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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 요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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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한복음14:27 


나의 평안을 주노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잠깐 느낀 평안

  8월은 일년 중 가장 빨리 지나가는 달입니다.  더위 때문에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지만 휴가철이라는 생각 때문에 일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피서 여행을 다녀 온 분들도 많습니다.  교회는 7월과 8월에 성경학교, 수련회가 집중되어 있어서 행사를 하다가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금년에도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강일 유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수련회가 열렸습니다.  청년부는 네팔 단기 선교, 위촌리 농촌 사역, 도시선교 훈련 사역등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여름을 보내면서 휴식을 하기는커녕 스트레스 속에서 보낸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평안의 주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휴식 속에서 참 평안을 느끼지 못하셨다면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평안이 뭘까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어떻게 누릴 평안을 수 있을까요?  저는 지난 한 주간 조용한 곳에 가서 오랜만에 아주 평안하게 지내다 왔습니다.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평안을 묵상하다보니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왜 평화를 느꼈을까?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해 봤습니다. 

  첫째는, 주위 환경이 평화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집 앞에는 녹색의 논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너머에는 섬들에 둘러 싸인 바다가 보입니다.  해질 때쯤이면 테라스에 홀로 앉아 멀리 수평선를 바라봅니다.  붉은 해가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을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바라다봅니다.  하늘에 있는 구름들이 붉은 색 파스텔화처럼 부드럽고 따스해 보입니다.  새빨간 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바다 위에 놓여 있는 섬들의 실루엣이 무게 있고 안정감이 있어 보입니다.  해가 지면 오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만 들립니다.  그래서 정말 평화로워 보입니다. 

  둘째는, 세상 소식을 듣지 않는 평안함입니다.  며칠 동안이나마 신문 텔레비전 없이 지냈더니 세상이 다 조용한 것 같아요.  매일 눈 뜨면 보고 듣는 것이 다 뭡니까?  신문 텔레비전에서 떠드는 내용들은 대부분이 다 시끄러운 내용들 아닙니까?  경제가 불안하다는 소식, 파업 소식, 어디서 강도가 나타났다는 소식, 누가 죽이고 자살했다는 소식, 사고났다는 소식, 싸우고 다퉜다는 소식, 다 그런 것들입니다.  단 며칠이라고 사건 사고 소식 듣지 않고 있으니 조용하고 평안해요. 

  셋째로는 일상의 업무에서 잠깐 떠나 있는 평안함입니다.  사람마다 직업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몰라요.  단 하루라도 일손을 놓고 싶은 것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저는 매일 하는 새벽 설교, 수요일 설교, 심방, 주중의 일과들에서 떠나 있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몰라요.  그렇다고 일손을 놓은 것은 아닙니다.  지난 10년 이상 모아 놓은 원고들을 정리하고, 출판물을 준비하고,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2004년도 목회 방안도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만 매일의 정해진 일과에서 떠난 것만으로도 어떤 매임에서 풀려난 해방감이 있어요.  업무의 부담에서 떠난 평안입니다. 

  넷째로는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평안함입니다.  사람이 어울려 살다 보면 항상 누군가에게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져야할 책임감이 있습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부모에게, 자녀에게 책임을 느껴요.  저는 항상 교회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느낍니다.  성도들의 신앙과 일상 생활을 살펴야 합니다.  적당한 때에 위로하고, 격려하고, 찾아가고, 만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뭔가 해야만 되는 것이 늘 부담스럽습니다.  심지어는 정해진 시간에 취침하고, 일어나고, 출근하고, 일하고, 끼니때마다 식사를 하는 일까지도 귀찮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관계를 떠나서 혼자 있게 되는 것이 얼마나 자유롭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간섭 받지 않는 평안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들이 진정한 평안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것들은 참 평안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아무리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있다해도, 나 홀로 생활은 한 주간도 못 갑니다.  외딴 곳에서의 나홀로 생활은 사흘만 지나면 갑갑해집니다.  집 생각이 납니다.  식구들 얼굴이 보고싶어집니다.  교회 생각이 납니다.  성도들과 함께하는 일상 생활이 그리워져요.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가 잠깐의 감동에 불과합니다.  외적 조건들은 평안의 참 본질이 아닙니다.  그러면 진정한 평안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평안은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주는 겁니까? 


세상이 주는 평안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두 가지 평안을 대조하십니다.  첫째는 세상이 주는 평안이고 둘째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먼저 "세상이 주는 평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상이 평안을 줍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런 종류의 평안입니다.  이런 종류의 평안은 실상 평화의 한 단면일 뿐 평안의 본질은 아닙니다. 

  첫째로, 환경이 주는 평안, 평화로운 분위기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경치 좋고 조용한 곳에 살면 다 평안한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러 해 전해 강원도 옥동 탄광 폐광촌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구호품을 봉고차에 싣고 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산이 얼마나 높은지 산 아래서는 비가 오는데 산 꼭대기에서는 눈이 옵니다.  산 꼭대기는 흰눈 덮인 꿈 같은 모습이예요.  저 멀리 안개 속으로 마을이 보이는데 완전히 한 편의 동양화입니다.  하얀 눈 속, 산비탈에 집들이 옹기종기 있습니다.  얼마나 평화로운 모습입니까?  그런데 가서 보니 하나도 평화롭지 않아요.  탄광이 한창일 때는 다방만 30개나 됐다는 마을이 이제는 다 떠나고 빈 집 뿐입니다.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진폐증에 걸려 고통받는 환자들입니다.  전혀 평화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좋은 환경은 평화의 본질은 아닙니다.  타이티 섬에 살았던 고갱은 평안했을까요?  섬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당신들은 평안합니까?  산골짜기가 평안합니까?  넓은 들이 평안합니까?  좋은 저택이 평안합니까?  그런 것들은 참고사항은 될지라도 평안의 결정적 요소는 아닙니다. 

  둘째로, 세상과 단절된 것도 평안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세상 소식 듣지 않고 외면하는 것이 평안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다면 다 보따리 싸서 산 속으로 들어가야지요.  그러나 세상에 그 누구도 세상과 단절한 채로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평안은 복잡한 것을 잊는 것이나 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지 않고,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계하지 않고 영향받지 않고 살 수가 없어요.  우리가 아무리 이런 일들을 잊으려 해도 발생하는 일들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일평생 병들지 않고 아프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일평생 사고 당하지 않고, 슬픈 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잠깐 잊을 수는 있어도 단절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환란과 고난입니다.  이런 것들을 극복해야 진정한 평안이지요. 

  셋째로, 일상 업무에서 떠나는 것도 평안의 본질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일상 업무에서 잠깐은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떠날 수는 없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살기 힘듭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 정말 일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다 해도 그 자체로써 행복하거나 평안하지는 않습니다.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것이 정말 평안한지 아닌지, 정년 퇴직한 분들에게 한 번 물어보세요.  사람마다 자기 일에서 떠나 쉬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정말 일에서 떠나 있으라고 하면 오히려 평안하지 못합니다.  다윗은 일할 때는 평안했고, 일 없을 때는 사고 쳤습니다.  그 바람에 평생 불행하게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하지 않는 것이 평안은 아닙니다. 

  넷째로, 남에게 간섭받지 않는 것도 평안의 본질은 아닙니다.  정말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사람이 돼 보세요.  아무와도 상관치 않고, 관계 없이 살아보세요.  살맛 날까요?  왜 장기 두는 사람 곁에서 매를 맞으면서 훈수합니까?  그게 인간 본성이예요.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합니다.  간섭하고, 간섭 받으면서 살아야 해요.  비록 간섭 때문에 다투고 싸우는 한이 있어도 서로 간섭하면서 사는 게 인생입니다.  가끔 부부 싸움하는 부부가 즐겨 보는 성경 구절이 있지요?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9,25:24)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19)  그러나 정말 혼자 살아 보세요.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가족 생각, 친구 생각,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이렇게 본다면 세상이 주는 평안, 즉 우리가 세상에서 평안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잠깐의 느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평안은 아닙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면 참 평안은 무엇이며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십니다.  본래 평안이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48:22,57:21)  성경에서 악인이란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 사람들을 말합니다.  평강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는 자에게는 근본적으로 평안은 없습니다. 

  평안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적 정의를 내린다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것이 평안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사는 것이 평안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상태가 곧 평안의 상태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세요.  2절에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거처가 없고, 평안한 장소가 없어서 고민인데, 하나님 품에는 거처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부동산 없다고 섭섭해 하지 마세요.  저는 가끔 그런 망상을 합니다.  왜 우리 아버지는 부자로 사시다가 부동산이나 좀 물려주시지 않고 나타나지도 않으신단 말인가?  아버지가 부자가 아니라서 섭섭한 분들 많을 거예요.  그러나 낙심 마세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집에는 내 거처가 무한히 넓고 좋습니다.  6절에 보면 바로 그 아버지의 거처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1절로 돌아가서 보면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이 거하는 결과가 바로 평안입니다.  일련의 내용들을 연결해 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 결과 내 마음에 일어나는 첫 번째 결실이 바로 평안입니다. 

  평안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에 누리는 영적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평안을 만들어내려고 하지 마세요.  다 소용 없는 일입니다.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과의 사이가 좋아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샬롬"이란 인사를 합니다.  "평화"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평화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합니다.  매일 매시간 평안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항상 물어봐야만 된다는 뜻입니다.  즉, 평안의 문제는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이란 뜻입니다.  영어에 good bye란 인사말이 있습니다.  어원을 보면 God be with you란 말의 축약형입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평안은 인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평안하고 싶으시면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하세요.  괜히 다른데 투자 하지 마세요.  보안 업체 CAPS, SECOM 다 불러도 제 시간이 오지도 않습니다.  무기가 우리를 평안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돈으로도 안 돼요.  권세로도 안돼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된 사람만이 참 평안을 누립니다.  성경에 보면 평안한 사람과 불안한 사람이 아주 대조적으로 나타난 사례들이 있습니다.  다니엘을 사자굴 속에 넣은 왕은 불안에 떨었고, 사자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은 오히려 평안했습니다.  왕이 사자굴 앞에서 다니엘을 불렀을 때에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큰 소리로 왕에게 문안했습니다.  "왕이여 만세수 하옵소서"(단6:21)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귀신들린 여자를 고쳐준 죄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지키는 간수장은 두려워하고 바울과 실라는 평안하여 찬송을 불렀습니다.(행16:25)  베드로 사도는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다가 공회원들에게 붙잡혀서 깊은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내일이면 사형당할 지도 모르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두려워하기는 커녕 깊은 잠에 떨어져 천사가 와서 깨울때까지 몰랐습니다.(행12:6-7)  호화로운 왕궁에서 잘 입고 잘 먹는 사울 왕은 정신이 산란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들판에서 양을 치는 다윗은 악령들이 제아무리 요동을 쳐도 단잠을 잤습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가는 항해 중에 유라굴로라는 폭풍을 만났습니다.  선장도 선주도, 바울을 호송하는 군인들도 다 혼비백산 해서 정신이 빠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뱃전에 서서 담대히 외쳤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2-25)  어떻게 그럴 수있지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 선물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아래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인정하신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납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놓이려면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고 의지하세요.  먼저 하나님 자녀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잘못된 삶을 회개 자복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즉, 영혼이 잘 되는 삶입니다.  사람은 먼저 영혼이 잘 돼야 합니다.  좋은 집에 사는 것보다, 좋은 옷을 입는 것보다, 금은 보석으로 치장하는 것보다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잘 돼야 범사에 잘 됩니다.  사업도, 직장도, 인간 관계도, 사회 생활도 다 영혼이 잘 돼야만 제대로 됩니다.  육체의 건강도 영혼이 잘 될 때에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뭡니까?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1:3-4)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자녀로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  곧, 하나님 말씀을 삶의 원리로 삼고 사는 것이 영혼이 잘 되는 일입니다.  여러분, 정말 평안하고 싶으세요.  그러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사세요.  그리고 그날그날 모든 죄를 해결하고 사십시오.  가장 평안한 삶입니다. 


마음의 근심과 두려움을 극복하라

  마지막으로 평안한 삶을 위해 주님은 마음을 정돈하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 마음에서 두 가지를 쫓아 내야 합니다.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NIV) 

  첫째는, 근심입니다.  근심이란 마음이 확정되지 않은 혼란한 상태를 말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구절을 영문 NIV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네 마음이 교란 당하지 않도록 하라!  근심이란 마음이 확정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믿음이 없이 의심하는 상태를 가리켜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요, 물결에 흔들려 안정이 없는 자라고 비판했습니다.  근심이란 영적으로는 불신앙 상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주님께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근심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을 믿을 때에 물 위로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의심할 때에 물에 빠졌습니다. 

  여러분, 정말 사는 것이 걱정이 되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 사는 것이 어려워 진 게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뿐임을 아셔야 됩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은 하루치 양식만 있어도 평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 양식을 쌓아 놓고 살아도 불안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평안합니다.  정치가 어떻든지, 경제가 어떻든지, 어떤 사건 사고가 일어나든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무슨 일만 벌어지면 불안해서 잠을 자지 못합니다.  결국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평안한 삶의 원수는 근심입니다.  즉,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마음을 정하세요.  어떻게 정하면 됩니까?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고 신뢰하십시오.  근심은 떠나갑니다. 

  둘째는 두려움입니다.  근심과 두려움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습니다.  근심이 자신을 향한 반응이라면, 두려움은 외부를 향한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놀라지 말라!  군인에게 두려움이 있으면 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전투에서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 보면 두려움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아요.  심리학적인 말로는 공황 장애, 대인 공포증 같은 것들입니다.  사람이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요.  많은 사람 앞에 나서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 생활을 못합니다.  모두 다 근본 원인은 마찬가집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상실할 때 나타나는 영적 현상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세상이 다 두렵습니다.  그래서 막가파 식의 파괴자가 되거나, 은둔자가 됩니다. 

  다윗을 보세요.  골리앗을 향해 나갈 때에 뭐라고 했습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7)  믿음이 있는 자는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는 모든 것을 다 두려워합니다. 

  평안에 대한 결론은 믿음입니다.  주님을 믿고 중심에 영접하세요.  그리고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세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일 때에 영혼은 평안합니다.  매일매일 하나님 말씀을 원리로 삼고 살면 평안합니다.  그때그때 죄를 회개하고 정리하세요.  평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근심을 제하세요.  근심은 마음이 정해지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에 나타나는 심리상태입니다.  두려움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에 모든 것이 두려워집니다.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맡겨버리세요.  그래서 진정 평화로운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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