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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노의 대접 - 계 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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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노의 대접
본문 요한계시록 6:1∼11

지난 주일에 중고등부 학생들이 교회 진입로 일대를 청소했습니다. 쓰레기가 예
상했던 것보다 많아서 나중에는 청년들이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을 '청소' 또는 '환경미화'라고 했습니다.
제3공화국 시절에는 이것을 '자연보호'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환경보호'라고 합니다.
또는 '어디 지키기'라고 하기도 하고, '어디 살리기' 라고 하기도 합니다. '광교산
지키기' '광교산 살리기' 이런 식입니다.
언어의 이런 변화를 보아서도 우리 생활에서 환경문제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환경 문제는 교회에서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말은 '선교'이지요. 환경 문제에 대해서 교회에서는 이제
'환경선교'라는 말을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중고등부가 지난 주일 교회 진입로 청소한 일이 교회 주보에 '환경선교활동'이
라고 소개가 되었습니다.

울산에 있는 한 감리교회는 '태화강 살리기' 운동을 했습니다. 태화강은 울산 시
내를 흐르고 있는 강이지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교인들이 태화강에 나가서 강
변을 청소했습니다.
얼마 뒤에 그 교회가 울산 교외에 아주 넓은 부지를 확보해서 일종의 생활공동
체를 건설하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요즘 이런 일이 시작되면 이해관계가 얽힌 분들의 반대를 만나는데 교회가 이
런 일을 한다면 반대가 더 심합니다. 그 위에 진입로 문제 등 어려움이 많았는
데 지역사회에서 '아, 태화강 살리기 운동을 한 교회' 이렇게 알아주는 것이 문
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 16장의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교회와 환경에 대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목사님들이 꺼리는 것 가운데 하나가 요한계시록에 있는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은 미치광이가 쓰거나 읽는 사람을 미치광
이로 만드는 책이다"라는 잘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교회로 여러 종류의 우편물이 오는데 그것을 종류에 따라서 분류합니다. 교계신
문들은 휴게실 앞에 있는 신문 열람대에 갖다놓고, 도와달라는 편지는 선교 지
원 요청 파일에 넣고, 설교집을 받으면 책꽂이의 설교집 칸에 넣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비밀을 풀었다고 하면서 팜플렛이나 카세트를 보내는 분들이 종
종 있는데 조금 읽거나 듣다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대부분 이단에 대한 책
과 자료들을 모아놓는 칸으로 보내게 됩니다.
아예 휴지통에 넣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조심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환경문제의 교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이 이 문제에 대해 너무나 강렬한 메시지를 던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주고 있는 성경인데 우리는 환경문제
의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요한계시록 11장 18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
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환
경을 파괴하는 사람들은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멸망당한다고 계시록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진노'라는 뜻을 가진 말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어느
곳에는 '어린 양의 진노' 어느 곳에는 '주의 진노' 이렇게 되어 있지요.
16장에는 하나님이 일곱 천사를 불러 진노의 일곱 대접을 주시고 그 대접들을
땅에 쏟으라고 하셔서 그 천사들이 진노의 대접을 하나 하나 땅에 쏟는 내용입
니다.
첫째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으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고, 둘째 천사가 대접을 땅
에 쏟으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고…, 16장은 '진노의 대접 시리즈'라고 할 수 있
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이 땅에 나타나는 일들은 여러 가지입니다.

적에게 포로가 됩니다.
역대하 36장은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 백성이 갈대아 사람들에게 사로잡히
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앙을 겪습니다.
민수기 1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욕심을 부리다가 큰 재앙을 만나 죽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곳 이름이 기브롯 핫다아와인데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
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자들은 지옥의 불과 유황 심판으로 고난을 받습니다. 요
한계시록 14장 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해 온 애굽 군병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들
이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출15장).
하나님이 사울에게 진노하시니 사울이 싸움에서 패전했습니다(삼상28:18)

요한계시록은 진노의 대접이 이 땅에 쏟아지는 결과 가운데 하나가 환경 위기
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천사가 대접을 쏟았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
가 생겼습니다.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았습니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어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습니다. 지금 적
조(赤潮) 현상, 해양 오염이 날로 심해지고, 개펄이 사라지거나 썩고 그 때문에
개펄에 살던 생물들이 죽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이 피가 됩니다. 수질 오염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해가 불로 사람을 태우는 일이 일어납니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속도가 빨리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심한 아픔에 시달립니다. 이번에 사스 때문에 세계가 혼이 났지요.

성경을 자기의 편의에 맞추어서 해석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해석법은 과거적 해석법, 전(全) 역사적 해석법, 미래적 해석법,
상징적 해석법이라고 할까요, '실제적인 일들은 아니다'라는 해석법 등 여러 가
지가 있어서 자기의 편의에 맞춰서 멋대로 해석될 위험성을 많이 가지고 있습
니다.

그렇지만 요한계시록 16장의 일들을 환경위기와 연결해서 살피는 것은 무리나
틀린 일이 아닙니다.

어제 「중앙일보」에 흥미 있는 책이 한 권 소개되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콜린 험프리스 교수가 쓴 「출애굽의 비밀」이라는 책인데 이 분은 크리스천이
며 과학자라고 합니다.
이 분이 쓴 책은, 성경에 시내산이 많이 나오고 출애굽기 19장 18절에는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는 시내산이 당시 활화산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사우디 북서쪽에 있
는 바드론 산일 것이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고 그 떨기나무는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출애
굽기 3장 3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화산의 땅에서 증발하는 자연 가스가 일
으켰던 일이다, 나일강이 피로 변한 것은 독성 있는 홍조(紅潮) 현상이고 그
때문에 물고기들이 죽으니까 파리가 들끓게 되고, 파리들이 세균을 옮겨 가축을
몰살했다, 이런 내용이라고 합니다.

저는 성경을 이렇게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펄쩍 뛰면서 반대합니다. 꼭
그렇게 합리적으로 해석되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성경은 성경이 아닙니다.
이런 해석을 만나면 '오, 이렇게 해석하는 분도 있구나!' '흥미 있네!' 하는 것으
로 그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6장을 환경위기와 연결하는 것은 그런 선, 흥미 있는 선을
넘어섭니다.
요한계시록 16장의 주요 메시지는 하나님의 진노로 환경의 오염과 파괴가 일어
나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다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미국 목사님은 요한계시록 16장을 강해하면서 "나는 그것을 보지 않게 하
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아무도 이 일을 당하지 않는다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
면 정말 좋을 텐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견해에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일들이 이미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진노하십니까?
왜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고 하실까요?
중국어 성경을 보니까 여기 진노라는 말이 '대노'(大怒)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면 말씀을 멸시하고 선지자를 욕했기 때문에(대하
36:16), 범죄했기 때문에(수22:20),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
했기 때문에(대하 19:2),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에(왕하 23:26, 시 78:58∼59), 이
방 사람과 혼인했기 때문에(스10:10∼14),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시78:19∼
21)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에(대하 34:24∼25),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
에(레 10:1∼6) 여러 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 16장에는 그 이유가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2절을 보세요. 사람들이 짐승처럼 행동하고 우상에게 경배하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들, 예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박해하기 때문
입니다. 지금도 사회주의 국가들과 아랍권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
다.
9절을 보세요. 그 이유가 여럿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
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지요. 지금 이 세상의 모습을 보세요.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얼마나 음란합니까?
얼마나 범죄가 많습니까?
그 범죄가 얼마나 잔인해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진노하시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지요.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우리를 청지기로 이 세상에 보냈는데,
각자가 가진 모든 것과 세상의 모든 것을 잘 관리할 책임을 주어서 보냈는데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큰 잘못입니다.

말씀을 잘못 해석한 잘못도 있습니다.
어떤 말씀을 잘못 해석했습니까?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
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을 잘못 해석했습
니다.
어떻게 잘못해석 했습니까?
이 말씀은 '땅에 있는 것들을 잘 보살펴라, 잘 관리하라'는 말씀인데 정복하고
다스리라니까
마음대로 파괴해도 좋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진노의 대접들로 세상은 철저하게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은 아닙니다. 진노의 대접 심판은 세상의 죄와
강퍅과 교만이 원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재앙을 정지시키거나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앞에 일곱 나팔의 재앙이 나오는데 16장의 일곱 대접의 재앙은 일곱 나팔의
재앙에 비해 좀 더 적극적이고, 결정적이며, 전면적이고, 최종적입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는 것만이 피할 수 있는 길입니다.
9절과 11절에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들이 회
개하기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동안 참으시며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도 기다리십니다.

지금이라도 깨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이 피할 수 있습니다.
15절을 보세요.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
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
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어디에서 끝맺을까 하는 것을 가지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16장 전체가 진노의 대접 이야기니까 끝 절까지를 본문으로 해야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섯 번째 대접을 쏟으니까 강물이 말랐다고 했습니다.
냇물들이 말라 가는 것도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 앞의 동막천 냇
물도 평소에는 물이 아주 조금만 흘러가는 메마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특별한 인연으로 1950년대 후반, 중학생 때 이 곳에 여러 번 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는 물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맑았습니다. 와서 가재를 많이
잡았습니다.

일곱 번째 대접을 쏟으니까 번개, 우렛소리, 큰 지진, 섬과 산이 없어지는 일,
큰 우박이 일어났습니다.
요즘 우리는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를 많이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 대접 이야기까지만 본문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여섯 번째 진노의 대접이 부어지기 전에, 그리고 일곱 번째 대접이 부어지기
전에, 완전하게 멸망 당하기 전에 회개합시다, 깹시다'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진노의 결과가 얼마나 두려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변화가 있어야합니다.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하고 깨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의 선한 관리인이 되어야합니다.

이 진노의 대접이 가장 심하게 쏟아진 곳이 바벨론이라고 요한계시록은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
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계16:19)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17:5)

18장은 바벨론이 패망당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21절에서 24절
까지를 보세요.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또 거문
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등
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바벨론이 진노의 집중타를 맞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슬픔을 느낍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곳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북
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화요일 저녁에 저희 교회에서 우리 나라에 들어온 탈북자들을 제일 먼저
담당하는 대성공사라는 기관에 가서 그 곳에 있는 탈북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
리고 왔습니다.
우리 나라에 들어온 탈북자들의 숫자가 참 많습니다. 보안을 담당한 분이 나와
서 여러 가지 주의할 것을 말하면서 '지금 여기 탈북자들이 많이 와 있는데(얼
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그곳의 일을 밖에 나가서 말하면 안 된다는 보안교
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인력이 부족해서 그 가운데 ⅓ 정도는 아직 조
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으니까 양해해 주세요' 했습
니다.
예배를 마치고 파라찬양선교단이 복도 양쪽에 늘어서고 그 사이로 예배에 참석
했던 탈북자들이 인사를 나누며 통과해서 숙소로 돌아가는데 체구들이 작아요.
파라찬양선교단 단원보다 키가 큰 탈북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제 키가 170Cm가 못되는데 제가 올려다보면서 인사한 탈북자가 없습니다. 모두
내려다보면서 인사했습니다.
누구를 내려다보면서 인사를 하거나 말하면 기분이 좋지요. 저도 처음에는 기분
이 좋았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 분들이 얼마나 굶주렸으면 이렇게 되었을까?'
슬퍼졌습니다.

북한 현지에 가보면 더 그렇습니다. 체구가 작고 까맣습니다. 우리 나라에 들어
온 탈북자들은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곳에 2, 3년씩 머물다가 온 분들입니다.

작년 바로 이 무렵에 제가 북한에 갔는데 안내원이 김일성 종합대학 조문과(국
문과)를 나온 50대 초반의 여자 분이었습니다.
그 분에게 우선 대단한 엘리트를 만나서 반갑다고 했습니다.
대화의 접촉점을 만들기 위해 전공이 같은 분을 만나서 더 반갑다고 하고서 문
학에 대한 것을 몇 가지 물어보았습니다. 한결같은 대답이 '배운지 오래되어서
다 잊어먹었어요'입니다.
그 대신 거리에 붙어 있는 구호에 대해서 '저것은 무슨 뜻입니까?' 물어보면 잘
대답을 해 줍니다.
그런데 그 분이 묻지 않은 말을 먼저 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방문을 마치고 돌
아올 때가 되어 평양에서 순안공항으로 가는데 그 사이는 농촌 지역입니다. 안
내원이 버스 창 밖을 보면서 올해도 비가 안 와서 야단이라고, 지금 학생들과
군인들이 모두 논밭에 물대는데 동원되어 있다고, 열흘 안에 비가 안 오면 정말
큰 일이라고 말하는데 그 어조에 깊은 근심이 어려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
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아, 북한이 올해도 식량난을 겪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마
음이 무거워지면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휴전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기후가 차이가 날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1장 13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
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
께서 주신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지난번에 탈북자들과 같이 예배드릴 때는 마태복음 20장, 포도원의 일꾼들 이야
기를 하면서
여러분은 열한 시, 오후 다섯 시에 부름 받은 일꾼처럼 늦게 남한 생활을 시작
했지만 전적인 주권을 가진 하나님은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들, 남한 생활을 일
찍 시작한 사람들과 똑같이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다음 번에
탈북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면 신명기서의 이 말씀을 본문으로 북한이 저
모양이 된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이 북한에 가뭄, 때로는 홍수라는 형태로 쏟아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6장에서 '반짝!'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때리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12절 뒷
부분에 있는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슬람권 선교의 길이 열렸더라' 하는 말씀으로 해석하고 싶습
니다.
'이 시대의 바벨론 겉은 곳들, 복음을 거부하는 곳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
하는 곳들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더라' 하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습
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환경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습니
다.
그 진노가 멈추도록 힘써야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지 말아야합니다.
회개해야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깨어야 합니다.
타락, 음란, 범죄가 사라지도록 힘써야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잘 관리하는 청지기의 책임을 다 해야합니다.
말씀을 바르게 해석해야합니다.

우리만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세상 모두가 이것을 깨닫고 이일에 동참하여 진
노의 대접이 이 땅에 쏟아지는 일이 멈춰지도록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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