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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고후 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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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본문: 고후 6:1-10

[본문]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6:3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6: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6:5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6: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6: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이란 미래의 것을 앞당겨서 지금의 현실로 바라볼 수 있는 힘입니다. 미래를 통해서 나를 보아야 합니다. 지금의 모습이 작고 부족하고 초라하다 할지라도 지금의 모습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미래의 모습을 통해서 그리고 과거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고 얼마나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았는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역사가 커지고 그 때에 합당한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거기에 맞는 자인가? 그렇기에 우리는 쉬지 않고 성화의 자리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자꾸 변덕부리고 인내심을 갖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면 안됩니다. 지금은 오직 한 길만을 매진해서 가야 할 때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문제는 무엇인가? 그들에게 수많은 기적과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며 늘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불평불만만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는 모습이 되면 안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이 자리에 이끌어주시기까지 하나님께서 많은 역사와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것을 잊고  불평 불만하는 광야의 백성과 같은 모습이 되면 안됩니다. 오직 한결같은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가기 바랍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지예정이 나옵니다. 미리 아시고 우리를 정하시고 부르셔서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다 하신게 아니겠습니까? 역사가, 교회가 커지고 멋있고 다양해져 갑니다. 그 폭이 너무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져나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생각했던 오늘의 내가 지금 얼마나 귀한 자리에 서있습니까?

예전에 교회가 조그마할 때 처음 말씀을 들으며 물어봤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되는 건지 답답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가 늘 이렇게 있을 것 같냐고, 그 때가 되면 수천명, 수만명이 되지 않겠냐고…혼났습니다. 그런 희망과 꿈이 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강의 할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말씀을 통하여 가르쳐주시고 또한 우리를 늘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잃어버린다면 하나님이 섭섭해하실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를 기르셨던 하나님의 수고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지금의 이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미래를 통한 나, 미래를 앞당겨 보아야 합니다. 선취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결코 작은 그릇의 사람이 아니라 큰 그릇의 사람입니다. 늘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은 다 지도자가 될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소망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이 귀한 것을 담으려면 귀한 그릇으로 있어야 합니다. 지저분하게 있으면 귀한 걸 담고 싶어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우리의 그릇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오늘의 나로 나를 바라보면 안됩니다. 지금의 모습이 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의 역사로 역사를 보면 안됩니다. 미래를 보기 바랍니다. 엄청난 세계를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 세계에 합당한 나로 만들어가기 바랍니다. 결코 지금의 모습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역사가 바뀝니다. 발전합니다. 더디 가는 것 같지만 가고 있습니다. 멈춰있지 않습니다. 각자의 영역이 커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봐도 커집니다.

어떤 직장인이 이야기합니다. 프로그램은 업데이트 되는데 난 이전 것으로 고객상담을 한다고, 그러다 나중엔 끝날 거라고... 당분간 얼마는 갈 수 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다 잊어버립니다. 여러분도 같습니다. 역사가 업데이트 되는데 내가 그것에 맞추어 업데이트 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바닥납니다. 업데이트를 계속 해야 합니다. 내 믿음이, 내 그릇이 업데이트 되어야 합니다. 모든 자질이 업데이트 되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찬란한 미래를 열어주시는 그 분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세계를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한 단계, 한 단계 우리를 끌고 나가십니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낡은 것으로 새것을 보지 말기를 바랍니다. 생각도 키우고 넓어지십시오. 오늘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갇혀 있는 나인가? 아니면 미래의 희망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되는 나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순환적인 사고를 하는 자인가? 유목적인 사고를 갖고 미래 지향적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변혁시키고 푸른 초장으로 나아가는 모습인가? 늘 자신을 변혁시키고 새로운 세계로 끌어내야 합니다. 오늘의 나로 갇히지 말기 바랍니다. 장차 일어날 영광과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꿈이 있지 않나요?

여러분들이 지금의 내 모습을 통해 미래를 판단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허락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은 내 자신입니다. 바꿔 주실 것입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예 하고 돌아서서 잊어버립니다. 지금 현실을 보면 당장 눈앞이 답답합니다. 그게 바로 열 지파의 모습입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쳐버린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백성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가나안이란 너무나 크고 강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두 지파는 믿었습니다. 무엇을 믿었는가? 그들이 자신의 현실을 몰랐겠는가? 가나안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았던 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입니다. 그 땅을 주신다 약속하셨으니 그 약속을 믿고 나아간 것입니다. 자신들의 능력을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능력을 포기할 때 하나님이 구원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힘으로 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실 수 있습니다. 내가 비워야 합니다. 내가 사라져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없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다보다도 넓어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품고도 남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멋진 나로 변할 것이다라고 믿으십시오. 하나님도 여러분을 믿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모습으로 여러분을 대하십니다. 지금의 초라한 모습으로 대하셨다면 역사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잘할 거라 믿기 때문에 세우는 것입니다. 강한 태양을 등질수록 그림자는 짙어집니다. 돌아만 서보십시오. 강한 햇볕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돌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나를 들어서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십시오. 오늘의 답답한 것만 보지 마십시오. 보이는 것을 바라면 누가 믿으리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게 진정한 믿음입니다. 지금의 나를 보지만 그러나 영화롭게 할 미래의 희망을 보십시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의심은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이럴 까, 저럴까, 역사가 발전할까? 과연 우리가 커질까? 그 안에 내가 남아질까? 변화될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난 여전한 모습으로 있을 거야, 내가 뭘 변화되겠어, 무슨 큰 일을 하겠어, 이게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믿으십시오. 믿음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믿음을 세워주셨으나 그들이 믿음을 세우지 못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백성들이 나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일지도 모릅니다. 선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은 나를 택하사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을 믿기 바랍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라는 것입니다. 은혜 받을 만한 때, 부어주실 때입니다. 그러나 과거가 막혔을 때, 미래가 막혔을 때 답답해집니다. 믿음의 눈으로 오늘의 나를 보기 바랍니다. 지금의 현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를 멋있는 교회로 만드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 그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믿음의 안경을 쓰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다면 믿음이란 것을 통하여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얼굴에 근심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믿음만을 가지고 갈 수 있다면 간단해집니다. 여러분 이전에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밝습니다. 좌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매일 매일 전도하지만 전도가 안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어두운 표정을 짓지 마십시오. 때에 맞게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해바라기와 같이 주님만 바라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3월을 맞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나? 모든 것이 새롭게 피어오르는 계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드셔서 여러분을 꼭 들어서 멋있는 사람으로 만드시고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은혜가 넘쳐나야 하는 때입니다. 여러분이 늘 은혜 받고 먹지 않아도 배부른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얼굴에 윤기가 흘러야 합니다. 여러분 모습이 세상 사람과 달리 은혜에 취해야 합니다.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게 우리 안에 있는 정체성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가진 자입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하는 자.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희망과 믿음을 가지십시오. 희망이 없는 백성처럼 비참한게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 꿈이 없다면 노인입니다. 노인은 죽을 날만 기다립니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은 꿈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있습니다. 이룰게 있고 성취할게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매이지 말고 끊임없이 자기를 변혁시키십시오. 바울 사도는 이야기합니다. 현실이 어렵고 고난을 당하여도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라고 하였습니다. 장차 나타날 미래의 영광만을 바라보았던 사도 안의 놀라운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오늘의 내가 아닙니다. 겨자씨가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듯 자꾸 우리의 모습도 변화되고 자라납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자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만 이 말씀을 믿고 믿고 나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는 그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복음이 온 세상 가운데 전해지겠는가? 전 그렇게 변화될 거라 믿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믿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여기 있는게 아닙니까?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먼 곳에 가있는 것인가? 희망을 가지고 믿어야 합니다.

봄입니다. 어깨를 펴고 마음을 넓게 하고 모든 걸 품기 바랍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낙심치 않습니다. 소망의 3월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3월에 얼마나 전도했느냐에 따라 올 1년의 목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성경에 결코 단 한군데도 날씨에 대해서 기록해 놓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의 삶이란 그런 1차원적인 것을 뛰어넘어 차원 높은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런 것에 매여 있을 삶이 아닙니다. 춥다고 해서 움츠릴 우리가 아닙니다. 결코 어떤 것도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영화롭게 될 우리의 미래를 바라고 힘차게 3월을 달려가 비약하는 임마누엘 성도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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