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희가 주어라 (마 14:13~21)

  • 잡초 잡초
  • 313
  • 0

첨부 1


- 김철 목사

마 14:13~21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17)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감리교회는 매년 6월 첫째 주일을 평신도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올 해로서 24번째 맞이하게 되는 평신도 주일은 평신도의 정체성과 사명을 재인식하고 평신도 단체간 유대를 강화하는 평신도의 생일입니다.

감리교 5,300교회는 평신도주일을 준수하고 "섬김으로 선교의 터를 넓히는 평신도"라는 주제에 맞춰 존 웨슬리의 복음주의 교리를 이 땅에 구현하고 감리교 재해기금 조성과 지역사회의 사회복지시설과 어려운 이웃들을 교회가 돌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평신도(平信徒)라는 말은 원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일반적인 뜻을 가진 말인데 근래에 와서는 신도 가운데서 세상 직업을 갖지 않고 목회에만 전문적으로 봉사하는 목회자 혹은 교역자와 비교해서 목회에 비전문적인 일반(平) 신도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도라는 의미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지만 다만 신앙공동체 안에서 그 직능이 다르다는 뜻에서 목회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것뿐입니다. 감리교회의 교리와 장정에서도 일반교인과 개체교회 사역자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일반교인은 평신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평신도 주일을 제정하여 실시하는 목적도 분명해 집니다. 그것은 평신도로서 일반교인의 직능과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함과 동시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극대화함으로써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높이고 성취하려는 목적입니다.

오늘 본문은 벳새다 들녘에서 말씀을 증거하시다가 굶주린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신 주님께서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는 장면입니다.

이 과정이 있기까지 전능하신 주님의 절대적 능력이 기적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에 더 아름다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무리들의 허기진 배를 헤아릴 줄 압니다.

마 14: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내 손끝의 작은 상채기는 큰 문제지만, 이웃의 허리 부러지는 아픔은 전혀 알아 채지 못하는 것이 사람들의 생리입니다.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는데는 열정적이지만, 이웃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은 허기진 이웃들을 살펴 볼 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아픔을 조롱하지 않습니다. 그 고통을 즐기지 않습니다. 내 고통으로 발견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길다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끝나자 이제 무리들의 그 아픔을 해결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제자된 자들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웃의 아픔을 어떻게 바라 보고 있습니까?

요 9:1~2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그 아픔의 원천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돕고 격려하는 삶. 아픔을 찾아 같이 부여 안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삶이 오늘의 평신도 상입니다.

2. 기적의 재료를 찾아 봅니다.

이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14:1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 이미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제자들에게 그 수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알고 계십니다. 아니 더 정확학 표현하면 그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능력이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00데나리온 어치의 떡을 사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죽은 사람을 살려 내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으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서가 주님의 능력을 우리들로 사용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러나 아직 제자들은 주님의 의도를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단히 중요한 재료를 찾아 옵니다.

마 14:17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동일한 사건을 요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이 것 가지고 누구 코에 붙입니까? 간에 기별이나 가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불가능의 일들을 어떻게 다루고 계십니까?

3. 순종합니다.

마 14:18~19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기적은 아무 곳에나, 어느 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는 현장에서 비로소 기적은 일어납니다.

마 17장은 변화산상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3명만 변화산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바로 그 3명의 제자들입니다.
이들은 제자들 중의 제자이며 12제자의 대표격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이해하고 충성했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버린 제자들입니다.

가정에서도 보면 여러 자식 중에 그래도 아버지가 집안 일을 의논하는 자식이 있게 마련입니다.
주로 맏자식이 그 역할을 감당합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바로 12제자 중 이런 맏자식 같은 제자들입니다.
교회에도 맏아들 같은 이런 성도가 있습니다. 맏딸 같은 성도가 있습니다. 큰 형님 같은 성도가 있습니다.
바로 그런 맏아들 맏딸 큰 형님 같은 성도가 교회에는 필요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대구교회 "맏아들 같은 성도야"라고 생각하는 분은 한 번 마음속으로 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대구교회 맏딸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도 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맏아들, 맏딸은 나이가 많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맏이의 특징이 있습니다.

1) 첫째는 책임의식이 있습니다.

여차하면 부모님의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어머니 아버지의 임종은 내가 지킨다. 그런 의식이 맏아들 맏딸에게는 있습니다.

2) 둘째로 희생의 각오가 있습니다.

부모님께 어떤 일이든 큰 일이 벌어지면 치러낼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셋째는 요리조리  도망갈 궁리를 하고 핑계 찾기에 바쁜데 그런데 맏자식은 안 그렇습니다.
어떤 희생이든 온몸으로  감수할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 누가 베드로 요한 야고보 같이 교회의 맏아들 성도, 맏딸 성도입니까?
저는 맏아들성도는 교회에 일이 있을 때마다 목사가 찾아가서 의논할 수 있는 성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구교회에 맏아들 성도 맏딸 성도가 많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알까봐 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기만 하면 문제가 일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맏아들 맏딸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변화산이든 겟세마네동산이든 어디든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여러분! 평신도 주일 예배 마친 후에 여러분의 삶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삶은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까?

평신도 주일 - 교회 구성원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평신도들이 오늘 주님의 제자로 제 역할들을 다 할때 비로소 교회가 교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막강한 평신도의 결집된 힘을 교회에서, 사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집중시켜야 합니다. 빈들의 기적! 빈들에서 5천명이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기적! 그 일에 참여하고 심부름했던 제자들과 같은 평신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