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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빵 / 출 16:11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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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빵

<구약의 말씀: 출애굽기 16:11 ~ 18 >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너희가 저녁이 되면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너희는, 나 주가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하여라."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친 곳을 뒤덮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진 친 곳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주께서 너희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각자 먹을 만큼씩만 거두라고 하셨다.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장막 안에 있는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하니,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들은 제각기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인 것이다.

<서신서의 말씀: 사도행전 2:42 ~ 47>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사도들을 통하여 기이한 일과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6:30 ~ 35>

  그들은 다시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행하셔서, 우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가 하늘로부터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 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빵을 내려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부터 참된 빵을 너희에게 내려 주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시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인데,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 빵을 늘 우리에게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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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출애굽기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서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 아주 괴로웠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온 지 두 달 만에 식량이 떨어진 것입니다. 식량이 떨어졌다는 말은 아마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는 뜻일 겁니다. 광야에서 식량이 떨어졌다니! 백성들은 술렁대기 시작했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차라리 이집트 종살이 할 때가 좋았다. 그때는 배고픈 적은 없었는데, 이제는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다.

한 사회나 한 민족이 완전히 시량이 고갈되어서, 아사지경에 처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고, 그 혼란은 상상 이상일 겁니다. 식량을 구할 곳은 전혀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적을 일으켜서 식량을 주셨습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서 고기를 먹게 하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서 빵을 만들어 먹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빵, 그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입니다.

광야 생활 40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농사지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니 광야는 농사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고 병이 들어서 죽어가고, 새로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이어진 그 40년 동안의 광야 역사에서 이스라엘은 무엇으로 살았습니까? 그들은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고 살았습니다. 하늘이 주는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을 내야 할 정도로 물이 드문 광야였으니, 물도 하늘이 내려주어서 마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하루살이 생활이었습니다. 그 생활을 40년 동안 한 겁니다. 하지만 “하루살이”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성서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끊임없이, 이스라엘이 불평할 때에도 이스라엘이 감사를 드릴 때에도, 밤에도 낮에도, 이스라엘의 자세나 마음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언제나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는 여러 날 쌓아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나는 하루 먹을 수 있는 분량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하루 먹을 것 이상 거두어 쌓아둔 것은 전부 썩었습니다. 사유화의 금지입니다.

하루살이, 하루를 중심으로 사는 백성!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삶, 그것은 생활의 근본적인 방식이요 기본 진리였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가 없으면 당장 굶어야 하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을 향해 사는 백성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알았고, 하나님은 매일 같이 자기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루살이면 족합니다. 우리가 주의 기도를 드릴 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이 “일용할 양식”의 배경은 역사적으로 만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오늘 하루를 풍족케 하옵소서!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계속되는 ‘하루살이’의 전례를 갖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장례절차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으면 3일장이나 5일장, 경우에 따라서 4일장을 치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죽은 때부터 24시간 이내에 장례를 마칩니다. 하루분의 만나를 먹고 살았듯이, 주검을 처리하는 것도 24시간 안에! 완벽한 하루의 종말입니다. 인간은 흙에서 왔으므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장례식 때는 석관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관을 안 쓰든가 아니면 나무관을 씁니다. 흙에서 흙으로! 그리고 장례를 치르는 하루 동안 집안의 모든 거울을 천으로 가린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니, 살아 있는 인간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자신의 형상을 비춰보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운구를 할 때 일곱 걸음 걷고 한 번 쉬면서 간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답니다. 인생은 헛된 것이라, 성서 전도서에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하는데, 히브리말로 헛되다는 단어는 ‘헤벨’입니다만, 이 헛되다는 말, 헤벨이라는 말이 일곱 번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곱 번 가다가 쉬고 하면서 인생이 헛되다는 것을 상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하루에 다 끝납니다. 이 하루는 365일 중의 하루가 아니라, 인생의 온 역사를 총괄하는 통전적인 하루입니다. 이 하루에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모든 역사가 마감합니다.

하루를 사는 사람들, 자기 인생의 역사를 하루에 통째로 묶어서 사는 사람들! 이 하루의 역사가 일곱 번 모아져 안식일의 역사가 되었고, 7년이 되면 안식년 역사가 되었고, 7년이 일곱 번 모이면 희년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하루, 하루살이 사람들!

일당을 받고 살던 시절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면서 일당이 주급으로 바뀌었습니다. 장년 여러분은 예전에 아마 일주일에 한번씩 봉급 받았던 일, 기억하실 겁니다. 혹시 미국으로 이민 가셨던 분들도 주급을 받고 살았을 것입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주급이 월급으로 바뀝니다. 일주일 간의 단위, 그러다가 한달의 단위, 요즘은 그것이 너무 짧다 해서 일년을 단위로 묶어서 연봉으로 계산을 합니다. 돈만이 아닙니다. 인간 사회의 역사의 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의 폭이 길어지는 것은 인간 사회의 안정성과 여유를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받아먹어야 하는 만나와 메추라기 때문에 ‘일당’의 역사를 넘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하루, 이스라엘 식으로 말하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총체적인 창조의 역사였습니다. 이 하루 하루를 멋있고 아름답고 보람 있게 보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괴로움은 오늘로 끝내고 내일은 내일에 맡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일은 하나님이 관여하시는 역사입니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정리하십시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이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듯이, 오늘 우리 역시 하늘의 양식을 먹습니다. 그러나 만나를 받아먹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신의 생명을 연장하였으나 결국에는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또다른 생명의 양식을 받아먹는 우리는 육신의 생명을 누릴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세상의 생명과 하늘의 생명을 함께 묶는 새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인 요한복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해서 빵을 만들어 먹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빵은 영원한 생명의 빵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진 밀가루는 예수님의 몸, 그 밀가루를 적시는 물은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입니다. 이렇게 만든 것을 먹으면 지금도 살고, 죽어도 살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교회가 뭐냐고 물으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신학적으로 표현합니다. 제가 다른 말로 표현하겠습니다. 예수는 누구입니까? 하늘이 준,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하늘의 빵 아닙니까? 그렇다면 교회, 경동교회는 무엇입니까? 빵집입니다. 경동빵집입니다. 이 교회가 빵집이에요. 여기 오면 빵과 포도주를 먹는데, 빵과 물을 먹는데, 여기서 먹는 빵, 이 빵을 먹으면 하루하루도 살고 그리고 죽은 다음에도 살고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집은 빵집입니다.

우리 주변에 빵집이 많습니다만, 빵집마다 빵 맛이 다릅니다. 누가 어떻게 빵을 굽느냐에 따라 맛도 다르고 향도 다릅니다. 어떤 빵을 먹을 겁니까? 사람이 다르니 빵 맛이 다르고 교파가 다르니 빵집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빵을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봉사를 통하여 생명의 빵을 먹습니다.

그 빵을 먹는 것을 압축한 것,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우리가 실천하는 성만찬 예식입니다. 이 성만찬을 예전이라고만 생각해서 먹고 마시지는 마십시오. 성만찬 예전 속에는 엄청난 하늘의 양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먹고 마심으로 하늘 사람으로 감동 감화를 받고서 변화합니다. 예식 속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를 깨달아서,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의 몸과 하늘의 피를 먹고 마시는 결단을 하십시다. 그걸 먹고 마시면 우리는 변한다고 합니다.

전쟁에 찌든 역사가 예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면 화해의 역사로 변한다고 합니다. 사고방식도 변하고, 심성도 변한다고 합니다. 변화 없이 무엇 때문에 성만찬에 참여합니까? 변화를 받지 않는 성만찬은 부정합니다. 차라리 참여하지 말라고 성서는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건 장난이 아니고 형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먹고 마시면 성령이 임재하여 반드시 하늘나라 시민들로 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성만찬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변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 속에도 성만찬의 현실이 살아 역사해야 하지만, 병들고 가난에 찌들고 험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속에 예수의 몸과 피가 임재하여 그것을 먹고 마실 때 그들의 삶이 그들의 사회가 변하여 새로운 사회로,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았던 초대교회는 매일 같이 생명의 양식을 먹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한달에 한번씩 성찬 예식을 거행합니다. 개신교로서는 자주 하는 편입니다. 1년에 한번씩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이 예식에 참여하는 우리는 이런 신앙적 결단을 해야 합니다. 한 달의 첫 주일, 우리가 이 생명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성만찬 예식에 참여할 때, 오늘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가 한달 양식이 될 만큼 단단히 결심하고 먹고 마시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아니 매일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먹고 마시는 여러 가지 음식들, 기도와 찬송과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를 먹고 마시는 귀한 음식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만찬 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이런 상징적인 행위 속에 있는 하나님의 결단,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은혜, 그것을 우리가 받아먹고 마시면, 우리에게 하늘이 임합니다. 조금은 순박하게 광야시대로 돌아가 봅시다. 오늘 필요한 만나를 주신다고 했으니 내일은 믿고 맡기고 염려하지 맙시다. 오늘, 내일이 임한 오늘, 미래가 임한 오늘을 기쁘게 받아들이십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몸과 피를 통하여 말씀하실 겁니다. “나는 세상 끝 날에도, 그 이후에도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생명, 평화, 믿음, 진리, 하나님이 주시고 여러분이 바라는 그 모든 생명의 떡을 오늘 먹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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