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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 / 행 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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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사도행전 2:43-47
제목 :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행2:43-47)


Ⅰ. 서 론 구원의 역사를 이룬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6:47)라고 구원받은 사람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 구원에 대한 감격과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전도의 열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드립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 중에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힘들고 결실조차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지 매우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콩나물에 물을 줄 때, 준 물이 다 빠져나갑니다. 그렇다고 물을 주지 않는다면 그 콩나물은 곧 말라죽고 말 것입니다. 비록 준 물이 다 흘러 버린다해도 우리는 또다시 물을 줘야 합니다. 곧 그 콩나물이 잘 자라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도는 콩나물의 물과 같습니다. 비록 그 물이 다 흘러 버리는 것처럼 헛되이 보이지만 콩나물이 잘 자라있는 것과 같이 그 속에서 복음은 생명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복음의 자생력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통하여 충고와 권면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분명하고도 의미있게 펼쳐져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회의와 의구심을 떨쳐버릴 신약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의 영향이 초대교회에서 어떻게 펼쳐졌으며 성도에게 어떠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났는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닮아 감으로 구원사역에 일익을 담당하는 교회를 이루고자 합니다.

Ⅱ. 본 론

1. '초대교회에는 구제하는 헌신적 사랑이 있었습니다'(행2:44, 45).

1) 본문설명: 본문 44절에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 상호간에 이루어진 영적인 일치는 서로 필요한 물건을 공유하는 생활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모든 재산을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공동의 유익을 위하여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없이 모든 물건을 공유 할 수 있었을까요? 다음 절 45절을 보면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재산은 토지와 같은 부동산을 말하며 소유는 일반적인 유동자산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재산과 소유'는 성도의 전재산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성도는 자신들의 전재산을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구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과연 헌신적인 사랑없이 이러한 일이 가능할 까요?
그러므로 이 일은 자발적이고도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억지나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2) 성경적 연결: 이러한 구제가 성경에는 환난을 당한 자(딤전5:10), 빈궁한 자(눅18:22; 엡4:28), 주린 자(사58:7), 혹은 옷과 먹을 것이 없는 자(눅3:11), 쓸 것을 예비하지 못한 자(느8:10)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제할 때는 진정한 마음으로 할 것(눅11:41)과 아낌없이 할 것(눅12:33; 신15:10), 사랑으로 할 것(고전13:3)과 기쁨으로 할 것(고후9:7)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을 행한 모범적인 인물로 욥바의 여제자인 다비다(행9:36)와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행10:1-6)를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였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행9:36; 10:2). 그들은 이웃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구제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던 진정한 사랑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새생명을 얻는 놀라운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간의 헌신적 사랑은 '변화된 생활의 증거'(요13:35, 골1:4-8, 살전1:3, 딤후1:7)이며, '성령의 열매'(갈5:22)요, 예수님의 제자됨 증거(요13:34, 35)이며, 신자의 추구해야 할 최고의 덕목(고전13:1-13, 16:14, 요15:12)이라는 것입니다.

3) 적 용: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증거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이라 할지라도 교우와 이웃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갖고 계십니까? 이것은 헌신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형식과 가식으로나, 이기심과 탐욕으로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나를 버리고 약한 자와 가난한 자, 부족한 자를 진정으로 포옹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이며 초대교회의 성도간의 이루어졌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제는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초대교회의 모습을 우리는 좇아 행해야 합니다. 또한 헌신적 사랑으로 이웃간에 교우간에 돈독한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과욕과 이기심을 이제는 버리고 무너지는 신뢰와 사라지는 희생정신을 다시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추구해야할 최고의 덕목이요, 예수님의 제자됨의 증거인 사랑을 교회 안에서 이루어 주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헌신적 사랑이 있었던 초대교회는 또한 어떠했습니까?

2. '초대교회의 성도는 한마음으로 모여 교제를 나누었습니다'(행2:46).

1) 본문설명: 본문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한마음으로 신앙적 모임에 부담이나 거리낌이 없이 자발적으로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반절에는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회당이나 성전에서 뿐만 아니라 성도간의 각 가정에 모여 교제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본 구절의 '집에서'의 헬라어 원문은 'kata oikon'으로 의미를 분석하면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넓은 공간이 있는 집을 택해 돌아가면서 기쁜 마음으로 성찬과 애찬의 모임을 가졌던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초대교회 교인들의 신앙행위와 교제의 뜨거운 열정은 교회와 가정 구석구석에까지 미쳤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성경적 연결: 이러한 교제의 대상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인과 더불어(요일1:3; 고전1:9)나누라고 하였습니다. 요한 일서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의 자녀로 자녀들간의 교제는 올바른 행동이며 성경이 권하는 복된 일입니다. 교제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케도냐 교회들은 물질(고후8:4)을 나누었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제와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고난가운데 교제(빌3:10; 단3:16-30)가 있습니다. 또한 복음사역을 위해서도 교제(갈2:9; 빌1:5; 엡3:9)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제는 사랑과 겸손(벧전3:8, 10, 11)입니다. 바로 이러한 아름다운 교제를 초대교회는 나누었습니다.

3) 적 용: 오늘날 세상은 너무도 바쁩니다. 세상의 혼잡함이 우리의 정신을 혼탁하게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찾는 발걸음을 더디게 합니다. 세상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진정한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교회내의 교제와 모임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혹은 성도간 특별한 사유없이 모이는 교제를 무슨 전제조건이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서처럼 날마다 교제의 시간을 갖는 다는 것은 오늘날 상상할 수 없는 기현상으로 비쳐 지고 있습니다. 이제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다시금 복귀해야 합니다. 위로와 도움이 풍성했던 옛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을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급진전된 과학문명으로 사람간의 마주하는 것의 가치를 희석시킬 것이 아닙니다. 헨드폰과 컴퓨터통신 등과 같은 기계문명이 교인간의 만남을 통제하는 한 요인으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나지 않고 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전이든 가정이든 어느 곳에서든 모여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어야합니다. 구제와 믿음, 복음사역을 위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하나되는 사귐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또한 초대교회는 교제가운데 무엇이 있었습니까?

3. '초대교회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찬양이 있었습니다'(행2:47a).

1)본문해설: 본문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초대교회 성도는 성령의 선물을 통하여 최고의 축복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찬양을 드렸습니다. 찬양은 가식과 억지에서는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찬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는 온전한 하나님 중심적 신앙 안에 거하고 있었음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초대교회에 있었던 찬양에 대하여 성경은 그 대상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시9:11). 수금과 비파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합니다(시33:2). 더 나아가 '모든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라고 시편기자는 호소하고 있습니다(시67:3).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13장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찬양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찬양을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하였습니다(계5:12).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시21:13)과 기사(시89:5)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와 공의(시101:1)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찬양의 진리를 초대교회 성도는 성령을 통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했던 것입니다.

3) 적 용: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입술의 열매인 찬양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초대교회 성도가 오순절 성령체험 후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날마다 찬양하였듯이 여러분도 찬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삶이 아무리 우리를 곤고케 하거나 황무케 할지언정 여호와의 능력과 기사, 인자와 공의를 찬양합시다. 그 때 우리의 메마른 삶은 성령의 단비로 회복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여 찬미하는 초대교회 성도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곳에 넘쳤던 찬양이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충만하길 원합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은혜와 축복이 이 시간 우리에게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여호와를 소리높여 찬양합시다. 찬양이 있는 곳에 주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찬양하는 초대교회를 바라보고 그 당시의 사람들은 어떠한 행동을 했습니까? 그들을 경멸했습니까? 아닙니다.

4. '초대교회 성도는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47b).

1) 본문설명: 초대교회는 온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들의 삶이 타인들에게 아름답게 비쳐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은 그들이 형식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잘 보이려고 노력한 결과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했고 성령의 받은 바 은혜에 따라 서로 위하며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삶의 열매입니다. 이웃에게 혐오감을 심어준 것이 아니라 관심과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즉 아름다운 삶을 보여줌으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칭송을 받았던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이처럼 우리 주변에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웃에 대한 전도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5장 8절과 9절에 바울은 믿는 자에게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삶의 열매를 이룬다면 이웃과 형제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착한 행실로 인하여 아버지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삶을 통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올리는 것은 그리스도 인들의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3) 적 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처럼 이웃과 형제에게 칭찬받는 사람이 되고 있습니까? 빛의 자녀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고 계십니까? 이 대답에 '예'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사람들로부터 격리되고 맙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는 모습을 갖추어 나갈 때 비로소 세상의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부패한 곳에 빛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는 정치적 논쟁으로 분열을 일으키거나 성도간에 시기와 이해타산으로 등을 돌리는 기현상을 연출하고 있기에 비난의 대상이 되고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나 중심의 삶의 방식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과 성령에 따라 사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이웃과 형제에게서 칭송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구원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 주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Ⅲ. 결 론 .

오늘 우리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초대교회의 성도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과연 초대교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그저 주일마다 피동적으로 성전에 앉았다 가는 일회용 신자들로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모습으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좇을 때, 우리 교회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초대교회처럼 구제하는 헌신적 사랑을 성도간에 나누어야 합니다.
둘째, 초대교회처럼 한마음으로 모여 성도간에 교제하기를 즐거워 해야합니다.
셋째, 초대교회처럼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날마다 찬양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초대교회처럼 많은 백성들로부터 칭송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감동할 것입니다. 그 순간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실 것입니다(47c).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와 같이 우리도 초대교회처럼 행함으로 날마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구원을 이루는 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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