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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혼합주의를 삼가자 (고후 6: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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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이봉 목사 (상도교회)

□ 신앙의 혼합주의를 삼가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
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6장 14절-18절)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혼합주의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50여년 동안의 {자유 민주사회}의 특징이 다수결에 의한 조화라고 할 수 있었다면, 오늘의 신세대의 현대적 감각에서 추구하는 것들을 보면, 조화보다는 <혼합주의> (Syncretism)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색깔을 보는 색상(Tone of Color) 감각에서도 그렇습니다.

① 옛날에는 원색의 바탕을 둔 각 색깔의 아름다움을 들어냈다면, 요즘에는 무슨 색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안개 속에 가려진 듯한 환상적인 혼합적 색상이 세련된 색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누르스름한 바탕에 / 불그스름한 줄무늬에 / 히스머시한 구름모양의 색상이 혼합된 옷감이 세련된 색상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빨간색이 아니라 불그스름한 색을 선호하게 되었고, 노란색이 아니라 누르스름한 색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② 그런가 하면, 옷도 남녀의 구분 없이 입을 수 있는 옷들이 유행입니다.
③ 뿐만 아니라 머리 스타일에도 그렇고, 화장도 여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요즘에는 남자들도 목걸이하고 팔찌를 하고 다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④ 그런가하면 결혼도 옛날에는 이성과만 결혼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에는 동성끼리도 서로 사랑하고 함께 하는 부부들을 보게 된 세상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혼합주의>적 사상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예수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지 교회에 나와 예배들일 때 보면 신자인 것 같고 교회 뜰을 벗어나는 순간,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생활을 하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파트에 심방을 해 보면 이것은 더 잘 들어 납니다.
아예 교패를 붙이지 않는 교인들 가정이 있는가 하면, 또 그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가정들도 있습니다.
심리적 분석을 해 보면, 교회 나간다는 것 자체를 숨기고 싶어하는 심리입니다.
그런 심리 속에는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각에서 들어 나지 않고 편하게 살려는 심리상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의 기독교 신앙의 큰 도전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맘몬이즘>의 사상이요, 다른 하나는 <혼합주의> 사상이라고 신학자들은 지적하였습니다.

1. 21세기의 기독교 신앙의 큰 도전은 <신앙의 혼합주의>라고 합니다.

현대 사회를 일컬어 다원화 사회라고 합니다.
<다원화>란 말속에 담겨있는 종교적 의미는 한마디로 말하면, 어떤 특정한 종교만이 유일하다는 것을 배척하는 사상입니다.
어떤 종교이든 종교의 본질적인 진리에 이르는 길은, 어느 하나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석가탄신일 때 기독교인들도 참석하고,  크리스마스 때 불교인도 함께 하는 그런 사회현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얼른 보면, 그것이 현대인적 사고 방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도리어 폐쇄적이 아니고 개방적이고, 진부한 보수적이 아닌, 진보적 사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종교적 신앙에도 너무 극단적인 극우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적당하게 우도 아니고 좌도 아니고, 적당하게 율법주의적도 아니고,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아 졌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정치체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어떤 이념 전쟁을 할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던 시대는 낡은 시대의 유물이라고 합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냉전시대의 사고를 버리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냉전시대의 사고가 무엇입니까?
<공산주의 사상>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대립이었습니다.
이제 그런 사상과 사고로는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는, 개혁의 대상이 되는 구시대의 생각들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세계인, 즉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즘 남북 간의 관계에서도 이념논쟁, 적대감을 무너뜨려 서로 사상이 다르지만 왕래하고 공존하는 것이 새 시대조류에 맞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햇볕 정책에서 나온 소위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사고(思考)라고 봅니다.
이렇게 사상(思想), 이념(理念), 주의(主義)를 초월하여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 현대인의 진보사상으로 간주되게 되었습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명분 아래 <혼합주의>적 사상이 교회 안에까지 깊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혼합주의를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10계명 첫 계명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혼합주의>적 사고대로 보면 그것처럼 고루한 법은 없다고 봅니다.
어떻게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 사람의 머리에서 만들어낸 사상들이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치계에 나가있는 기독교인들 중에도 표를 얻기 위하여 절 행사에도 참석하고 교회 행사에도 참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동안 찬송가에 나운영 작곡에 대하여 그분이 찬불가도 지었다고 말썽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호도 찬양하고, 부처님도 성현으로 찬양함이 무엇이 잘못된 일인가 하는 그런 생각에서였습니다.

2. 그러면, 성경에서 혼합주의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대로 보면 본질적인 신앙을 후퇴하거나 변질 시켜가면서 공존을 말한 곳은 한곳에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종교 분쟁의 원인을 기독교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다른 신은 모두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야훼>의 하나님만이 오직 유일무이한 신으로  <야훼> 외에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유대인들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과 회교간에는 유혈전쟁이 끊일 사이가 없습니다.
그러면, 요즘 기독교 신앙이 점점 혼합주의로 빠져 들어가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여기에 우리의 반성과 지혜가 모아져야 합니다.

그 좋은 예가 우리 한국 기독교회가 당면한 북한 정권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6월을 호국의 달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호국이 누구를 위한 호국인가? 되물어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6.25는 우리 민족의 엄청난 살생과 파괴를 가져오게 한 전쟁이었습니다.
그 원인을 강대국 주도의 사상적 냉전시대의 결과로 보려는 지식들이 있지만,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신앙적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북한의 정권은 아직도 개인숭배의 유일사상입니다.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은 기독교 신앙과는 다른 사상입니다.
그 유일사상은 하나님이 아닌 공산당이요,
그 위에는 특정한 개인 숭배사상에 뿌리를 둔 체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신앙과는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사상이요, 체제이며, 정권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것을 혼돈하고 있습니다.
북한동포를 돕는 일과 북한 정권을 분리해야 하는데, 그 정권의 비위를 거슬리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들도 언젠가는 돌아설 것이라고 지극히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386세대가 그런 세대 중에 대표들일 것입니다.
하나님 없다고 하는 무신론 사상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쪽에서는 철저하게 자기식대로 통일하자고 하는데, 이쪽에서는 무슨 통일이라고 좋으니 전쟁만 하지말고 서로 왕래하자는 식입니다.
그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앞장을 서 있는데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월남을 보십시오.
통일은 되었지만, 그렇게 민주를 외치던 킹 스님과 기독교인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교회는 하나의 공산당의 허락 하에서만 존재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통일을 원하십니까?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색깔로 비유한다면 이상한 색깔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3. 기독교 신앙인의 차원에서 나라 사랑은 어떻게 나타내야 하겠습니까?
기독교 신앙인의 애국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유일무이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유일한 법칙이 바로 이 성경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애국운동입니다.
이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복을 주시겠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에게는 어느 특정한 당의 이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느 특정한 정책만이 유일의 정책도 아닌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유일한 법칙이고, 기초이고, 판단의 기준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식대로 해석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심이란 것을 주었습니다.
신앙 양심에 따라 개신 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주관적이 되기 쉬운 것이 약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말씀>의 진리는 이 기록된 성경 속에 이미 드러나 있기 때문에, 말씀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면서 혼합주의를 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나와 우리 집은 영원히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여호수아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 편에서 역사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이방의 신을 불러들여 혼합주의로 나아갈 때는, 나라는 약해졌고 결국 외국에 침입을 당하거나, 전쟁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오늘 호국의 달을 맞는 우리에게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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