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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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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 : 17)


로마 카톨릭이 주도했던 중세기는 영적으로 캄캄한 수렁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헤메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볼트대학의 우수한 청년 학생 루터를 부르셨습니다. 루터는 엘볼트대학에서 대부분의 인문과 계통의 학업을 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석사학위를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 형이상학적 윤리학 등을 배웠는가 하면 당시에는 혁신적인 지리학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영향아래 생활하던 루터는 적어도 성경 가운데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나타났다는 복음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루터는 죄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그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가 21세 되던 해 초여름에 휴가로 귀향하였다가 대학으로 돌아오는 중에 심한 우레를 만나 졸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예기치 못했던 사고로 인하여 그는 극단의 공포와 불안에 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계기로 1505년 7월 17일에 엘볼트에 있는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엄격한 수도원의 생활이 계속되는 동안 1507년 4월 3일에 루터는 사제(司祭)의 임명을 받았습니다.

루터는 윗덴베르크 대학에 초빙을 받았습니다. 사제가 된 루터는 영원한 도시 로마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를 여행하는 것은 더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27세가 된 한 철학교수이며 신학도인 루터에게 로마여행은 말할 수 없는 실망을 안겨다 주게 되었습니다. 제일 크게 그에게 부딪힌 것은 승려들의 구원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승려들의 무식과 무질서한 행동이 루터를 번민케 했습니다.

매일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일정한 수의 미사를 반복하는 것이 그들의 일과였습니다. 루터 역시 여러 승려들과 함께 빌라도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이러한 고행이 죽은 영혼을 연옥에서 구원해 낸다고 하는 당초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의 행동에 대해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루터에게는 수도사라기 보다는 오히려 교수나 학자 루터라고 부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루터는 그의 생애에 걸쳐 16개 과목을 강의하였는데 그 중에 13개 과목이 성경이었습니다. 루터는 성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중세기에 교황에게 바쳤던 충성심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485주년을 맞이하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한 말씀에 의지하여 루터의 종교개혁을 중심으로 설교하기를 원합니다.

Ⅰ. 종교개혁의 여명

루터는 성경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동안 개혁의 꿈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후세의 사람들에게 개혁자라고 하는 칭호를 받게 된 것도 루터 자신의 본래의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개혁은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였을 때 루터 자신이 잃어버렸던 보물을 찾은 것처럼 즐거웠고 이 기쁘고 확실한 소식을 세상에 전해야겠다는 것이 개혁의 동기로 작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루터 당시 이른바 중세 교회의 타락을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부패요, 둘째는 교황의 세속화입니다. 교회는 성스러운 교직을 서로 사고 팔고 하는 교직 매매 행위가 성행했고 성직자들의 부도덕은 교회를 혼탁하게 했습니다. 교회는 호색과 방자함으로 부도덕의 온상이 되었고 교황 축첩으로 교황이 첩의 손에 놀아나 교황이 자주 바뀌면서 교황 정치의 부패가 극에 달했습니다.

성직자들의 타락에 백성은 지쳐버리고 혐오감을 느낀 나머지 인간의 회복을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진정한 신앙의 길은 교황과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과의 직접 만남에 있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개혁의 물결이 일어나게 된 두 번째 원인은 개혁전의 개혁자 위클리프, 후스 등의 개혁론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의 직접적 원인은 교황 레오10세의 속죄표 판매에 대한 루터의 봉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성베드로 대성당은 막대한 비용으로 벌서 100년 이상이나 공사를 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레오 10세는 성당 완공 조달비를 위하여 십 여 년 전부터 면죄부(Indulgence)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면죄부 판매 최고 책임자요 웅변가인 수도사 테첼(Johann Tetzel 1465-1519)은 은화가 헌금궤 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연옥에 있던 사람은 천국에 간다고 선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루터는 95개 조항(Ninety-Five Theses)을 윗덴베르크대학 게시판에 게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Ⅱ. 종교개혁의 의의

결과론적으로 1517년 10월 31일 윗덴베르크대학의 젊은 신학교수였던 마틴루터(Martin Luther 1483- 1546)가 95개항을 내어 걸고 부패한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에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당시에 면죄부 판매 등 교회가 가르치는 잘못된 주장들에 대해서 학문적인 토론을 열 계획이었지 그는 결코 종교개혁의 거사를 할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루터를 붙잡고 즐거워했습니다. 헤겔(Hegel)은 그의 책 역사철학 강의에서 종교개혁은 중세기 끝에 여명을 띄우고 솟아난 모든 것을 비추는 태양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은 종교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서구 문명 전체와도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루터 이전의 개혁자인 후스(John Hus)는 교황권을 부인하고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다가 체포되어 고문 끝에 화형을 당했던 위대한 개혁자였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말은 "그대들이 지금은 작은 새를 불사르지만 이제 100년 후에는 한 큰 황새가 날 터인데 그때는 아무도 그를 처형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예언적인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한지 102년만에 루터가 나타나서 개혁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95개 조항 사건은 사실 루터 자신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세계사적인 변혁을 가져오고야 말았습니다.
결국 루터의 95개 조항은 불과 2주가 못되어 전 유럽 민중의 지지를 얻으면서 밀물처럼 파급되어 갔습니다. 루터의 의도는 하나님 말씀에서 떠나버린 형식적제도(Sacramental System) 교회적 율법주의(ecclesiastical legalism)와 같은 비복음적인 전통에서 벗어나서 사도적 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새로운 신학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종교개혁을 통한 신학은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이미 있어왔으나 오랜 세월동안 로마 카톨릭의 교권과 미신적인 비복음적 전통 속에 가려져 있었던 것을 다시 찾아내는데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어거스틴(Augustine)신학의 계승이며 바울신앙의 부흥입니다. 종교개혁은 철저히 원시 기독교의 회복운동입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의 형식화되고 조작된 예전주의(sacramentism)에서의 회복운동입니다.
비성경적인 전통 즉, 인위적이고 교권주의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사도적 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어떤 새로운 운동이 아니라 다만 본래를 다시 찾는 즉, 본래를 쟁취하는 운동입니다.

Ⅲ. 종교개혁의 과제

1) 본질적 과제

종교개혁을 교리적 개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솔직한 이유 중의 하나는 영적인 부흥의 갈급함 때문입니다. 영적인 부흥의 갈급함이 종교개혁을 통하여 구체화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부흥의 측면보다 교리적 요소가 더욱 분명하게 부각된 것은 당시 부패한 로마 카톨릭의 신학적 입장이 성경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리적 개혁의 시급한 와중에서 상대적으로 영적 부흥에 대한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것뿐입니다.

(1) 오직 성경으로의 환원입니다.

종교개혁의 첫 번째 외침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보다 교황의 권위가 절대시 될 때 반드시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가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독자적인 신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 멈추어야 된다는 것이 성경적 진리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권위는 독자적인 절대적 권위만이 있을 뿐 종속적인 권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오직 믿음으로의 환원입니다.

종교개혁의 두 번째 외침은 오직 믿음(Sola Fide) 입니다. 구원은 당시 로마카톨릭의 주장처럼 인간의 자율성에 기초한 것도 아니고 또한 인간의 행위(works)나 공로(merits)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얻게 된다는 것은 종교개혁을 통한 개혁주의 신학의 기초입니다. 이 신학은 신인협동설(Symergonism)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확신케 해 주었습니다.

(3) 오직 은혜로의 환원입니다.

종교개혁의 세 번째 외침은 오직 은혜(Sola Gratia)입니다.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는 다같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able Grace) 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로마카톨릭이 말하는 공로나 선행이나 고행 등과 같은 인간의 행위에 기초하지 않고 오직 은혜를 통한 믿음으로 주어진다는 것이 종교개혁을 통해 다시 발견된 보화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신부라도 평신도보다 특권을 누릴 수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2) 역사적 과제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의 역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케루그마)을 이 땅에 성취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사건을 말합니다. 역사는 바르게 흘러가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한 역사입니다.
일반 역사에서 우리 나라의 근대사 가운데 크게 두 가지 실패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우리 나라가 일제의 강점으로 식민지가 된 것입니다. 둘째는 한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입니다. 실패한 역사는 복고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역사발전에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한번 실패한 역사를 아무런 상처도 없이 본래대로 원상 회복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만 복원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제 식민지 시대의 실패한 역사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일체의 것들을 우리의 정체성으로 기준을 삼고 청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회는 벌써 놓쳐버린 느낌이 듭니다. 남북 분단은 남북 통일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직 희망이 있고 가능한 일입니다.

남북 통일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실패하면 실패한 역사가 하나 더 생기게 됩니다. 나중에 남북통일이 되더라도 기회를 놓쳐버린 역사는 통일의 역사에 화려하게 포장되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고 통일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놓쳐버린 실패한 역사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역사 가운데 실패한 역사는 일제 식민 통치 시대에 일제의 한국 기독교 말살정책으로 강행된 신사참배 운동에 앞장선 역사입니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실패한 역사입니다. 소수의 신앙인들이 여기에 굴하지 아니하고 고난을 감수했으나 여기에 가담한 자들은 실패한 역사의 장본인이었습니다.
일제 신사참배는 한국 교회사적으로 볼 때 실패한 역사입니다. 그래서 해방과 함께 옥중에서 나온 신앙의 동지들은 한국교회 전체가 하나님 앞에 지은 공죄로 여기고 모두 함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자숙운동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완전 복원되지 못한 실패한 역사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일제에 굴복하여 자행된 신사참배는 실패한 역사입니다.

실패한 역사는 하루속히 복고 되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신학화, 윤리학화, 목회학화, 선교학화, 교육학화 해야 합니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원천 고려파 내지는 통괄 고려파의 고려신학교는 일제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투옥되어 해방과 함께 출옥한 옥중성도 고 주남선, 고 한상동 등에 의하여 세워진 학교입니다.
고려신학교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한국 교회 보수 교단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자긍심 속에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회 재산권 때문에 잦은 시비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불신법정에 고소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6장 1-11절은 형제(성도)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 믿지 않는 불신 법정에 가서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더라도 하지 않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의 지도자들은 불신법정에 고소하는 일을 감행했습니다. 급기야는 신학교 교수들이 논문을 써서 이 행위가 정당하다고 비호하므로 성경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고린도교회 시대와 이 시대가 다르다고 하므로 성경을 상황 윤리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문제는 비단 여기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신구약 성경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 있는 패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성경의 영원성, 성경의 독자적 신임성, 성경의 불변성을 파괴하는 참혹한 일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신법정에 고소를 반대하는 반고소(反告訴) 운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운동은 실패한 고려파 역사를 복원하는 중요한 운동입니다. 50년 고려파 역사뿐만 아니라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고려파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대개혁하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합니다. 반고소 운동이 방향을 잊어버리거나 지지부진하면 반고소 운동마저 실패한 역사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 교단과 신학교와 우리 교회는 아무런 명분이 없는 주님의 몸을 나누는 누명을 쓰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개혁은 교회가 원래 부패되었기 때문에 고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사탄에 수종든 인간에 의해 더럽혀지고 잘못된 것으로부터의 복고운동이며 원상회복운동입니다.
루터를 포함한 루터 이전의 개혁자들과 루터 이후의 개혁자들의 종교개혁 의도가 여기에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세워진 사도적 교회운동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말하자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초대교회의 모습과 예배형태와 초대교회시대의 교회운동의 형태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초현대적 초과학적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이 시대는 초대교회의 형태를 그대로 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로 반드시 돌아가자는 것은 초대교회의 전통과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이어지는 만인제사직으로 새롭게 되자는 운동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은 고쳐져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소위 성공주의와 물량주의로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권위주의를 제거해야만 합니다.
권위(authority)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는 다릅니다. 전자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이라고 정의합니다.

후자는 권력이나 무력으로 남을 억누르거나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방향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권위주의는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로마카톨릭의 권위주의의 횡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믿음이 가려지고 무시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다시 찾자는 운동이 종교개혁 운동입니다. 세상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는 교회와 성도가 되면 안되겠습니다.
오늘날 성도와 교회가 왜 질타를 받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교회적 전문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교회적 사명과 성도로서의 본분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질서입니다. 그것은 유희이며 외식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개혁이 세상사람들이 생각하고 요구하는 대로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운동의 대세주의도 안됩니다. 그렇다고 최대주의도 아닙니다. 다만 성경의 명령만을 삶의 수칙으로 삼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485주년을 맞이해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예배와 전도와 봉사와 희생과 섬김의 전문성을 찾아야만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교회생활이 비전공이 되거나 선택과목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는 교회생활이 우리 생활과목 중에 필수가 되고 전공이 되어야만 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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