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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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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고신일 목사 (기둥교회)

하나님께 나아가자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장 19~25절) 

<목회기도>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우리는 어리석고 둔하여 하나님의 뜻을 다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해합니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찌할 수 없어 답답할 뿐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신 말씀을 기억하며 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 지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이 땅에 많습니다.
공공요금과 물가는 줄줄이 오르고, 사업이 안되어 가슴치는 이들이 많고
취직이 안되어 한숨쉬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성도들의 형편과 사정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저들에게 살 희망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게 하시고 십일조를 줄이는 서글픔이 없게 하시며
십일조가 늘어남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는 성도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시고
저들도 우리와 함께 있을 때 까지 건강함으로 지켜 주시고
건강함으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외국에서, 오지에서, 병상에서,
전라도 남평에서… 우리와 함께 예배에 동참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젊은이가 이라크에서 죽어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확실하게 대응조치를 하지 못한 정부가 갑갑하고
언론에 공개된 통곡하는 가족들 모습에서 숨막힘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답답해도 속상해도
여러분 모두 소망 가운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생한 이야기, 못살던 이야기, 옛날 이야기, 미운 이야기… 그만하고
희망의 내일을 이야기하며 사십시다.
 
말하는 것만 들어봐도 그 사람이 나이가 들었는지, 어린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나이든 사람은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현실과 미래에 관심이 많습니다.
말하는 것 뿐 아니라 반응하는 것을 보아도
그 사람이 젊었는지, 나이 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 아이들은 '나이 들어 보인다, 성숙해 보인다'고 하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은 '어려 보인다'는 말 듣기를 좋아합니다.
옆의 분들과 '나이가 들어 보이십니다'라고 인사하겠습니다.
그 인사를 받으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은 젊은 사람입니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 있음에 희망이 있고
우리가 살아 있음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를 살게 하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본문(히 10:19~25) 말씀을 중심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인지 살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
 
본문 말씀은 구약의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연결하여
교리적인 가르침을 한 뒤에 이어서 그리스도인들의 실질적이고 윤리적인 삶에 대해
권고하는 말씀입니다.
 
19~22절에 소개된 핵심은
  "그러므로 형제들아…(18절)
    … 하나님께 나아가자(22절) 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님이 길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 본문 19절에 보면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이동식 성소는 성막(Tabernacle)이었습니다(출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출25:8)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 주시는 곳이어서
'회막'이라고도 했습니다.(출27:21, 33:7~10)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는데
레위기 16장에 보면 지성소에는 1년에 한번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속죄일에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대제사장이라고 함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규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 규정들을 지키지 않고 들어갔다가는 대제사장도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죄는 물론이고 헛된 생각까지도 용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고
자기 자신과 가족의 죄를 사하기 위한 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당시의 대제사장이 그랬으니 일반인들은 성소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일반인들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잘못 만났다가는 대제사장도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려운 분이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좋으신 분이지만
무섭고 두려운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직접 기도 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 직접 회개하고,
직접 달라고 하고, '하나님'이라고 직접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피흘리심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피흘리심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에(히10:19~21)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히10:19~21)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고 죄를 깨끗하게 씻음 받은 확신을 가진
참 마음(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 가식 없고 변함 없는 마음)과
온전한 믿음(확실한 믿음, 의심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22절)
다시 말해 죄를 회개하고 용서함 받은 확신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죄책감에 눌려 살지 말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 졌다, 거룩해졌다' 하는
담대함과 당당함(엡3:12)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합니다.
-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 나는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 흘리신 공로로 용서받았다
-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 나는 멸망치 않는다
- 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즐기고 가면 안됩니다.
예배를 구경하고 가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용서받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요즘 한국교회의 문제는 예배를 즐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예배를 재미있게 하려고 합니다.
예배는 재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많은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리사이틀 하는 것처럼,
가수들이 공연하는 것처럼 예배 드립니다.
예배는 공연이 아닙니다. 예배는 예배 드리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배 드림으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물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돌린 그 마음으로
세상에 나가 빛되고 소금될 살 결심을 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 구원받은 백성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니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비록 육신이 이 땅에서 고통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굳게 붙들어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소망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23절).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히10:23)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분명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23절의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라는 말의
"미쁘시니"(faithful)는  "믿음직스러우니, 참되니…"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온전한 믿음 없이는, 확실한 믿음 없이는, 의심 없는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11:6)
 
그렇기 때문에 흔들림 없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어야 합니다.(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15:58)
일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계22:12)
 
그러므로 사람들이 알아주느냐, 마느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안 하는데 나 혼자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나 혼자만 미쳤나봐! …' 등등 헛된 생각으로 마음 상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3절 말씀처럼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고후5:13)
 
사실 목사인 저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목회를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다른 목사님들은 이렇게 안 하는데… 일거리를 만들어 이 고생을 해야 하나?
  빚을 져가며 일하고, 빚 때문에 쩔쩔매야 하나?
  그런 일 때문에 말 듣고, 들은 말 때문에 상처받고… 
  가만히 있으면 누가 뭐래나? 가만히 있을 걸, 가만히 있으면
  내 맘도 몸도 편하고 부목사님들도, 교회직원들도, 교인들도 편할텐데…]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그런데 24절에 보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24절).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10:24)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하신 일
그것을 하도록 서로에게 자극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보세요.
'나 혼자만 잘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뭐하러 이렇게 열내나' 라고 말하시는 분들,
'남들은 안하는데 나는 왜 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서로에게 권하여, 자극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있는 사람, 특별히 죄짓지 않으며,
특별히 남에게 손해나는 일 하지 않고 그렇다고 남에게 유익한 일도 않고
혼자 지내는 사람에 대해 뭐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그런 사람에게 "악하고 게으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선과 반대입니다.
"악"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 악입니다.
 
여러분 간혹 "날 좀 내버려둬"라는 생각을 하시지 않습니까.
"날 내버려 둬…, 그 사람 내버려 둬…"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내버려두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하심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자극을 주어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삶이 되게 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
 
여러분 자신, 여러분 자식, 여러분의 남편/아내… 가족들,
친구, 믿음 안에서 만난 이들… 외면하지 마세요. 내버려두지 마세요.
'안봐', '상대 안하고 살면 되지'하고 등돌리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여러분 가운데도 '안보고 살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더불어 살며, 위하여 기도해 주고,
불쌍히 여기며 도와 주며 살라고 맡겨 주신 사명인지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지고 가라고 주신 십자가인지 어떻게 압니까?
여러분, 안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버려두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가 잘하니까? 내게 도울 은사가 있으니까…나보고 도우며 살라고,
위로하며 살라고, 성질 받아주며 살라고 붙여준 짐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한번 더 생각해 보시고, 한번 더 기도해 보시고, 
한번 더 참아보시고, 한번 더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 다른 사람에게 예수 잘 믿으라고 권면하다가 비난받아도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다가 비난 받아도 하시기 바랍니다.
 
신문에 난 이야기 그대로 소개합니다.
 
< 예수의 사람을 만나라 (국민일보 2004. 6. 19. 겨자씨에서)
  이 집사는 노방전도대의 팀원이었습니다.
  전도대가 어느 날 지방 소도시를 찾아 거리에 나섰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외지인에 대해 예우를 해주는 것인지
  주민들은 그렇게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에 귀를 기울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 집사가 가장 많이들은 말은 '아니오'였고
  덧붙이는 말들이 이 집사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 형님이 장로요. 그런 형님이 믿는 예수가 난 싫소."
  "내 옆집 사람이 집사입니다. 말도 마십시오."
  하나둘이 아니라 번번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집사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예수 믿는 놈을 믿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지, 예수님 믿는 사람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히12:2)
예수 믿는 사람을 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 비난받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면 좋아보입니다.
생긴 것과 상관없이 내 자식이 멋있어 보이고 예뻐 보입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뻐 보인다는데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이면 남자 중에 남편이 제일 멋있고,
여자 중에 아내가 제일 멋있어 보입니다. '아멘'입니까?
자녀…가 멋져 보이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약간 맛이 간 사람 같습니다. 사랑은 말로 설명이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하신 것, 세상적인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됩니다.
말로 설명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말로 설명이 쉽게 되질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사랑을 드러내려 애써야 합니다.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음주일은 기둥교회가 세워진 지 33년 됨을 기념하는 <창립기념주일>입니다.
그리고 봄철동안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 맥추감사절의 유래
구약 출애굽기 23:16, 34:23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맥추절은 유대인의 최고 농경제로 시완월(5~6월) 제 6일에 지켰으며
해마다 지켜지는 3대 절기인
'유월절', '맥추절(칠칠절)', '수장절' 중 두 번째 절기이다.
실제로 보리의 첫 수확을 기점으로 해서
밀 수확을 끝마칠 때까지의 7주 동안 지켰다.
이 기간은 특별히 거룩하게 지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뿐만 아니라 농사의 풍작까지도
하나님께서 좌우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
이 절기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오순절'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제 50일'이라는 뜻으로 7주간의 수확기간을 가리킨다).
 
▶▶ 맥추절을 지키라(출23:16)
맥추절에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까?
감사는 ① 마음으로  ② 입술로(찬양과 기도)  ③ 생활로
        ④ 물질로    ⑤ 몸으로 해야 한다.
입술과 마음의 감사만 있고, 생활 속에서 감사가 표현되지 않는 것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다.
누가복음 17:11~19에 나오는 열 문둥병자의 이야기는,
깨끗함을 받은 자는 열 명이었으나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하는 자는 하나밖에 없었으니
이는 감사의 희귀성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면
'감사할 것도 없는데 왜 감사하라고 하나'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감사는 범사에 하는 것입니다.
평범한 중에 감사해야 하고, 별 일이 없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다른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더 감사해야 합니다.
역경을 당해 고난 중에 있다면 그래도 감사해야 합니다.
역경 중에 하는 감사가 참된 감사입니다.
감사하고 사는 사람은 불평과 불만의 응달에서
감사와 기쁨의 양지로 변화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헌금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을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물이 있는 곳에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한 감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모르는 이에게는 감사하라고 권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며 살 때 더 큰 감사의 조건을 주실 것입니다.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힘들어도, 어려워도, 바빠도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0:25)
 
모여 예배하고, 믿음에 굳게 서도록 서로 격려하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사랑하기 위해 더 만나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모이라고 한 것은
그 당시에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박해, 고통, 비난이 심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두려워 모이기를 꺼려하고 모이기를 없애버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오순절 이후 초대교회는 항상 모이기를 힘쓰고,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 드리고 서로 협력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참조, 행2:42~47)
그러나 이런 초대교회의 신앙이 핍박과 함께 식어졌습니다.
교인들 중에는 '교회에 등록만 하고 교회 출석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를 부정하고 교회의 예배를 부정하며 모이기를 부정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한국 교회가 갖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예배 드리는 시간, 모임을 줄인다는 것입니다.
'낮에 한번 예배 드렸으면 됐지, 뭘 저녁까지 예배드리나' 하면서
이런 저런 교묘한 핑계를 대고 예배를 줄입니다.
한국 교회의 성장이 둔화된 시기가 바로 목회자들이 게을러지기 시작하면서
예배를 줄이고 모이기를 폐하기 시작했던 때부터입니다.
 
루터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찾고자 하면 교회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세요.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셨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참조, 행2:1~13).
예수님께서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라는 말은 '에클레시아'입니다.
이 말은 '불러낸 자들의 무리', '부르심을 받은 회중'을 말합니다. 
즉 '구원받은 백성의 무리'를 말합니다.
그들이 모여 조직과 체계를 갖춘 것이 오늘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모임이 없으면, 모이지 않으면 교회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모이지 않고 흩어질 수 있습니까?
모이는 교회 없이 흩어지는 교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흩어지는 교회가 되려면 모여야 합니다.
"그 날이 가까워 올수록, 세상 종말이 다가올수록,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다가올수록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떻게 하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말은 하나님께 얼굴을, 가슴을 보이는 삶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쳐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을, 얼굴을,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을 끌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살며
믿음으로 소망을 굳게 붙들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서로 힘이 되어 주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이기에 힘쓰는 삶이 될 때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기둥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 드리고 집을 향해, 일터를 향해 갈 때
하나님을 등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가시기 바랍니다.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갔던 것처럼
여러분의 범사의 삶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향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살며
믿는 소망을 굳게 붙들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서로 힘이 되어 주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이기에 힘쓰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 드리고 하나님을 등지고 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 붙들고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빛되고 소금된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4년  6월  27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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