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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넘치는 은혜 (겔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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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덕 목사 (내일교회)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부자 상인이 돈은 많이 있는데 그에게는 자녀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병이 들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세 명의 조카를 불러 놓고
자신의 요구에 가장 적절하게 답한 사람에게 재산을 상속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세 조카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고는
그 돈으로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을 사 오라고 일렀습니다. 조카들은 그가 시킨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각자 물건을 구입해 왔습니다. 한 조카는 값싼 물건들을 잔뜩 사 왔습니다.
그러나 방 하나를 채우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또 한 조카는 마른풀을 굉장히 많이 구해 왔지만
마찬가지로 방 한 칸을 채울 만한 양은 못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조카는 양초 하나와 부싯돌을 사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싯돌을 쳐서 양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온 방안은 불빛으로 말미암아 구석구석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부자 상인은 이 마지막 조카를 자신의 상속자로 삼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도 셋째 조카처럼
빛으로 나의 삶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벧전2:9절에서 말하는
나의 삶을 밝히며 채울 수 있는 기이한 빛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차고 넘치는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 되었던 때였습니다.
에스겔서는 1-32장 33-49장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유다와 열방에 대한 심판의 경고가 나오며
33장-49장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종말론적인 완성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33장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살펴보면
40장이하에서
새성전이 완성되어지고 예배가 회복되어 지면
성전에서 생명수 강물이 흘러나와 온 땅을 회복한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겔47장은 바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통해
세상이 회복되어짐을 말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오늘 이 회복의 은혜가 우리 내일교회에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오늘 본문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2>
40:1절에 보면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한 시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오 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사 년 정월 십 일] 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B. C 573년 경으로
유다가 B. C 606년 경에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서 패망하고
B. C 536년에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한 때는
유다의 포로생활 기간 중, 중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포로생활의 가장 어두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유다가 장차 회복될 것을
환상을 통해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이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는 영적 눈이 뜨여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형편이
아직 살얼음이 녹지 않고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같은 상황일지라도
입춘이 되면 동장군이 물러갈 것을 내다보고
봄채비를 하는 농부의 지혜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눈이 뜨여져
하나님 백성의 삶의 회복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의 회복의 징조로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재단 밑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성전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무엇을 뜻합니까?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주변의 모든 만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은혜의 역사가
어떻게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절에 보면 물이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 나와
우편 재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고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로서
이것은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제단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재단은 짐승을 잡아 제사 드리는 곳입니다.
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계22:1절에 <3>
생명강의 근원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 합니다.
그리고 요7:38절
[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 고 합니다.
이 물은 바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
즉 구원뿐만이 아니라 그 구원의 감격에서 나오는
우리의 삶을 회복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말합니다.
이 은혜와 능력이 교회를 통해 주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 은혜를 받아 우리의 삶이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해야할 우선적인 일이 무엇입니까?

지금 하나님 백성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있습니다.
거기다가 백성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당시 백성들의 영적상태를 돌아보면
1. 겔8:10절 70인의 장로들이 성전 안 사면 벽에
가증한 우상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기에 분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지도자들의 부패상으로 자신들의 욕심에 사로잡혀
종교생활은 하지만 자신의 욕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14절 성전 북문에서는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담무스는 바벨론 풍요의 신인데
자신들의 삶의 풍요와 안일함만을 위해 운다는 것입니다.
3. 16절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는 25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합니다.
이것은 마음이 세상에 다 가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성전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백성들이 외관상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같지만
그 마음은 온갖 욕심과 세속적 욕망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가증한 일들을 보고도 탄식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에 보면 하나님께서 먹그릇을 찬 서기관을 보내어
그래도 이러한 가증한 일들을 보고 탄식하는 자의 이마에는 표를 하고 이마에 표없는 자, 즉 이러한 가증한 일들을 보고는
아무런 감정 없이 신앙이 잠자고 있는 자는
살륙하는 기계를 가진 여섯 천사들이 따라오면서
사정 봐주지 말고 쳐서 살육하라고 합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4>
하나님의 백성의 무기력함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바라는 수준만큼 우리의 신앙인격이 변화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 자부하면서도
그 신앙의 수준은 세상 사람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느 대학교수가 기독교에 매력을 느껴서 성경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정말 놀랍고 위대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닮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다 ]라고 빗대어 말합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를 닮아가지 않습니까? 왜? 우리의 삶이 회복되지 않습니까?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그려놓은 우상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탄식과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렘2: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과 세상을 회복케 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강수 밖에 없습니다.
먼저 믿는 하나님 백성들이 정신을 차리고 교회와서 은혜를 받아야
삶이 풀리고 세상이 희망이 있다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은혜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은 언제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나왔느냐? 를 알고 나면
우리는 이 생명강수를 마실 수가 있습니다.
겔40-46장 까지는 에스겔서의 후반부로서
새성전 건축과 예배의식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이 말은 교회가 먼저 교회다워져야 하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어야함을 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물이 제단에서 나온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신약의 제단인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요한복음 19장 34절에 보면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물이란 말입니다. <5>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위에 세워진 교회
즉 교회는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위에 세워져
그 은혜로 구원의 감격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즉 구원의 감격 위에 마음을 쏟아 붓는 예배를 드려질 때
생명수가 흘러나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구원의 감격 위에 마음을 쏟아 붓는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생명수가 흘러나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보니
이제 성전 재단에서 발원된 물이 성소 문지방을 지나서
바같 동문 밑으로 흘러 나갑니다.
그때 척량줄을 잡은 천사가 일천척을 측량하고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물을 건너게 하는데 물이 발목에 오러더라고 합니다.
여기에 일천척은 약 500M를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건너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건너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니 물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되어
그물이 창일 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고 합니다.
천사가 일천척을 척량할 때마다 물의 깊이가 점점 깊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왜 이런 체험을 하게 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두어야 할 것은
보통 강 같으면 지류가 합해져서 강물이 불어납니다만
생명강수는 오직 성전에서 흘러나와 자체로 불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하나님 한 분의 은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만 입으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에스겔을 왜? 단번에 헤엄칠 물로 데리고 가지 않으시고
발목에, 무릎에, 허리에 그리고 헤엄할 물로 데리고 갔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점진성, 즉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말하는 것입니다.
<크로스 주석>에 보면
물이 발목에 이르렀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좇아 행하는 삶을 상징하며
물이 무릎과 허리에 이르렀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해 짐을 상징하며
물이 창일하여 헤엄칠 물이 되었다는 것은 성령충만을 상징한다. 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6>
먼저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좇아야 합니다.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교회 나오고 기도회 나오고 예친모임 모이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온다고 다 된 것은 아닙니다.
나왔으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무릎에, 봉사하는 허리에 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잠기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측량치 못할 하나님의 은혜요 넘치는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지라도
척량치 못할 하나님의 은혜, 즉 넘치는 은혜를 체험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인간적인 계산과 이성적으로 신앙생활 합니다.
넘치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서 생명수가 어떻게 흘러가는가? 를 통해서
우리가 넘치는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에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라는 말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조금씩 떨어져서'라는 말입니다.
즉 성전 동문 문지방 밑에서 몇 방울의 물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처럼 성령의 역사가 처음에는 희미한 것 같아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 그것을 느낄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깨닫기만 하면
내 배에서 강같이 흘러난다는 사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생명수가 <흘러내리더라>고 합니다.
은혜의 강물은 우선 흘러내리는 물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찢어지게 가난한 한 여인이
병든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포도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의 정원에 매달려 있는 탐스런 포도송이를 발견했습니다. 여인은 동전 몇 닢을 간신히 마련해 왕의 정원사에게
한 송이만 팔아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정원사는 매정하게 거절했습니다.
그 여인은 좀 더 많은 돈을 준비해서 포도를 사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러기를 수차례, 그 여인은 결국 절망 속에 빠졌고
정원 입구 한 구석에 주저앉아 소리 높여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애절하고 서럽게 우는 여인의 통곡소리는 <7>마침내 정원을 산책하던 왕자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를 궁금히 여긴 왕자는 여인에게 다가가
왜 그리도 서럽게 울고 있는 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 여인의 사연을 다 들은 왕자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 여인이여, 그대는 잘못 알고 있었군요.
내 아버지는 왕이십니다. 왕은 돈을 받고 파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자기 백성에게 거저 주시는 분이십니다. ]
왕자는 포도나무에 달려있는 포도송이를 따서 여인에게 주면서
빨리 아들의 병을 고치라고 위로했습니다.
왕자 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왕은 자기 백성에게 거저 주시는 분이십니다.
요7:37절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시라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 할렐루야
은혜는 공짜입니다.
많이, 많이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로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예스겔이 바라본 생명강수가 흐르는 주변 풍경이 어떠합니까?

생명강수가 불어나 강을 이루어 흘러가는데
7절에 [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고 합니다.
여기서 나무가 많더라는 말은 단지 나무만 많은 것이 아니라
나무와 함께 그 열매도 풍성함을 내포한 말입니다.
이 말은 바로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말합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심히 많다는 것입니다.
시1:3절에 복있는 사람은
[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
바로 은혜받은 사람의 모습이요.
내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의 강이 흘러내리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의 삶이 형통할 줄 믿습니다.

은혜 받으면 강 좌 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은 것 같이
형통한 삶, 존귀한 삶 살 줄 믿습니다.
서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 설교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태평양 발리섬에
<죠리링코>라고 하는 청년이 <사라타나>라고 하는 처녀와 결혼을 하는데 암소를 8마리를 주고 신부를 데려왔어요.
대체로 신부를 데려오는데 암소 2마리, 3마리인데 8마리나 주었어요.
원래는 3마리 정도의 값밖에 안되는데 <8>
인물도 별로인데 하여튼 8마리를 주었어요.
모두 놀랐어요. 어떻게 저렇게 많이 줄 수 있느냐?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부터 이 마을에 이 신부가 제일 아름다워지는 거예요. 제일 밝게 사는 거예요. 제일 기쁘게 사는 거예요.
옷도 제일 잘 입는 거예요. 날마다의 삶이 활기 있고 기쁨이 넘치는 거예요.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
나는 ‘귀하다’ 라는 거예요.
나는 3마리 짜리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에게 물었답니다.
[ 당신 어떻게 그렇게 많이 주었냐? ].
[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8마리도 아깝지 않고 80마리라도 주고 싶다 ] 소가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내일 가족 여러분~!
주님은 죄 많고, 보잘 것 없고 비천한 우리를 주님의 신부로 삼아 주었습니다.
그것도 금이나 은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지불하면서 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게 되면 얼짱 몸짱은 몰라도 삶짱이 되는 거예요.
내가 주님으로부터 너무 귀한 은혜를 받고 보니까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언어가 변하고 생활이 바뀌고
그래서 삶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제단에서 흘러내린 그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러니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8,9절에 [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 찌라 ]
[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 합니다.
아라바는 사해로 연결되는 저지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바다는 소금바다 사해를 말합니다.
물이 저지대를 흘러서 사해로 들어가니 바닷물이 소성 하더라고 합니다.
사해는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염해로서 죽은 바다입니다.
그런데 생명강수가 흘러들어 가니 죽은 바다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말합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은 그 곳이 얼마나 저지대이고 죽은 바다라 할지라도 사는 역사가 일어나며 생물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9>
내가 먼저 교회에서 은혜받아 은혜의 사람이 되어
내가 들어가는 곳곳마다 소성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나도 살고 주위도 삽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흑인 가수 마리안 앤더슨의 일화입니다.
그녀는 너무 가난해서 노래를 배울 수조차 없는 처지였지만
노래를 너무나 잘 불렀기에 교인들이 후원회를 조직하여 공부를 시켰습니다. 마침내 음악가가 되어 뉴욕의 맨해튼 홀에서 발표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발표회가 끝난 뒤 많은 백인 기자들이 신문에 악평을 써댔습니다.
마리안 앤더슨은 실의에 빠져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노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에 그녀의 어머니가 찾아와 이런 말로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 은혜가 위대함보다 먼저 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
그래서 마리아 앤더슨은
늘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로 결심하고 노래를 불렀더니 청중들이 감동을 받아 열광을 하게 되더랍니다.
우리도 은혜를 품고 살아가는 자가 된다면
우리 주변이 더 풍성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강가에 어부가 서고 그물 치는 곳이 되며 고기가 심히 많다고 합니다. 10절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며 ]
여기에 어부는 복음을 전하는 복음사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복음전하는 사역자로 일으켜 세웁니다.

<존 파이버>의 <구원을 딛고 삶 속으로> 라는 책 속에 보면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나서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근처의 마을에 가려면 32km 정도는 더 가야 했다.
고속도로인지라 아무도 자동차를 세우지 않습니다.
그때 열한 살인 아들이 “아빠, 우리 기도해요.”
그래서 차 뒤에서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머리를 들었을 때 픽업 트럭 한 대가 멈춰 섰습니다.
픽업 트럭의 운전자는 다음 마을에서 일하는 기술자인데
그는 자신이 마을에 가서 고장난 부품을 가지고 돌아와
자동차를 고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픽업 운전자와 함께 트럭을 타고 마을로 가는 도중에
자신도 깜짝 놀랐답니다.
왜? 픽업 운전자에게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운전자를 교회로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는 강가에 어부들을 세우게 합니다. <10>
교인들이 은혜 받았나 받는척했나?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는가 하면
바로 전도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되었나? 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전도하는 일군들이 많이 일어나
구원받는 수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말입니다.
전도하는 일군들 보세요
다 은혜받아 전도하는 일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받기 전에는 영혼구원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나면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하나님 모르는 영혼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강수의 환상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경고의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변하지 아니하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11절 진펄과 갯벌입니다.
[ 진펄과 갯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
진펄과 갯벌은 문자적으로 진흙 구덩이 그리고 웅덩이를 말하는데
사해 주변에 언덕 위에 위치한 진흙웅덩이를 가리키는데
우기에 사해바닷물이 넘치면 물이 이 웅덩이에 고이게 되고
고인 물은 곧 증발하여 소금기가 쌓여 소금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거나 외면하는 자를 말합니다.
교회에 나와도 아예 은혜를 무시하거나
안받기로 작정을 한 교인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수년, 아니 수십년을 교회에 다녀도 변화지 아니하는 교인들 보면 아예 은혜받지 않기로 작정한 교인이 아니면
안 변해도 그렇게 안 변할 수가 있겠습니까?
진펄과 갯펄같은 마음이 되면
결국 예수 실컨 믿고 버림받는 자가 되고 맙니다.
예수 믿을려거든 은혜받아 열매맺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름만 예수 믿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신사가 갑자기 여행을 가게되는 바람에
양복을 드라이크리닝 할 일이 생겼습니다.
[ 한 시간 드라이크리닝 ]이란 간판의 세탁소를 본 기억이 나서
그 가게에 찾아가 옷을 맡겼습니다.
[ 한 시간 안에 되죠? ] [ 내일까지는 어렵겠는데요 ]
[ 아니, 이 가게에 오면 한 시간 만에 드라이클리닝을 해주는 줄 알았는데요
그럼 간판은 왜 달아 놓았소? ] <11>
[ 아, 그거요. 그건 그냥 우리 세탁소 이름입니다 ] 하더랍니다.
어떻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저들의 행동보고 <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
즉 <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칭 예수 따라가는 자들이라고 하지만 전혀 이름하고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기로 했어면 교회나와 은혜받아 삶의 회복과
주위를 변화시키는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생명수가 흐르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은사도 나타납니다. 그 은사가 무엇입니까?

생명강가에 나무는 그 열매 뿐만이 아니라
그 나무의 잎사귀도 유용하게 쓰이는데 약재료가 되더라고 합니다.
12절 [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더라 ]
약재료란 말은 <리트루파>라 해서
여호와 라파 - 치료하는 여호와라는 말같이 즉 라파에서 파생된 말로 치료하는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복음을 받고 구원을 얻고 풍성한 은혜를 누릴 뿐만이 아니라 덧붙여 치유하는 역사도 은사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결론>
이 모든 역사의 근원은 바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로서
바로 복의 근원은 하나님인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인 것을 말합니다.
죽어가는 세상을 구원하고, 병든 세상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을 믿을 때 흘러나오는 생명강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받기 위해 진력하는 성도들이 되어여 합니다.
은혜받으면 삽니다. 회복됩니다.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은혜을 외면하는 진펄과 갯벌이 되지 마시고
교회와서 넘치는 은혜인 생명강수를 마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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