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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와 자녀의 성경적인 의무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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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서론)

  미국에 살고 있는 17세의 소년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하면서 꼭 들어 줄 것을 사정하였습니다. “아빠, 오늘 제 친구의 생일 파티가 있는데 차를 좀 빌려주세요! 그리고 아직 제가 면허증이 없으니까 가능하다면 면허증도 좀 빌려주세요!”라고 부탁을 합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부모님은 사랑하는 아들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그 소원을 들어주면서 이렇게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좋다. 오늘 내가 너를 위해서 특별히 차와 면허증을 빌려주마! 대신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저녁 11시 이전까지 꼭 집으로 돌아오도록 해라!” 그런데 약속한 저녁 11시가 넘어도 아들이 집
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사랑하는 아들이 사고라도 나지 않았을까 부모님은 걱정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다급한 마음으로 아버지가 전화기를 집어 들자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상대방은 다름 아닌 병원의 간호사였습니다. 깜짝 놀란 아버지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간호사에게 이야기합니다. “혹시, 제 아들이 많이 다쳤습니까?” 이때에 간호사가 이렇게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 당신의 아버지가 많이 다치셨습니다.” 실제적으로 다친 사람은 아들이지만 간호사는 아버지가 다쳤다고 착각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의 간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자신의 면허증을 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친밀한 관계입니다. 자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 마음 역시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부모와 자식간의 상호의무와 윤리기준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흔들리고 있는 심각한 위기의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부모와 자녀들이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도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
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과도 같이 말세의 특징이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국가적인 윤리의 차원에서 효도를 강조하였습니다. 유교의 윤리를 따라서 효도를 강조하고 부모와 자식간의 위계질서를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급속도로 사회가 개방되면서 개인의 자유가 강조되면서 다양한 가치관이 혼합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로 인하여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분명한 부모와 자녀간의 의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계시해 주신 우리 가정의 원칙으로는 최우선적으로 성경의 말씀을 원리로 마땅히 삼아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 중에서 1-3절까지는 자녀의 의무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부모의 의무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부모는 권리만을 강조하고 자녀는 의무만을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결코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께로부터 맡아서 잘 키워야만 하는 청지기적인 사명과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기초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가정에게 귀한 자녀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고로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자녀들을 잘 양육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부모는 자녀를 잘 양육해야할 청지기로서의 의무가 있고 자녀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공경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부모와 자녀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할 때에 그 가정은 참으로 축복된 믿음의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에는 본문 1-3절에 나타난 자녀의 의무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자녀의 의무에 대해서 해당사항이 없다고 착각을 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본문에 나타난 자녀라는 헬라어 원어를 보면 ‘부모를 모시고 있는 모든 사람’을 다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모시고 있는 모든 분들은 나이를 초월해서 누구든지 자녀에 해당됨을 먼저 이해를 하셔야만 합니다. 본문에서는 자녀의 의무를 크게 두 가지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에게 순종하라’입니다. 둘째는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여기에서 부모는 누구를
의미합니까? 자녀를 낳아주신 부모를 포함해서 친 자식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정성껏 양육한 모든 부모를 가리기는 말씀입니다. 양자된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신을 길러주신 법적인 부모도 다 포함됨을 의미합니다. 또한 결혼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장인어른과 장모님까지도 다 포함을 시켜야만 합니다. 이처럼 부모는 자식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실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부모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표현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돌보시는 그 원리를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모형으로써 부모를 통해서 자녀를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5계명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차원을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공경할 것을 강조하셨음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8살의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모의 밑에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친 어머니가 아니었지만 링컨은 늘 순종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여 어머님을 섬겼습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링컨은 다음과 같은 간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랑하는 어머님을 통해서 나를 축복하셨다”.

1. 자녀의 의무

  그럼, 우리 자녀의 의무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자녀는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순종이란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제가 우리 아들에게 ‘지금 즉시 너는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어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이 ‘예’라고 대답을 하고서 이를 닦고 잠옷으로 갈아입었지만 잠자리에 들지 아니하고 TV를 켜놓고 밤늦도록 시청한다면 이것은 온전한 순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를 닦고 잠옷으로 갈아입으라는 저의 명령은 아들이 잠자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한 것인데 목적을 무시하고 수단만 순종한다면 완전한 순종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러한 질문을 한 가지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싶은데 우리 부모님은 내가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강남중앙침례교회를 다니고 싶어도 부모님의 반대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야만 할까요?’라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난처한 질문 앞에서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조금의 빈틈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거기에 매우 중요한 부사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부사구는 바로 ‘주 안에서’라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 ‘주 안에서’라는 부사구는 다음과 같은 4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본래 아담 때부터 불순종의 기질을 갖고서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불순종하는 특징을 나타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도 우리 안에 어떤 특별한 선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의 특별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은 순종의 기질을 반드시 소유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꾸만 불순종의 기질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싶습니다. 부모를 거역하고 싶습니다. 교회에서도 계속해서 불순종합니다. 고로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주 안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 안에 자꾸만 불순종하려고 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저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셔서 늘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부모를 순종하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의무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잘 믿으면서 열심히 봉사한다고 할지라도 가정에 계신 부모님에게 냉담하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종교적인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되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먼저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잘 섬길 것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모를 섬기는 일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의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가정에서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불효하는 자식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영광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셋째, 부모의 요구에도 한계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야, 너는 발이 빠르니까 나중에 커서 소매치기가 되어라!’고 명령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믿지 말라고 강요할 권리도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명령들은 ‘주 안에서’ 허락되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명령들은 ‘주 밖에서’ 주어진 명령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명령을 지혜롭게 잘 거절할 수가 있습니다.

  넷째, 부모가 자식에게 요구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녀를 맡겨 주셨는데 각자의 재능에 따라 독특한 은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어떤 자녀는 공부를 잘하는 특출한 재능이 있고, 어떤 자녀는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고, 또 어떤 자녀는 운동에 뛰어난 재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운동을 좋아하는 자녀에게 ‘너는 오늘부터 어떠한 운동도 하지 말고 집에서 오직 피아노만 열심히 연습해라!’고 부모가 무분별하게 명령한다면 그 자녀는 크게 분노하고 나중에는 폭발하고 말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들이 어떠한 재능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해야할 귀중한 사명이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어떠한 재능들이 있는지를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제일 싫어한 과목이 바로 미술입니다. 미술시간만 되면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학생들을 비원으로 데리고 가서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 그러면 저는 항상 그림을 대충 그리고 남는 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선생님께 들고 가서 점수를 받으면 대부분 60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제 짝궁은 그림을 그리지도 않습니다. 매번 저의 그림을 들고 가서 점수를 받아오는데 저보다 높은 점수인 70점을 받아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저에게 미술 선생이 되라고 한다면 도저히 그 사명을 감당할 재능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처는 미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습니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화가입니다. 우리 집에는 아내가 그린 그림이 두개가 거실에 보기 좋게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누군가가 탐을 내서 억만금을 줄테니 팔라고 해도 저는 절대로 그 그림을 팔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아내에게서 좋은 작품
이 나올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녀의 재능을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만 합니다. 리더십이 있는 자녀는 앞으로 훌륭한 정치가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자녀는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큰 영광을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운동을 잘 하는 자녀는 앞으로 위대한 선수가 되어서 가는 곳곳마다 위대한 하나님의 이름을 담대히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바라고 믿고 원하기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부모님들은 사랑하는 자녀의 재능을 잘 분별하여 그 재능을 훌륭하게 키워서 이 민족과 나라와 국가를 빛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는 왜 부모에게 순종을 해야만 할까요? 거기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바로 본문 1절 후반부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옳으니라.” 지극히 간단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문화가 달라도 가치관이 바뀌어도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잠언 30장 17절은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악한 자는 죽어서도 이 땅에 편안하게 장사될 수 없다는 참으로 무서
운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즉 인간으로서 가장 큰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자녀들은 부모에게 항상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만 합니다. 공경하라는 말씀은 부모를 존경하고 봉양하고 영광을 돌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부모를 공경해야만 합니다. 먼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지극히 큰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골의 부모가 한 아들을 잘 공부시켜서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을 시키고 사법고시에 합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자 가문 좋고 돈 많은 집안의 딸과 결혼을 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서울에다가 좋은 아파트를 얻고서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시골에서 살고 계시는 아버지가 아들이 보고 싶어서 서울로 잠깐 올라오셨습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시골에서 날마다 밭에 나가서 열심히 거름을 뿌리고 일하시는 시아버지를 겨냥해서 집 안에서 무슨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계속해서 투정을 부렸습니다. 이때에 시아버지는 속으로 ‘아하, 지금 며느리가 나를 우습게 보는구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이렇게 괄시를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골로 내려가셔서 양 손에 미숫가루와 냉수를 들고서 다시 올라오셨습니다. 이번에는 아들의 집이 아니라 아파트 현관 입구에다가 돗자리를 깔고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아침에도 미숫가루, 점심에도 미숫가루, 저녁에도 미숫가루를 드시면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들의 집에다가 청구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 청구서에는 아들의 기저귀 값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사법고시 준비기간에 든 모든 비용인 돈 2억원을 달라고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향해서 불호령을 내기 시작합니다. “너는 지금부터 내 자식이 아니니 그동안 너에게 들어간 돈 모두 내어놓아라!” 이때에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친 아들이 무릎을 꿇고서 싹싹 빕니다. “아버지, 그 동안 제가 잘못했으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앞으로는 아버지의 어떠한 말씀에도 절대적으로 순종을 하겠습니다.”라고 맹세를 하였습니다. 아들의 기를 팍 꺽은 아버지는 이제 며느리의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아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럼, 좋다. 오늘부터 1년이 지날 때까지 며느리를 시골로 내려 보내어라! 그리고 나와 함께 며느리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밭에 나가서 일을 해야만 한다!” 결국 며느리는 그날부터 시골로 내려가서 1년 동안 시아버지와 함께 밭농사를 짓게 되었고 나중에는 시아버지의 몸에서 나는 거름 냄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시부모님을 극진하게 섬기는 효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확인한 실화입니다. 이러한 일을 경험한 이후에 그 시아버지는 며느리로 말미암아 쩔쩔매는 친구들이 있으면 이렇게 큰 소리를 친다고 합니다. “여보시오. 그런 못된 며느리 군기 잡는 데에는 미숫가루가 약이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늘 희생하시고 헌신하시는 부모님의 은혜를 위해서는 마땅히 공경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해야만 우리의 자녀로부터 공경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호주에 가면 원주민들이 짐승을 사냥할 때에 사용하는 부메랑이 있습니다. 특히 새를 잡을 때에 아주 유용한 무기입니다. 사람이 이 부메랑을 던지면 하늘을 향해 힘차게 올라가서 공중에 날고 있는 새를 치고서 다시금 던진 사람의 손에 들어오는 아주 신기한 무기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를 향한 공경은 정확하게 자신의 자식으로부터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어떤 못된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못살게 괴롭혔습니다. 시아버지가 한쪽 팔이 불편해서 자꾸 식사를 할 때마다 밥알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향해서 “아버지, 그렇게 돼지처럼 식사를 하시면 앞으로는 저쪽 구석에다가 따로 밥상을 차려놓을 거예요”라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이때에 이 광경을 지켜보던 손자가 갑자기 망치와 톱을 들고서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며느리가 의아스럽게 아들에게 묻습니다. “아니, 애야 식사하다가 갑자기 망치와 톱을 들고서 무엇을 하려고 그러느냐?”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예, 어머니 저도 어머니가 늙으면 할아버지처럼 밥을 드실 수 있도록 개 밥그릇을 만들려고 나갑니다.” 이 이야기처럼 부모를 향한 나의 태도는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서 자식으로부터 그대로 대접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제 1 계명부터 제 4 계명까지는 대신관계에 관한 계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무를 강조하는 계명입니다. 그러나 제 5 계명부터 제 10 계명까지는 대인관계에 관한 계명입니다. 대신관계에 관한 계명도 중요하지만 대인관계에 관한 계명도 매우 중요한 계명입니다. 특별히 대인관계에 관한 계명들 중에 첫째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 대한 특별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이 땅에서 장수하고 큰 축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효도는 인생살이에서 실패하는 길을 막아주는 하나님의 약속의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장수하면서 큰 축복을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살아계신 부모님께 최선을 다하여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과 용돈을 많이 드리십시오. 그런 효도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신령한 축복들이 틀림없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부모의 의무

  지금부터는 오늘 본문의 4절 말씀을 근거로 해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부모의 의무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은 본문 4절에서 ‘아비들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머니가 자녀교육에 더 큰 역할을 감당하는데 이 본문에서는 아버지가 먼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로마 시대에는 아버지가 큰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아버지는 자녀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가정의 대표자였습니다. 만약에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아비가 등을 돌리면 그 아이는 죽여도 되었습니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정에서 차지하는 아버지의 권한은 실로 막강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런 권위를 소유하고 있는 한 가정의 아버지에게 하나님은 자녀를 잘 양육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권위가 크면 거기에 따른 책임도 큰 법입니다. 가정의 실패의 원인은 어머니에게 있지 않습니다. 자식의 실패와 불효는 그 어머니에게 책임이 있지 않습니다. 그 책임은 바로 아버지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아버지에게 오늘 본문은 두 가지의 의무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잘못을 했을 경우에 매질을 가합니다. 그리고 그 매질로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무분별한 매질은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하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성경은 본문을 통해서 분명히 명령합니다.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을 학교에서 공부 못한다고 구박하고 공부를 잘하는 남의 자녀와 비교하면서 무시합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는 어린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날마다 멸시와 무시와 구박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어른이 된 후
에도 하나님을 사랑의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상당한 거부감과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또한 어떤 분은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님 어머니로 부르면 안 되냐고 묻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어린시절에 아버지께로부터 하도 많이 맞았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모든 결과가 아비가 자녀를 노엽게 한 결과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자녀를 너무 귀엽게만 키워도 안 됩니다. 한때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 간섭하거나 참견하지 말고 무조건 내버려두라는 교육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을 통하여 성장한 세대가 이제는 분노의 세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적절한 간섭과 통제를 받지 못하고 자란 자녀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좌절하게 되고 나중에는 분노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을 소극적으로 자녀들을 노엽지 않게 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을 해야만 합니다. 자녀에 대한 교육을 성경말씀을 통해서 올라른 종교관과 신앙관과 가치관을 심어줘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길 것을 어린시절부터 잘 가르쳐야만 합니다. 이러한 교육의 1차적인 의무는 어머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있다는 오늘 본문의 가르침을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아버지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부모들은 학교의 교육보다도 더 신앙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결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여러분의 자녀들을 잘 가르치시기 원합니다. 인간의 본분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있다는 절대적인 진리를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도록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항상 교회중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자녀라도 그 영혼이 교회를 떠나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를 떠난 영혼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출세하고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그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실패자임을 깨닫고 여러분의 자녀들을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 교회 중심의 자녀로 키우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하는 부모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항상 순종하고 공경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불변한 삶의 원리요 가정이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하면 훌륭한 자녀들로 반드시 성장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녀들은 이 국가와 민족과 나라를 위한 좋은 시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시민들이 모여서 참으로 행복하고도 아름다운 귀한 가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또한 좋은 가정의 식구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요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좋은 교회들이 이 사회에 많아질 때에 이 사회는 정의가 세워지고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세상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의 모든 믿음의 가정들로 말미암아 이 사회가 더욱더 밝아지고 건강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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