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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 눅 14: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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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성경본문] 눅 14:16∼24

      (눅14: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눅14:17)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눅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눅14:19)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눅14:20)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눅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눅14:22)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눅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14: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손님을 초청하는 내용입니다.
옛날 유대 풍습에는 잔치 자리에 손님을 청할 때 두 번의 절차를 밟았는데, 잔치를 계획할 때 일차적으로 초청을 하고, 그 잔치가 다 준비되었을 때 재차 초청을 해서 손님을 정중하게 대접하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었습니다.

따라서 종들은 두 번이나 초청할 손님들을 찾아가야만 했는데... 16절은 첫 번째 초청이고, 17절은  두 번째 초청입니다. 
주인을 대신하여 종들은 손님들에게 가서 "잔치의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오시면 된다"고 전했습니다. 이 종들의 사명은 주인의 뜻을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초청에 응하든 응하지 않든 간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요, 사명자로써.... 마땅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이 주인의 말에 불순종하고 전하지 않는다면 그 종은 악한 종이요 무익한 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주인은 처음에 초청을 받았던 사람들이 모두 잔치의 초청을 거절하고 불참한 사실에 대하여 종들에게 추궁하거나 질책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종은 단지 주인의 초청을 전해준 이상 참석하고 안하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그 소식을 전달받은 손님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종은 나가서 전하기만 하면 되고 전달받은 사람이 초청에 응하지 않을 때는 자리를 옮겨 다른 대상자를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어떤 곳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잔치 집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그랬습니다.
이와같이 교회는 잔치를 배설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여 손님을 기다리는 잔치집과 같은 곳입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즐길 것 등....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교회는 영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받아 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준비가 되었습니까?.....
교회는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갈한 자에게 생수를, 슬픈 자에게 기쁨을, 절망한 자에게 소망과 용기를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곳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는 예수님의 구속의 살과 피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말씀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성령의 위로와 도우시는 힘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된 우리는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잔치 집과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18절을 보면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다 일치하게 사양하고 거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들은 초청을 거절할 자유도 있고 응할 자유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첫 번째 초대장을 받을 때에는 참석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정작 잔칫날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오지 않았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주인은 "노하여 종들에게 이르되 거리의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병신들과 소경들을 데려오라!"고 했고 종들은 그래도 행했습니다.
그래도 자리가 남았다고 보고하자 길과 산울로 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강권한다"는 말은 팔을 비틀어 데려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말은 정말로 팔을 비틀어서 데리고 오라는 뜻이 아니고 '기어코 설득하여', '억지로라도', '최선의 방법을 다하여' 그런 뜻입니다.

1. 강권해야 되는 이유
그럼, 이처럼 강권하여 데려와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사단의 역사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한 사람이라도 더 자기의 노예로 삼기 위하여 우는 사자처럼 사람들을 삼키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을 총동원해서 전도를 방해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전도할 때 전도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장애물에 굴복하지 말고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됩니다. 강권하여 데려온다는 말은 적극적인 전도, 어떤 장애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열심히 전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사람들의 심령이 죄악된 세상에 너무 많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세대는 사람들의 심령이 굳어질 대로 굳어 있고 강퍅할 대로 강퍅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보통으로 전도해서는 전도를 받지 않습니다. 강권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10번 찍어 넘어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했습니다. 낙심하지 아니하고 10번 20번 계속해서 전도할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3) 시간이 너무 급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들은 혹시 연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에 관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은 시간을 더 이상 늦추거나 연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 예수 믿고 구원받지 못하면, 오늘밤이라도 죽으면 그 영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기회를 잃어버리면 영원토록 뜨거운 지옥 불 속에 던져지기 때문에 서두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4) 이 세대가 너무 악하고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온갖 죄악들이 독버섯처럼  솟아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더 즐기고 더 즐겁게 사느냐에 몰두하다 보니 영적인 것, 영원한 것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 관계로 평범하게, 안일한 방법으로 전도하기보다는 강권적인 전도 방법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난관이 많아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끈기 있게 인내하는 전도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죄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면 대화를 하기보다는 머리채라도 잡고 끌어내야 합니다.
한번은 심상철 집사님이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여름 휴가를 가셨답니다.
가족들이 재미있게 여기 저기서 수영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목소리 큰 박정주 집사님이 발견을 하고.... 사람 살리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더랍니다.
얼른 심상철 집사님을 불러서 사람이 물이 빠졌으니 얼른 구하라고 했습니다. 수영을 잘하시는 심집사님이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내 몸을 절대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는 그 사람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구해 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려면 머리채를 잡아서라도 끌어내야 합니다.
달리는 기차에 치어 죽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설득할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옆구리를 발길로 차서 넘어뜨리고라도 살려내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 좋은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 모두 강권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충성되고 신실한 종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강권하되 안 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 강권해도 안 되는 사람들
1) 밭을 산 사람 - 물질적인 욕망에 붙들린 사람
18절에 보면 "다 일치하여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데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그랬습니다. 밭을 사서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밭을 샀다는 말은 바로 물질에 붙들려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물질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물질에 붙잡혀 살아서는 안됩니다.
물질에 붙잡혀 살고.... 물질에 마음이 빼앗기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6:24절 말씀에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랬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유독... 물질에 붙들린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입만 열면.. 그저 돈... 돈입니다. 우리가 돈 돈 한다고 돈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너무 돈 돈 하다보면 사람이 정말 돌아 버립니다. 그래서 그 눈에는 하나님도 사람도 보이지 않고 돈만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질에 사로잡힌 사람은 전도도 잘 안될 뿐만이 아니라 혹 전도되어 교회에 나왔다 할지라도 신앙의 열매를 맺기가 참 힘이 드는 것입니다.
물질주의.... 황금만능주의 사상은 성도가 배격해야할 무서운 독소입니다.
이런 분들은 강권해도 되지 않으니... 기도의 대상인줄로 믿습니다.

2) 소 다섯 겨리를 산 사람 -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는 사람
19절에 보면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데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그랬습니다.
소 다섯 겨리는 소 열 마리를 샀다는 것인데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자가용을 다섯 대나 산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이요, 뭐든 할 수 있는 자신 만만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시험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못 간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철저한 사람입니다. 좋게 말하자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능력있는 사람... 자신이 넘치는 사람.... 그러나 이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기술을 과신하고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갈려면 남다른 지식도 필요하고 기술이나 경험.... 나아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붙들려 살아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들이 고등학교 들어가면 교회에 안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때 가서 교회에 보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하나님 없는 지식과 능력에 붙들려 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너무 공부를 잘해서.. 너무 능력이 많아서... 너무 자신 만만하여....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 자체가 나를 묶어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분주히 뛰어다닌다는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벌려 놓은 사업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밭을 사고 소를 샀기에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얼마나 바쁜지 어떤 사람은 "죽을 시간조차 없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습니다. "아휴! 얼마나 바쁜지 요즘같으면 죽을 시간도 없어!" 그럽니다. 그러나 그게 자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바빠서 교회 일에 등한히 하고 하나님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지 못한다면.. 사업의 규모를 줄이든지 다른 사람에게 분담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어서... 주의 일을 소홀히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3) 장가를 든 사람 - 너무 가정적인 사람
20절에 보니까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은 처녀때 열심히 교회를 다니다가... 결혼을 하면서부터 신앙생활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배우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목적에서 빗나간다면 그 의미가 상실되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 말은 강한 반발이요, 극에 달한 도전입니다.
이렇게 주인의 초청에 불응한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들에게는 이제 이 큰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이 선고되고 말았습니다.
24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그랬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되는 비참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는 가정의 행복은 오히려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겨울이 다 지나가고 화창한 봄이 되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주일날 화창한 날씨를 보면 유혹을 받을 겁니다.
모든 식구들과 모처럼 들로 산으로 바다로 가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0:37절 말씀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그랬습니다.
이 말은 가정이나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정이나 가족이 하나님의 은혜의 차단기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물직주의적인 사람, 자기 일에 얽매어 꼼짝을 못하는 사람, 하나님보다 육신의 안일과 쾌락을 일삼는 사람은 강권해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므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은 기도의 대상입니다. 기도해서... 전도의 좋은 때를 만났을 때..... 그때 강권해서 전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3. 강권해야 될 대상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여러 사람이 잔치의 초청에 거절했어도 잔치는 결코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내 집을 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21절에 나타난 '시내의 거리'는 넓은 길 곧 부자의 거리를 말합니다.
'골목'은 좁은 길 곧 빈민층의 거리를 가리킵니다. 이 길은 소외된 사람들이 다니는 길입니다.
그 거리에는 아까 초청에 응하지 않았던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사람들만 모여 있었습니다.

먼저, 가난한 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연회에 초대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또 병신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결혼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소경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밭을 보러 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또 저는 자들은 밭갈이를 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인간적으로 멸시를 받으며 경제적으로 아무런 능력이 없는... 버려진 존재들..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천국의 복음은 이렇게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의지할 소망이 없는 자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진정 이들은 자신들의 궁핍함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요,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놀라운 축복의 사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 가난한 자들
먼저 가난한 자들은.... 물론 물질적인 가난뿐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5절에서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도 없고, 아무런 선행도 없고,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2) 병신들
두 번째로 하나님은 병신들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들도 육신적인 장애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스스로의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영적인 장애인을 말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율법이 앞에 놓여 있어도.. 사람은 그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발이 장애를 입어 인생 길을 바로 행할 수 없는 사람들....
영적인 눈이 장애를 입어 진리를 바로 볼 수 없는 사람들....
영적인 손이 장애를 입어서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어떤 선행도 할 수 없는 사람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바로.. 영적 장애인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군기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휘날리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22:17)
이 초청은 바로 영적으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마태복음 9:12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그러셨습니다.

3) 머뭇거리는 자들
이들은 여기 저기 서성거리며 갈 길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아합왕 시대에 엘리야 선지자는 머뭇머뭇 거리는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가 둘 사이에서 얼마나 더 머뭇거리겠느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섬기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섬기라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고 증거하였습니다(왕상18:21).
더 이상의 머뭇거림과 방황을 멈추고 하나님과 진리를 택할 것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머뭇거리는 사람들...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4) 소경들
인간은 자기 스스로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악이 가득 차 있으면서도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존재요, 단 것을 쓰다하고, 쓴 것을 달다하는 존재입니다.
영적 소경이니.... 어두움을 빛이라 하고 빛을 어두움이라 하는 존재이며, 진리를 거스려 판단하지 못하는 영적 소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기쁨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일의 행복도 알지 못하는 그런 영적 소경된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 오늘 본문은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잔치 자리에 초청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5) 길과 산울가에 있는 자들
22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잔치 자리에 들어왔으나 아직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주인에게 고하기를 "아직도 남은 자리가 있나이다!" 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아직도 넉넉한 은혜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원이 없어요... 누구든지 다 와서 구원을 받아도 충분한 넉넉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님은 종들에게 명합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그래서 종들은 다시 길과 산울가로 나갔습니다.

여기서 '길'은 성밖의 공용도로를 말합니다. 그리고 '산울'은 울타리를 말하는데 이것은 성밖의 영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곧... 유대인의 불신으로 이제 천국 잔치자리에 이방인들이 포함되는 축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전에는 소외되고 저주받았던 자들.... 이방인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23절).
끝까지 설득하여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폭력이 아니라 설득입니다. 사랑과 정성을 다하여 설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와 사랑과 열정을 알 수 있습니다.
종들은 이러한 주인의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디모데전서 2:4절 말씀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랬습니다.
베드로후서 3:9절에서도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강한 명령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전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주님이 초청하시는 잔치자리는 아무리 데려와도... 하나님의 집은 자리가 충분합니다.
요한복음 14:2절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풍성을 좋아하시고 충만을 좋아하십니다. 
우리 교회도 가득 채워지기를 원하십니다. 빈자리가 없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나가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말씀하십니다.

주의 종이 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나가서 하나님의 천국 잔치 자리에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오소서!"라고 전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오라는 말이 무려 1900번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만큼 잃어버린 양들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꼭 배워야 할 것은 종들의 순종입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세 번 네 번 나가서 데려오라고 했는데.... 종들은 한 번도 불평이나 거절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 때마다 나가서 순종하여 전하였습니다.
빨리 나가라고 하면 빨리 나갔습니다. 길가로 가라고 하시면 길가로 갔고, 산울가로 가라고 하시면 산울가로 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나오라고 한다고 나오나?..."
"이렇게 유치한 방법으로 꼭 전도를 해야되나?"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신비롭기만 합니다.
고린도전서 1:21절에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영혼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전도라는 이 미련한 방법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옛날에 '예수 천당'으로 유명한 최권능 목사님이 평양에서 전도하러 다니시다가 어느 날 밤에 동네 가운데서 "불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답니다.
사람들이 당황하여 우르르 몰려들자 "예수 안 믿으면 지옥 불이야!" 그러면서 전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별 미치광이를 다 보겠네!" 하고 외면하고 미친사람 취급을 했지만... 그러나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게 말씀이 전해진 뒤에.... 몇 십년이 지나서 그 동네가 다 복음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전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방법이 개발되야 하겠지만..... 그러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뜨거운 가슴으로 저들을 구원하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의 가슴에 새겨져서... 이 말씀을 평생의 목표로 삼는... 신실한 종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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