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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섭리 (겔 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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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피영민 목사

  우리 기독교의 신앙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섭리신앙'이라 말 할 수있습니다.  섭리신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고, 만유를 통치하신다는 세가지를 믿습니다.  그러므로 창조 (creation), 보존 (preservation), 통치 (government)  이 세가지가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삼대요소입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신다'하면 무엇을 섭리하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까?그것은 하나님은 창조자시고, 하나님은 지금도 만물을 보존하시는 보존자이시며, 하나님은 지금도 인류사를 통치하시는 통치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섭리중에서 하나님이 만물과 인간사를 어떻게 통치하시는지 '통치적인 측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신앙을 그림처럼 묘사하는 것이 에스겔서 1장입니다.  이 에스겔서 1장은 처음 읽으면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부시의 아들입니다.  주전 597년에 느브갓네살 왕이 바벨론의 포로로 유다의 여호야긴 왕과 에스겔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게 되는데, 5년만에 그가 그발강가에서 기도 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겔1:1-3절에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여호야긴왕의 사로잡힌지 오년 그 달 오일이라 갈대아 땅 그발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위에 머물러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 위에 있게 됨으로 그가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영적인 귀가 열려서 환상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1. 에스겔서 1장의 세가지 환상

  에스겔서 1장은 에스겔이 본 세가지의 환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14절까지는 '네생물의 환상'이며, 15-21절까지는 '바퀴의 환상'이며, 22-28절까지는 '하늘보좌의 환상'입니다.  어떤 분은 에스겔서1장을 보면서 "이 내용은 비행접시를 말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이것은 비행접시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에스겔서 1:4절에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라고 네 생물이 오는 기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그 생물의 얼굴은 넷인데, 앞에는 사람, 오른쪽에는 사자, 뒤에는 독수리, 왼쪽은 소의 얼굴입니다.  이 네 개의 이상한 얼굴을 가진 네 생물이 오는데, 그 날개가 네 개입니다.  생물이 넷, 얼굴이 넷, 날개가 넷입니다.  날개밑을 보니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달려있고, 그 다리는 똑바르고, 발바닥은 잘 빛낸 구리같이 생겼습니다.  참 이상하게 생긴 생물입니다.  날개가 넷인데, 둘은 몸을 가리고, 둘은 서로서로 연결해서 이 네생물이 앞으로 쫙가면 돌이키지 아니합니다.  또 네 생물 가운데는 신이 있어서, 이 성신이 움직이면 네 생물도 함께 움직입니다.  이 네 생물의 얼굴이 넷이고, 그 바퀴가 넷씩입니다.  그러니 16개가 됩니다. 

그런데 네 생물의 얼굴마다 있는 그 바퀴가 이상합니다.  그 둘레가 크고 높고, 무서운데, 그 안에는 눈이 가득하고, 그 바퀴는 네 생물이 위로 들리면 위로 같이 들리고, 앞으로 가면 같이 앞으로 갑니다.  그리고 이 바퀴는 돌이키는 법이 없습니다.  동쪽으로 가면 쭉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면 쭉 서쪽으로 갑니다.  이 이상한 바퀴위를 보니 궁창이 있고 그 위에는 남보석처럼 생긴 보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사람의 모습처럼 생긴 형상이 있습니다.  이 형상은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입니다.  이 형상이 곧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가 엎드려서 말씀을 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지금 궁창 위에 남보석과 같은 보좌에 예수 그리스도가 앉아계셔서 네 생물을 통치하시고, 이 땅도 통치하십니다. 


2. 바퀴의 의미

  오늘은 이 네 생물이 땅에 내렸을 때에 네 생물의 네 얼굴에 있는 바퀴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성경주석가들은 이 바퀴를 하나님이 인생을 다스리는 섭리라고 말합니다.  야3:5절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고 인생을 바퀴로 비유합니다.  인생의 원리를 바퀴로 보는 것은 옛날 고대문헌에도, 다른 종교에서도, 심지어는 한국의 유행가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웃음)이라는 가수 조용남씨가 인생을 돌고도는 것으로 노래했습니다.  보좌 위에 앉아 계신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사에도 바퀴처럼 관여 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복잡한 에스겔서 1장의 핵심진리입니다. 


3. 섭리의 7대원리

  하나님이 인생을 섭리하시는 것이 바퀴라 한다면 이 바퀴에 나타난 섭리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첫번째로, 바퀴는 굴러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다스리시는 원리도 굴러가는 것입니다.  고정되는 것이 없습니다.  굴러갑니다.  때로는 위로 올라가고, 때로는 아래에 내려갑니다.  때로는 위에 있을 때도 있고, 때로는 깔려서 밑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다스리는 원리가 바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인생의 어려움으로 실망하지 않습니다.  밑에 깔려 있는 사람, 때로는 짜장면을 배달했던 사람도 '쨍하고 볕들 날'이 옵니다.  위에 있는 사람도 떨
어져서 밑에 깔릴 때가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호령하다가도 절에가서 자기 속 내의 빨기도 하고, 공짜 밥(감옥) 먹게 될 수도 있습니다.(웃음)  그러니 밑에 깔려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두번째로 이 바퀴는 네 생물과 함께 활동합니다.  이 네생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문의 여지없이 천사를 입니다.  하나님이 일 하실 때 천사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천사는 성도를 보호합니다.  어떤 사람은 20층에서 떨어지면 죽어야 하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고 삽니다.  교통사고로 차에 깔려서 죽어야 하는데 삽니다.  이것이 천사의 보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천사를 통해 벌을 내리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천사가 쳐서 충이 먹어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악인에게 벌을 내리시기도 하고, 기도응답을 가지고 내려오기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성도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천사의 사역을 부인하는 사람은 성경에 무지한 사람입니다.  그 천사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하는 일이 빠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절대 절명의 고독 속에 처해있을 때라도 모두가 나를 버리고, 가족도, 친구도 나를 버려서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도와주십니다. 

세번째로, 이 바퀴는 생물의 네 얼굴마다 있는데, 동서남북 어디로 보아도 다 똑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에나 미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동서남북 어디에나 미칩니다.  선지자 요나가 앗수르의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의 멧세지를 전하라는 명령이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에는 계실 지언정 바다에는 안계실 것으로 생각하고 도망 갔지만, 그는 뛰어봐야 벼룩이며, 날아봐야 병아리 날개입니다.(웃음)  하나님은 세계 만방에 섭리의 역사를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서 보낸 선교사님들, 멀리 유학가 있는 우리의 자녀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마음껏,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네번째로, 바퀴에 색깔은 황옥 같다고 했습니다.  16절에 "그 바퀴의 형상과 그 구조는 넷이 한결 같은데 황옥 같고 그 형상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여기에 황옥은 누런색이 아니고, 바다색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다와 같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바다는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바다가 왜 썩지않습니까? 소금이 함유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요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계속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텔레비젼만 봅니다.  움직여서 목요철야, 금요철야, 기도회에 나가는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요동하는 신앙이 되어야 썩지 않습니다.  인간이 바다를 정복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바다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돌팔이 선원은 바다를 우습게 알지만, 훌륭한 선원은 바다의 무서움을 알고 있습니다.  이 바다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지혜자도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큰 물 앞에서는 겸손한 것이 최상의 정책입니다.  하나님이 "너는 죄인이니 예수 믿어라" 말씀하시면 "예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겸손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무식한 사람입니다.  산은 어디에서 왔으며, 바다의 경계는 누가 정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다섯번째로 이 바퀴 안에는 작은 바퀴가 있습니다.  그 바퀴는 축입니다.  바퀴가 큰 소리를 내고 움직여도 그 축은 움직이지 안습니다.  요동하는 인생가운데에도 움직이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이 진리는 우리의 인생이 비참하고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사랑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진흙구덩이를 지나간다하더라도 하나님이 요동치 아니하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중심축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어떠하다해도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신 대속의 섭리가 우리의 인생의 큰 축이 되어 우리가 은혜로 살게 되었습니다. 

여섯번째는 이 바퀴는 17절에 "행할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대로 돌이키지 않고 행하며"라고 한번 직진하면 똑바로 행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일관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피상적으로 보면 무질서해보입니다.  테러도 있고, 전쟁도 있고, 불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질서하게 보이는 세상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한가지의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구덩이에서 노예로, 노예에서 감옥으로,  감옥에서 결국 하나님은 요셉이라는 사람을 애굽의 총리로 만들어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가 '테피스트리'라는 벽에 거는 자수를 보면 뒤에는 얼기설기 엉망이지만, 앞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복잡하게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은 한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이끌어가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며, 영원무궁한 세상에서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 한가지의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의 인생사가 매우 복잡해보여도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나쁜 일이 있어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자고하지 마십시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수에 쓰이는 흰실과 검은 실 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삶에 담백한 맛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얽매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너무 사랑하거나, 너무 미워하거나, 너무 애달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담백한 관계가 좋습니다. 

일곱번째는 바퀴에 눈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사람의 눈은 두개입니다.  사람에게 눈이 하나만 더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손가락에 눈이 달리면, 시험볼때 얼마나 좋겠습니까?(웃음) 뒤에 눈이 하나 더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뒤에서 일어나는 위급한 일을 대처할 수 있습니다.  눈이 하나만 더 있어도 이렇게 현명해지고, 지혜 있어질텐데, 바퀴에 눈이 가득하니 하나님의 지혜는 얼마나 무궁하겠습니까?  잠3:7절에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
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라고 말씀합니다. 


4. 결론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섭리하십니다.  어떤 분은 제가 이렇게 말하면 "기독교는 운명론인가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운명론 (fatalism)은 눈이 하나도 없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섭리신앙은 바퀴둘레에 눈이 가득한 신앙입니다.  운명론의 주체는 귀신입니다.  섭리론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운명론자는 "아무렇게나 되라" 말하지만, 섭리론자는 하나님의 지혜와 말씀을 따라서 순종적인 인생을 살아갑니다.  운명론은 방향도 목적도 없는 신앙이지만, 섭리론은 하나님이 역사를 운행하시고, 내 인생에 일관성을 가지고 지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운명론과 기독교의 섭리론은 크게 다릅니다.  사주팔자, 관상은 다 운명론입니다.  거지같이 생겨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큰 물권의 소유자가 될 수있습니다.  중국에 '장자'라는 분이 관상을 보러갔는데, 땅을 보며 갔더니 점쟁이가 "당신 거지상이요?"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서 그 다음날 하늘을 보며 갔더니 그 점쟁이가 "당신의 관상은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볼 수없는 관상이요!" 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러므로 운명론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섭리신앙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하늘보좌에 남보석 같은 보좌가 있고, 그 보좌에 사람 같으신 이, 예수 그리스도가 앉아 계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하늘의 영적인 존재와 이 땅의 인간사도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마땅히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최고의 헌신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마땅한 성도의 삶이며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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