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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이 체험한 하나님 1 (창 2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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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피영민 목사

1 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떼가 누웠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물을 양떼에게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구를 덮었다가 3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양에게 물 을 먹이고는 여전히 우물 아구 그 자리에 돌을 덮더라 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형제여 어디로서뇨 그들이 가로되 하란에서로라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가로되 아노라 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가로되 평안하니라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 야곱이 가로되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 8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침이었더라 10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됨을 고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비에게 고하매 13 라반이 그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매 14 라반이 가로되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

(서론)
  사람은 참으로 복잡한 존재입니다. 제 자신을 봐도 참 복잡합니다. 그래서인지 제 아내가 저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을 연구하고 싶을 때 다른 사람을 연구할 필요 없이 당신을 연구하면 돼요. 당신으로도 충분히 복잡하거든요” 제가 신학의 여러 분야를 여러 해 공부한 결과 가장 일치되지 않는 분야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인간론’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서로 계시해 주신 성경을 가지고도 인간들은 인간론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인간이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된 삼분설인지, 영혼과 육신으로 구분된 이분설인지조차도 복음주의 교단에서 일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인지, 타락 이후에 자유의지를 상실한 존재인지도 일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로 인간론의 차이가 신학의 차이입니다. 신학의 차이가 결국은 교파의 차이로 나타난 것입니다. 고로 인간은 참으로 복잡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곱은 복잡한 존재이다
  성경에서 가장 복잡한 존재의 대명사를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야곱을 고르겠습니다. 야곱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형편없는 인물입니다. 야곱에게 별명을 붙인다면 네 가지로 붙일 수 있습니다.
  첫째는 ‘Jacob the Grasper, 잡은 자 야곱’라는 말입니다.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잡은 자입니다. 야곱은 태중에 있을 때 형이 먼저 나가니까 발꿈치를 잡았습니다. 야곱은 사람들이 자기 앞에 나서는 꼴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우리 인류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으로 갈려서 영원토록 갈등하고 투쟁한다고 했는데, 뱀의 후손의 특징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야곱의 모습은 뱀의 후손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모로 볼 때에는 여자의 후손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야곱은 ‘Jacob the Opportunist, 기회주의자 야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밖에 나가 사냥을 할 때 그 기회를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의 배를 채워주고 장자권을 탈취했습니다. 사람이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좋은 기회를 활용하는 것을 보고 기회주의자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약점을 기회 삼아 그 이점을 취하려 할 때 기회주의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로 야곱은 기회주의자입니다.

  세 번째로 야곱은 ‘Jacob the Deceiver, 속이는 자 야곱’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갖가지 방법으로 속여서 장자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다 받아냈습니다. 사기꾼입니다.

  네 번째로 야곱은 ‘Jacob the Vanished, 추방자 야곱’입니다.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리라!”하니까 겁을 먹고 부모와 약속의 땅을 떠나 도망하는 비참한 신세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야곱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야곱만큼 비열한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야곱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택한 자(Jacob the Chosen)입니다. 야곱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에게 택한 자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9장 11절에서 12절에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태에서부터 에서를 미워하시고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때문에 야곱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는 참 나쁜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택한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야곱은 ‘Jacob the Promised Seed, 약속된 씨앗’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아도 그 가운데 약속된 자손은 이삭입니다. 이삭의 아들이 둘이라도, 그 가운데 약속된 자손은 야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씨앗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고, 이 씨앗만이 천국의 상징인 가나안 땅을 소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절망적인 인간입니다. 소망없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큰일을 할 수 있는 희망적인 인물입니다. 우리 자신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적인 부분만을 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 창세 전에 택하신 존재이고,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건지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그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존재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를 볼 때에도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돌베개를 베고 잘 때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오고 그 끝에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대일의 말씀을 듣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야곱은 변화되었습니다. 창세기 28장 16절에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그 동안 하나님에 대해 귀로만 들었을 뿐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은 하나님은 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변화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변화는 하나님을 만나면서부터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인간의 도덕, 윤리, 타이름, 꾸짖음 같은 것으로 사람은 절대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변화합니다.  야곱도 변화된 20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창세기 29장부터 31장까지는 야곱이 삼촌의 집에서 20년 동안을 보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기보다는 야곱이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20년 동안에 하나님을 다섯 가지로 체험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택한 자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Guiding)

첫째로 야곱이 체험한 하나님은 ‘택한 자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의 인생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택한 자의 인생길은 운명이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연이 지배하지도 않습니다. 또 단순히 인간 의지가 내 인생길을 결정해 주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쉬고 계시는가? 내 인생에 관여하고 계시지 않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의 인생길에 지금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활동하고 계십니까? 우리 인생을 인도하는 방향으로 역사하십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 800km의 먼 길을 여행해 왔습니다. 그리고는 한 우물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그 때 하란에서 온 목자들이 양 세 떼와 함께 쉬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그들에게 묻습니다. “나의 형제여, 어디로서뇨?” 자기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서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매우 붙임성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란에서로라” 야곱이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뇨?”라고 또 묻습니다. 목자들이 “아노라”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야곱이 붙임성 있게 질문을 하니까 목자들이 중요한 정보를 야곱에게 제공합니
다.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야곱이 800km를 걸어서 이 우물에 도착한 것이 우연입니까? 목자들을 만난 것이 우연입니까, 야곱의 자유의지입니까? 또 그곳에서 라반의 딸 라헬이 양을 몰고 오는 것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도 우연입니까? 무슨 우연이 능력이 그렇게 많습니까?  야곱은 이제 라헬을 만나게 됩니다. 헌데 여기에 있던 목자들은 모두 삯군 목자들인 것 같습니다. 7절에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라고 목자들에게 야곱이 말합니다. 그런데 목자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그러나 야곱은 이들과 달랐습니다. 라헬이 양 떼를 몰고 오자 아구를 막고 있는 큰 돌을 옮깁니다. 이것은 라헬에게 좋게 보이기 위한 작전입니다. 먼 여행으로 피곤한 야곱이 라헬에게 가서 “물좀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전을 바꿔서 행동한 것입니다. 완력을 먼저 보이고, 라헬의 양 떼에게 물을 먹입니다. 그리고는 라헬에게 달려가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웁니다. 야곱은 반가워서도 울었을 것이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도 울었을 것입니다. 울면서 야곱은 말합니다. “내가 라반의 생질이요, 당신 아버지가 나의 외삼촌이요, 리브가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을 만나게 됩니다. 라반이 자세히 물어보니 조카가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라고 인정을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아닙니다. 택한 자 야곱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의 발걸음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인간적인 고독을 느끼며 먼 길을 왔을지라도 하나님은 야곱과 내내 동행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동일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도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시고 여러분의 발걸음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걸음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2. 택한 자를 연단하시는 하나님(Disciplining)

  두 번째로 야곱은 ‘택한 자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못된 것을 고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야곱이 아무리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인도하심을 받아 살고 있다고 해서 야곱의 못된 인간성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는 않습니다. 못된 인간성은 고치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다는 것은 야곱에게 기본구원(Basic Salvation)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야곱을 연단하신다는 것은 야곱에게 성화구원(Sanctification)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한 달 동안 아무 기약도 없이 일을 했습니다. 그러자 라반이 한 달 후에 근로계약을 체결합니다. 라반이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라고 야곱에게 묻자 야곱은 주저 없이 대답합니다.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 라헬을 주십시오!” 그러자 라반은 7년 동안 일을 하면 딸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야곱은 레아가 아닌 라헬을 좋아했을까요? 17절에 보니까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남자들은 여자를 볼 때 곱고 아리따우냐를 먼저 봅니다. 레아는 눈이 안 좋으니까 사물을 볼 때 찡그리면서 보게 되어서 못난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안경만 있었어도 레아의 인기가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설하고, 야곱은 7년을 수일처럼 일을 했습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세월의 아픔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유행가 가사 같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7년이 지나자 일을 마치고 혼인잔치를 합니다. 그리고 7년 동안 꿈속에 그리던 여인 라헬과 캄캄한 와중에 첫날밤을 치르게 됩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라헬이 아닌 레아가 누워 있는 것입니다. 사기꾼 야곱이 속았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 것입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따집니
다. “외삼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어찌 조카를 속일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라헬을 위해서 7년을 일한 것이지 레아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라반이 “둘째가 첫째를 추월해서 결혼할 수 없다!”라고 오히려 야곱을 꾸짖습니다.

  그런 후에 라반이 덧붙여 말합니다. “일주일 후에 라헬을 너에게 줄 터이니 라헬을 위해서 7년 동안 더 일을 해라.” 야곱이 꼼짝없이 14년을 일을 하게 된 순간입니다. 아마 야곱은 레아에게도 따졌을 것입니다. “당신이 첫째면서 어찌 둘째라도 속이고 들어왔소?” 하지만 야곱이 외삼촌에게 따질 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이놈아! 너는 아버지를 상대로 사기를 친 놈이야! 네가 더 나쁜 놈이야!” 또 레아에게 따졌을 때는 “너는 둘째면서 어찌 첫째라고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다 받아냈느냐? 네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야곱은 속았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속아서 고통을 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이 미워 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야곱에게 연단을 주셔서 야곱의 못된 성품, 사기성을 고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을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답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훈련과정인 것입니다. 잠언 17장 3절에도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다니엘 12장 10절에도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라고 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설교에 등장한 예화를 소개합니다.

  어떤 분이 경제 공황기에 직장을 잃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아내도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이 사람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신앙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어찌 나에게 이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기도하며 나오는 데 일꾼이 교회를 짓는 데 쓰려고 뾰족한 삼각돌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일꾼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일꾼이 대답합니다. “이 뾰족한 삼각돌을 다듬어서 저기에 있는 동그란 구멍에 맞추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 사람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하! 내 인생에 이런 환난과 연단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다듬으시는 것이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인간성이 있어서 나를 다듬어 고치시는 것이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는 하나님의 훈련과 연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려는 목적에 합당하게 만드시려는 목적으로 연단을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야곱은 이제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니고 야곱 개인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머리로만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벧엘 사건 이후로 야곱은 매일매일 자신의 죄악 된 성품을 고쳐주시고, 연단을 하시는 하나님으로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으로 보는 눈을 기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내 삶 가운데 쉬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인도하시고, 연단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나와 함
께 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시고, 인정하시고, 사모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택한 자의 인생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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