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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 (행 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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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 (행1:12-15)

오늘 말씀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임 120명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이 자리가 참으로 은혜로운 ,복된 자리였으면 합니다. 120명이 모인 다락방은 은혜로운, 복된 자리였으면 합니다.

이 다락방은 최후의 주님께서 만찬을 베푸시며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자리입니다. 이 다락방에서부터 유대교가 기독교가 되어졌고 율법시대가 마감이 되며 복음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회당이 교회가 되니 마 16:18장에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약속하신 교회가 되는 역사입니다. 성령의 진원지이며 세계선교의 전초기지입니다. 기독교 역사의 역사에 있어 이 역사의 장소에 120명이 모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하늘로 승천하신 주님을 본 사람들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이 하늘을 부를 때 천사의 음성도 들렸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 하늘 만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 올리 우신 예수님은 본 그대로 다시 오리라 고 천사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또한 저들은 사명도 받았느니... 행1:8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위해 주님의 명령이 있었으니 사도와 같이 모이 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의 약속하신 바를 기다리라 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다락방에 모인 120명, 저들은 왜 모여야 했습니까?
모인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모인 저들은 무엇을 간구했습니까?
먼저 저 120명은 주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주님의 약속하나 믿고 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 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바라고 기도한 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저들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욕심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자리다툼, 12명 속에서도 경쟁, 예수님을 저주하며 떠나기도 했습니다. 어리석은 질투, 고기나 잡고 산다며 사명도 신앙적 각오도 버리고 떠나버렸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천국말씀을 배우기도 했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수많은 기적을 보기도 했지만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다고 받았지만 그러나 기도한다고 했지만 연약한 우리들과 비슷했던 사람들 인 것 같습니다.
결국은 자기 갈 길을 가 버렸습니다.내가 원하는 것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을 믿고 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들은 가장 복된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주님의 원하심, 약속의 말씀 붙잡고 주님이 원하는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은혜로운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저들이나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도 돌아보면 가룟 유다처럼 망가져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있고 주님을 놓아 버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다락방에 모인 저들은 하나같이 시험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감람산에서 주님의 승천을 본 사람들은 500여명이지만 주님의 약속을 믿은 사람은 120명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착해서가 신앙이 변하지 않아서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는 어려움을 접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예배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착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유다나 다를 바 없는 주님의 손을 놓아 버린 채 넘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 들은 사람들에 대하여 지적도 하지만 사실 지적할만한 존재들이 못되는 것입니다.
감람산에서 주님의 승천을 눈으로 보고 감람산에 모인 사람들은 500여명 됩니다. 그러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120명입니다.

감람산에서 다락방까지는 안식일에 가기 쉬운 2천 규빗... 길게 잡아서 1킬로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놀라운 것은 감람산에서 승천을 보고 약속도 받고 그랬지만 단 1킬로 오는 동안 380명은 왠일인지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380은 주님의 승천을 눈으로 보았지만 주님과 있으면서 약속도 받았고 가슴속에 흥분도 하였지만 남들보다 더 잘 믿을 것처럼 아멘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자기 맘을 극복하지 못한 채 환경 형편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약속, 초청도 있었지만 장가도 가야하고 소도 사야하고 자식도 살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나는 내 앞날을 준비해야 하니 하며 모두가 회피하였습니다.
이들 중에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하며 자기 갈 길을 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요구도 있지만 주님의 요구를 외면한 채 자신의 일에 정신이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로운 다락방에 않아있도록 호락호락 놓아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마음을 약하게 하며 나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요즘 너무 바빠하며 환경을 급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은혜의 자리 생명의 자리에서 벗어나 버립니다.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120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여러분 저들도 가게 문을 살펴야 하고 아이들도 보아야 하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동일하게 다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만을 믿고 모였고 모임 120명 또한 환경이 좋아서 모인 것은 아닌 것입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셔서 약속의 말씀을 부여잡고 모여 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저들 120에 주목하였습니다. 380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너희가 내일 하면 내가 너희일 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가 원하는 것 때문도 아니고 주님이 원하는 것 때문에 모인 것입니다.
120/380 어떤 숫자가 더 많습니까?
380명이 갔지만 120명이 더 중요하니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모인 120명에 대하여 성경은 무어라 말 합니까?
성경은 포기한 사람은 기재하지 않고 모인수가 120여명이 되었더라... 성경은 120명의 수를 적다 말하지 않고 120명이나 모였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들은 주님의 승천을 보았지만 380명은 복음의 역사 뒤안길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120명이라는 모인 사람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주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다 가버리고 120명만 모였다고 저를 그렇게 기록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120명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달려오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원칙으로 하나 삼고 있는 것은 기관들의 모임을 가질 때 안 나온 사람 보다 나온 사람들 때문에 너무나 열심히 기도합니다.
오지 않는 사람들은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숫자를 가지고 말하지 않습니다. 기관마다 모인 숫자보다 그곳에 모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답답한 목사들은 왜 김 집사는 안 왔다고...왜 안 데리고 혼자 온 거야...등등 핀잔을 주는 목사입니다. 그러니 은혜를 받으러 온 사람들 마음의 맘을 다 닫아 버립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하고 내가 왔으면 다 나온 거라고 위로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돌로도 이스라엘 자손들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작은 땅만 보기에는 시야가 너무 크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바라옵기는 가장 복 받은 120명안에 역경을 이긴 자리에 복된 자리에서, 시험을 이기는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보여 지기를 원합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오지 않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복된 자리에 보여 지는 예수님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또한 여자들을 말하고 있으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뒷바라지 하며 헌신하던 여인들이었습니다. 사도들이 도망친 자리를 지키던 여인들, 피 방울이 떨어지는 십자가 밑에서 마지막까지 헌신된 사랑을 보였던 여인들, 무서워 찾아보지 못한 무덤을 제일먼저 찾은 사람들이  여인들이었고 하나하나 이름은 소개되지 않지만 이들은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은 땅의 원리와 다릅니다. 때로는 엘리야처럼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7천을 과부의 두 닢 엽전을...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있는데 유난히 눈에 띠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예수님의 아우들입니다. 예수의 가족들이 다락방에 모인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였으니 십자가 전 불신자였던 저들이 오순절 이후 가장 복된 자리에 앉아 있는 오순절 무리로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복된 자리에 오순절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족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분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의 형제들도 외짝 믿음으로 외로이 신앙의 길을 가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남편 없이 홀로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까. 아이들 두고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교회 오는 것을 소망하며 나만 홀로 교회 나오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모범을 보여주면 사랑을 보여주면 가족을 전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나 모범을 보이면 전도되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모범을 보였지만 사랑을 보였지만 그래도 안 되는 것은 구원은 하나님의 주관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믿음이기에 가족도 전도 못했느냐 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에는 다 전도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낙망하지 마십시오
어떤 권사님은 평생을 자식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지만 죽은 다음에야 응답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방법대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어머님은 남편이 믿지 않아서 남편 속옷을 입고 온다든지 , 신발하나 가지고 와서 하나님 오늘은 우리 남편 신발 하나만 왔지만 다음 에는 몸이 함께 오기를 믿습니다.
내가 포기 하지 않으면 주님은 저들 모두 건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시126:5절에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인 120명중 저들을 보고 보여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선택을 받아 예수님의 선택을 받아 제자가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유난히 똑똑하여 회계업무를 본 사람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베드로 안드레 요한처럼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였지만 배와 그늘을 버리고 집중적으로 예수님께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의 특권을 받지 못한 자가 되었습니다.
가장 복된 자리에 있어야 했지만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성경에서 유다에 대해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기위해서는 물질을 너무 사랑했다 말을 합니다.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아야 하지만 저는 돈을 너무나 사랑한 연고로 저는 하늘의 특권을 상실한 자입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예수님의 제자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사명 자였지만 하늘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 버립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돈에 매여 있다면 언젠가 여러분은 주님을 놓아 버릴지 모릅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 그리고 하나님 아들 되심의 표적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온 제자였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하나님 앞에 헌신된 자였고 열심히 있는 자였지만 결정적 순간에 넘어져 버린 사람입니다.
마귀는 이것만 있으면 유혹하지만 유다는 돈을 너무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놓아버린 자였습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은혜도 있지만 눈물도 있지만 음욕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세상의 잡귀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또 하나 성경은 유다를 마음과 생각을 지키지 못한 자라 증거 합니다.
유다는 처음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열정적인 마음도 있었지만 사단이 예수 팔 생각을 넣어주니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마음을 지키지 못합니다.
유다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약점이었지만 우리에게 약점은 성품일수도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던 유다는 주님이 주신 기회를 놓쳐 버린 것입니다.
사단에게 우리의 마음을 너무 쉽게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쉽게 넘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가 은혜가 되지 못하게 하는 요인들이 무엇입니까? 은혜의 자리가 은혜의 자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애굽의 금은보화를 포기했던 모세처럼 이들은 다락방에 모여 있는 관계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결국 더 큰 것을 얻는 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가장 복된 자리에서 모였던 120명, 다락방에 모인 120명이 무엇을 했습니까? 가장 은혜로운 자리에 앉아 저들은 잡담이나 장기나 두며 있습니까?
한마디로 표현하니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저들이 모인 오순절의 다락방의 자리에는 기도하는 자리였습니다. 120명의 모인 자리가 축복의 자리며 은혜의 자리가 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장소이어서가 아니라  기도하며 기다리는 기도의 자리였기에 오순절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저들의 기도는 어떠했습니까?
이들의 기도는 합심하여 함께 하는 기도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동산에 가서 기도하실 때 언제든 혼자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는 기도를 선호했습니다.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진정한 하나는 둘이 자야 잠이 오는 것입니다. 마18:19-20절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때로는 여러분 혼자 기도하는 것이 둘이 기도하는 것보다 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목소리로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자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기도하라면 잘하는데 함께 하라면 잘 못해요 혼자 충성하라면 잘하는데 함께 하라면 못합니다. 둘이 자는 것이 편합니까? 혼자 자는 것이 편합니까? 그러나 마음이 함께한 두 사람은 들이 자야 편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힘쓰고 애쓰고 기도했으니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있으나 기도의 열기가 시들어 가고 있고 모양은 있으나 열기가 식어진 기도는 울리는 쾡과리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교회는 열기가 있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전심으로 기도했으니 전심으로. 일심, 합심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3년 반 동안 머리를 박고 기도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은 기도의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기도에 집착했습니다.
땀을 흘리며 집중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기도가 안해서가 아니라 기도는 있으나 기도 가운데 열정이 없습니다. 적어도 기도에 있어 열기가 식어진다면 소리 나는 쾡과리에 불과 할 것입니다.
우리 선배목사들은 지식이나 경험이 적었으나 기도에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목사님들은 지식이나 경험은 많아진 것 같으나 기도에 열정이 없습니다.

주님을 너무 형식적으로 부르지 마십시오. 경험은 지식은 나오는데 역동적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달라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부탁 정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교회 처음 오시는 분들이 매일 부흥회 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여러분 매일 예배드리니 모르지만 우리교회에서 한번 예배드리기 위해 광주에서 부산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저들이 그렇게 표현해도 양이 차지 않습니다.
우리교회가 오순절 다락방이 되도록 저는 평생토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가 주저앉아 있으면 누가 기도 하겠습니까?
사역자들이 가끔씩 제 설교에 대해 평할 때 “목사님 설교하실 때 처음에는 조용히 하시다가 갈수록 소리가 높아져 내려 올 줄을 몰라요” 라고 말을 하지만 저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저들은 마음을 우리의 기도도 얼마나 필요하신 줄 아닙니까?
또 하나는 성령으로 기도했다는 것은 ‘호모디마돈 ’이것은 마음을 하나로 묶어 뜻과 목적을 같이하여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기도의 결국은 성령입니다.
또 하나 저들의 기도는 인내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수많은 고비를 넘으면서 얼마나 인내를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얼마나 인내가 필요하신 줄 압니까?
모인 120명 승천하신 모습을 보고 집에도 안가고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누가 기도 많이 하면 저 사람은 한가한가 보다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사님 혼 좀 내달라고 말합니다.
지금 120명은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는 것을 알고 지내는 자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밀려나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이들의 모임은 함께 흥분했고 그러나 감람산에서처럼 이 아니라 다락방에서 갈라져 버렸습니다.
380/120에 120은 기동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380저들은 각기 제 갈 길로 가는 사란들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부족을 느끼며 저들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모인 120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했지만 사실 더 큰 것을 얻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380보다는 120에 집중하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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