가 키루스에게 묻기를 야 너는 예배드리러 가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느냐 나는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예배드리러 간다. 그런데 너의 손에는 왜 아무것도 없느냐 그러자 예수 믿는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다른 어떤 제물이 아니라 바로 가장귀한 나 자신이다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물질이 아니고 짐승이 아니고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거룩하게 살아있는 채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집사가 퀘이커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다들 기도만 하고 있고 예배가 시작 되지 않아 옆에 있는 교인에게 물었습니다. 언제 예배를 시작합니까? 그 교인이 당신이 예배당을 나가는 순간부터 예배가 시작됩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성도는 공장 작업대가 예배실이고 마트를 운영하는 교인은 마트의 계산대가 예배실이고, 사무 보는 사람은 사무실이 예배실이고, 부엌에서 일하는 주부는 부엌의 조리대가 예배실이고, 의사는 진료실이 예배실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그 자리 내가 일하고 있는 그 자리 내가 만지고 있는 그 물건 그것들이 삶의 자리가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라는 말은 구체적인 생활을 말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가리킵니다.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생활을 가리킵니다. 가정생활 사회생활 할 것 없이 전체를 다 모아서 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한 것은 늘 감사하고 늘 찬송하고 늘 새롭게 헌신하라는 말씀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 죽어지는 시간이고 예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은혜 안에서 생명을 다시 찾는 시간입니다. 생명의 약속을 재 확인 받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살아가는 삶이 예배입니다.

곽선희 목사가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는데 부흥회가 끝나는 시간에 어느 집사님의 부인이 이불을 들고 교회에 왔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 집사님은 교회에서는 천사 같은데 집에만 오면 사람이 달라지니 아예 교회에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불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생활과 교회 밖에서의 생활이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 전체로 기도해야합니다. 생활 자체가 다 기도이어야 영적 예배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합리적 예배자로 살아야합니다.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구별 할 수 있어야합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할 때 그 사랑하는 사람의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면 우선 그 사람의 식성이나 성향이나 취향도 다 알아야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자로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알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장 2절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했습니다. 헬라원문으로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엉뚱하게도 열심히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보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을 더 많이 합니다. 선한 일을 할 때도 정말 누구를 더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는지 구별이 안될때가 많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을 도울때 내 기분을 위해서 즉 즐기기 위해서 하는 도덕적 향락주의에 빠지는 위험도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2절에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을 영어성경에는 유행을 따라가지 말라고 했고 변화를 받으라는 말은 다른 방향으로 가라는 뜻입니다. 헬라원문의 뜻을 본받지 말라는 말은 형식을 따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말이나 행동이나 모든 면에 있어서 이 세대에 대해서는 항상 역설적으로 살아야합니다. 열심히 유행을 따르다 보면 자연히 문제가 생기게 되고 신앙생활에 유혹을 받기가 쉽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관심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에 있으므로 오직 예배드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항상 찬송과 감사만이 있을 뿐입니다.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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