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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로막힌 것은 없는지... (사 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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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성완석 목사 (여수시민교회)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사야 59장 1~2절말씀

  오늘 말씀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한 바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형편을 몰라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 말씀을 왜 주셨느냐? 58장3절을 보세요.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이스라엘이 힘들고 어려운 포로 생활 가운데 많이 탄식하고 부르짖고 구했는데 안 되더라! 안 풀리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왜 안 되느냐고 탄식하고 절망했더라! 그런데 그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힘이 있더라!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내가 도대체 왜 이런 고난을 내가 겪어야 하는가? 왜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을 내가 당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일은 그냥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더라! 모든 일에는 근본 원인이 있더라! 성경은 고난과 고통의 근본원인을 죄라고 말합니다. 죄에는 원죄와 자범죄 두 종류가 있는데,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할 때, 축복의 땅이 저주의 땅으로 바뀌어버린 거예요. “이제부터는 축복의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땀을 흘리고 수고해야 먹고 살 것이다” 불신앙과 불순종이 주변 환경까지 바꾸어 버렸더라! 환경이 바꾸어지기를 구하기 전에 먼저 구해야 할 것 있다면 무엇이에요? 내가 바꾸어지는 거예요. 내 마음이 달라지고, 내 생각이 달라져야 되요.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느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자리까지 기어코 라도 가야되더라! 환경 자체가 복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와 좋은 것들을 우리의 허물과 죄가 막아버렸다는 것입니다. 해결해야 할 것 해결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좋은 것이 막혀 버립니다. 이 문제 해결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의 능력과 공로를 힘입지 아니하고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먼저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고백해야 합니다. 죄를 알고 고백할 뿐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서 나의 모든 허물과 죄 때문에 피 흘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막혔던 담들이 헐어지고, 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을 가로막는 것들이 물러갈 줄로 믿습니다.

  원죄 이외에도 우리 스스로 범하는 자범죄가 있는데, 많은 사람이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하고 삽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를 못하더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모르는 일이 허다하게 많습니다. 어두움 속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지금 어느 것에 이끌려 살고 있는지 이것을 모르더라는 거예요.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나 한사람의 잘못 때문에 내 가정이 어려움을 당하고, 나 한 사람의 죄 때문에 가족이 힘들어하는 일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내 주변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더라! 은혜받으면 비로소 깨닫게 되더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을 헤치지 않고 사는 것도 귀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인생이더라! 무엇보다 내 중심으로 인본주의로 살아 온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은혜받고 나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구나! 이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은혜받고 나면 알게 되더라! “내가 말씀에 당연히 순종해야 하는데 내가 순종하지 못함으로 가족들이 고생하고, 주변 사람들이 고생했었구나!” 이것을 깨달을 때가 옵니다. 축복을 내 것으로 이루고, 내 가정의 것으로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주님 향하여 두 손 들어야 합니다. 당면한 문제 해결보다 내가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내가 청산할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과거에 나병을 앓았던 두 자매가 사는 가정을 심방하였는데, 대접하고 싶어서 식사를 준비해 놓았더라는 거예요. 식사도중에 언니가 “목사님 안심하고 드세요. 이 음식은 저 아이가 한 게 아니라 제가 준비했습니다.” 자랑스럽게 말하더라는 거예요. 언니의 상태가 동생보다는 좀 덜했어요. 목사님이 보기에는 두 사람 별 차이가 없이 보이더라는 거예요. 사람은 그렇습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좀 낫다.” 이것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죄가 많든지 적든지 모두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 죄인이에요.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더 많은 죄를 범했느냐, 적게 범했느냐 하는 것이 아니더라! 내 속에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 있느냐? 내 속에 십자가를 붙드는 믿음 있느냐?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있느냐? 이것이 중요하더라! 은헤받고 주님께 가까이 갈수록 무엇이 보이느냐? 나의 죄와 허물과 얼룩이 보이더라! 나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어야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산적해 있기는 한데 근본 원인을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해결해야 하고,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잘 느끼지 못하겠다! 그러면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 나를 보게 하옵소서! 나의 모습을 보게 하옵소서! 나의 죄된 부분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 만나는 곳에는 자기를 발견하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성전에서 주님을 대면한 이사야가 그랬잖아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라” 베드로도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로 고백하기를 “주여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있다면 즉각 회개하고 고백하면 새롭게 되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요엘 선지자도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내가 고생한 것 다 이유가 있었구나! 내가 교만해서 그랬구나! 나의 재능 너무 의지했구나! 내가 하나님 의지하기보다 일확천금을 바라고 있었구나! 그래서 주님이 고생시키셨구나! 내가 이렇게 인간적으로 나아가니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시지 않았구나! 깨닫고 돌이키는 순간 주님은 축복의 손을 도우시는 손길을 크게 펴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 회개해야 하느냐? 철저하게, 죄사함의 은총을 입을 때까지, 진정으로 회개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열립니다. 풀립니다. 얽혔던 일도 서서히 서서히 풀려지고, 막혔던 길도 서서히 서서히 열려지게 됩니다. 10년 동안 안 풀리고 얽혔던 문제들이 축복의 열매로 바뀐다니까요. 10년 동안 미루어지던 문제가 응답의 역사로 나타난다니까요. 근본을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니까 안 풀리는 거예요. 일시적으로 응답되는 것 같은데 다시 어려워지고, 다시 얽히더라! 

  회개한 자에게는 축복이 임하는데, 먼저는 죄사함의 축복이에요. 죄사함의 은혜는 시간만 지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것 이루어 놓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 직분을 받고 세상적인 지위를 갖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더라! 죄는 반드시 청산하고 해결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자백하기만 하면 모든 죄에서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시더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스스로 범한 자신의 죄 때문에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죽을 죄인이라도 돌이켜 회개하고 말씀 붙들고 살면 살 길이 열리게 되더라! 회개하는 곳에, 두 손 들고 돌이키는 곳에 살길이 열립니다. 새 출발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리고, 회복의 문이 열리게 되더라! 예레미야 31:34 “내가 다시는 기억도 아니하겠다” 은혜받고 회개하면 죄사함의 확신이 생겨나고 마음에 평안과 자유함이 오게 됩니다. 세상이 줄 수도 없는, 알 수도 없는 평안과 자유함이 우리 속에 임하게 되더라! 세상 많은 사람들이 여유있게 사는 것 같고, 잘 사는 것 같지만 무엇인가 쫓기며 삽니다. 불안해요. 만족함이 없습니다. 가슴이 눌려요. 신경이 자꾸 쓰입니다. 마음에 자유함과 기쁨이 사라져 버립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하나님과 가로막힌 것 해결해야 되요. 근본이 해결되야 나머지 것도 해결되어집니다. 

  다윗과 사울은 둘다 왕이었고 똑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았고, 사울은 버림받고 멸망 받았더라! 똑같이 실수했지만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그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했을 때 왕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엎드려 회개하고 말씀으로 돌아왔고, 사울은 끝가지 자기 생각대로 살고 말았더라! 복잡하게 이야기 할 것 없어요. 탕자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이 아들을 보며, 잃었다가 다시 찾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아들이라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기다리시더라! 마음 졸이며 기다리시더라! 언제나 돌아오나? 언제나 정신이 드나? 언제나 깨달을까? 안타깝게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가 알아야 되요. 

  요한일서 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려고 하면 내 죄와 허물부터 인정하고 고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안 그러면 스스로 속으며 사는 거라는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은 회피하고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지금 이렇게 된 것은 과거의 상처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노라고 환경을 탓하기도 합니다. 조상 탓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려고 합니다. 아니에요. 결국 모든 것의 책임은 내 자신 때문입니다. 내가 저질렀고, 내가 실수했고, 내가 불순종했고, 내가 잘못했어요.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는 문이에요. 회개하고 고백하는 자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시더라! 호세아 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말씀은 나를 보게 하는 거울이에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비만으로 고생하다가 성공적으로 살을 빼서 옛날 모습을 회복했어요. 한 기자가 어떻게 살을 뺄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거울 때문이라고 하더라는 거예요. 어느 날, 남편과 버지니아에 여행을 가서 한 모텔에 묵었는데, 그 모텔에 자기의 전신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더라는 거예요. 샤워를 하고 그 거울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뚱뚱해졌는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 전에는 자기의 살찐 모습을 보기 싫어서 항상 조그만 거울을 사용했는데, 모텔의 큰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고 깨닫고 나니까 살을 빼는 것이 비교적 쉽더라는 거예요. 말씀은 거울입니다. 말씀을 통해 나의 모습을 바로 알고 깨달을 때, 우리가 달라질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더라! 마귀는 항상 우리로 하여금 작은 거울을 보게 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아” 한 부분만을 보게 만들어요. 이 정도 믿음 생활이면 괜찮아! 너무 깊이 들어가면 골치 아파! 믿는 것은 좋은데 미치면 안돼!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은혜를 받고, 더 깊이있는 믿음 생활을 원하는 마음과 함께, 예배를 드려도, 말씀을 들어도, 기도를 해도, 좀 더 깊이있는 말씀, 깊이있는 기도의 자리, 깊이있는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마음도 있더라!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살려면 힘드니까, 은헤받으면 손해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왜? 은혜받으면 내 욕심대로 못 살잖아요. 은헤받으면 헌신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이전의 나의 모습이 변화되기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 이전에 누리던 세상 욕심과 쾌락을 놓기가 싫은 거예요. 게으른 자리를 벗어나기가 싫은 거예요.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더라! 말씀은 거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더 깊은 자리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도 원하고 계시더라! 목사를 통해서 강하게 이끌 때, 이 때가 바로 주님 예비해 두신 은혜받을만한 때요! 주님의 긍휼을 입을 때인 줄로 믿습니다. 때로 말씀이 나를 보게 하고, 나의 죄악된 부분을 발견케 할 때, 나의 아픈 부분을 보게 할 때, 피하려고 하지 마세요. 말씀이 나를 아프게 할 때, 붙들고 기도하세요. “성령이여! 내게 임하소서! 크게 임하소서! 나를 사로잡아 주옵소서! 나를 주장하여 주옵소서! 나를 다듬어 주시옵소서! 나를 고쳐서 쓰시옵소서! 아멘!” 내가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져요. 세상이 왜 이러느냐고 한탄하지 마세요. 내가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져 버려요.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환경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뀐 거예요.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뀐 거예요. 세상은 어제의 모습 그대로 있어요. 내 심령이 달라지고, 내 자신이 바뀌니까, 내 생각이 바뀌니까, 사람을 보고, 환경을 보는 내 눈이 바뀌니까 세상이 달라지더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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