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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 눈이 밝아지면 (엡 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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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마음 눈이 밝아지면
본문 : 에베소서 1장 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기독교 복음의 위대함은 제한된 인간의 지식으로 접근이 불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오묘하신 섭리와 경륜이 그렇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도리를 깨닫는 것이나 또한 성령이 주도하는 신비로운 교회운동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소수의 특정인에게는 이 신비로운 도리가 확실하게 이해되고 설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3:11-12).

천국의 비밀을 아는 특권을 가진 사람은(고전 4;1)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가지고 육신의 시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무한대의 신비로운 세계를 마음껏 즐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고 하였습니다(마 5:8).
로마 옥중에 있는 바울은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도록 간구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알게되면 마음 눈이 밝아진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마음 눈이 밝아져서 신령한 세계를 감지하는 사람입니다.

Ⅰ.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됩니다.

본문 18절에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부르심”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로마서 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1) 부름 받은 무리

원래 “교회”라는 말(?κκλησ?α) 은 “부름 받은 무리”라는 뜻입니다. 이는 세상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들을 불러내시고 그들에게 거룩한 무리(聖徒)라는 신분을 부여해 주신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경우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선택받은 민족의 조상을 삼았습니다(창 12:1). 그리고 그의 후손 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 하던 자리에서 불러내었습니다(출 13:3).
신약의 경우 그 백성을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시고 그리스도에게로 불러주셨습니다(롬 8:1-2). 에베소서 2:1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리에서 불러내셨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부름 받은 사실을 두고 “은혜”라고 표현하였습니다(갈 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로 부르시는 데는 특별한 방법이 작용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3-14에 보면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 예정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대가를 지불하고 구속(救贖)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보증으로 인(印)을 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삼위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2) 부르심의 목적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르실 때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3에는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5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는 그로 하여금 선택받은 민족의 조상을 삼고자 하였습니다(창 12:1-3). 또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세워 세상 사람들에게 의와 공도의 표본을 삼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창 18:9).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실 때는 그들로 하여금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출 19:5-6).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의 일을 맡기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마 4:19). 베드로전서 2:9에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3) 부르심의 소망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그 사실 자체가 큰 소망을 이룬 것이라고 일어줍니다. 에베소서 4:4에는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엄청난 소망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형들의 음모에 의해서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훗날 자기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 형들 앞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그런 과정으로 부르셨다고 하였습니다(창 50:19-20). 그는 어릴 때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제게 절하는 꿈을 꾸었던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것을 간증하였습니다.

다윗은 본래 베들레헴 이새의 목장에서 양을 먹이는 목동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내시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으며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대상 17:7-8).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말로다 할 수 없는 소망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Ⅱ.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입니다.

본문 말씀 18절에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11에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별하시고 부르실 때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기업을 보장해 놓으셨습니다(엡 1:14).

(1) 기업의 대상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4:20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풀무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32:9에는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아브라함의 자손 되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기업이었던 것처럼 신약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도들이 기업입니다. 에베소서 2:2에 보면 본래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마귀)에게 속하여 있었던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건져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9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됩니다. 로마서 8:15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기업의 내용

기업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상속을 의미합니다.「기업」이라는 말의 원뜻은 「제비」(lot)를 의미하는데, 이 말의 성경적 배경을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각 지파대로 제비를 뽑아 기업을 나눈 데서 연유됩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그때 제비뽑아 얻은 땅을 자기 지파가 소유하는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안에서 그의 자녀가 된 성도들에게 기업의 상속을 보장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14에는 성령께서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16-17에는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집이나 재산을 상속해 주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하늘에 예비된 집을 기업으로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5:1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환상 중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가서 낙원의 황홀한 광경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고후 12:1-4).


(3) 기업의 영광

18절에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기업은 말할 수 없이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4:17에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41에는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이 있고 또 별과 별들의 영광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눈이 열린 사람은 이와 같은 부르심의 소망과 그 영광스러운 기업이 풍성하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무리를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게 하였습니다(마 14:19-21).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좋은 것에서 충만한 것이 특징입니다. 에베소서 3:19에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Ⅲ. 능력의 지극히 크심입니다.

19절에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 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의 강력”이란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작동되는 초자연적인 힘을 뜻합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의 공급원이기도 합니다.

(1) 인간은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나 능력만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자기의 생명도 부지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가 외부로부터 에너지의 공급이 끊어지면 멈춰서는 것과 같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하였습니다(사 2:22).

인간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한계가 있습니다. 지식도 감정도 의지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우매 무지하여 짐승과 같다”고 하였습니다(시 73:22).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신 있게 신앙고백을 하던 베드로는 잠시 후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고 하시는 주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마 16:16-23).

구약시대 선지자 엘리야는 불의 사자로 불리울만큼 능력을 행사한 사람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하게 되자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자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왕상 19:4).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죄악의 공해에 시달리며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에 놓였습니다. 말세를 당한 성도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합니다.

(2)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힘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 19절에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 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힘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공급되는 힘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도 베드로는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벧전 4:11).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행 17:28). 바울같이 위대한 전도자요 무한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지만 그는 한평생 사도로서의 삶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이루어졌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9-10에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승리적 삶의 비결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 가운데 들어있습니다(빌 4:13).


(3) 믿는 자에게 공급되는 능력입니다.


여기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막 9:22).
성경은 언제나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이 믿는 자를 통해서 행사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사무엘상 17:45에 보면 소년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신뢰하고 거기 의존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사야 40:30-31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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